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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맨에서 슈터로 전환한 이유요? 생존때문이었죠”

조아라유 0

[김종수의 농구人터뷰(69)] '나이스 큐' 이규섭

 



서울 삼성 썬더스는 농구대잔치 삼성전자 시절부터 국내 농구계를 대표하던 명문팀 중 하나로 명성을 떨쳐왔다. 허재, 강동희, 김유택, 한기범 등으로 대표되던 기아자동차 왕조가 만들어지기전 현대와 함께 실업 농구를 양분했고 무수한 국가대표를 배출하며 농구계에 공헌했다.

그런만큼 프로농구 창단과 함께 팬들의 기대도 컸지만 초반 명성에 걸맞지않는 행보를 보이며 자존심을 구겼던것도 사실이다. 라이벌 현대(현 KCC)가 이조추 트리오+맥도웰로 리그를 휘어잡는 것을 지켜만봐야하는 시절도 있었다. 그런가운데 삼성에서도 반전의 싹이 피어났으니 다름아닌 2000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로 지명한 '나이스 큐' 이규섭(45‧198cm)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규섭은 많은 면에서 삼성을 바꿔놓았다. 당시 삼성은 앞선의 주희정과 강혁, 외곽에는 리그 최고의 슈터 문경은이 버티고 있었다. 어지간한 팀에 가면 주전급이라는 평가를 받던 가드 김희선이 제대로 된 출장시간조차 받지 못하고 벤치를 달굴 정도였다. 가드, 슈터가 갖춰진 상황에서 사이즈와 파워를 겸비하고 포스트인근에서 수비 등 궂은 일을 해줄 토종 4번이 그나마 아쉬웠는데 그 역할을 이규섭이 완벽하게 해줬다.

신인 이규섭은 알짜 블루워커이자 빼어난 득점원이었다. 내외곽을 넘나들며 쌓아가는 득점력에 더해 어지간한 상대 단신 외국인선수 수비를 혼자서 맡을 정도로 궂은 일을 많이 했던 터라 상대적으로 다른 팀원들이 편하게 플레이 할 수 있었다. 외곽슛 능력도 있지만 기회가 나면 끊임없이 자신보다 작은 선수들을 상대로 포스트업을 시도하며 많은 숫자의 파울을 유발하기도 했다.

비록 챔피언결정전 도중 입은 부상으로 시리즈를 끝까지 완주하지는 못했으나 삼성 우승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 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신인왕 역시 그의 차지였다. 이후 이규섭은 새로이 팀에 들어온 서장훈과의 중복을 피하는 방법으로 스몰포워드로 전향하는데 놀라운 것은 생소한 3번 포지션에서도 성공적으로 자리잡았다는 사실이다.

빅맨이 익숙한 선수인지라 정통적인 스윙맨과는 조금 달랐지만 3점슛을 갈고닦으며 리그에서 손꼽히는 슈터중 한명으로 변신했다. 이규섭처럼 큰 선수가 정확도 높은 외곽슛을 날려대자 상대팀에서는 수비시 많은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센스가 좋은 이규섭은 슈터로서의 움직임 외에 상대에 따라 포스트업, 미들슛 등을 적절히 섞어가며 괴롭히고는 했다.

삼성의 챔피언결정전 2회 우승에 모두 관여한 이규섭은 팀 역사상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경은, 주희정, 강혁 등도 삼성하면 생각나는 선수들이지만 아쉽게도 그들은 자의든 타의든 끝까지 팀과 함께 하지 못했다. 이규섭은 다르다. 선수와 코치 그리고 감독대행까지, 프로생활 전부를 삼성에서 보낸 리얼 원클럽맨이다. ‘이규섭이 곧 삼성의 역사다’는 말이 과장으로 느껴지지않는 이유다.

이규섭은 정규리그 통산 522경기를 뛰며 평균 10.36득점, 2.61리바운드, 1.24어시스트, 0.49스틸을 기록했다. 스몰포워드와 파워포워드를 넘나들며 만들어낸 성적이라는 점에서 보이는 것보다 좀 더 높은 점수를 줄만하다. 이에 <농구人터뷰>에서 살아있는 삼성의 전설 이규섭의 농구인생을 리와인드해보았다.
 



“첫째, 둘째 아들 모두 농구를 하고 있습니다”

Q.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SPOTV에서 해설위원하고 있는 것은 많이 아실 듯 싶어요. 일단 그 외에는 두 아들 케어하는게 주된 일상이 된 상태에요. 저희 아이들 둘 다 농구를 하고 있어요. 첫째는 휘문중학교 2학년에서 3학년 올라가는 중이라 애엄마하고 전지훈련 가있고요. 둘째는 용산중학교 입학 예정자라서 아침에 태어다주고 오는 길이에요. 보통의 평범한 아빠들하고 다를바없어요. 엄청 바쁘거나 시간대가 안맞으면 몰라도 별일없으면 아이들 등하교는 아빠들이 많이 해주잖아요.

