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급 인기' 여자배구 국가대표팀... '김연경 이후'에 대한 준비도 없는 상황에서 V리그 외국인 선수 확대 추진은 국제경쟁력 추락 우려를 낳고 있다. |
V리그 외국인 선수 확대 추진이 가장 큰 우려를 낳는 대목은 '한국 배구의 국제경쟁력 추락'이다.?
남자배구는 이미 위기의 징조가 시작된 지 오래다. 국제무대에서 아시아 중위권 수준으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여자배구도 '김연경 은퇴 이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팽배해 있다.
그럼에도 프로 구단과 한국배구연맹(KOVO), 대한배구협회 구성원들은 위기 의식만 있을 뿐, 대책 마련에 앞장서는 인사는 딱히 보이지 않는다.
한국 배구의 국제경쟁력은 배구협회와 KOVO가 전임 감독제 등을 도입한다고 해결될 수준을 넘어선 지 오래다. 물론 국가대표팀 지원 체제를 갖추고 확대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현재는 국가대표팀 감독이 한국 배구의 미래를 위해 어떤 배구 철학을 가지고, 어떻게 국가대표팀 선수 구성과 운영을 하느냐가 더 핵심이다. 그럴 능력을 갖춘 감독을 제대로 선발하는 게 급선무이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에서 프로 구단들의 외국인 선수 2명 보유 추진은 국내 선수의 입지를 축소시키고, 한국 배구의 국제경쟁력을 더욱 하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규정을 '2명 보유-1명 출전'으로 바꾼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프로 구단들은 외국인 선수를 라이트, 레프트, 센터 등 포지션이 다른 2명을 선발해서 코트에 있는 외국인 선수가 후위로 갈 때 수비 전문 국내 선수와 교체하고, 다른 외국인 선수를 전위에 있는 국내 공격수와 교체하는 방식으로 운영할 가능성도 높다.
코트에는 외국인 선수가 1명이 출전하는 형태지만, 외국인 선수가 공격과 득점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다.
그동안 라이트 포지션의 국내 선수가 '외국인 몰빵 배구(외국인 선수 비중이 지나치게 높음을 뜻함)'의 최대 피해자였다면, 외국인 2명 보유 상황에서는 모든 포지션의 국내 선수가 외국인 선수의 들러리로 전락할 가능성이 발생한다. 공격 부분에서 '외국인 몰빵 배구'가 더욱 심화되고, 국내 선수는 주로 수비에 치중하는 역할로 축소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현재는 외국인 선수가 컨디션 난조로 부진하거나 부상 등으로 빠지면, 국내 선수가 그 자리에 들어가 기량을 선보일 기회라도 갖게 된다. 실제로 그렇게 해서 들어간 국내 선수가 좋은 활약을 펼치면서 팬들에게 신선함을 주고 팀의 미래를 기대하게 만드는 경우도 종종 있다. 외국인 2명 보유 상황에서는 그런 기회조차 제대로 얻기 힘들다.
'몰빵 배구'의 자화상... '찬란한 안방, 초라한 국제무대 성적'
외국인 선수 확대 추진에는 프로 구단들이 여전히 외국인 선수에 의존하겠다는 사고가 바탕에 깔려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그러나 '외국인 몰빵 배구'는 한국 배구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이제는 박물관에 보내야 할 유물이다. 계승하고 답습해야 할 찬란한 유산이 아니다.
한국 남자배구를 아시아 중위권도 유지하기 버거운 수준으로 추락시킨 핵심 원인이 V리그의 외국인 선수 몰빵 배구란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V리그 경기에서 2단 연결이나 찬스 상황에서 어려운 볼의 대부분을 외국인 선수가 전담해서 처리해 왔다. 반면, 국내 공격수는 그럴 기회를 거의 갖지 못했다.
이는 국제대회에서 한국 국가대표팀의 경기력 추락으로 직결되고 있다. 대표팀 공격수들이 파워와 테크닉 부족으로 세계 강팀이나 아시아 강호의 블로킹 벽을 쉽사리 뚫어내지 못하고 있다.
