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고 시절인 2년전 인터뷰에서 '학폭 반대' 소신을 밝혀 강한 인상을 남겼던 투수 이준명. 그가 2년 만인 올해 얼리드래프트를 통해 프로행 꿈을 이루게 됐다. 일본 원서를 읽고 바둑으로 머리를 식힌다는 이준명의 이야기는 학폭 논란이 뜨거운 요즘 프로야구에 많은 것을 시사한다.
2년전 성남고 시절 이준명(사진=스포츠춘추 DB)
[스포츠춘추]
"야구는 팀 스포츠입니다. 함께 땀 흘리고 같은 결과를 공유해요. 이기면 같이 기쁘고, 패하면 함께 아픈 게 야구입니다. 그런 야구에서 자기 권위를 폭력으로 인정받는다? 저는 아니라고 봐요."
9월 15일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2023 KBO 신인드래프트. 10라운드 100번째 순서로 마이크를 잡은 KT 위즈 이충무 스카우트 팀장이 '얼리드래프트' 지명을 선언했다. KT가 선택한 선수는 동의대학교 2학년 투수 이준명.
이로써 이준명은 두산이 2라운드 지명한 김유성(고려대)과 함께 올해 드래프트 단 두 명 뿐인 얼리드래프트 지명 선수가 됐다. 대학야구 활성화를 위해 올해부터 신설한 얼리드래프트는 3, 4년제 대학 2학년도 조기 프로행이 가능한 제도다. KT의 지명으로 이준명은 동기들보다 2년 먼저 프로행 꿈을 이루게 됐다.
이준명은 키 194cm에 몸무게 100kg의 우수한 신체조건을 자랑한다. 올해 4경기에 등판해 2승 무패 평균자책 3.86을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여줬다. 구속은 140km/h 초반대로 빠르지 않지만 제구와 경기운영 능력이 좋고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등 다양한 구종을 구사한다.
나도현 KT 단장은 "고교 때부터 워낙 체격조건이 좋은 선수였다. 구속은 빠르지 않지만 큰 키와 신체조건을 갖추고 있어 지명했다. 하위라운드에서는 한두가지 특별한 장점이 있는 선수를 지명하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대학 선수지만 2002년생이라 '야구 성장판'도 아직 열린 상태다. 잠재력에 초점을 맞춘 지명으로 볼 수 있다.
이준명의 투구 동작(사진=스포츠춘추 DB)
이준명은 성남고 시절인 2년전 스포츠춘추와 인터뷰에서 깊은 인상을 남긴 선수다. 당시 이준명은 만 18세 어린 선수인데도 차분한 어조로 자신의 주관을 또렷하게 표현했다. 특히 운동부를 비롯해 사회 전반에 만연한 폭력에 강한 반대 의사를 드러낸 점이 인상적이었다.
당시 인터뷰에서 "매일 신문을 빼놓지 않고 읽는다"고 밝힌 그는 "신문 스포츠면에 보면 '폭력'이란 단어가 심심찮게 등장한다. 감독, 코치, 선배가 '경기가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 '운동부 기강이 해이해졌다'는 명분으로 폭력을 정당화하는 데 그때마다 '폭력으로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인가'란 질문을 스스로 던져본다"고 했다.
"폭력은 자기 내면에 쌓인 분노를 푸는 것밖에 없다"는 소신을 밝힌 이준명은 "존중은 강제할 수 없다. 내가 먼저 상대를 존중해야 상대도 그에 걸맞은 대우를 해준다"며 폭력이 아닌 존중을 강조했다. 이어 "야구계가 전설로 부르는 박찬호 선배님은 말보다 행동으로 후배들을 이끌었다. 박찬호 선배야말로 '진짜 야구인'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야구는 팀 스포츠"라고 강조한 이준명은 "이기면 같이 기쁘고, 패하면 함께 아픈 게 야구다. 그런 야구에서 자기 권위를 폭력으로 인정받는 건 아니라고 본다. 후배들이 믿고 따를 수밖에 없도록 행동하면 누가 존중해달라고 하지 않아도 존경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이준명은 이런 생각을 말뿐이 아닌 행동으로 실천했다. 그는 "후배들 말을 많이 들어주는 편이다. 내가 할 일을 선배란 이유로 후배에게 떠넘기지 않았고, 후배들이 믿고 따를 수 있는 선배가 되고 싶었다. 불합리한 일을 당연시하지 않도록 신경 썼다"고 밝혔다.
박성균 당시 성남고 감독(현 예일메디텍고)도 "이준명은 운동장에 가장 먼저 나와 가장 마지막에 나가는 선수"라며 투구가 마음에 안 들면 누군가에게 화풀이하는 게 아니라 바둑을 두면서 마음을 다잡는 친구다. 후배들이 따를 수밖에 없는 선배"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준명은 고교 시절 일본, 미국의 야구 서적을 원서로 읽었다(사진=스포츠춘추 DB)
고교생 시절 이준명은 운동 외에 독서와 바둑을 취미로 삼았다. 특히 미국, 일본의 야구 서적을 원서로 읽으면서 야구를 공부했다. 그는 "야구책은 아무래도 미국, 일본이 많기 때문에 해외 서적을 주로 본다"며 "요즘엔 마에다 켄의 '투구 메커니즘'과 '1등(에이스)이 될 수 있는 피칭 테크닉'이란 책을 읽고 있다. 야구는 몸으로 익히지만, 공부를 통해서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창한 일본어 실력의 비결은 일본 유학 경험. "2005년 아버지가 일본으로 발령나셔서 2009년까지 일본에서 생활했다. 유치원을 일본에서 졸업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인 2010년 일본으로 다시 건너가 3년을 더 생활했다"는 설명이다. 일본 생활 경험을 바탕으로 2020년에는 일본프로야구(NPB) 오릭스 버팔로스 입단 테스트에 도전하기도 했다.
바둑 실력도 일본에서 키웠다고. "일본에서 초등학교를 다니며 바둑을 배웠다"는 그는 "기원에서 2급까지 땄다. 아버지께서 날 프로 바둑기사로 키우려고 하셨다. 마음이 불안하거나 머릿속이 복잡할 땐 할아버지나 아버지와 바둑을 둔다. 마음을 차분히 하고, 집중력을 강화하는 덴 바둑이 최고"라고 자랑했다.
이준명은 이창호 9단의 어록 가운데 "승리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습관'을 만들어주고, 패배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준비'를 만들어준다"는 말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이어 "바둑엔 삶이 담겨있다. 마운드에서의 성과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쭉 나아갈 힘을 바둑에서 얻는다"고 강조한 바 있다.
학교 폭력과 운동부 폭력에 반대하는 소신을 당당하게 밝혔던 학생 선수. 2년전 지명 실패의 아픔을 딛고 '이기는 준비' 끝에 마침내 프로 선수의 꿈을 이룬 이준명이 앞으로 어떤 야구를 보여줄지 기대된다.
기사제공 스포츠춘추
배지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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