Q.집안 일도 적극적으로 돕고 그러실 듯 해요.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요. 그냥 함께 있으면 눈에 보이는 것 조금씩 거들어주려고 하는 정도죠. 제가 좀 집을 좋아하는 성격이에요. 쉬는 날도 잘 밖에 안나가고 아이들하고 시간을 많이 보내는 편이죠.

Q.상남자같은 이미지와 다르게 가정적인 모습이 반전 매력으로까지 느껴져요.
하핫…, 상남자요?(웃음) 보여지는 이미지하고 실제 성격이 다를 수는 있죠. 또 선수 때하고 지금하고 여러 상황 자체가 다르기도 하고요. 선수 때도 딱히 상남자하고는 거리가 멀지 않았나싶어요. 다만 코트에서 깔끔한 이미지는 아니었죠. 좋지못한 모습도 종종 보여드렸던 것 같고요. 변명을 하자면 지기 싫어하는 승부욕이 유달리 강했던 이유도 있지않나싶어요. 아무래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선후배 문화라는게 존재 하잖아요. 개인적으로는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이상하게 변질되는 경우도 있지만 선배는 후배 챙겨주고, 후배들은 나보다 먼저 걸어갔던 선배들을 존중하고 서로 보기좋은거잖아요. 다만 경기장에서는 다르다고 생각해요. 승부의 세계잖아요. 그래서 평소 관계를 떠나서 코트에서만큼은 선후배 따지지않고 경기하려고 했죠. 그것을 의식하게되면 경기 전부터 지고 들어가게 되는거잖아요. 어쨌거나 그런 모습이 간혹 팬분들 눈에는 거칠거나 예의없어 보일 때도 있었지않나 싶어요.



Q.뜬금없는 질문같지만 그런 시절이 지도자 생활을 할 때 도움이 되기도 했나요?
어느 정도는요. 어쨌거나 제가 경험한 부분이잖아요. 저는 지도를 할 때 모든 것을 다 오픈한 상태에서 의견을 주고받는 것을 좋아해요. 어찌보면 제가 현역때 보였던 그런 모습들의 안좋은 점도 있을거란 말이에요. 나중에 후회되는 부분도 있고요. 그런 경험담까지 선수들에게 말해주려고해요. 내가 이렇게 해보니 이 부분은 괜찮았지만 이런 쪽으로는 좋지않았다는 식으로요. 어떻게 했으면 좋겠다보다는 스스로 듣고 판단하도록 도움을 주는 의미죠. 지도자로서 제가 원하는 방향이 분명 있기는하지만 그들의 마인드까지 좌지우지 할 수는 없으니까요.

Q.두 아들의 신체조건은 어떻게 되나요?
첫째는 학년 중에 제일 작은 축에 속해요. 가드를 보고있는데 이제 173cm정도 되는 것 같아요. 성장 속도는 아직까지는 둘째가 더 빨라요. 이제 중학교에 올라갈 예정인데 178~179cm정도될거에요. 어쨌거나 아직 성장중이니까 누가 더 좋다 나쁘다는 아직은 판단을 내리기 성급한 시점이지 않을까 싶어요. 어릴 때부터 꾸준히 크는 선수가 있는 반면 어느 한순간 확 커버리는 케이스도 있으니까요. 어쨌거나 둘 다 본인들이 좋아해서 시작한 농구라서 즐겁게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Q.본인들이 원해서 시작한 농구였군요?
그렇죠. 솔직하게 말하면 첫째같은 경우는 대치동에서 공부도 시키고 그랬어요. 하지만 어릴때부터 보고 큰 것은 무시를 못하겠더라고요. 초등학교 때까지는 학원과 농구 클럽을 병행하고 있었는데 일단 본인이 농구를 계속하기를 원했고 마침 오라는 중학교도 두어군데 있어서 계속 시키게 됐죠. 단, 네가 농구를 하게되면 아빠가 이규섭이다는 말을 계속 듣게 될 수도 있는데 요즘같은 시대에는 좋은 점은 없고 힘든 점만 많을 수 있다. 더욱이 나는 농구로 인해서 너와 멀어지는 것을 원치않기 때문에 배움에 있어서 직접적으로 나서지는 않을거다. 가르치는 것은 온전히 해당학교 선생님들에게 맡길 것이다. 다만 농구얘기를 서로 나누는 것은 환영이다. 열심히해서 잘하면 최선이겠지만 원하는 만큼 결과가 나오지않더라도 열심히 한다면 응원할 것이다고 솔직하게 말을 했습니다. 첫째, 둘째에게 모두 다요.

