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스트브룩이 포효했다.
덴버 너게츠는 4일(이하 한국시간) 덴버 볼 아레나에서 열린 2025 NBA 플레이오프 서부 컨퍼런스 1라운드 7차전 LA 클리퍼스와의 경기에서 120-101로 승리했다.
덴버가 클리퍼스와의 대혈투 끝에 1라운드 시리즈를 통과했다. 6차전을 내줬지만 홈에서 열린 마지막 7차전을 잡아내며 오클라호마시티를 만나러가게 됐다.
1쿼터를 5점 뒤진 채 마친 덴버였지만 2쿼터와 3쿼터, 각각 16점씩 상대보다 많은 득점을 올리며 승기를 잡았다. 리드를 잡는 과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선수가 러셀 웨스트브룩이었다.
벤치에서 출발했지만 '특급 식스맨'이라는 호칭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 활약이었다. 공수 모두에서 에너자이저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2쿼터 초반 역전을 만드는 3점슛을 시작으로 날카로운 스틸, 니콜라 요키치를 향한 완벽한 노룩 패스까지. 자유투를 놓친 뒤에는 스스로 공격 리바운드를 따내며 득점으로 연결했다. 웨스트브룩이 없었다면 경기 양상이 어떻게 전개됐을지는 알 수 없다.
현지 유력 매체 '디 애슬레틱'의 덴버 담당 기자 토니 존스는 "이 시리즈의 차이점은 덴버에는 러셀 웨스트브룩이 있었고 클리퍼스에는 없었다는 것"으로 웨스트브룩의 활약상을 요약했다.

웨스트브룩은 벅차오르는 감정을 쉽게 제어하지 못했다. 3쿼터 도중 화끈한 덩크를 터트린 뒤 림에 오래 매달려 세리머니를 펼치다가 테크니컬 파울을 받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미 승부가 사실상 기운 뒤라 큰 의미는 없었다.
이번 시즌 덴버 유니폼을 입은 웨스트브룩은 평균 13.3점 4.9리바운드 6.1어시스트를 기록하며 팀의 약점이었던 벤치 핵심 역할을 해냈다. 'MVP 듀오' 요키치와도 찰떡 호흡. 커리어 내내 약점으로 불렸던 과한 의욕이나 본헤드 플레이로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지만 그의 연봉 330만 달러라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감안할 수 있었다.
플레이오프에서도 그의 존재감은 이어지고 있다. 비록 시리즈 도중 부상이 있긴 했지만 이겨내고 돌아온 웨스트브룩은 1라운드 평균 13.8점 4.8리바운드에 무려 41.9%의 3점 성공률을 기록하며 팀의 활력소가 됐다. 특히 3점 성공률에 있어서 큰 발전이 있었다는 점이 놀랍다.

특히나 지난 시즌까지 뛰었던 클리퍼스에 승리했다는 사실은 웨스트브룩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The Denver Gazette'는 경기 종료 후 라커룸으로 향하던 웨스트브룩이 "그들(클리퍼스)은 사람을 잘못 선택했죠, 그렇지 않나요"라는 말을 남겼다.
사연이 있는 이야기였다. 웨스트브룩은 지난 시즌이 끝난 뒤 염가 연봉에 옵트인을 선택, 충성심을 드러내며 클리퍼스 잔류를 택했다.
웨스트브룩의 연봉은 불과 400만 달러 정도에 불과했지만 클리퍼스는 그와의 동행을 원치 않았다. 이적 소문이 나돈 끝에 결국 유타로 트레이드된 웨스트브룩은 이후 바이아웃에 합의한 뒤 덴버에 합류했다.
결과적으로 클리퍼스의 트레이드 선택이 시즌 막바지에 부메랑으로 다가온 격이 됐다. 클리퍼스를 만난 웨스트브룩은 더욱 의지를 불태운 덕분인지 엄청난 존재감과 슈팅 감각을 과시했다.
공교롭게도 웨스트브룩은 2라운드에서도 과거 몸을 담았던 팀을 만난다. 단순한 의미의 팀이 아니다. 바로 그가 커리어를 시작했던 팀이자 MVP를 수상하고 파이널에 진출한 기억도 있었던 오클라호마시티와 격돌한다. 웨스트브룩은 현재까지 오클라호마시티 프랜차이즈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선수로 꼽힌다.
사진 = 로이터/뉴스1 제공
김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