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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글랜드 미드필더 주드 벨링엄(오른쪽)이 12일 노르웨이와 2026 북중미 월드컵 8강전에서 멀티골을 터뜨린 뒤 해리 케인(왼쪽)의 축하를 받고 있다./마이애미=AP.뉴시스
[더팩트 | 박순규 기자] ‘괴물 골잡이’ 엘링 홀란과 ‘완성형 스트라이커’ 해리 케인의 정면 대결로 관심을 모았던 경기였다. 그러나 마이애미의 밤을 지배한 선수는 두 명의 세계적인 9번이 아니었다. 잉글랜드의 10번 주드 벨링엄이었다.
벨링엄은 0-1로 끌려가던 전반 추가시간 동점골을 터뜨린 데 이어 연장 전반 3분 결승골까지 넣었다. 잉글랜드는 노르웨이를 2-1로 제압하고 2018 러시아 월드컵 이후 8년 만에 4강에 올랐다. 멕시코와의 16강전에서도 두 골을 기록했던 벨링엄은 토너먼트 두 경기 연속 멀티골이라는 강렬한 흔적을 남겼다. 이번 대회 득점도 케인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6골로 늘렸다.
그의 큰 경기 본능은 이번 대회 들어 더욱 선명해졌다. 멕시코와의 16강전에서 2골과 결정적인 수비로 3-2 승리를 이끈 데 이어 노르웨이전에서도 멀티골을 기록했다. 토너먼트 두 경기에서 잉글랜드가 넣은 5골 가운데 4골이 벨링엄의 발에서 나왔다. 조별리그 파나마전 득점까지 포함해 대회 6골. '완전체 스트라이커'로 불리는 해리 케인과 같은 골을 기록하고 있다. 이는 1986년 멕시코 대회 득점왕 게리 리네커가 세운 잉글랜드 선수의 월드컵 단일 대회 최다골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기록이다. 더욱 놀라운 점은 그가 전문 스트라이커가 아니라 미드필더라는 사실이다.
'헤이 주드' 벨링엄의 조연 역할에 머문 해리 케인과 엘링 홀란./마이애미=신화.뉴시스
벨링엄은 2022 카타르 월드컵 이란전에서 잉글랜드의 첫 골을 넣으며 세계무대에 등장했다. 당시 만 19세였던 그는 마이클 오언에 이어 잉글랜드 역대 두 번째로 어린 월드컵 득점자가 됐다. 유로 2024 슬로바키아전에서는 탈락 직전이던 후반 추가시간 5분, 믿기 힘든 오버헤드킥으로 잉글랜드를 벼랑 끝에서 끌어올렸다. 그리고 2026년에는 멕시코와 노르웨이를 상대로 4골을 몰아치며 ‘유망주’라는 꼬리표를 완전히 떼어냈다.
벨링엄이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는 현대 축구가 원하는 미드필더의 조건을 거의 모두 갖췄기 때문이다. 8번처럼 중원을 왕복하고, 10번처럼 결정적인 패스를 뿌리며, 필요할 때는 9번처럼 페널티지역으로 침투한다. 몸싸움을 피하지 않으면서도 좁은 공간에서 방향을 바꿀 수 있고, 무엇보다 경기의 압박이 커질수록 움직임이 과감해진다. 많은 선수가 큰 무대에서 평소 능력의 절반도 보여주지 못하지만 벨링엄은 오히려 무대가 커질수록 존재감이 커진다.
잉글랜드 축구는 오랫동안 스타가 많아도 하나의 팀으로 묶이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스티븐 제라드와 프랭크 램퍼드처럼 뛰어난 미드필더들을 보유하고도 역할 중복과 균형 문제로 세계 정상에 서지 못했다. 벨링엄은 그 오랜 숙제를 풀 수 있는 선수다. 동료를 연결하는 동시에 직접 승부를 끝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승리를 벨링엄 한 사람의 ‘원맨쇼’로만 설명하면 경기의 본질을 절반밖에 보지 못한 것이다. 그의 멀티골 뒤에는 케인과 홀란에게 집중된 양 팀 수비, 그리고 그 집중을 역으로 이용하려 한 두 벤치의 전술적 선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잉글랜드의 주드 벨링엄(오른쪽)이 연장 전반 골문으로 쇄도하며 오른발 슛으로 역전 결승골을 터뜨리고 있다./마이애미=AP.뉴시스
노르웨이 수비진은 케인의 위치를 끊임없이 확인해야 했다. 케인이 페널티지역에 머물면 중앙 수비수들이 좁혀 섰고, 중원으로 내려가면 수비형 미드필더가 따라붙었다. 그만큼 케인 주변과 2선에는 순간적인 공간이 발생했다. 벨링엄은 바로 그 틈을 파고들었다. 전반 추가시간 첫 골은 고든의 패스를 받은 뒤 수비수들 사이를 돌파해 완성했다. 케인이 수비의 시선을 붙잡아 둔 사이 벨링엄이 실질적인 해결사로 변신한 장면이었다.
