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월드컵] 조직력으로 무장한 크로아티아, 첫 결승 진출 가능할까
[오마이뉴스 봉예근 기자]
두 경기 연속 연장 혈투 끝에 4강에 합류한 크로아티아가 결승을 향한 마지막 관문을 넘어 슈케르의 한(恨)을 풀어줄 수 있을까.
12일 오전 3시(한국시각) 모스크바에 위치한 루즈니키 스타디움에서 2018 FIFA 러시아 월드컵 준결승 크로아티아와 잉글랜드의 경기가 펼쳐진다. 사상 첫 월드컵 결승행을 눈 앞에 둔 '발칸의 용사들'과 52년 만에 정상 탈환을 노리는 '축구 종가'의 정면충돌이다.
팽팽한 승부가 예상된다. 국가 대표팀의 이름값에 있어서는 잉글랜드가 크로아티아를 압도하지만 선수 면면을 살펴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다. 오히려 선수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무게감에 있어서는 크로아티아가 잉글랜드를 앞선다.
세대교체를 통해 젊은 선수들이 주축을 이룬 잉글랜드와 달리 크로아티아는 수년간 유럽 축구 중심에 있었던 스타 플레이어들이 즐비하다. 가장 유명한 선수는 레알 마드리드 중원의 핵이자 크로아티아 대표팀의 주장인 루카 모드리치다. 전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로 분류되는 모드리치는 이번 월드컵에서도 2골 1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고공행진을 이끌고 있다.
모드리치 이외에도 FC 바르셀로나의 이반 라키티치를 비롯해 이탈리아 세리아A에서 활약 중인 마리오 만주키치, 이반 페리시치 등 쟁쟁한 선수들이 가득하다. 오히려 이 멤버가 이번 대회를 통해 처음으로 16강 이상의 성적을 냈다는 것이 의아스러울 정도로 실속있는 선수단을 보유하고 있는 크로아티아다.
절대적 체력 열세의 크로아티아
앞서 언급한 것처럼 선수들의 실력만 놓고 보면 크로아티아가 잉글랜드에게 뒤처지지 않는다. 문제는 체력이다. 크로아티아는 16강전과 8강전에서 모두 연장전을 치러냈다. 심지어 두 경기 모두 승부차기까지 가는 혈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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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6월 21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와 크로아티아의 러시아 월드컵 D조 2경기 당시 장면. 아르헨티나의 리오넬 메시가 크로아티아의 이반 스트리니치와 마르셀로 브로조비치를 상대로 경기하고 있다. |
ⓒ EPA/연합뉴스 |
말 그대로 '기진맥진'한 크로아티아다. 지난달 17일 D조 조별리그 1차전 나이지리아와 경기를 시작으로 이번 잉글랜드와 4강전 경기까지 끝나면 26일 만에 6경기를 소화하게 된다. 3~4일 간격으로 매일 치열한 경쟁을 한 셈이다.
물론 단순 계산만 놓고 보면 24일 만에 6경기를 치러내야 하는 잉글랜드의 체력이 더욱 고갈되어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잉글랜드는 16강전만 승부차기까지 가며 고전했을 뿐 8강전 스웨덴과 경기는 90분 내에 마치며 숨을 돌렸다.
또한 조별리그부터 거의 매 경기 전력을 다했던 크로아티아와 달리 잉글랜드는 주축 선수들의 체력을 철저히 관리하며 올라왔다. 조별리그 상대였던 튀니지와 파나마는 한 수 아래에 상대였고, 이미 16강행이 확정된 후 맞이한 벨기에와 경기는 한껏 힘을 뺐다. 절대적으로 체력적인 우위를 선점한 잉글랜드다.
주요 선수들의 이번 월드컵 출장 시간을 살펴보면 그 차이는 더욱 극명하다. 먼저 크로아티아의 모드리치가 이번 대회 총 485분 동안 그라운드를 누빈 반면 비슷한 포지션의 잉글랜드 미드필더 조던 핸더슨의 출장 시간은 384분에 불과하다. 공격진에서는 크로아티아의 페리시치가 420분을 활약하는 동안 잉글랜드의 해리 케인은 360분을 소화하는 데 그쳤다. 심지어 주축 선수들이 30대 이상인 크로아티아와 달리 잉글랜드는 에슐리 영을 제외한 주전 선수 전원이 20대다.
