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 발표된 A대표팀 소집 명단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유럽에서 북아일랜드, 폴란드를 상대하는 이번 원정 평가전은 러시아 월드컵에 갈 최종명단 발표 전 갖는 마지막 A매치다. 부상, 컨디션 난조 등의 변수가 있겠지만 기량이라는 척도에서 선수를 테스트하는 기회는 이번이 마지막이다.
신태용 감독 스스로도 “최종명단의 80% 가량은 확정됐다”고 말했다. 나머지 20%를 위해 박주호, 홍정호, 이용처럼 신태용 감독 부임 후 한번도 부르지 않았던 선수가 소집됐다. 나머지 멤버들도 논란의 여지가 거의 없다. 현재 좋은 기량과 컨디션을 유지 중이고, 유럽파의 경우 소속팀 내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며 꾸준히 출전하는 것을 넘어 활약이 빛나는 선수들이다.
부임 후 두 차례 유럽 출장을 다녀온 신태용 감독은 경기장에서 직접 체크하거나 개별 미팅을 했던 이청용, 지동원, 석현준을 과감히 제외했다. 기준은 냉정하다. 같은 포지션의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 종합적인 경기력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유럽파라 해도 출전하지 못하고, 활약이 부족하면 월드컵에 같이 갈 수 없다는 메시지다.
유럽 축구 시즌이 막바지로 가고 있고, 최종명단 발표 전까지 더 이상 대표팀 소집은 하지 않는 만큼 깜짝 발탁이나 최근 3개월 사이 선발되지 못한 선수에게 기회가 가진 어려울 전망이다.
이런 메시지와 함께 신태용 감독은 월드컵을 94일 남겨 둔 시점에서의 고민도 밝혔다. 많은 것이 명확해진 상황이지만 아직 답을 찾지 못한 난제도 그의 머리 속에 있었다.
자나깨나 첫번째 고민은 수비
신태용 감독은 지난 1월 소집한 수비수 중 정승현, 김영권, 고요한, 홍철을 제외했다. 고요한은 소속팀 서울의 연습경기 중 입은 발목 부상으로 빠졌다. 홍철은 박주호가 뽑히며 왼쪽 풀백이 과밀 양상을 보여 제외된 모습이다. 정승현과 홍철은 그나마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김영권은 그마저도 빠졌다. 여론의 지지를 못 받고 있는 장현수의 경우 집중력 부족으로 동아시안컵과 터키 전훈에서 실점을 빌미를 제공했지만 가진 장점과 스타일 면에서 대체 불가하다는 차이가 있다.
김영권의 제외는 터키 전지훈련에서 자신감을 잃은 모습을 보인 탓이 크다. 신태용 감독은 11월 소집과 12월 동아시안컵 소집에 김영권을 빼며 이란전 실언 논란이 가라앉고, 김영권의 자신감이 회복되길 기대했다. 1월 터키 전훈에 데려가며 “코칭스태프가 기대하는 최소 수준을 보여줘야 한다”라고 말했지만 첫 경기였던 몰도바전에서 부진한 모습을 보이며 전반을 뛰고 교체됐다. 이후 2경기에서 김영권은 볼 수 없었고, 그 시점에 이미 이번 명단에서 보기 어려울 거라는 예상이 가능했다.
그 자리를 대신해 기회를 얻은 것은 홍정호다. 6개월의 공백이 있었던 홍정호는 전북으로 임대를 왔다. 최강희 감독의 신뢰 속에 공백을 딛고 꾸준히 출전하는 중이다. 명단 발표 직전 치른 인천전에서 3실점을 했지만 그 이전 경기력, 특히 울산과의 K리그1 개막전에서의 활약이 호평을 받았다. 이용도 함께 기회를 얻었다. 스포츠 헤르니아 수술 여파로 지난 시즌을 사실상 날렸던 이용은 좋은 몸 상태로 복귀했고 톈진 취안젠과의 AFC 챔피언스리그 홈 경기에 예의 크로스 능력을 발휘했다.
