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펜투구를 하고 있는 류현진(사진=조미예 특파원)
[엠스플뉴스]
류현진(30, LA 다저스)의 컷 패스트볼은 일견 평범해 보인다.
어떻게 보면 86마일(138.4km/h)짜리 패스트볼 같고, 어떻게 보면 회전이 덜 걸린 슬라이더 실투처럼 보이기도 한다.
같은 팀에 현역 최고의 컷 패스트볼(이하 커터)장인 켄리 젠슨이 있어서 더 비교된다. 젠슨이 던지는 평균 150.1km/h 커터를 보다가 류현진의 커터를 보면 같은 구종이 맞나 싶기도 하다. 좌완 투수라서 카메라 앵글이 상대적으로 불리하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류현진의 커터는 움직임 면에서 젠슨의 그것에 비교조차 되지 못한다.
그래서 류현진이 지난해 처음 커터를 던졌을 때 대부분은 알아채지도 못했다. 일부로부터는 패스트볼 구속이 느려졌다고 우려를 사기도 했을 정도다. 이후 류현진의 입을 통해 해당 구종이 커터란 사실이 드러나고, 여러 매체를 통해 커터의 우수성이 밝혀지면서 이제는 많은 팬들이 류현진이 커터를 던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하지만 여전히 류현진의 커터는 저평가받고 있다. 류현진의 커터는 겉보기와는 달리, 알면 알수록 더 위력적인 구종이다.
류현진표 커터의 장타억제력은?
커터는 변형 패스트볼의 일종으로 포심 패스트볼처럼 보이다가 홈 플레이트 부근에서 날카롭게 꺾이는 구종이다. 같은 손 타자 입장에선 바깥쪽으로, 반대 손 타자 입장에선 몸쪽으로 꺾여 들어온다. 후는 각이 작아서 헛스윙을 유도하는 데는 적합하지 않지만, 대신 패스트볼과 비슷한 속도로 날아오다가 갑자기 휘기 때문에 빗맞은 타구를 유도하기에 좋다.
빗맞은 타구를 유도하기 좋다는 것은 곧, 장타를 억제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지난 시즌 류현진의 커터는 장타를 어느 정도로 억제할 수 있었을까?
이를 살펴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다. 바로 '구종별 피 순수장타율(ISO)'이다. 순수장타율이란 장타율에서 타율을 뺀 값으로 한 타자가 장타를 얼마나 많이 치는지를 나타내주는 지표다. 값이 높을수록 장타 생산력이 뛰어나다는 뜻이다. 이를 반대로 생각하면, 투수의 경우에는 피 순수장타율이 낮을수록 장타억제력이 뛰어나다는 뜻이 된다.
[표] 컷 패스트볼 90타수 이상 피 순수장타율 순위(자료=베이스볼서번트)
2017년 류현진은 커터를 결정구로 던진 93타수에서 단 5개의 장타(2루타 3개, 3루타 1개, 홈런 1개)를 허용하며, 순수장타율 0.086을 기록했다. 이는 90타수 이상 커터를 결정구로 던진 투수 가운데 3번째로 낮은 수치다. 한마디로 말해, 류현진의 커터는 메이저리그 선발 투수 전체를 통틀어서도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갈 만한 장타 억제력을 갖추고 있다는 뜻이다.
홈런 비율이 줄어든 것이야말로 류현진이 후반기 평균자책 3.17(전반기 4.21)을 기록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지난해 커터의 장착이 류현진에게 얼마나 중요했었는지를 충분히 짐작해볼 수 있을 것이다.
류현진이 커터를 던지기 시작한 시점이 지난 시즌 중반이었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류현진의 빠른 구종 습득력, 투심 장착에도 적용될까
[그림] 류현진의 컷 패스트볼 투구 위치(왼쪽, 포수시점)과 컷 패스트볼 타구 결과(오른쪽). 컷 패스트볼의 투구 위치가 우타자 기준 몸쪽 보더라인 쪽으로 제구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 덕분에 컷 패스트볼을 던졌을 때 허용한 장타는 5개에 불과하다(자료=베이스볼서번트).
투수 출신 전문가에게 류현진의 장점을 물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나오는 말이 있다. 바로 빠른 구종 습득 능력이다. 류현진은 던지는 자세만 몇 번 보고도 해당 구종을 따라 던질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하지만 더 놀라운 것은 그 구종을 곧바로 실전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배짱이다. 대표적인 예가 한화 시절 구대성에게 배운 체인지업을 2주 만에 실전에서 사용했던 일화다.
2017년 커터를 습득하는 과정도 비슷했다. 지난 시즌 중반 류현진은 릭 허니컷 다저스 투수코치에게 커터를 던져보라는 조언을 듣고, 휴스턴 좌완 에이스 댈러스 카이클의 비디오를 보면서 커터를 익혔다. 그리고 몇 주 만에 커터는 포심 패스트볼의 구위가 떨어진 류현진에게 장타를 억제할 수 있는 신무기가 되어주었다.
사실 지난해 류현진의 패스트볼은 갈수록 구속이 빨라지긴 했지만, 전반기보다 후반기에 더 안 좋았다. 이는 전반기 1.86개에 달했던 류현진의 9이닝당 피홈런 비율이 후반기 들어 1.16개까지 감소할 수 있었던 원인이 거의 전적으로 커터 장착 때문이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류현진의 전반기/후반기 포심 패스트볼 성적
[전반기] 447구 102타수 35안타 11홈런 피안타율 .343 피장타율 .745
[후반기] 295구 54타수 22피안타 4홈런 피안타율 .407 피장타율 .704
FA를 앞둔 류현진은 올해 또 다른 변형 패스트볼인 투심 패스트볼 장착을 목표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투심 패스트볼은 포심 패스트볼보다 약간 느린 대신 더 가라앉으면서 커터와는 반대 방향으로 흘러나가는 구종이다. 따라서 투심은 커터와 조합하면 더욱 위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구종이자, 커터와 마찬가지로 장타 억제에 특화된 구종이다.
지난 21일 불펜 투구를 마친 류현진은 연습 중인 투심 패스트볼에 대해 "생각한거보다 제구도 괜찮고 변화도 좀 있는 것 같아서 계속해서 던질 생각입니다"라고 말했다. 류현진의 2018시즌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이현우 기자
기사제공 엠스플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