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한국프로야구는 1000만 관중 시대를 열었다. 올 시즌도 개막 후 연일 매진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 가히 한국 야구의 전성기다. 그러나 집중 조명을 받는 프로야구 선수들과 달리 국내 여자 야구 선수들은 여전히 고독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여자 야구 선수라는 이름으로 생계를 이어가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한국 여자 야구 대표팀 에이스 김라경(25)도 예외는 아니다. 3년 전 토미존 수술을 받고도 야구공을 놓지 않기 위해 또 다시 일본 무대를 두드리는 김라경의 도전기를 소개한다.
“차라리 인대가 한 번 더 끊어져야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난달 경기 남양주 한 야구장에서 만난 김라경. 남양주=신원건 기자
지난달 경기 남양주의 한 야구장에서 만난 김라경은 웃는 표정으로 이처럼 살벌한 이야기를 했다. 평생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어오면서도 끝까지 야구공을 놓을 수 없었던 절박함이 느껴졌다. 김라경은 “재활 과정이 너무 길었던 만큼 다시 마운드 위에 설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너무 감사하다. 야구를 하는 하루하루가 소중하다”며 “이번 수술이 내 야구 인생의 전환점이 될 것 같다. 사실상 야구 선수로서의 첫 걸음을 내딛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토미존 수술 뒤 3년 만에 다시 일본 무대 도전
김라경이 다시 일본 무대에 도전한다. 지난달 26일 서울대 체육교육과를 졸업한 김라경은 이튿날 일본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곧바로 일본 여자 야구 실업팀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세이부)’에 합류했다. 일본 실업팀들에 직접 제작한 훈련 영상을 보내고 화상 면접 등 여러 관문을 거쳐 유니폼을 입었다. 일본프로야구(NPB) 세이부의 산하팀에서 김라경은 등번호 29번을 달고 투수로 활동한다.
김라경이 일본 무대를 노크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김라경은 앞서 2022년 6월에도 실업팀 아사히 트러스트에 입단했다. 그러나 김라경은 일본 입국 뒤 닷새 만에 치른 첫 연습경기에서 마운드에 올라 연습투구 중 팔꿈치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겪었다. 공교롭게도 당시 상대 팀이 지금 소속팀인 세이부였다.
김라경은 “공을 던지는 데 옷이 찢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났다. 선발투수로 내 실력을 보여줘서 하루빨리 자리 잡고 싶은 욕심이 앞서 다친 것 같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라경은 결국 타자를 상대로 초구에 몸 맞는 공을 던진 뒤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긴 재활의 터널이 시작됐다.
지난달 경기 남양주 한 야구장에서 만난 김라경. 남양주=신원건 기자
일본에서 골절은 됐지만 인대에는 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받았던 재활에 매진했다. 하루라도 복귀를 앞당기고 싶다는 마음에 팔에 깁스를 한 채로도 고강도 런닝과 웨이트 트레이닝을 소화해냈다. 마음이 앞섰던 탓일까. 다쳤던 뼈가 붙고, 근육량이 회복되도 팔의 통증은 줄지 않았다. 4개월 뒤 한국에 들어와 다시 병원을 찾은 김라경은 인대가 끊어졌다는 진단을 받고 수술대에 올랐다. 여자 선수로 드물게 토미존(팔꿈치 인대 접합) 수술을 받았다.
도움의 손길도 이어졌다. 김라경의 사연을 접한 이제형 청담리온정형외과 원장(프로야구 두산 팀 닥터)이 무상으로 수술을 집도했다. 류현진(한화)이 미국프로야구 메이저리그(MLB)에서 뛰던 시절 개인 트레이닝 코치로 활동했던 김병곤 스포츠의학 박사도 김라경의 재활을 돕기 위해 나섰다. 수술 뒤 1년 6개월이 지나 공을 던진 김라경이 부상 재발에 대한 우려로 과감하게 공을 던지지 못하자 김 박사는 “팔꿈치 인대가 또 끊어지면 내가 책임지고 고쳐주겠다”며 마음을 붙잡게 도와줬다고 한다. 김라경이 “제2의 아버지”라고 말하는 이들이다.
다시 마운드 위에 서게 된 김라경은 현재 최고 시속 110㎞후반대로 이전 구속은 거의 회복한 단계다. 재활 기간 동안 체계적인 훈련을 받으면서 몸에 최적화된 체중을 찾아 58㎏에서 66㎏로 약 8㎏ 증량하기도 했다. 투구 폼과 정통 오버핸드에서 오버핸드와 스리쿼터 중간 정도로 손봤다. 오른팔 통증으로 왼손타석에서도 타격을 하는 연습을 하면서 스위치히터로도 변신했다. 다만 일본 무대에서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투수에 집중할 계획이다.
