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으로 다시 돌아온 김연경, 이호진 전 구단주와 12년 만의 재회
10월 25일 인천 삼산월드체육관에서 벌어졌던 2022~2023시즌 V-리그 흥국생명-페퍼저축은행 경기는 1라운드 여자부에서 가장 화제성이 높았다. 지난 시즌 6위와 7위의 첫 대결이었지만 중국 리그를 거쳐 1년 만에 V-리그에 재 복귀한 김연경, 8년 간 팀을 이끌었던 박미희 감독의 뒤를 이은 권순찬 감독의 여자부 데뷔전, 몽골 출신 전체 1순위 신인 염어르헝의 출전 등 다양한 배경 이야기를 깔고 있었다.
LG-키움의 프로야구 플레이오프 2차 전이 잠실구장에서 열리는 가운데 흥국생명-페퍼저축은행의 경기를 취재하려고 40개 회사가 사전에 신청했다. 경기장은 그야말로 핑크색 물결이었다. 화요일 저녁 7시 경기인데도 4,345명의 관중은 구단이 선물한 핑크색 티셔츠를 입고 경기장의 분위기를 달궜다. 태광그룹 창립 72주년을 맞이해 그룹의 많은 임원과 직원들도 경기장을 찾았다. 경기장 밖에서 친환경 활동도 했다.
삼산체육관역을 도착할 즈음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렸다. 지하철 7호선 안내 방송에서 김연경이 체육관으로 가는 출구 번호를 알려줬다. 3번 출구 앞에는 팬클럽이 마련한 대형 광고판이 걸려 있었다. ‘KIM is Back KING is Back’. 경기장을 가려던 많은 이들이 그 광고판 앞에서 기념 사진을 찍었다. 김연경은 경기 전 선수 소개 때 가장 많은 박수와 함성을 받았다. 그의 모든 행동에 관중들은 열광했다.
기대가 큰 만큼 활약도 대단했다. 두 팀 합쳐 최다인 18득점, 공격 성공률은 71.43%였다. 공격 뿐만 아니라 수비와 연결, 서브, 블로킹에서 팀을 이끌었다. 상대 김형실 감독도 “김연경 때문에 힘이 쪽쪽 빠졌다”고 털어놓았다. 이날 배구 선수 누구도 누리지 못할 호사를 누리면서 김연경은 선수 한 명이 어떻게 경기장과 팀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는 지를 잘 보여줬다.
김연경이 이처럼 많은 배구 팬의 사랑을 받는 존재가 된 것은 자신의 기량과 노력이 바탕이 됐지만, 주변의 도움도 무시할 수는 없다. 그 출발은 누가 뭐래도 흥국생명의 전 구단주였다. 김연경은 이호진 전 회장의 선견지명과 결단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영광은 남의 일이 될뻔했다. 2008~2009시즌까지 흥국생명은 4시즌 연속 챔피언결정전에 진출해 무려 3번이나 우승을 차지했다. 보통의 구단주라면 팀의 기둥을 영원히 소유하려고 욕심부렸겠지만, 그는 달랐다. 한국 배구의 발전을 위해 더 큰물에서 겨뤄보라며 김연경의 해외 리그 행을 추진했다. 선수가 원하는 일이기도 했지만, 어느 구단도 아무런 대가 없이 에이스 선수를 풀어주지 않는다.
김연경의 해외 이적에는 대중들이 모르는 얘기도 있다. 당시 흥국생명이 접촉했던 일본 JT 마블러스는 김연경을 선택하면서 조건을 내걸었다. 자기 팀 소속의 반다이라 마모루 코치를 흥국생명에서 지도자로 써달라고 했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반다이라가 사실상 흥국생명의 감독으로 재직했던 숨겨진 이유였다. 김연경의 출발은 미약했지만, 끝은 창대했다. JT에 가자마자 서툰 일본어를 써가며 동료들과 놀라운 친화력을 보여줬고 실력으로 텃새를 잠재우자 상황은 역전됐다. 25연승의 대기록과 팀의 첫 리그 우승의 주역은 누가 뭐래도 김연경이었다. 그들이 김연경을 더 오래 있게 해달라고 사정할 정도였다. 첫 번째 해외 무대인 일본에서 성공한 김연경은 2시즌 만에 유럽의 빅리그로 영전하며 성공 시대를 열었다.
