기록 상 남아있는 태조의 어진 26축 중
유일하게 현존하는 어진
1410년 전주 경기전에 봉안된 것을
1872년 모사해 현재까지 전해진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화마를 피했지만
끝내 6.25로 소실된 줄 알았으나
또 한번 기적적으로 모사한 초본이 발견되며
살아남은 세조의 어진
관상의 이정재와는 달리 둥글둥글한 인상이다
정식 어진은 아니지만
선조를 묘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림
흉배의 용과 귀를 뚫은 것으로 보아
왕 중 한 명을 묘사 한 것은 맞는 것으로 보이나
기록이 전무하고 측면으로 묘사된 것 등
진짜 선조인지는 연구가 더 필요하다
개인적으로 선조의 아들 정원군과 매우 닮아서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숙종의 어진으로 추정되는 그림
용두산 대화재로 반소되어
누군지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바닥의 용문석, 용포 표현 기법 등으로 보아
숙종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용두산 대화재에서 유일하게 전혀 훼손되지 않은 어진
어머니 숙빈 최씨의 사당에 걸려있던 그림이라 상반신만 묘사되어 있다
23대 순조 이흥
정조의 아들 순조의 어진
네 점이 남아있었으나 용두산 대화재로
모두 훼손되었다
처음 공개된 세 점은 얼굴이 모두 없어졌지만
익선관본이 공개되며
그나마 하관이라도 알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 정조도 비슷하게 생기지 않았을까?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의 어진
건강이 나빠진 아버지를 대신해 조선을 잘 이끌어갔지만 병에 걸려 22세로 요절하고 만다
사후 익종으로 추존되고 또 이명복 어린이의
양아버지가 되어 황제로 추존된다
어진은 8축이 있었다고 하지만
현재 얼굴이 모두 훼손된 2축만 전해진다
순조의 손자이자 익종의 아들 헌종의 어진으로
추정되는 그림
순종으로 보는 학자도 있으나
20대 후반이라기에는 너무 젊은 외모와
(헌종은 21세에 사망)
간소화 이전의 복식, 선원보감의 묘사와 닮은
눈매로 보아 헌종으로 추정된다
용두산 화재로 훼손되었고 헌종이 맞다면 3대가
부분적으로나마 얼굴을 남기는데 성공한 셈이다
강화도령 철종의 구군복본 어진
용두산 화재로 훼손되었으나 입을 제외한
얼굴 부분이 살아남았다
잘 보면 눈이 사시인데 사실적인 조선 초상화의
대표적인 사례로 알려져있다
시대도 오래되지 않았고 사진도 남아있는
이명복어린이와 순종은 생략하도록 하겠다
(귀찮아서 그런거 아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