Q.각각 다른 학교로 진학을 했네요?
첫째는 집 근처가 휘문이라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갔는데 둘째는 스카웃 과정에서 용산으로 결정하게 됐습니다. 둘 다 농구 시작을 클럽에서 했다가 엘리트 쪽으로 넘어간 케이스라 어떻게 성장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될 것 같아요. 언젠가는 농구를 배우는 시스템에도 변화가 일어나지않을까 싶어요. 현재 엘리트 농구 쪽은 인재 발굴은 커녕 선수 숫자 맞추기도 쉽지않은 경우도 적지않게 발생하거든요. 반면 클럽은 선수들이 넘쳐나요. 다른 친구들은 모르겠고 저희 아이들을 보면 클럽에서 농구를 해서 더 즐겁게 하지 않았나 싶어요. 본인들이 원해서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농구를 좋아한다는 것을 확신 할 수 있었으니까요. 좋아서 하는 것이니 엘리트 농구로 넘어가서도 열심히 할 것이다고 믿습니다.

Q.요즘은 운동하는 학생들에게도 최소한의 공부는 시켜야 된다는 의견이 많더라고요.
맞습니다. 과거 엘리트 체육은 대놓고 공부를 등한시한 것도 사실이잖아요. 그 와중에 공부를 병행한 선수도 있기는 하지만 그런 케이스는 많지않았죠. 시대가 바뀌어가고 있음에도 대다수 분들은 학교에서 운동을 한다고하면 수업시간을 대부분 빠지고 간혹 들어와서도 뒷자리에서 잠만 자는 경우를 연상하실거에요. 실제로 그러기도 했고요. 하지만 요즘에는 사회적으로 공부하는 운동 선수를 원하는 분위기이고 선수들이 원하는 해외 진출 혹은 유학 등을 위해서라도 필수가 되어야 맞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미국의 경우만 살펴봐도 알 수 있듯이 운동선수에게 바라는 학업성적은 아주 높지는 않거든요. 기본만 하라는거에요. 하지만 우리나라 선수들이 그곳으로 진출할 경우 영어에서부터 어려움이 생겨날 수 있으니 현지 학생들과 비교해 불리한 부분은 많겠죠. 필요할 때 몰아서 하면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으나 공부는 해봤냐, 안해봤냐의 차이도 크다고 생각합니다.



“이상범 감독님의 그 멘트요? 마냥 좋지만은 않았습니다”

Q.해설을 시작한지 얼마 안됐지만 팬들 사이에서 평판이 좋은 것 같아요.

솔직히 제가 잘하고 있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어요. 현재 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에서 하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이에요. 더욱이 해설은 상대적인 것이라서 내가 만족한다고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도, 나는 좀 아쉬운 것 같은데 팬들은 좋은 부분을 캐치해서 호평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어쨌거나 시작한지 얼마 안됐음에도 SNS등을 통해 메시지를 보내주는 등 여러모로 응원해주시는 팬분들께는 너무너무 감사드리고 저 역시도 더 잘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되고 있습니다.

Q.공부하는 해설자로도 유명해요. 더불어 전술 이런 부분도 친절하게 잘 설명해주셔서 좋아하는 팬들도 많아요.
공부요? 공부야 누구나 다 해야하는 것이지요. 저만 하는 것도 아니고요. 더욱이 저는 이제 막 시작하는 입장인지라 다른 선배 해설자님들보다 더 많이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 더해 개인적인 목표와 꿈도 있는지라 농구에 대한 공부는 멈출 수가 없습니다. 전술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살짝 제가 이점이 있는 부분도 있어요. 지난해 5월에 계약이 종료되기 전까지 프로팀 코치를 8년 동안 했고 그러한 과정에서 배우고 느끼고 경험한 것들이 많잖아요. 특히 상대팀에 대한 분석 같은 것은 시즌 내내 하던 것들이고요. 팀은 떠나있지만 지금도 똑같이 하고있어요. 다만 무대가 다를 뿐이죠. 코치로 있을 때는 모시고 있던 이상민 감독님께 보고를 했고, 감독대행이 되어서는 스스로 정리를 했죠. 그리고 현재는 팬들에게 설명을 해드리고 있는 것이고요.