노르웨이 역시 홀란에게만 득점을 의존하지 않았다. 잉글랜드 수비가 홀란의 뒷공간 침투와 몸싸움을 경계하자 측면 공격수 안드레아스 셸데루프가 그 바깥 공간을 공략했다. 전반 36분 셸데루프의 선제골은 홀란이라는 거대한 위협이 동료에게 만들어준 전술적 반사이익이었다. 홀란은 득점하지 못했지만, 존재만으로 잉글랜드 수비진을 안쪽에 묶어놓았다.
두 감독이 처음부터 케인과 홀란을 ‘미끼’로 활용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두 슈퍼스타에게 수비가 몰리면서 다른 선수들에게 득점 기회가 열렸다. 축구가 이름값으로 골을 넣는 경기가 아니라 공간을 먼저 발견하는 선수가 골을 넣는 경기라는 사실을 보여줬다.
결승골에는 토마스 투헬 감독의 교체 카드도 작용했다. 교체 투입된 모건 로저스가 연장 전반 과감한 중거리 슈팅을 시도했고, 노르웨이 골키퍼 외르얀 닐란이 공을 완전히 잡지 못했다. 벨링엄은 골키퍼가 실수할 가능성을 예측한 듯 슈팅 순간부터 문전으로 쇄도했다. 닐란의 손에서 공이 떨어지자 가장 먼저 달려들어 오른발로 밀어 넣었다.
분명 골키퍼의 실수가 겹친 득점이었다. 하지만 축구에서 실수는 누구에게나 찾아오고, 그 실수를 골로 바꾸는 선수는 많지 않다. 골키퍼가 공을 흘린 것은 우연에 가까웠지만, 벨링엄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 온다’는 말처럼 그는 슈팅이 골키퍼에게 향한 순간에도 플레이가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바로 이 집중력이 벨링엄을 특별하게 만든다. 그는 공을 잡았을 때만 경기에 관여하는 선수가 아니다. 공이 없을 때 다음 장면을 읽고, 동료의 슈팅이 실패했을 때 두 번째 기회를 준비한다. 첫 골에서는 기술과 돌파력이 빛났고, 결승골에서는 예측과 집념이 승부를 갈랐다.
벨링엄은 전통적인 미드필더의 경계를 넘어선다. 8번처럼 중원을 왕복하고, 10번처럼 공격을 설계하며, 결정적인 순간에는 9번처럼 페널티지역으로 침투한다. 케인이 내려오면 그가 최전방으로 올라가고, 측면 공격수가 안으로 파고들면 빈 공간을 채운다. 팀의 구조에 따라 역할과 위치를 바꾸는 능력이 현대 축구가 그에게 주목하는 이유다.
케인과 홀란은 나란히 침묵했다. 그러나 두 선수의 존재가 무의미했던 것은 아니다. 두 골잡이가 수비수들을 끌어당겼고, 그 뒤에서 셸데루프와 벨링엄이 승부의 틈을 발견했다. 특히 벨링엄은 동료가 만든 공간과 상대의 실수를 모두 골로 바꿨다.
‘영웅은 난세에 난다’고 했다. 진정한 스타는 모든 것을 혼자 만들어내는 선수가 아니다. 동료가 만든 공간, 감독의 교체 카드, 상대의 작은 실수를 누구보다 빠르게 읽고 결정적인 결과로 연결하는 선수다.
마이애미의 밤, 케인과 홀란은 화려한 주연으로 예고됐다. 그러나 막이 오르자 무대 중앙에 선 사람은 벨링엄이었다. 이제 그는 잉글랜드의 미래가 아니다. 잉글랜드의 현재이며, 월드컵 우승의 꿈을 현실로 바꿀 가장 강력한 승부사다."헤이 주드." 큰 무대는 다시 벨링엄을 불렀고, 그는 가장 중요한 순간에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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