김연경이 튀르키예 리그로 떠난 이후 흥국생명은 한동안 암흑기를 겪었다. 이별 과정에서 좋지 못한 모습도 나왔다. 이호진 전 회장도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었다. 이런 그를 위로해준 것은 배구뿐이었다. 그의 배구 사랑은 선친으로부터 시작됐다. 유훈과도 다름없었다.
태광그룹의 창업자인 고 이임용 회장은 인천 연고의 동일방직 여자배구단이 해체 위기에 몰리자 선뜻 팀을 인수했다. 동일방직은 대한민국 최초의 여자 실업배구단이다. 인하대 최천식 감독의 어머니가 뛰던 팀이었다. 1971년 8월 2일 창단한 태광산업 배구단은 1991년 흥국생명 배구단으로 이름을 바꿨고 2005년부터 V리그에 참가해 많은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다.
핑크스파이더스가 찬란한 역사를 쓸 때도 이호진 전 회장은 대중에게 노출되지 않는 존재였다. 하지만 유독 선수들에게만은 친근한 존재로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줬다. 누구보다 배구를 많이 보며 전문적인 식견도 갖췄지만, 여러 사정으로 경기장에 올 형편은 아니었다. 그런 그가 새로운 50년을 꿈꾸며 입주한 인천 삼산체육관의 2022~2023시즌 홈 개막전에 나타난 것은 여러모로 상징적이다. 흥국생명의 임원 회의에서는 배구 얘기가 나올 때 가장 생기가 돈다고 한다. 그만큼 모기업의 이미지에 도움이 되는 존재로서의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흥국생명은 자체적으로 선수를 조달할 유소년 클럽을 운영하는 모범적인 시스템도 갖췄다.
현행 규정상 클럽 출신 선수를 보유할 권리가 없어서 그렇지 태광그룹 산하의 세화여중, 세화여고에 배구부를 두고 꾸준히 꿈나무들을 키워내고 있다. 신인드래프트 때 세화여고 출신의 선수가 다른 팀의 지명을 받지 못하면 수련 선수라도 뽑아서 반드시 프로선수로 만들어줬다. 그런 과정을 거쳐 살아남은 선수가 김다솔이다. 2015~2016시즌 수련 선수로 입단해 FA 계약까지 맺었다. “우리 팀에 오면 결혼하기 전까지는 다 내 딸이다”며 모든 선수의 앞날을 책임졌던 선대회장 정신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마침 이날 경기장에는 전 태광산업 배구단 출신들도 구단의 초청을 받고 경기장을 찾아 후배들을 응원했다.
모든 인생살이가 그렇듯 나쁜 일도 좋은 일도 있다. 한때 고비도 겪었지만, 흥국생명은 다시 김연경과 손을 잡았고 2022~2023시즌 개막전에서 페퍼저축은행을 상대로 쉬운 승리를 거뒀다. 스카이박스에서 경기를 지켜본 이호진 전 회장은 흥국생명의 승리가 확정되자 조용히 자리를 떴다. 그는 선수들의 저녁 식사 자리에 등장해 자비로 격려금도 내놓았다. 힘들 때 위로해준 배구와 선수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성의라고 생각한다. 그가 선수단과 직접 만난 것은 무려 12년 만이다. 팀에서는 오직 김연경과 김나희만이 전 구단주의 얼굴을 안다.
오너 구단주의 존재는 어느 팀이건 큰 영향을 미친다. 그동안 V-리그에는 현대캐피탈과 대한항공, OK금융그룹이 어떤 방식으로건 가장 상징적인 결과를 만들었다. 이번 시즌 흥국생명 선수들은 12년 만에 재회한 이호진 전 회장의 배구 사랑을 어떤 결과로 만들어낼까.
사진 KOVO
기사제공 더 스파이크
김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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