Q.생소할 수 있는 부분을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주니 고맙다는 의견이 많더라고요.
그렇게 봐주시면 제가 감사할 따름이죠. 전술에는 현장에서만 알 수 있는 어려운 용어들이나 짧은 말도 많은지라 팬 분들이 좀 더 쉽게 알아듣게끔 하기 위해서 저도 정리를 하면서 공부가 되고 있습니다. 사실 간혹가다 깜짝 놀랄 전술이 만들어지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그런 경우는 정말 드물고요. 대부분은 기존의 패턴에 여러 가지 옵션이 붙어서 돌아가는 경우가 많거든요. 요새는 패턴북같은 책도 나와서 관심있으신 분들은 그것을 보시면서 농구를 보면 또다른게 보이지 않을까 싶어요. 전술이라는 것은 복잡한 듯 하면서도 단순해요. 몇가지 큰 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경우가 대다수에요. 실상은 선수들이 해당 전술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수행하느냐가 더 중요하죠.

Q.DB 이상범 감독이 사퇴하면서 ‘그래도 세세하게 사정을 알아보려고 노력하는 해설위원은 이규섭 뿐이다’는 식으로 발언을 했어요.
저도 전해들었습니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감사하고 죄송하고 조심스럽고 더 노력해야 될 것 같고 여러 가지 감정과 생각이 겹치는게 사실입니다. 노력하는 모습을 좋게 봐주신 것은 고맙지만 행여나 저에 대한 작은 칭찬이 다른 분들에게 피해로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하는 방식이 꼭 옳은 것도 아니고 다들 각자의 색깔이 있는 만큼 앞서서 오해가 발생하는 경우는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특히나 마지막에 떠나시는 과정에서 하신 말씀이라서요. 물론 그런 의도가 아니시고 저를 좋게 봐주셔서 주신 말씀이라는 것은 충분히 알고있고 감사하게 받아들입니다. 어쨌거나 이상범 감독님께서 그렇게 나가셔서 저도 마음이 안좋더라고요. 제가 내막을 다 알 것이다고 여기는 분들도 많은 듯 싶은데 사실 저도 몰랐어요. 아무리 제가 자주 오가고 그랬다 하더라도 구단내 세세한 부분까지는 알 수 없거든요. 감독님같은 경우 워낙 여기저기서 연락이 많이 오고 정신이 없으셨을 듯해요. 그래서 문자를 드렸고 조만간에 마음 정리되시면 식사 한번 하자고 했습니다. 김성철 코치 그리고 김주성 감독대행과는 통화를 했고요. 감독님과 식사를 하게되면 넌지시 물어볼 생각입니다. ‘왜 그러셨어요?’라고요.(웃음)
 



Q.어쨌거나 어지간한 기자 수준으로 라커룸까지 찾아다니는 해설위원은 극히 드물다고 들었습니다.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각각의 스타일이 있으니까요. 어떤게 맞다 틀리다는 쉽게 판단할 수 없는것이고요. 저는 그냥 이렇게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사전 인터뷰 같은 것도 참여하는 편인데 제가 막 기자들처럼 질문하고 그런 것은 아니고 오가는 말들을 옆에서 경청하는 편이죠. 해설위원 중에서 제가 막내이기도 하고 모르는 부분도 많을 듯 싶어서 그렇게라도 해야 흐름도 알고 원활한 해설이 가능할 것 같더라고요. SPOTV쪽에서 처음 연락이 왔을 때 ‘원하는 만큼 맞춰주기는 힘들 수도 있다’는 말을 먼저 들었어요. 금전적인 부분을 얘기한 것이죠. 사실 저는 그게 중요한게 아니라서 원하는 부분을 말씀드렸습니다. 사전 인터뷰를 참여하게 해달라고 하는게 가장 큰 조건이었죠. 자연스럽게 참여하는 것이 아닌 억지로 들어가는 모양새가 되면 좀 그렇잖아요. 다행히 담당 PD분께서 흔쾌히 허락해주셔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이것저것 SPOTV측에서 도움을 주셔서 해설위원으로서 수월하게 적응했다고 생각합니다.

“요르단 프로팀에서의 입단제의, 저도 놀랐습니다”

Q.삼성이 두 번 우승했는데 한번은 김동광 감독, 한번은 안준호 감독이었습니다. 두분 스타일이 완전 다른데 어떤 분과 더 잘 맞았다고 생각하실까요?