두 선수의 합류로 대표팀 수비라인에서 전북 현대가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8명의 선수 중 5명이 전북이다. 센터백 4명 중에선 홍정호, 김민재가 풀백 4명 중에선 최철순, 김진수, 이용이 있다. 홍정호, 이용의 활약이 본격화되며 얘기된 전북 수비라인의 대표팀 이식 가능성이 본격화됐다. 최종예선 내내 조직력에서 약점을 보인 수비라인이 소속팀에서 계속 호흡을 맞추는 선수들의 대표팀 발탁으로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신태용 감독의 고민은 그보다 훨씬 깊다. 그는 “스웨덴, 독일처럼 월등한 신체 조건과 힘으로 들어오는 팀을 상대로 견딜 수 있어야 한다. 특히 길게 때리고 들어올 때 양 풀백도 제공권에서 이겨낼 수 있어야 한다. 코칭스태프가 매일 논의하는 부분이다”라고 말했다. 수비라인에 대한 고민의 실체를 거리낌 없이 말했다. 신장 180cm가 넘는, 제공권에서 어느 정도 버텨 줄 풀백을 원했다. 이번 소집 명단 기준으로 보면 이용(180cm)이 유일하다. 김남일, 차두리 코치를 통해 이용을 꾸준히 체크한 이유기도 하다.
전북 선수들로 구성해 조직력을 키울 수도 있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시너지 효과는 있겠지만 현재 보이는 실점율이 높다”라고 말했다. 전북에게 의존할 게 아니라 대표팀 스스로도 조직력을 높이는 자구책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었다.
손흥민의 컨디션, 월드컵까지 유지되길
명단 발표 당일 새벽 손흥민은 또 맹활약을 했다. 본머스와의 리그 경기에서 결승골을 포함 멀티골을 터트렸다. 리그 12골(득점 8위)을 포함 시즌 18골을 기록 중이다. 최근 4경기 연속 골(7골)의 페이스를 보면 한 시즌 개인 최다골이었던 지난 시즌의 21골을 넘어설 것이 확실시된다.
세계 최고의 리그인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손 꼽히는 기량을 펼치는 손흥민을 지녔다는 것은 신태용호가 역대 대표팀이 가져본 적 없는 수준의 창을 갖고 월드컵에 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1986년 멕시코 월드컵에 차범근이 나섰지만 당시 그는 만 33세였고, 동료들의 지원도 당시 상대하던 팀의 수준을 쫓아가지 못했다. 반면 현재의 손흥민은 국제 경험이 풍부하고, 유럽에서도 실력을 입증한 동료들이 다수 있다.
신태용 감독도 “지금 손흥민은 나를 흥분시키고 있다. 어느 포지션에든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라며 호평했다. 뒤이어 중요하게 언급한 것은 손흥민의 컨디션 유지다. 데뷔 이후 최고의 기량을 발휘하고 있지만 그 페이스가 시즌이 끝난 뒤인 6월에도 이어질 지가 관건이다. 다른 사례를 보면 우려가 드는 건 사실이다. 마라도나, 지네딘 지단,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카카 등 최고의 시즌을 치른 선수들이 체력과 컨디션 저하로 월드컵에서 고전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시즌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대표팀 합류 전 회복을 충분히 하지 못한다. 그런 상황에서 월드컵 전 평가전 등에서 부상을 입는 경우가 많다. 신태용 감독 역시 “월드컵에서 컨디션이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이 된다. 지금 최고조로 오른 컨디션이 월드컵 때까지 이어지길 바랄 뿐이다”라고 말했다.
차라리 즐라탄이 복귀하면 좋겠다?
월드컵 본선 첫 상대인 스웨덴은 최근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복귀를 놓고 여론이 뜨겁다. 대표팀 은퇴를 선언하며 스웨덴의 러시아 월드컵 본선행에 일조하지 않았던 즐라탄이 다시 합류하고 싶다는 뜻을 보였기 때문이다. 스웨덴 대표팀을 이끄는 야네 안데르손 감독은 공식적입 입장은 밝히지 않았지만 복귀 가능성에 부정적이다. 이미 즐라탄 없이도 돌아가는 대표팀을 만들었고, 그들의 힘으로 플레이오프에서 이탈리아를 제압하며 얻은 본선행 티켓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휴가지나 관중석에서 월드컵을 보고 싶지 않을 즐라탄의 특유의 쇼맨십 가득한 여론전으로 분위기를 계속 바꿀 것이 분명하다. 스웨덴이 조직력이 강하지만 마커스 베리, 에밀 포스베리, 올라 토이보넨 등이 이끄는 공격진에 상상을 깨는 파괴력은 부족한 인상이다. 즐라탄은 자신이 그것을 가졌기에 아직 대표팀에 돌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걸 안다.
