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단] 여자배구 숙제, 아시안게임-세계선수권 '윈윈' 가능할까
[오마이뉴스 글:김영국, 사진:박진철]
▲ 김연경 선수 |
ⓒ 박진철 |
'아시안게임에 체력 낭비하지 말고, 세계선수권에 올인하라.'
최근 배구팬들이 여자배구 국가대표팀을 향해 쏟아내는 일침이다.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지적이다. 올해 세계선수권 대회가 한국 여자배구에게 갖는 중요성 때문이다.
배구에서 세계랭킹은 매우 중요하다. 국제배구연맹(FIVB)이 주요 국제대회 출전권과 조편성을 모두 세계랭킹을 기준으로 적용하기 때문이다. 세계랭킹이 높을수록 2020 도쿄 올림픽 본선 티켓이 걸린 올림픽 세계예선전은 물론, 올림픽 본선에서도 유리한 조에 편성될 수 있다.
그런데 세계선수권은 순위별로 세계랭킹 점수가 가장 많이 주어지는 국제대회다. 세계선수권에서 획득한 랭킹 점수는 4년 동안 유지된다는 것도 큰 혜택이다. 올림픽을 목표로 하는 강호들이 세계선수권에 총력을 기울이는 이유이다. 한국 여자배구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세계선수권에 앞서 열리는 아시안게임이 문제다. 대중적 관심도가 높아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배구계 일각과 팬들은 아시안게임 금메달에 집착해 전력을 쏟았다가 중요한 세계선수권을 그르칠까 우려한다. 과거에도 그런 사례가 적지 않았다.
그동안 한국 배구는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 대회 일정이 겹칠 경우, 세계선수권을 소홀히 하고 아시안게임에 집중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를 대한민국배구협회(아래 배구협회) 지도부가 주도하기도 했다. 한국 스포츠가 아시안게임을 중요시하는 풍토가 있고, 남자배구는 금메달을 딸 경우 병역 면제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거꾸로 가는 배구협회... 소집훈련 'AG 40일-세선 20일'
배구협회와 배구계 일각에서는 지금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는 이가 적지 않다. 배구협회의 국가대표팀 소집훈련 규정만 봐도 알 수 있다. 올림픽과 아시안게임을 위한 국가대표팀 소집훈련 기간은 40일이다. 반면 세계선수권 등 다른 국제대회의 소집훈련 기간은 20일로 규정해 놓았다. 세계선수권보다 아시안게임을 더 비중있게 취급한다는 걸 보여주는 단면이다. 개선 요구도 있었지만, 여전히 그대로다.
배구계 상층부의 이런 풍토는 한국 배구를 국제무대에서 추락하게 만든 원인 중의 하나였다. 세계랭킹 점수가 가장 많이 걸린 세계선수권보다 랭킹 점수 1도 주어지지 않는 아시안게임을 훨씬 중요시해 온 것이다. 세계랭킹 점수가 부실해지는 건 당연했다.
남자배구가 세계선수권과 도쿄 올림픽 세계예선전에 출전 자격조차 얻지 못한 것도 그 연장선에서 발생한 일이다. 심지어 FIVB가 특별 배려해서 참여시켜 준 2018 네이션스 리그(VNL)마저 1승 14패라는 초라한 성적으로 강등되고 말았다. 그 결과 남자배구는 2019년도에 세계 강호들이 출전하는 주요 국제대회에 단 한 곳도 출전하지 못한다.
세계선수권에 출전하는 이란, 일본, 중국이 아시안게임에 2군을 파견해주길 바라는 것이 최고의 금메달 전략이라는 우스갯소리가 허투로 들리지 않는다. 한때 '아시아의 호랑이'라고 불리던 한국 남자배구의 참담한 현주소다. 그럼에도 책임을 지거나 혁신을 하려는 인사도 보이지 않는다. 그것이 더 비극이다.
여자배구 인기 비결... 국가대표 사명감과 '참여 의식'
▲ 여자배구 만원 관중... 2018 네이션스 리그 경기 모습 (수원 실내체육관, 2018.5.22) |
ⓒ 박진철 |
여자배구도 다르지 않다. 여자 프로구단들의 이기주의도 만만치 않다. 세계 최고의 완성형 공격수인 김연경이 없었다면 남자배구와 똑같은 길을 걸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여자배구 대표팀 선수들은 평가해줄 대목이 있다. 대부분의 선수가 국가대표팀에 대한 사명감과 참여 의식이 높다. 이는 과거와 비교해 달라진 부분이다.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에 출전하려는 의지도 강하다.
