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세계대회 앞두고 금쪽 같은 40일... 무엇을 보완하고 준비할 것인가
[오마이뉴스 김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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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효진(190cm)과 김연경(192cm) 선수 |
ⓒ 박진철 |
주사위는 던져졌다. 이제는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이야기다. 대표팀 선수 14명은 9일 진천선수촌에 모두 모인다. 그리고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을 대비해 본격적인 소집훈련에 돌입한다.
올해 여자배구에게 가장 중요한 대회는 세계선수권이다. 2020 도쿄 올림픽 등 주요 국제대회 출전권과 조편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문제는 늘 세계선수권과 아시안게임의 일정이 겹치거나 비슷한 시기에 열린다는 점이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은 8월 18일에서 9월 2일까지 열린다. 남자배구 세계선수권은 9월 9일부터 30일까지 이탈리아와 불가리아에서 개최된다. 그리고 여자배구 세계선수권은 9월 29일에서 10월 20일까지 일본에서 펼쳐진다. 세계선수권은 여자배구만 출전 자격을 획득했다.
이번에는 남자배구의 경우 아시안게임 종료일과 세계선수권 개막일 사이의 간격이 7일에 불과하다. 반면 여자배구는 27일로 긴 편이다. 때문에 여자배구는 중국, 일본, 태국, 카자흐스탄 등 세계선수권에 출전하는 강호들이 아시안게임에도 1군 주전을 보낼 가능성이 높다. 세계선수권를 준비하는 데 활용 가치가 크기 때문이다.
올해 아시안게임은 개최 시기, 규모, 언론 관심도 등으로 볼 때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친선 경기 이상의 예비고사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세계선수권에서 나올 수 있는 약점이나 오류들을 미리 점검하고, 이를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 사이의 20여 일 동안 보강할 기회도 존재한다.
?특히 한국은 아시안게임에 대표팀 1군이 출전하지 않을 경우, 지난 6월 14일 네이션스 리그 마지막 경기 이후 3개월 반 동안 실전 경기 한 번 없이 세계선수권에 참가할 수도 있다. 그런 우려까지 감안하면,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이 윈윈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한 상황이다.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 '전초전·예비고사'
대한민국배구협회는 지난 3일 아시안게임 대표팀 엔트리 14명 명단을 최종 발표했다. 이 멤버가 대부분 세계선수권에도 참가할 가능성이 높다. 교체한다 해도 이나연(27세·173cm) 합류 등 일부에 그칠 공산이 크다. 장기간 소집훈련과 팀워크의 연속성, 현재 부상 선수들의 회복 진도를 고려하면 세계선수권을 20여 일 앞두고 많은 선수를 교체할 수도 없다.
포지션별 멤버 구성을 보면, 레프트는 김연경(31세·192cm), 이재영(23세·178cm), 강소휘(22세·180cm), 황민경(29세·174cm)이 발탁됐다. 김희진(28세·185cm)이 부상으로 빠진 라이트 자리는 네이션스 리그에서 라이트로도 활약했던 박정아(26세·187cm)와 장신 고교생 정호영(18세·190cm)이 맡을 가능성이 높다.
센터는 양효진(30세·190cm), 김수지(32세·188cm), 박은진(20세·188cm), 이주아(19세·186cm)가 책임진다. 핵심 멤버인 양효진·김수지와 장신 고교생 박은진·이주아가 가세한 조합이다. 세터는 이효희(39세·173cm)와 이다영(23세·179cm), 리베로는 임명옥(33세·175cm)과 나현정(29세·163cm)이 선발됐다.
지난 네이션스 리그에서 보듯,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에서 좋은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소집훈련 기간에 보완해야 할 점이 적지 않다. 리시브·디그 등 수비 조직력, 2단 연결과 공격 전환시 정교하고 빠른 플레이, 세터의 경기운영, 서브 등은 철저한 훈련과 개선이 필요하다.
국제대회가 연속적으로 이어지면서 주전 선수들의 체력 관리도 중요한 대목이다. 이를 위해서는 주전과 교체 멤버의 격차를 좁혀야 한다. 때문에 고교 유망주들의 경기력을 끌어올리는 데도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 프로에서도 보기 드문 장신 선수들인데다 체계적 육성을 위해 발탁한 만큼, 차세대 재목으로서 역할을 높여 가야 한다. 이는 궁극적으로 도쿄 올림픽 전략과도 연결된다.
이런 보완점들을 얼마나 잘 수행해내느냐에 따라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 성적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현재 여자배구 대표팀 선수들은 국민적 관심으로 부담감도 크지만, 잘해보겠다는 의욕이 훨씬 큰 것으로 전해진다. 선수들이 한마음으로 뭉치는 '원 팀(One Team)'을 구축하는 것도 경기력 못지않게 중요하다.