●“열정과 순수함 믿어준 사람들 위해 끝까지 포기할 수 없다”
김라경의 야구 인생은 곧 투쟁의 역사였다. 김라경은 7살 터울의 오빠(전 한화 투수 김병근)를 따라 초등학교 6학년 때 야구를 시작했다. 이후 김라경이 중학생이 되면서 뛸 곳이 없어지자 여자 선수는 중학교 3학년 때까지 리틀리그에서 뛰도록 허용하는 일명 ‘김라경 룰’이 제정됐다. 중학교 3학년이던 2015년에는 최연소 국가대표로 선발돼 에이스로 활약하기도 했다.
재수 끝에 2020년 서울대에 입학해서는 야구부에 들어가 한국대학야구연맹 사상 최초의 여자 선수로 거듭났다. 2021년에는 직접 여자 야구 후배들을 모아 ‘JDB(저스트 두 베이스볼)’라는 팀을 창단하기도 했다. 그러나 JDB는 재정 등 현실의 벽에 막혀 1년 만에 해산됐다. 김라경은 “사실 언제 야구를 그만둬도 이상하지 않은 현실”이라면서도 “나의 열정과 야구에 대한 순수한 마음을 믿어준 사람들을 위해 끝까지 포기할 수 없다. 나와 타협할 수 없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일본에서의 도전도 순탄하지만은 않다. 실업팀에 소속돼 있다보니 평일에는 구단에서 연결한 일자리에서 오후 6시까지 근무를 하고 나머지 시간을 내 팀 훈련을 소화한다. 4월부터 숙소는 팀에서 제공해주지만 별도의 구단 버스도 없어 렌트카를 몰아가며 생활해야 한다. 자율 훈련을 하기 위해서도 별도의 비용이 든다. 경기는 주말에 주로 진행한다.
이에 3월 한 달 팀 적응에 집중한 김라경은 4월부터 유소년 야구교실, 일본 라멘집 등에서 일하며 현지 생활에 필요한 경비를 충당할 계획이다. 일자리를 얻는데 도움을 얻기 위해 NPB 주관하는 지도자 자격증 공부도 할 생각이다. 대학 시절만 해도 김라경은 OK 배·정장학재단(이사장 최윤)의 장학금으로 야구, 학업에 몰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면서 이제 스스로 생활비를 충당해야 하는 현실과 마주하게 됐다. 도움의 손길이 절실하다. 김라경은 “내 생활에 필요한 비용을 내가 버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다만 선수로서 자칫 훈련에 소홀하게 될 까봐 염려될 따름”이라고 말했다.

김라경(왼쪽)과 롤 모델 사토 아야미. 김라경 제공.
김라경은 일본 무대에서의 활약을 발판으로 2026년 미국에서 출범하는 위민스 프로 베이스볼 리그(WPBL)에 입성하겠다는 목표다. 특히 세이부에는 김라경의 롤모델인 사토 아야미(36)가 있어 동기부여가 되고 있다. 사토는 세계야구소프트볼연맹(WBSC)가 주관한 여자야구 월드컵에서 3회 연속(2014, 2016, 2018년) 최우수선수(MVP)를 수상한 여자 야구의 전설이다. 김라경은 “사토 선배가 첫 날부터 힘든 부분은 없는지 살뜰히 챙겨줘서 감사했다. 컨디션, 멘털 관리부터 야구의 발전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고 말했다. “누군가에게 용기를 줄 수 있다면 해낼 수 있다는 마음을 공유할 수 있었다”고 덧붙였다.
김라경은 바람대로 팀에도 잘 녹아들고 있다. 이달 22,23일 열린 토치기 사쿠라컵 대회에서는 팀원들과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김라경은 한 차례 구원 등판해 3분의 2이닝 동안 1실점을 기록했다. 경기 내용은 만족스럽지 못했지만 “생각보다 자신감 있게 공을 던졌다. 투구 밸런스를 잡아서 좀 더 예리한 피칭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는 설명이다. 무엇보다 “팀원들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커졌다”고 덧붙였다.
토치기 사쿠라컵 대회에서 우승한 세이부. 두번째줄 오른쪽에서 두번째가 김라경이다. 김라경 제공.
다음달 시작하는 비너스 리그에서는 보다 많은 등판 기회를 얻을 전망이다. 김라경은 “올 시즌 1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는 것이 목표다. 무엇보다 동료 선수들과 원 팀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나만 포기하면 도전은 바로 끝난다. 그렇기에 더더욱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하는 김라경은 그렇게 오늘도 인생의 마운드 위에 오른다.
남양주=강홍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