평소 리그 경기에서 그럴 능력을 발휘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 상황에서 국제대회 앞두고 20일밖에 안 되는 국가대표팀 훈련으로 그런 실력이 갖춰질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서브 리시브와 디그 등 수비력이 좋은 것도 아니다. 여전히 세계적인 수준과 격차가 있다. 공격과 리시브를 모두 해야 하는 레프트 선수들이 고교·대학 시절부터 공격에만 비중을 두고 리시브에서 빠지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다.
학교 배구에서는 리시브를 제대로 연마하지 않고, 프로 무대에서는 외국인 선수에게 밀려 어려운 볼 처리 기회를 갖지 못하는 상황이 중첩되면서 한국 남자배구는 국제무대에서 공격력과 수비력이 모두 추락한 것이다.
국제대회 선전-국내 선수 육성, 프로 구단 흥하는 '지름길'
이 같은 현실은 여자배구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세계 최고 완성형 레프트인 김연경(30세·192cm)이 부족한 부분들을 메워주고 있기 때문에 국제대회에서 올림픽 4강~8강까지 가는 좋은 성적을 내고 있다. 그리고 이것이 선순환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비록 김연경 효과 때문일지라도 여자배구는 남자배구와 달리 올림픽, 세계선수권 등 비중이 큰 국제대회에 출전해 왔다. 이는 매우 중요한 대목이다. 한국 배구가 세계적 수준과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그런 대회에서 세계 정상급 팀들과 직접 대결해보는 것이 가장 효과가 크기 때문이다.
또한 국민들이 많은 관심을 갖고 높게 평가해주는 국제대회 출전과 선전은 여자배구 선수들에 대한 대중적 인지도와 호감도를 전반적으로 상승시켜 주었다. 그리고 이것이 올 시즌 V리그에서 여자배구 시청률과 관중수가 폭발적으로 상승하는 흥행으로 직결되고 있다.
그러나 김연경 같은 절대적 존재가 없는 남자배구는 '몰빵 배구가 한국 배구의 국제경쟁력을 추락시킨다'는 사실만 여과없이 증명해주고 있다. 몰빵 배구가 국내 V리그에서는 찬란했을지 모르나, 국제 무대에서는 초라했다는 것이 올림픽과 세계선수권 대회의 출전권조차 따내지 못하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그럼에도 상당수의 감독과 구단들이 여전히 외국인 선수에 의존하는 몰빵 배구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내 V리그에서는 좋은 성적을 내는 데 그 방식이 통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국인 몰빵 배구 팀'만 잘나가는 시절은 아니다. 3일 현재 남녀 1위를 달리고 있는 현대캐피탈과 한국도로공사는 그나마 몰빵 배구와 가장 거리가 먼 팀들이다. 지난 시즌 현대캐피탈은 몰빵 배구와 정반대인 스피드 배구로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했다.
올 시즌 전반기 순위를 살펴보면, 국내 선수의 역할이 좋았던 팀들이 상위권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외국인 선수 의존도가 높았던 팀들은 하위권으로 부진을 면치 못했다. 외국인과 국내 선수의 조화, 주전 선수의 부상, 구단의 적극 투자 등이 순위를 결정하는 주 요인이 되고 있다.
구단과 감독들이 세계적 흐름에 맞춰 팀의 플레이 스타일을 바꾸거나 외국인 선수와 국내 선수가 고른 활약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지 않고, 외국인 선수 숫자를 늘려서 해결하려는 발상에 배구팬들마저 비판하는 이유이다.
한국 배구 발전뿐만 아니라, V리그 흥행을 위해서도 국내 선수의 기량 향상과 스타 만들기에 더 공을 들여야 한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그것이 현재의 배구 인기를 꾸준하게 유지하고 한 단계 상승시키는 지름길이다.
국내 선수와 신인 선수 한 명이라도 더 배구팬들에게 선보이고, 국제대회에서도 선전할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주는 게 V리그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세계 최강 중국 리그... 외국인 영입 않고, 어린 유망주 대거 출전
세계 최강인 중국의 여자배구 리그는 V리그보다 2배가 넘는 14개 팀이 참여한다. 규정상 출전 가능한 외국인 선수도 2명까지다.
그럼에도 외국인 선수에 의존해서 팀을 운영하는 사례가 드물다는 것이 V리그와 큰 차이점이다. 올 시즌도 중국 리그는 14개 팀 중 외국인 선수를 영입한 곳이 상하이, 베이징, 광둥, 윈난대학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나머지 10개 팀은 아예 외국인 선수를 영입하지 않고 자국 선수들로만 한 시즌을 치른다.
