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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명보 떠난 울산, 김판곤이 사령탑 맡는다

조아라유 0
변방의 명장→벤투호 행정가, 이제는 '친정팀' 구원투수로
▲  김판곤 감독
ⓒ 대한축구협회

 
김판곤 전 말레이시아 축구대표팀 감독이 프로축구 K리그1 울산 HD의 새로운 사령탑으로 부임한다.

울산은 지난 28일 구단의 12대 감독으로 김판곤 감독을 선임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김판곤 감독에게 울산은 프로 선수 경력의 대부분을 함께한 친정팀이다. 울산은 지난 11일 A대표팀으로 떠난 홍명보 감독의 후임으로 17일만에 새로운 감독을 영입하는 데 성공하며 우승 경쟁을 위한 재정비에 나서게 됐다.

김판곤 감독은 한국축구의 '풍운아'로 꼽힌다. 프로 선수에서 행정가까지 다채로운 경력을 쌓았지만, 한국축구계에서는 중심보다는 주로 변방을 전전했던 비주류의 이미지가 강하다.

행정가로 한국 복귀... '벤투호' 성공에 기여
 
경남 진주에서 태어난 김판곤 감독은 고교 2학년때 뒤늦게 축구를 시작했고, 호남대를 거쳐 울산과 전북 현대에서 미드필더로 선수생활을 보냈다. 하지만 K리그에서는 약 6년 정도의 짧은 시간을 활약하는 데 그쳤고, 현역생활 동안 국가대표 1진에는 한 번도 발탁되지 못했다.
 
김 감독은 1997년 1차 은퇴 이후 중경고 코치로 활약하다가, 2000년 들어 돌연 홍콩 프로리리그에 진출해 플레잉 코치와 감독을 수행하며 선수 복귀와 지도자 생활을 병행했다. 홍콩에서는 FA컵 우승과 리그 베스트11 선정 등 선수와 지도자로서 모두 성공을 거뒀고 2004년을 끝으로 선수생활은 완전히 은퇴했다.
 
이후 국내로 돌아와 K리그 부산 아이파크를 코치직을 맡으며 당시 잦은 감독교체로 혼란스럽던 팀에서 4년간 감독대행만 세 번이나 맡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김 감독은 2008년 다시 홍콩으로 건너가 클럽 사우스 차이나 AA, 홍콩 23세 이하 대표팀과 A대표팀을 아우르는 총감독 및 기술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2011년에 K리그 경남FC의 수석코치를 맡기도 했지만 한 시즌만에 사임했고 2017년까지는 주로 홍콩에서 활동하며 '홍콩 축구계의 거물'로 자리잡았다. 김 감독은 사우스차이나의 홍콩리그 2연패와 AFC 컵 4강 진출, 홍콩대표팀의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 16강 진출 등의 업적을 세우며 아시아에서도 변방으로 꼽히던 홍콩 축구의 발전에 기여했다.
 
김 감독은 2017년말 대한축구협회의 제안을 받고 '감독선임위원장'으로 선임돼 행정가로 한국에 복귀했다. 2018 러시아월드컵 이후 물러난 신태용 감독의 뒤를 이어 '한국축구 역대 최장수 감독'이 되는 파울루 벤투(포르투갈)의 영입이 바로 김판곤의 작품이다.
 
사실 처음부터 박수를 받았던 것은 아니다. 대표팀 감독 선임 과정에서 러시아월드컵에서 선전했던 신태용 감독에 대한 무시와 홀대, 외국인 감독 후보 영입 협상에서의 연이은 실패 등으로 비판을 받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영입에 성공한 벤투 감독 역시 당시는 커리어가 하락세를 걷고 있던 시점이라 의구심이 적지 않았다.
 
당시 김판곤 위원장은 직접 전면에 나서 그동안 어떤 과정을 거쳐 감독을 선임했는지, 왜 벤투가 최종선택을 받았는지 팬들에게 합리적으로 설명했다. 외국인 명장 영입에 대한 현실적인 어려움, '빌드업과 능동적인 축구'라는 방향성에 대한 김판곤의 호소가 공감을 얻으면서 비판 여론은 차츰 사그러들었다.
 
이후에도 우여곡절은 있었으나 결국 벤투호는 4년간 일관된 철학을 밀어붙이며 2022 카타르월드컵에서 12년 만에 원정 16강을 달성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정작 벤투호 이후 등장한 클린스만호의 실패와 축구협회의 행정이 도마에 오르며, 그래도 '체계적이고 뚝심있는 프로세스'를 통해 벤투호의 성공을 이끌어낸 김판곤 위원장의 공로가 재조명받기도 했다.
 
이밖에 연령대별 대표팀에서도 2018년 자키르타 팔렘방 아시안게임 우승을 이끈 김학범 감독, 2019년 U20 월드컵 결승행을 이끈 정정용 감독, 2023년 U20 월드컵에서 두 대회 연속 4강 신화를 달성한 김은중 감독의 선임 등은 모두 김판곤 위원장 시절의 안목이 빛난 순간들이었다.

K리그에서 새로운 도전... 울산 재정비 성공할까

한편 김판곤은 2022년 말레이시아 대표팀 감독에 취임하면서 다시 지도자로 복귀했다. 김판곤 감독은 홍콩에 이어 아시아축구의 변방으로 꼽히던 말레이시아를 2023 AFC 아시안컵에서 16년만의 본선행으로 이끌며 다시 한번 지도력을 인정받았다.

특히 조별리그에서는 모국인 한국과 같은 조에 편성돼 조별리그 최종전에서 클린스만호와 극적인 3대 3 무승부를 이끌어내고 크게 포효하는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시안컵 조별리그 탈락에 이어 2026 북중미 월드컵에서도 3차예선 진출에 실패하며 언더독의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했다.

김 감독은 지난 16일 말레이시아 대표팀 감독직에서 사임했으며, 이번에 선수 시절의 친정팀인 울산 HD의 지휘봉을 잡아 모국인 K리그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됐다.
 
특이하게도 김판곤 감독은 오랜 지도자 경력에 비해 모국인 한국에서 프로 1군 정식 감독을 맡은 것은 울산이 처음이다. 부산과 경남에서 수석코치와 감독대행 등을 맡아본 적은 있지만 단기간이었다.

K리그 3연패에 도전하는 울산은 현재 리그 4위(승점 42)에 그치며 선두 김천(승점 46)에 4점차이로 뒤지고 있다. 공교롭게도 전임인 홍명보 감독은 축구협회 행정가 시절 김판곤 감독과 함께 벤투호의 성공을 함께 이끌었던 쌍두마차같은 관계였다.
 
시즌 중반에 지휘봉을 잡은 김판곤 감독이 국가대표급이 많은 울산의 선수단과 전임 감독의 갑작스러운 퇴진으로 혼란스러운 분위기를 어떻게 휘어잡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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