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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알다가도 모를 일..프로 배구단에 입사한 전직 프로농구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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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프볼=김지용 기자] “운동선수는 머리가 나쁘다는 선입견이 정말 싫었다. 우리 후배들도 다양한 분야에서 열심히 실력을 쌓아 재미있는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얼마 전 제천에서 끝난 KOVE컵 프로배구대회 중계를 보던 중 예상치 못한 낯익은 인물이 등장해 기자의 관심을 끌었다. 배구라고는 1도 모르는 기자였지만 그의 얼굴은 단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현대모비스 유니폼을 입고 코트를 누비던 그 선수는 OK저축은행 배구단 스태프 티셔츠를 입고 배구장에 있었다. 

분명 1년 전만 해도 KBL 코트에 서 있던 그가 1년 만에 프로 농구단도 아닌 프로 배구단 벤치에 무슨 연유로 앉아있는지 궁금증이 생겼다. 당연히 그에게 인터뷰를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기자의 금증을 불러일으킨 이는 우여곡절 많은 농구인생을 거친 ‘오종균’이었다. 

오종균은 대진고를 졸업하고 명지대에 입학했지만 1년 만에 군 입대를 선택했다. 전역 후 농구를 놓을 수 없었던 오종균은 2013년 일본 후지대학교로 진학해 2015년 대회 3점슛 기록을 세우는 등 쏠쏠한 활약을 펼쳤다. 

활약을 이어간 오종균은 3년 연속 도호쿠 지역 대학 대표로 선발되어 전국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다. 일본에서 선수 생활을 마친 오종균은 2016-17시즌을 앞두고 KBL 일반인 드래프트를 거쳐 당시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10순위로 현대모비스에 입단했다. 

자신의 꿈이었던 프로 무대 데뷔까지 남들보다 긴 시간이 걸렸지만 기어코 프로무대에 선 오종균은 1년의 짧은 프로 생활을 끝내고 2017년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유재학 감독의 부름을 받아 2017년 설을 앞두고 1군 무대에 서기도 했지만 예상치 못한 큰 부상은 오종균의 농구 커리어에 마침표를 찍었다. 

“처음 이야기하는 것이지만 현대모비스에 입단하자마자 무릎 관절경이라는 간단한 수술을 받았다. 수술 후 한 달이면 바로 운동할 수 있는 부상이었는데 수술 후 바로 무리하게 운동을 하면서 증세가 악화됐다. 주사를 맞고, 재활을 하면서 프로 생활을 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되면 은퇴 후 다리를 절면서 살 수도 있다는 의사의 소견이 있었다. 그래서 긴 시간 고민하다 어렵게 은퇴를 선택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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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오종균은 좌절하지 않았다. 일본에서 선수 생활 중에도 한, 중, 일 주니어 교류대회에서 통역으로 활약하는 등 꾸준히 통역 업무에 관심을 보인 오종균은 2018년 출범한 프리미어리그 개막전에서 일본팀의 통역을 맡는 등 한국에 돌아와서도 꾸준히 통역 분야에서 활약했다. 

“후지대학교에 갈 때만 해도 일본어는 1도 몰랐다. 그런데 일본에 가자마자 팀에서 나를 위한 패턴을 만들어 줬는데 중요한 대회에서 일본어를 못 알아들어 패턴을 완전히 망친 적이 있다.  그 때 정말 큰 충격을 받아 새벽 5시에 일어나 매일같이 일본어를 공부했다. 그렇게 일본어를 파고들어 대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일본어능력시험(JLPT) 1급도 합격했고, 유학생 스피치 대회에 한국 대표로 나가 우승도 차지했었다. 돌이켜 보면 그 시절 농구와 공부를 병행했던 것이 인생의 축복이었던 것 같다.”

농구를 더 잘하기 위해 배웠던 일본어는 오종균의 인생을 180도 바꿔 놨다. 현대모비스에서 은퇴한 오종균은 가이드 일과 개인 사업을 하며 일본어 통역 업무와 연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렇게 은퇴 후의 삶을 이어가던 오종균은 평창동계올림픽에서 JOC(일본올림픽위원회)의 부름을 받아 평창동계올림픽 일본하우스에서 일본 선수단의 통역과 행정 업무를 처리하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그렇게 제2의 인생을 살아가던 오종균은 다시 한 번 예상치 못한 기회를 얻게 됐다. 취업사이트를 통해 프로배구단에서 일본어 통역을 구한다는 소식을 접한 것. 오종균은 “정말 우연찮게 해당 공고를 봤는데 그 때만 해도 프로배구단이란 말만 있을 뿐 어느 구단인지는 적혀 있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지원했는데 3개월 동안 연락이 없었다. ‘떨어졌구나’ 싶었는데 3개월 만에 연락이 와서 면접을 보게 됐고, 한 번에 합격을 하게 됐다(웃음). 그래서 지금 OK저축은행 배구단에서 통역으로 일하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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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는 OK저축은행 배구단에서 일본인 트레이너와 전력분석원의 통역을 맡고 있다는 오종균은 “평생을 농구만 하다 배구단에서 일을 하게 되니 여러모로 어려운 점이 많았다. 농구는 연습할 때 공 하나만 가지고도 가능한 데 배구는 정신없이 공이 날라 다녀 문화충격을 받았다(웃음). 한 번은 우리 팀 용병이 때린 스파이크가 눈앞으로 지나가는데 정말 무서웠다”고 에피소드를 말하며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차이는 ‘용어’의 차이였다. 농구 용어는 빠삭하지만 배구 용어는 전혀 모르는 가운데 입사했기 때문에 지금도 배구를 공부하고 있는 중이다. 어렵지만 재미있어서 공부하는 맛이 있다”고 말했다. 

순탄치 않았던 농구인생을 마치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한 오종균은 지금도 프로 농구 선수를 꿈꾸는 후배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어렵겠지만 후배들이 반드시 귀 담아 들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한 오종균은 “지금 농구를 배우는 후배들이 어떤 환경에서 운동하는 지 잘 알고 있다. 연습 시간도 부족할 거다. 나도 학창시절에는 농구가 아니면 내 인생이 끝나는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부터라도 농구 이외에 내가 무얼 좋아하고, 잘 할 수 있는지 고민이라도 해봤으면 좋겠다. 많은 농구 선수들이 KBL을 꿈꾸지만 성공할 확률은 5%도 안 된다. 그 이후의 인생도 고민해야 한다. 나 같은 경우는 ‘언어’라는 제2의 무기가 있어 은퇴를 결정할 때 머뭇거림이 덜 했던 것 같다”며 후배들을 걱정하는 마음을 전했다. 

다가올 2020 도쿄올림픽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이바지하고 싶다는 목표도 밝힌 오종균은 “은퇴 후 계속해서 한국과 일본 농구팀들의 통역을 맡아 미약하나마 힘을 보탰다. 2년 뒤 2020 도쿄올림픽이 열리는데 기회가 닿는다면 그곳에서도 통역으로서 힘을 보태고 싶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한, 일 스포츠 행사에 농구 선수 출신 통역사나 행정가로서 개척자가 돼서 새로운 길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자신의 꿈을 이야기 했다. 

#사진_점프볼DB(유용우, 신승규 기자), OK저축은행 배구단 제공 

  2018-09-28   김지용

기사제공 점프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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