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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투→좌투' 바꾸더니 160㎞ 광속구, 422SV 클로저 '막차' 타고 명예의 전당 헌액

조아라유 0
[스타뉴스 | 양정웅 기자]
 
 
빌리 와그너. /AFPBBNews=뉴스1
 
 
 
 
오른손잡이임에도 좌투수로 변신해 강속구를 뿌려댔던 빌리 와그너(54)가 10번째 도전 끝에 마침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com은 22일(한국시간)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National Baseball Hall of Fame) 헌액 투표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투표에서는 한 표가 모자라 만장일치에 실패한 스즈키 이치로를 비롯해 CC 사바시아, 그리고 와그너까지 3명의 헌액자가 나왔다.

이치로와 사바시아는 모두 2019년 선수 생활 은퇴 이후 첫 번째 도전에서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득표율 역시 이치로는 무려 99.7%, 사바시아도 86.8%로 기준점(75%)을 넉넉히 넘긴 데 비해, 와그너는 82.5%로 세 선수 중 가장 낮았다.

그래도 이번 헌액으로 와그너는 새 역사를 썼다. 바로 좌완 불펜 최초의 명예의 전당 입성이었다. 와그너 이전까지 구원투수 중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건 역대 유일의 만장일치 헌액자인 마리아노 리베라를 비롯해 트레버 호프먼, 데니스 애커슬리, 호이트 윌헬름, 구스 고시지, 리 스미스, 롤리 핑거스, 브루스 수터 등 8명에 불과했다. 이 중에서 좌완투수는 아무도 없었다.

와그너는 선수 시절 역동적인 투구폼에서 나오는 시속 100마일(약 160.9㎞)의 패스트볼과 슬라이더로 한 시대를 풍미한 선수다. 더 놀라운 건 그가 아직도 오른손잡이라는 것이다. MLB.com에 따르면 와그너는 어린 시절 두 번이나 오른팔이 부러졌고, 그러면서 왼손으로 공을 던지는 법을 터득했다고 한다. 중학생 시절 야구공을 비롯해 축구공, 돌멩이 등 던질 수 있는 모든 걸 왼손으로 던지며 변신에 나섰다.


빌리 와그너. /AFPBBNews=뉴스1
 
 
 
 
학 재학 중이던 1993년 MLB 신인 드래프트에서 와그너는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1라운드 전체 12순위로 지명받았고, 2년 뒤인 1995년 빅리그에 데뷔했다. 178cm의 작은 키로 인해 불펜으로 전환한 그는 1996년 9세이브, 1997년 23세이브를 거두며 본격적인 커리어를 시작했다. 특히 1999년에는 66경기에서 4승 1패 39세이브 평균자책점 1.57, 74⅔이닝 124탈삼진이라는 어마어마한 성적으로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4위에 올랐다.

부상으로 28경기 등판에 그쳤던 2000년을 제외하면 꾸준한 활약을 펼치던 와그너는 2004년 필라델피아 필리스, 2006년 뉴욕 메츠로 이적하며 커리어를 이러갔다. 2010년 39세의 나이에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서 37세이브와 1.43의 평균자책점으로 부활을 알렸지만, 그해를 끝으로 와그너는 16년의 메이저리그 생활을 마쳤다. 은퇴 후 아마추어 코치를 하며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 그는 아들 윌 와그너(토론토)가 지난해 메이저리그에 데뷔하는 경사가 있었다.

통산 빅리그 853경기에서 903이닝을 소화한 와그너는 47승 40패 422세이브, 1196탈삼진, 평균자책점 2.31의 성적을 올렸다. 세이브 1위는 한번도 오르지 못했지만 1999년 내셔널리그 롤레이즈 구원 투수상을 수상했고, 통산 7차례 올스타에 뽑혔다. 통산 세이브 순위에서는 8위에 위치하고 있다.


빌리 와그너. /AFPBBNews=뉴스1
 
 
 
 
이런 커리어를 바탕으로 와그너는 2016년부터 명예의 전당 후보에 올랐다. 하지만 첫해 10.5%를 시작으로 4년간 10%대 득표율로 고전했다. 그러다 2020년 31.7%로 상승한 이후 매년 득표율의 앞 자릿수가 바뀌었다. 지난해 9번째 도전에서는 73.8%를 기록하며 단 5표 차로 입성에 실패했지만, 결국 마지막 투표에서 영예를 안게 됐다.

꿈에 그리던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와그너는 "내가 한 모든 일이 축복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명예의 전당에서) 최초의 좌완 불펜이고, 최초의 대학 3부리그 선수였다. 또한 버지니아주 출신으로 야구선수 신분으로 헌액된 것도 처음이다"며 "이런 모든 것이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선수 시절 작은 키에도 엄청난 강속구를 뿌렸던 와그너는 "지금도 최고의 무기는 좋은 직구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나나 로이 오스왈트(183cm)가 있을 때는 작은 선수들도 강한 볼을 뿌렸지만, 지금은 시속 100~105마일을 던지는 선수는 모두 6피트 4인치(약 193cm) 이상이다"고 말했다.

지난 10년의 세월을 기다린 와그너는 "원래 성격이 조급하다"며 "조금씩 명예의 전당에 가까워지며 낙관적이었던 때도 있었지만, 지난해에는 아깝게 놓치고 말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기에 있으면서 10년 동안 기다리는 건 쉽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지난해 휴스턴 유니폼을 입고 시구자로 나선 빌리 와그너. /AFPBBNews=뉴스1
 
 
양정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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