누구하고 잘 맞았다고 말하기에는 당시 제가 처한 상황이 너무 달랐습니다. 김동광 감독님과 함께 할 때는 제가 주로 4번으로 뛰었습니다. 대학 때 센터를 봤었고 나름 익숙한 포지션이었죠. 당시는 외국인선수가 2명이 뛸 때였습니다. 제 역할 중 외국인선수 수비에 관한 부분도 비중이 컸고요. 그래서 당시에는 트라이앵글 등 동선을 맞추는데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김감독님은 리바운드 등 기본기를 강조하세요. 어쨌거나 그분과는 제가 주로 안쪽에서 플레이할 때 함께 했었고 안감독님 시절에는 역할이 좀 바뀌었었죠. 군복무를 상무에서 하고 있을 때였어요. 당시 팀에서 FA로 서장훈 선배를 영입했습니다. 골밑이 꽉 차게된거죠. 외국인선수도 있는데 저까지 포스트에서 버티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외곽에 나와서 주로 플레이한게 그때부터였어요. 뛰었던 포지션부터 달랐기 때문에 두분과의 궁합을 비교하기가 어렵네요. 솔직히 더 많이 함께한 안감독님이 익숙하기는 하지만 김감독님은 제가 신인 시절부터 프로무대에 잘 안착할 수 있도록 많이 이끌어주신 분이라 두분 다 고마운 마음이 큽니다. 어쨌거나 색깔이 서로 다른 농구를 각각 접할 수 있어서 이후 지도자 생활을 하는데도 큰 자양분이 되지 않았나하는 생각도 들어요.

Q.개인적으로는 4번 이규섭이 무서웠는데 아쉬운 생각도 듭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어쩔 수 없는 수순이었던 듯 싶어요. 서장훈 선배도 선배지만 외국인선수 2인 출전이라는 점도 영향이 컸어요. 잘못하면 4명이 포스트 쪽에 몰리며 도저히 동선정리가 안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는거잖아요. 팀에서도 여러 가지 생각을 했을 것이고 그래서 처음에는 외국인가드도 뽑았어요.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알렉스 스케일이라고요. 솔직히 큰 효과는 보지못했고 다음에 네이트 존슨을 뽑아서 우승을 하게되죠. 팀 입장에서는 큰 선수를 뽑는게 더 전력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을거에요. 어쨋거나 식스맨도 감수하고 4번으로 뛰느냐, 아님 겹치지 않는 3번쪽으로 가느냐 저로서는 선택을 해야했죠. 프로선수에게는 출장시간이 큰 의미를 가지고 있잖아요. 결국 포지션 변경을 하는게 맞다고 결정했습니다.



Q.냉정한 얘기같지만 트레이드라는 방법도 있지 않았을까요?
당시 삼성이 저를 트레이드하기 위해 오리온스를 비롯해서 여기저기 알아본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직접 소통한게 아닌지라 정확한 정보는 알길이 없고요. 결과적으로 트레이드는 일어나지않았습니다. 더 이상은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거죠. 주전으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3번 전향은 피할 수 없었어요. 사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아쉬워하는 팬들도 많았던 것으로 알고있어요. 국가대표팀도 3번으로 뽑히는 등 나름 성공적으로 전향을 했지만 안쪽에서 활약해주는 이규섭을 원했던거죠. 하지만 팀내 시스템상 제가 어떻게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습니다. 개인을 위해서 팀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지금 생각해도 팀 사정이 그렇다면 선수가 맞춰야 되는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Q.본인은 어떤 포지션이 더 좋았나요?
개인적으로는 4번 포지션에서 뛸 때가 가장 즐겁기는 했어요. 3~5번까지 뛰어봤지만 4번 포지션을 소화할 때가 기량이 가장 높게 올라가는 것 같더라고요. 파워포워드로 뛰다보면 할 수 있는게 정말 많아요. 기본적으로 골밑에서 경쟁하고 미들라인에서 슛 던지고 그런 것 외에도 돌파에 의한 킥아웃 패스도 할 수 있고 세트플레이시에도 가드처럼 지휘도 어느 정도 가능하고 기타 등등 역할의 범위가 아주 넓죠. 하지만 당시 팀에서는 3번 이규섭을 원했고 거기에 대한 아쉬움이나 미련은 없습니다. 삼성의 구성원으로서 당연한 선택이었으니까요. 지금처럼 외국인선수가 한명이 뛰는 시대였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은 듭니다.

Q.3점슛도 가능하다와 전문 슈터는 엄청난 차이잖아요. 적응하는데 어려웠을 듯 싶어요.
그렇죠. 달리 포지션이라는게 따로 존재하겠어요. 쉽게 포지션 전향이 가능하다면 시도하는 선수도 엄청 많았겠죠. 하지만 몸에 배인 플레이 스타일을 바꾼다는 것은 새로 농구를 배우는 것 이상으로 힘든 부분이 많습니다. 다행히 주변에서 많이 도와줬어요. 사실상 상무에 있을 때 본격적으로 변신이 시작됐죠. 함께 군복무를 하고있던 조상현 선배에게 슈터로서의 움직임 등에 대해 물어보는 등 주변 동료들에게 적극적으로 조언을 구했던 기억이 나요. 더불어 당시 사령탑을 맡고 계시던 서동철 감독님을 찾아가 제대 후 포지션 변경을 해야되는데 이해를 해주셨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하기도 했죠. 뭐든지 원활한 변화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경험이 중요하잖아요. 슈터에게 경험이 뭐겠어요. 많이 쏴보는 것이겠죠. 단순히 연습만으로는 한계가 있어요. 경기 중에 자꾸 던져봐야하는데 서감독님이 배려를 해주셔서 연습경기 등을 통해 많이 던질 수 있었습니다. 상무 동기들도 이해를 해줬고요. 지금 생각해도 너무너무 감사한 일이죠.

