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멘터리 전쟁사, 삼국지 아저씨로 유명하신 임용한 박사는 이 일화를 조선초기에 ‘어떻게 기록해야겠다’는 실무규정이 확립되지 않았을 때의 여러 시도 중 하나로 봐야 한다고 하셨죠.. 실제로 좀 지난 이후에는 본문과 같은 사례는 별로 없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