역사도 크로아티아 편이 아니다. 월드컵에 32개국이 참가하기 시작한 1998년 프랑스 월드컵부터 2014년 브라질 월드컵까지 토너먼트에서 연속으로 연장전을 치러낸 국가가 결승전에 진출한 경우는 없다. 대표적인 예가 2002년의 한국 대표팀이다. 당시 한국은 16강 이탈리아전, 8강 스페인전 모두 연장전까지 경기를 진행했다. 앞선 과정에서 극심한 체력 소진을 경험한 한국은 독일과 준결승에서 체력 고갈의 벽을 넘지 못하고 패배했다. 크로아티아에게는 썩 유쾌한 소식이 아니다.
슈케르의 한(恨)을 풀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모든 지표가 잉글랜드 쪽으로 기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포기하기는 이르다. 크로아티아 대표팀이 단 한 발짝만 더 내디딜 수만 있다면 자국의 축구 영웅 다보르 슈케르의 못다 이룬 한(恨)을 풀어 줄 수 있다.
20년 전 크로아티아는 사상 첫 4강 고지를 밟았다. 공격수 슈케르의 힘이었다. 유고슬라비아 연령별 대표팀에서 두각을 나타냈던 슈케르는 크로아티아 유니폼을 입고 1998년 화려하게 빛났다.
조별리그 1차전 자메이카전부터 득점에 성공한 슈케르는 2차전 일본과 경기에서도 결승골을 터뜨리며 맹활약했다. 16강전 루마니아와 경기에서도 결승골을 작렬한 슈케르는 독일과 8강전에서도 득점 행진을 이어가며 조국의 준결승행을 이끌었다.
준결승에서 만난 개최국 프랑스를 상대로도 슈케르의 발 끝은 매서웠다. 후반전 1분 만에 선제골을 잡아냈다. 허나 승리의 여신은 프랑스의 손을 들어줬다. A매치에서 단 1골도 기록하고 있지 않았던 수비수 릴리앙 튀랑이 동점골과 역전골을 홀로 만들어냈다. 하필이면 은퇴할 때까지 A매치 142경기에 출장한 튀랑의 유이한 득점이 이날 터진 것이다. 3·4위전에도 1골을 추가한 슈케르는 총 6골로 대회 득점왕과 실버 볼을 수상하는 영광을 누렸지만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슈케르의 한(恨)을 풀어줄 현 크로아티아 대표팀의 최대 장점은 조직력이다. 모드리치-라키티치 조합 뿐만 아니라 대표팀 핵심 멤버들은 오랜 기간 발을 맞춰 온 선수들이다. 덕분에 상대가 아무리 강하도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폭발적인 공격력보다는 상대의 공격을 얼마나 인내할 수 있느냐가 중요한 이번 월드컵에서 크로아티아의 단단한 조직은 힘을 갖추고 있다.
또한 프랑스와 벨기에 준결승에서 사무엘 움티티의 한 방이 승부를 갈랐듯이, 팽팽한 긴장감이 도는 큰 경기에서는 이외의 득점을 터뜨릴 수 있는 선수가 필요하다. 크로아티아는 충분히 갖추고 있다. 선배 슈케르 같이 천재적인 득점 감각을 가진 이는 없으나 대부분의 선수들이 자신만의 무기를 보유하고 있다. 이미 결승전에 진출한 것처럼 떠들어대는 잉글랜드를 단번에 침묵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크로아티아에게 있다.
두 경기 연속 승부차기의 기적을 경험한 크로아티아. 떨어진 체력 속에 다시 한번의 기적이 필요하다. 그들은 과연 잉글랜드를 꺾고 슈케르의 못다 이룬 꿈을 대신 이뤄낼 수 있을지 결전의 순간이 다가왔다.
기사제공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