?'장신 유망주' 발탁과 육성... 절실하고 불가피한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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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수지(188cm·왼쪽)와 박은진(188cm·선명여고·오른쪽) |
ⓒ 박진철 |
차해원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지난 6월 인터뷰에서 "올림픽 같은 큰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내려면, 젊은 선수 중에 기대 이상의 활약을 해주는 케이스가 꼭 나와야 한다"며 "그래야 강팀과 대결할 때 중요한 고비를 타고 넘어갈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주요 국제대회의 흐름으로 볼 때 근거 있는 주장이다. 무엇보다 190cm대 신장과 점프력을 갖춘 유망주의 출현 자체가 '기적'으로 여겨지는 한국 여자배구 현실에서는 절박한 과제이기도 하다.
여자배구가 국제대회에서 좋은 경쟁력을 보여온 것도 세계 최고 완성형 공격수인 김연경(에자즈바쉬)의 존재와 더불어 장신화 부분에서 결코 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 주전 선수들의 평균신장을 살펴보면, 중국·러시아를 제외하고 다른 세계 강호들보다 오히려 크거나 비슷하다. 이는 한국 여자배구가 남자배구와 가장 큰 차이가 나는 지점이기도 하다.
여러 측면을 고려할 때, 김연경 이후 세대를 이어갈 장신 유망주 육성은 시급하고 중요하다. 방법론은 다양할 수 있다. 그러나 주어진 현실에서 선택의 문제도 있다. 한국 배구의 경우 어린 장신 선수들을 열악한 학교 시스템에만 맡겨 놓으면, 프로에 갈 때는 오히려 몸 상태와 기량이 퇴보하는 경우가 많다. 세계 강호들처럼 장신 유망주를 체계적으로 육성하는 시스템도 없다. 성인 국가대표팀에서 일부 선수라도 의지를 가지고 육성하지 않으면 뾰족한 방도가 없다. 그런 점에서 차 감독의 선택은 필요하고 불가피성을 인정해줄 여지가 있다.
유망주의 성장 측면을 살핀다면, 다음으로 미루고 규모가 작은 국제대회로 보내는 것도 대안이라고 보기 어렵다. 올해 과감한 시도를 하지 않으면, 내년에는 더 못한다. 내년에는 도쿄 올림픽 출전 여부가 걸린 올림픽 세계예선전과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이 줄줄이 있다. 세계선수권보다 더 중요하다.
또한 어린 유망주가 성인 대표팀 1군 주전이 출전하는 큰 국제대회를 치르고 나면 기량과 안목, 정신적인 면에서 한 단계 도약하는 경우가 많다. 선수들 의지와 대중의 주목도가 엄청나기 때문이다. 세계 강호들이 어린 장신 유망주를 꾸준히 국제대회에 발탁하는 것도 같은 이유이다.
김연경과 여자배구, '이길 수 없는 상대'는 없다
한국 배구 역사에 발자취를 남긴 스타 배구인들은 유망주 발탁과 육성의 필요성을 더욱 강조한다. 강만수 전 우리카드 감독은 1972년 뮌헨 올림픽 때 고교생 신분의 최연소 국가대표로 출전했었다. 그리고 1978년 세계선수권 4강 신화의 주역이 됐다.
그는 8일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나도 고교 3학년 때 장신 유망주로 올림픽 대표팀에 발탁됐지만, 대회 내내 주전자만 들고 다녔고 가끔씩 교체 멤버로 들어가는 정도였다"고 당시를 회고했다. 이어 "그럼에도 성장하는 데 큰 발판이 됐다"며 "어린 유망주를 대형 국제대회에 데뷔시키면, 그 책임감과 경험 때문에 성장 속도가 빨라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최고의 선수들로 선발하더라도 국제대회에서 실제 경기를 주도적으로 뛰는 선수는 엔트리 14명 중 8~9명 정도이고, 나머지는 교체 멤버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교체 멤버에는 한국 배구의 미래를 위해 장신 유망주를 포함시키는 게 맞다"며 "큰 국제대회에도 자꾸 데리고 가야 진짜 성장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비교적 긴 소집훈련이 주어진 것도 유망주들에게는 행운이다. 이 기간 동안 치밀한 훈련을 통해 유망주들이 좋은 활약과 주전 선수 체력 안배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그 또한 대표팀 감독과 선수가 해내야 할 몫이다.
한국 여자배구는 세계 강호를 무너뜨릴 저력이 있다는 걸 여러 차례 증명해 왔다. 런던 올림픽, 리우 올림픽 세계예선전, 네이션스 리그에서 모두가 어려울 거라고 예상했던 강팀들을 이긴 사례가 적지 않다. 올해 네이션스 리그에서 세계랭킹 1위 중국과 5위 러시아에게 완승을 거둔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김연경과 여자배구에게 '결코 이길 수 없는 상대'란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40일의 소집훈련 결과가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의 운명을 좌우할 것이다.
기사제공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