Q.사실상 이 정도로 성공적인 포지션 변경은 사례를 찾아보기 쉽지않을 듯 싶어요.
빅맨을 보다가 스윙맨, 가드 등으로 포지션 변경에 성공한 경우는 주로 어릴 때 이뤄지는 경우가 대다수죠. 플레이 스타일이 몸에 완전히 익숙해진 프로 시절에 그런 식으로 변화를 주는 것은 도박에 가깝고 실제로도 매우 어렵다고 생각해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저도 그런 경우를 아직까지 들어본적은 없고요. ‘3번으로서의 커리어가 아쉽다’는 의견에 대해 저를 좋게 봐주시는 분들은 ‘3번과 4번에서 모두 국가대표를 경험한 것은 네가 처음이다’고 말씀을 해주셨는데 개인적으로 너무 큰 힘이 됐습니다. 조금 더 열심히 했어야 됐는데…, 라는 아쉬움도 살짝 있지만 그것은 어느 선수나 마찬가지일겁니다. 돌이켜보면 어려웠던 포지션 변경에 성공하고, 국가대표로도 10여년간 뛰었던 제 자신에게 가끔은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항상 냉정할 수는 없으니까요.(웃음)
 



Q.한참 슛감이 좋을 때 중동쪽에 있는 팀에서 스카웃 제의가 들어오기도 했다고 들었어요.
상무에 있을 때 요르단에 있던 프로팀에서 정식으로 영입 제의가 들어와 개인적으도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나요. 기분도 다소 묘했고요. 해외리그에서 러브콜이 왔다는 것 만으로도 기분 좋은 일이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했죠. 일단 제가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거니와 설사 일이 잘풀려서 중동을 가게되더라도 외국인선수로 뛰어야 하는거잖아요. 지금처럼 아시아쿼터가 있는 것도 아니고요. 상무가 국제대회에서 한창 성적이 빼어났던 시기가 있었는데 당시 저도 슛감이 참 좋았어요. 쓰면 들어간다 싶을 정도로 손끝이 뜨거웠죠. 외국팀 입장에서도 신기하게 보였을지도 모르겠네요. 사이즈도 큰 선수가 외곽에서 계속 3점슛을 적중시키니까요. 어쨌거나 일단 저는 당시 군복무중이었고요. 제대 후에 다시 추진한다해도 삼성에서 허락을 안했겠죠. 무슨 큰 리그도 아니고 국내리그보다 더 작은 곳으로 가는 것이니까요. 중동리그를 뛰는 팀이었거든요.

“저에게 이상민 감독님은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Q.오랜시간 동안 선수와 지도자로 이상민 전 감독과 함께 했어요. 이규섭에게 이상민이란 어떤 존재일까요?

사적으로는 좋은 형 동생같은 관계이고 농구적으로만 봤을 때도 같은 프로팀, 국가대표팀에서 호흡을 맞춘 것을 비롯 저를 프로팀에서 코치로 활동할 수 있게 만들어주신 분이죠. 은퇴 후 미국에 있을 당시 저를 불러주셨으니까요. 감독님 덕분에 저의 지도자 커리어가 시작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모로 너무너무 고마운 마음 가득합니다. 지금도 가끔 식사도 하고 운동도 함께하고 그러고 있어요. 사람 자체도 무척 젠틀하세요. 다만 8년간 함께 감독과 코치로 있으면서 마지막 순간에 제가 감독대행을 했잖아요. 그 부분에 대해서는 미안한 마음도 가지고 있어요. 팀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닥쳤던게 비단 감독님 한분의 책임만은 아니니까요. 하지만 당시 팀내 사정도 있었고 누군가는 어수선한 분위기를 정리해 나갈 필요가 있었죠. 감독님께서는 워낙 배려심이 많은 분이라 잘했다고 말씀해주시지만 사실 어떻게하는게 맞는 것이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참 어렵습니다.