지난 시즌 중국 리그 챔피언결정전에 오른 장쑤와 저장도 외국인 선수 없이 한 시즌을 치렀다. 그럼에도 미하일로비치 브란키차(세르비아·톈진), 로위와 로빈슨(미국·베이징), 켈리 머피(미국·허난) 등 세계 정상급 외국인 선수를 보유한 팀들을 모두 물리치고 우승과 준우승을 차지했다.
결과적으로 중국 선수들은 자국 리그에서 평소 주 공격수나 주 득점원으로 활약할 기회를 외국인 선수에게 빼앗기지 않는다. 그리고 이것이 국제무대에서 좋은 경기력과 성적으로 이어지는 밑바탕이 되고 있다. 또한 중국 대표팀의 국제대회에서 뛰어난 성적은 중국 리그의 인기와 활성화로 이어지는 선순환 효과를 가져온다.
▲ 김연경과 상하이 팀 선수들 |
올 시즌 중국 리그에서 득점 부분 전체 1위를 달리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선수는 만 18세(2000년생)의 리잉잉(192cm·톈진)이다. 이처럼 어린 선수가 주 공격수 또는 주전으로 활약하는 팀이 많다는 점도 V리그와 큰 차이가 나는 대목이다. 중국 리그는 현재 만 15세~21세(2003년~1997년생)의 선수가 '넘치도록' 많다.
한국 V리그와 국가대표팀이 배워야 할 점도 그런 부분이다. 특히 주요 국제대회 때마다 어린 장신 유망주 몇 명은 성인 국가대표로 발탁해서 교체 멤버로라도 경기에 투입해야 한다. 장신 유망주가 근본적으로 적은 한국 배구에서 그나마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어린 스타의 발굴은 프로 구단들의 최고 미래 자산이자 흥행으로도 연결된다.
이는 예외적이거나 별난 대책도 아니다. 올림픽을 준비하는 세계 강팀이나 아시아 강호들이 이미 다 하고 있는 상식적인 국가대표팀 운영 방식이다. 대한민국 배구협회와 국가대표만 유일하게 외면하고 있을 뿐이다.
'한국 배구' 결여된 정책, 무능·책임 전가로 '자승자박' 우려
프로 구단들이 국내 선수 연봉 상승에 대한 견제 장치로서 외국인 선수를 늘리려는 발상도 문제다.
국내 선수의 높은 연봉은 V리그 흥행의 산물이다. 그 속에는 구단 프런트의 노고도 함께 담겨 있다. 또한 높은 연봉은 유소년과 부모들이 배구 선수를 선택하도록 하는 강력한 유인책이기도 하다. 결국 프로 구단들이 최종 수혜자가 된다.
아울러 국가대표팀이 국제대회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는 것이 V리그 흥행에 큰 도움이 된다는 것도 여자배구가 이미 증명해 주었다.
때문에 프로 구단들이 외국인 선수 늘리는 데 쏟는 의지와 열정의 절반만이라도 신생 팀 창단(특히 여자배구), 2군 리그 운영, 클럽 시스템 도입에 할애하는 게 V리그와 한국 배구를 동시에 발전시키는 길이다.
외국인 선수 확대가 당장 도입 안 하면 큰일 날 제도도 아니다. 오히려 V리그 흥행, 한국 배구 국제경쟁력 등에 악역향을 끼칠 가능성도 높다.
엄밀히 따지면, 외국인 선수 선발부터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도록 만들기까지 책임은 전적으로 감독과 구단에게 있다. 그 또한 해당 구단의 실력이자 전력이다. 외국인 선수 확대로 해결하겠다는 것은 무능을 가리는 책임 전가이거나 실력 없는 목수가 연장 탓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한국 배구 발전이라는 큰 틀에서 고민과 절실함이 결여된 정책 전환은 구단 프런트 관계자들이 성적 부진에 따른 책임을 모면하려는 궁여지책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리고 이는 프로 구단 스스로를 포함해 한국 배구 전체에 피해를 주는 자승자박이 될 수 있다.
우려가 크고 원성이 자자한 일을 숫자로 밀어붙일 때 대형 사고가 나기 마련이다. 그럴 땐 '중단'이 정답이다.
기사제공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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