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군 감독 출신이 수석코치로? 두산 베어스가 이승엽 감독과 호흡을 맞출 수석코치로 김한수 전 삼성 감독을 영입했다.
김 수석 영입이 한국야구에도 MLB식 '감독급 벤치코치'가 활성화되는 계기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김한수 수석코치와 이승엽 감독(사진=스포츠춘추, 두산)
[스포츠춘추]
삼성 라이온즈 팬들에게 익숙한 이승엽-김한수 투샷이 두산 베어스에서 재현된다. 14일 두산 제11대 사령탑으로 선임된 이승엽 감독이 김한수 전 삼성 감독을 수석코치로 영입했다.
김한수 수석은 이승엽 감독의 요청으로 이뤄진 인사다. 삼성 시절 1루수-3루수로, 3번타자-5번타자로, 선수-코치로, 선수-감독으로 한솥밥을 먹었던 선후배가 이제는 자리를 바꿔 감독과 수석코치로 호흡을 맞춘다.
김한수 수석코치는 KBO리그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감독 출신 수석이다. 김 수석은 2017년부터 2019년까지 3년간 친정팀 삼성에서 감독을 맡았다. 결과는 좋지 못했다. 2017년 9위, 2018년 6위, 2019년 8위에 그쳐 재계약에 실패했다. 팀 전력이 약한데다 초보 감독의 시행착오까지 더해져 본의 아니게 구단 역사 '암흑기' 감독으로 남았다.
두산은 김한수 수석이 '초보감독' 이승엽의 약점인 경험부족을 잘 채워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무리 레전드 타자 출신으로 야구에 정통한 이 감독이라도 부임 초기 어느 정도 시행착오는 피할 수 없다. 지금은 명장으로 불리는 김태형, 이강철 감독도 초보 감독 시절은 있었다.
1군 감독은 선수단 운영과 관리, 전력 구성부터 선수들과의 커뮤니케이션, 코치진 통솔, 미디어와의 관계까지 신경 써야 할 업무가 많다. 한 경기는 물론 한 시즌을 치르며 생기는 다양한 변수에 정확하고 신속한 판단을 내리는 것도 감독의 몫이다. 타격코치, 수비코치, 수석코치부터 감독까지 두루 경험한 김 수석의 조언은 국민타자의 성공적인 사령탑 안착에 큰 힘이 될 수 있다.
김한수 수석코치 임명이 한국야구에 메이저리그식 '감독 출신 벤치코치'가 보편화하는 계기로 작용할지도 주목된다. 그간 KBO리그에선 1군 감독 출신 코치는 좀처럼 보기 드물었다. 수직적인 야구계 문화에서 감독을 지낸 인사가 그보다 아랫급인 코치를 맡는 건 체면이 깎이는 일로 여겨졌다.
구단도 감독 출신 거물을 코치로 쓰기 부담스러워했고, 일선 감독들도 감독 출신 코치는 언제든 자신의 자리를 위협할 '경쟁자'로 경계했다. 젊은 나이에 감독직에 올랐다가 해고당하면 프로야구에 재취업하기 쉽지 않았다.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익힌,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경험이 그대로 사장되기 일쑤였다.
1군 수석코치는 대개 감독의 후배나 친구, 학교 동문을 임명해 감독의 '말동무' '술친구' '심기 경호' 역할을 맡겼다. 수석코치가 감독보다 선배거나 연장자인 경우는 좀처럼 보기 드물었다. 감독이 잘리면 '감독 오른팔' 수석코치도 알아서 옷을 벗었다. 이름만 프로야구지 1군 코칭스태프 운영은 전혀 프로답지 못했다.
반면 미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에선 감독 출신 벤치코치를 흔하게 만날 수 있다. 감독에서 해고된 뒤 바로 다른팀 벤치코치로 재취업하는 사례가 드물지 않다. 올해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에 빅리그 감독 출신에게 벤치코치를 맡긴 팀만 8개 팀. 미네소타 제이스 팅글러 벤치코치는 바로 지난해까지만 해도 샌디에이고 감독이었다.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초보 감독을 임명할 때 거의 반드시 빅리그 감독 출신 벤치코치를 임명해 리스크를 최소화한다. MLB에서 감독과 코치는 상하관계, 주종관계가 아닌 '파트너'다. 감독과 코치가 각자 전문영역으로 뚜렷하게 구분돼 있다. 코치로 잘한다고 다 감독 후보가 되는 것도 아니고, 감독으로 실패했다고 코치 역량이 평가절하되지도 않는다. 감독 선임 절차가 후보 선정부터 인터뷰까지 공개적으로 투명하게 진행되니 괜한 오해를 살 일도 없다.
2022시즌 MLB 감독 출신 벤치코치
볼티모어: 프레디 곤잘레스 (플로리다, 애틀랜타 감독)
미네소타: 제이스 팅글러(샌디에이고 감독)
오클랜드: 브래드 어스머스(디트로이트 감독)
애리조나: 제프 배니스터(텍사스 감독)
애틀랜타: 월트 와이즈(콜로라도 감독)
시카고 컵스: 앤디 그린(샌디에이고 감독)
콜로라도: 마이크 레드먼드(마이애미 감독)
LA 다저스: 밥 게런(오클랜드 감독)
김한수 두산 수석코치(사진=스포츠춘추 DB)
경험 많은 벤치코치는 초보 감독의 시행착오를 줄이고 성공적으로 자리 잡는 데 도움이 된다. 특히 감독의 중요성이 정규시즌보다 커지는 단기전에서 실수를 줄이는 데 큰 힘이 될 수 있다. 감독과 구단은 실패를 최소화할 수 있어서 좋고, 수많은 전직 감독들에겐 재취업과 노하우 전파의 기회가 주어지니 역시 좋은 일이다.
한 야구인은 "최근 열린 포스트시즌에서 초보 감독들은 두산 김태형 감독 상대로 맥을 추지 못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건, 김태형 감독에게도 초보 감독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다만 초보 감독들이 김태형 감독만큼 경험을 쌓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을 뿐"이라며 "벤치코치 문화가 활성화된다면 그간 파리목숨이었던 감독들의 생명 연장에 반드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두산에 앞서 벤치코치 제도를 도입한 SSG 랜더스는 김민재 수석코치와 롯데 감독 출신 조원우 벤치코치를 함께 활용했다. 김원형 감독은 "두 코치의 역할이 조금씩 다르다. 보다 좋은 결정을 내리는 데 도움이 된다"고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SSG에 이어 두산의 '감독 출신 코치' 영입이 어떤 결과로 돌아올지 지켜볼 일이다.
기사제공 스포츠춘추
배지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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