일부 선수는 소속 팀에서 자기를 빼달라고 요청할까 걱정하는 선수도 있다. 39세의 이효희는 후배 국가대표 세터를 키우는 데 도움을 주고 싶다며 솔선해서 대표팀에 참여한다. 최근 여자배구가 대중들로부터 뜨거운 사랑을 받는 이유이다.
여자배구는 올림픽 등 국민적 관심이 높은 국제대회에서 선전을 통해 V리그 흥행에 일등공신 역할을 하고 있다. 주요 국제대회 출전 횟수가 늘어나면서 여자배구 선수들에 대한 대중적 인지도와 관심도도 급상승했다.
그리고 또다시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이 함께 찾아 왔다. 여자배구 대표팀은 세계선수권을 앞두고 있음에도 아시안게임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아시안게임 명단 확정... 세계선수권과 '윈윈 방안' 찾아야
결국 세계선수권에 지장을 주지 않으면서 아시안게임도 좋은 성적을 거두는 '윈윈 묘안'을 찾아야 한다.
아시안게임에 출전할 여자배구 대표팀 명단은 이미 아시안게임 조직위원회에 통보된 상태다. 특별한 부상 선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교체는 어렵다. 대표팀 선수들은 오는 7월 8일부터 진천선수촌에 모여 아시안게임을 대비한 소집훈련에 돌입한다.
배구협회는 현재 팔꿈치 부상이 악화된 김희진(185cm·IBK기업은행)을 아시안게임 대표팀에서 제외하고, 새로운 선수를 합류시키는 절차를 밟고 있다.
차해원 여자배구 대표팀 감독은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김희진이 빠진 대신, 수비력을 갖춘 레프트 선수를 새로 충원할 생각"이라고 밝혔다.
차 감독의 구상대로라면, 김희진의 라이트 자리는 네이션스 리그에서 라이트로도 활약했던 박정아(187cm)와 장신 고교생인 정호영(190cm)이 맡을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레프트는 김연경, 이재영, 강소휘와 새로 합류한 선수 등 4명이 맡게 된다. 다른 포지션도 윤곽은 어느 정도 드러난 상태다.
아시안게임-세계선수권 대표팀, 큰 변동 어렵다
아시안게임 멤버들이 대부분 세계선수권에도 출전할 가능성이 높다. 일정과 여건 때문이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은 8월 18일에서 9월 2일까지 열린다. 여자배구 세계선수권은 9월 29일에서 10월 20일까지 일본에서 펼쳐진다.
두 대회 사이의 간격은 27일이다. 그런데 프로 구단들의 요구로 대표팀 선수들은 아시안게임이 끝나고 일주일 동안 각 소속팀으로 돌아가야 한다. 선수들에게 휴식을 주는 차원이 아니다. V리그를 대비해서 외국인 선수와 손발을 맞출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 때문이다.
결국 대표팀은 아시안게임을 마친 이후 세계선수권을 준비할 훈련 기간이 20일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때문에 아시안게임 멤버와 다른 새로운 선수로 대거 교체하는 건 불가능하다. 팀워크와 수비 조직력이 깨져 세계선수권을 망칠 수 있다. 7월 8일부터 시작하는 훈련 효과를 세계선수권까지 이어가기 위해서도 아시안게임 멤버의 기본 틀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교체를 한다면, 김희진, 배유나, 문정원, 김해란 등 필요성이 큰 선수 중에서 부상 회복 정도에 따라 일부 선수가 합류할 가능성은 있다. 이 또한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 부상 회복 후 경기 감각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기존 멤버들보다 경기력이 더 안 나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주전 체력 안배-세계선수권 전지훈련 효과 중점
결국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가 핵심 과제로 남은 셈이다. 핵심 선수들의 체력을 안배하면서 아시안게임을 세계선수권을 위한 전지훈련 또는 예비고사로 활용하는 것이 현실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아시안게임은 참가국 간 실력 차이가 크기 때문에 약팀과 경기할 때는 핵심 선수와 유망주들을 고르게 투입하고, 4강-결승전에 만날 강팀과 경기에서 베스트 멤버로 좋은 성적을 거두는 전략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런 전략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포지션별 백업 선수들의 경기력을 최대한 끌어올려야 한다. 아시안게임 소집훈련 기간이 40일 정도로 긴 편이기 때문에 철저한 훈련과 준비가 필요하다.
아시안게임에 중국, 일본, 태국도 1군이 출전한다면, 예비고사 효과는 더 커질 수 있다. 강팀과 맞대결을 통해 세계선수권에서 나올 수 있는 약점이나 오류들을 미리 점검하고, 아시안게임 직후 보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시안게임과 세계선수권이 윈윈하는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 여자배구의 최대 숙제다.
기사제공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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