Q.앞서 언급한데로 김동광 감독은 강한 카리스마로, 안준호 감독은 소통하는 리더십으로 각각 우승을 만들어냈잖아요. 그렇다면 현재 삼성에는 어떤 농구가 맞을까요?
이 부분은 제가 말씀드려서는 안될 듯 싶어요. 현재 내부사정을 정확히 알지도 못하거니와 새로운 감독님이 오셔서 팀을 이끌고있는데 이제는 나와있는 사람이 이러쿵 저러쿵 훈수를 두는 것은 모두에게 실례가 될 듯 싶어요. 은희석 감독님이 잘해서 성적이 난다면 거기에 대해서 여러 가지 평가나 분석이 나오겠죠. 아직 시즌이 끝난 것도 아니고 모든게 시기상조라고 생각합니다.
 



Q.일단 이상민 전임감독의 자율농구는 결과적으로 좋은 성과를 내지못했어요.
질문하신 김에 저도 짚고 나가고 싶어졌어요. 이 감독님께서 추구하셨던 자율농구에 대해 오해를 하는 분들이 꽤 많은 것 같아요. 자율농구라고 모든 면에서 확 풀어주고 자율에 맡기는게 아니었어요. 훈련이나 그런 것은 다른 팀들과 마찬가지로 강하게 진행됐어요. 다만 생활에 있어서 통제를 최대한 덜하고 각 개인의 자유나 의지에 맡긴 것이 돌고 돌면서 자율농구라고 불려지게 된 듯 싶습니다. 예를 들면 과거같은 경우 휴가 기간에도 갑자기 불러들여서 훈련을 한다던가 뭔가 지시사항을 내릴 때도 있었어요. 감독님은 절대 그러지않으셨어요. 선수들의 자율권을 존중해주던 분인지라 스케줄 표 같은 것을 월, 주, 일 등으로 세분화해서 다 알려주셨습니다. 각자가 참고해서 스스로 관리하라는 의미였죠. 되도록 강압적인 분위기 자체를 안만들려고 노력하셨어요. 그런 부분은 저도 맞다고 생각합니다. 어찌보면 다들 성인이고 프로라는 타이틀까지 붙어서 뛰고 있는데 하나하나 다 시키고 거기에 맞지않으면 혼내고 그런 모습은 좀 아니지않나요. 무거운 분위기를 조성해야만 말을 듣는다면 너무 슬픈일이잖아요. 감독님께서 추구하셨던 그런 방식이 문화가 되어 제대로 정착되었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도 들어요. 솔직히 지금 당장 성적을 내려면 강압적인 방식이 더 잘통합니다. 감독님도 그것을 모르시지는 않으셨을거에요. 알면서도 그런 문화 자체를 바꾸시려고 부던히 노력하셨죠. 어찌보면 시대를 너무 앞서가시지 않았나 싶기도하고요.

Q.드래프트에서 2년 연속 1순위를 통해 차민석, 이원석을 뽑았어요. 최상이었을까?하는 의견도 팬들 사이에서 나오더라고요.
그러한 부분들은 누구 하나의 단독 의견으로 만들어지기는 어렵습니다. 팀의 미래가 걸린 선택이잖아요. 스카우터와 코칭스탭 그리고 사무국장, 직원 등 여럿이 만나 회의를 가지고 서로간 토론 끝에 결정을 내리는 사항이에요. 분석팀에서 만든 데이터도 충분히 검토하면서요. 결과적으로 호불호는 갈릴 수 있겠으나 결코 쉽게 판단되어지고 뽑는 것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차)민석이는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왔잖아요. 아직 기대치에 미치지못해서 아쉬움의 목소리도 많은데 나이가 어리니 대학갔다고 생각하고 꾸준히 노력하다보면 여전히 가능성은 많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수술 후 재활 중에 있고요. (이)원석이 또한 완성형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서서히 잘하고 있잖아요. 근성도 강한 선수이니만큼 좋은 선수가 될것으로 확신합니다. 



Q.이상민 감독같은 경우 똘똘한 가드를 선호할 것 같은데 의외로 두 번 다 가드를 뽑지않았어요. 감독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더라고요.
감독님께서 센스있는 가드를 좋아하시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팀에 없으시고 저 역시 이제는 나와있는 상태인지라 그 부분에 대한 언급은 따로 드리지 않겠습니다. 괜스레 여러 가지 추측을 불러일으키게 만들고 싶지않고 앞서 얘기했다시피 현 코칭스탭과 구단 관계자들에게 실례가 될 수도 있으니까요.

“제 농구인생의 터닝포인트요?”

Q.학창시절 공부도 곧잘 했을 듯 싶어요.

공부는 지금 원주 DB에서 일하고 있는 저희 형 이흥섭 사무국장이 아주 잘했습니다. 실업계 고등학교에서 전교 1등하는 농구선수였죠. 형같은 경우 농구를 안하고 다른 분야로 갔어도 성공했을 듯 싶어요. 어쨌든 저는 형의 영향을 많이 받은 케이스에요. 초등학교 5학년 때 농구를 시작하게된 계기도 형의 영향이 컸고요. 이래저래 많은 부분에서 보고 배우면서 자랐습니다.