이름값만 따지면 여전히 세계적인 즐라탄의 대표팀 복귀 가능성은 첫 경기 상대인 한국에게도 변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신태용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주제 넘는 생각일 수도 있겠지만”이라는 단서 조항을 단 뒤 “(즐라탄이) 들어 왔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현재 코치진이 수집한 정보에 따르면 즐라탄은 대표팀 내에서 희생과 헌신보다는 독불장군 식으로 행동했다는 게 신태용 감독의 이야기였다. 그럴 경우 한국이 스웨덴을 파고 들 부분이 자연스레 생긴다고 말했다.
즐라탄이 내부에서 스스로를 무너트리는 변수로 스웨덴에 작용하길 기대하는 눈치다. 과거 한국이 월드컵에서 승리를 거뒀던 상대들은 그렇게 흔들리는 모습으로 경기에 나왔던 게 사실이다. 신태용 감독의 그런 입장은 과한 자신감이 아닌 충분히 설득력 있는 생각이었다.
월드컵 직전 평가전은 4년 전의 2배
명단 발표 기자회견에 앞서 대한축구협회는 월드컵 전 스케줄도 발표했다. 5월 21일 소집될 월드컵 최종명단은 국내에서 열흘 간 훈련하며 두 차례 평가전을 갖는다. 이후 오스트리아에 세울 1차 베이스캠프에서 다시 열흘 간 훈련하며 시차 적응을 갖는다. 이 시기에 또 두 차례 평가전(1회는 비공개)을 벌인다. 평가전만 총 4회다. 지난 2014년 브라질 월드컵에서 대표팀이 국내에서 한 차례, 베이스 캠프였던 미국 마이애미에서 한 차례 총 2회 평가전을 치르고 들어간 것과 상반된다.
4년 전 당시 홍명보 감독은 실전 감각보다는 선수들의 컨디션 끌어올리기에 더 집중했다. 당시 대표팀은 박주영으로 대표되는, 경기를 장시간 뛰지 못하고 온 선수들과 부상자들이 있었다. 홍명보 감독은 평가전을 통해 경기력을 끌어올리기 보다는 컨디션 상태를 올리는 게 더 중요하다고 봤다. 하지만 그 계획은 마이애미 입성 초반 황열병 주사로 인한 선수단 컨디션 저하로 1차 실패를 했다. 마지막 평가전이었던 가나전에서도 완패하며 분위기가 가라 앉은 체로 브라질에 갔다.
신태용 감독은 4년 전 실패를 포함 여러 사례를 검토해 평가전을 다수 치르는 것으로 결정했다. 2006년과 2010년에는 이번 러시아 월드컵의 계획처럼 총 4차례 평가전을 치른 바 있다. 감독 개인만의 생각은 아니다. 피지컬 코치를 비롯한 전문가 집단과 선수들과의 논의를 통해 결정한 바다.
신태용 감독은 “선수들의 생체 리듬이 다를 것이다. 어떤 선수는 일주일 1경기를 했고, 어떤 선수는 주중 경기까지 2경기를 했다. 그 차이가 경기력 차이로 이어진다. 최대한 비슷한 상태로 맞춰야 한다”라며 평가전을 통해 최대한 많은 선수를 기용하며 차이를 줄이겠다는 목표를 밝혔다. 선수들도 같은 의견을 냈다.
많은 실전을 통해 리듬과 감각을 최대한 올리는 게 숙제다. 한편으로는 그만큼 F조의 상대국들에게 전력이 노출될 수 있다. 1경기를 비공개로 전환한 것도 그래서다. 많은 연습경기의 효과를 극대화하는 동시에 철저한 보안으로 상대에게 노출을 막는 것도 중요하다.
글=서호정
사진=대한축구협회, Getty Images
기사제공 서호정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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