Q.본래부터 포지션은 빅맨이었나요?
저같은 경우는 키가 한꺼번에 팍 자란게 아니라 꾸준히 성장한 편이라서 여러 포지션을 오갔습니다. 그렇다고 어릴 때부터 엄청난 재능을 선보이며 주목받았던 케이스도 아니고요. 지금도 기억나는게 중학교 2학년 올라가면서 키가 좀 크기는 했는데 선배들에게 밀려 경기는 잘 뛰지못하고 있었어요. 그러다가 부상당한 선배 대신에 들어간 경기에서 매치업 상대를 앞에 두고 발을 빼면서 자연스런 동작으로 언더슛을 성공시켰어요. 자신감이 생기면서 비슷한 방식으로 계속 득점을 성공시켰는데 코치님께서 너무 좋아하시는 것이에요. 제 플레이가 무척 마음에 드셨던 것이죠. 그 이후에는 출장시간이 부쩍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코치님께서도 적극적으로 공격을 하라고 밀어주셨고요. 그러다보니 농구가 재미있어지기 시작했고 기량도 많이 올라가게 되었죠. 제 농구인생의 터닝포인트가 되던 순간이었습니다.

Q.선수로서의 은퇴 직후 미국으로 건너가 NBA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 산하의 G 리그 팀인 산타크루즈 워리어스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어요.
구단에서 연결시켜줘서 떠나게 됐죠. 워킹비자를 받고 가서 월급제 어시스턴트 코치를 했는데 정말 많은 것을 경험하고 배운 것 같아요. 바로 직전 글에서 중학교 때 그 플레이가 선수로서 성장하는데 터닝포인트가 되었다고 했는데 지도자로 눈을 뜨게 된 것은 바로 미국에서의 이 시기였습니다. 어려움이 컷던 만큼 느끼고 배운 것도 정말 많았으니까요. 6개월 정도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열심히 영어공부를 했지만 막상가니까 생활 회화는 또 다르더라고요. 말하는 것은 둘째치고 처음에는 알아듣는 것 자체부터 너무 어려웠으니까요. 그래도 당시 코칭스탭들이 정말 잘 챙겨줬어요. 영어를 잘 못 알아들으니까 앞에서 직접 몸으로 설명을 하고 다음날 필요한 것들을 미리 이메일로 보내서 준비하게 하는 등 배려를 많이 받았죠. 저도 공부를 엄청나게 했고요.



Q.인상적이었던 일화같은 것 있나요?
일화라고 하기는 뭐하지만 그곳에서는 선수들을 데리고 브리핑 등을 할 때 미리 예행연습같은 것을 시키더라고요. 선수들 앞에서 실수하거나 버벅대는 모습을 보이지 말라는 의미죠. 한국같은 경우 초보 코치가 처음에 좀 어리버리해도 이해해주는 문화(?) 그런 것도 있잖아요. 그곳은 달라요. 콧대높은 선수도 많고해서 그들을 따르게하려면 더더욱 프로같은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는 것이죠. 계속 하다보니까 나중에는 특별히 예행연습 없이도 차분하게 잘 되더라고요. 더불어 그곳 감독님의 엄청난 꼼꼼함에 혀를 내두른 적도 있습니다. 시즌이 끝나면 해당 시즌에 나온 각종 자료를 바탕으로 두터운 책을 만들어서 코칭스탭에게 나눠주는데요. 그안에는 각 코치별로 부족한 것과 보강해야 될 것들도 상세하게 기록되어있는데 ‘이런 것까지 적어놓았어?’싶을 정도로 디테일이 엄청나요. 선수들에게 비디오나 사진을 보여줄 때 몇분이내 몇컷 안에서 보여주는게 좋은지까지도 나와있을 정도에요. 그러한 과정을 통해 선수들에게 접근하는 방법, 외국선수들에 대한 이해, 다양한 지도방식 등 참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Q.마지막으로 농구인 이규섭을 응원하는 팬 분들에게 인사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요새 농구 인기가 떨어졌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많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공원 등을 가면 농구공을 가지고 노는 친구들도 많고 최근 슬램덩크 만화영화가 화제를 끄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팬층 또한 여전히 탄탄합니다. 다만 KBL이 조금 주춤한 듯 싶은데 국내를 대표하는 리그인만큼 팬 분들께서 더욱 많은 관심가져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젖줄인 대학농구에도 사랑을 주신다면 언젠가는 예전의 폭발적인 인기도 다시금 살아날 수 있을것이라 믿어의심치 않습니다. 다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올해도 좋은 일 가득하시기를 기원합니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본인제공, KBL 제공​

기사제공 점프볼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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