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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1번기획자, 특검은 박근혜를 지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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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눈]'문화예술인 정부지원 배제' 설계-집행 혐의, 김기춘·조윤선 구속 이후, 특검은 영장에 '지시자 대통령'을 넣다 

[아시아경제 이상국 기자]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성경은 시작하지만, 이 사건의 처음에도 하나의 입이 있었을 것이다. 좌파 발언을 일삼는 문화 예술인의 명단을 작성하고 그들에게 돈줄을 끊으라는 말씀을 했을 입이다. 두 개의 귀가 있었다. 그런 발언과 지시를 전혀 듣지 못했다는 귀였다. 그런데 또 다른 여러 입이 있었다. 그런 발언을 전혀 듣지 못했다는 귀를 가진 이를 통해 그 얘기를 듣거나 전해 들었을 입들이었다. 입들의 이야기를 근거로, 두 개의 귀를 오늘 감옥에 가뒀다. 결국 하나의 입이 진실을 말하는 장면을 우린 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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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윤선 장관은 박근혜 대통령이 당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선대위 대변인을 맡은 인연으로 대선 캠프를 거쳐 대통령 인수위에서도 대변인으로 선임하며 각별한 신뢰를 얻어 이후 여성부 장관, 청와대 정무수석, 문체부 장관까지 내각의 요직을 두루 역임한다. 사진 = 연합뉴스

 

 

21일 새벽 3시 48분. 김기춘(78) 전 청와대비서실장과 조윤선(51)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에 대한 구속 영장이 떨어졌다. 이들을 감옥에 가둔 현실적인 이유는 증거 인멸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봤기 때문이며 그간 두 사람이 수사나 국정조사에 임해온 불성실한 태도도 감안했을 것이다. 두 사람에게 주어진 혐의는 직권 남용 권리행사 방해와 국회 증언 감정에 관한 법률 위반(위증)이었는데, 특검이 주목해온 것은 문화예술인 지원 배재 명단(블랙리스트)을 설계하고 집행한 사건이었으며 두 사람은 각기 그 중심 위치에 있는 인물이었다. 그간 실무자 선의 촘촘한 수사를 거쳐 핵심 윗선인 김기춘과 조윤선으로 칼끝을 높인 셈이다. 

자신을 옭아매는 법망으로부터 빠져나갈 수 있는 교묘한 발언과 태도로 '법꾸라지(법률미꾸라지)'라는 별명까지 얻은 김기춘은 이날 특검에 출석하면서 이미 구속 사태를 예감한듯 평소 끼던 금속테 안경 대신에 뿔테를 착용하고 나왔다. 감옥에선 금속 제품의 착용을 제한하고 있기에 안경이 압수돼 당장 불편을 겪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는 얘기다. 또 이날 사상 처음으로 현직 장관이 구속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여전히 장관직을 유지한 채 말이다. 수사 대상자였던 조윤선이 여전히 장관직을 물러나지 않고 있고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은 정부 부처의 수장이 감옥에 가 있게된 이번 사태와 관련해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기에 생긴 일이다. (황대행은 뒤늦게 감옥의 조윤선이 제출한 사표를 수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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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의 구속은, 승승장구하며 권부의 노른자위를 누린 박근혜 정부의 핵심인물이 결국 법망에 걸려 참담한 지경으로 몰려가고 있는 것에 대해 권력무상의 개탄과 감회를 자아내게 하는 측면이 있지만, 그것이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대통령을 기소하려는 특검이 이 정권의 뿌리깊은 비리네트워크를 향해 정면으로 칼을 뽑은 게 아니라는 점을 주목할 만하다. 즉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한 대통령의 공모 혐의나 정유라와 재단 지원과 관련한 뇌물죄 혐의를 제대로 입증하는 일은 상당한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게 사실이다. 특히 내달 말이 시한인 특검으로서는 제약이 있을 수 밖에 없다. 최순실을 비롯한 혐의자들이 철저히 시간끌기 전략으로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럴 때 불거진 곁가지 사안이 '문화계 블랙리스트'였다. 특검은 이 문제의 폭발력을 잽싸게 감지했을 것이다.

김기춘과 조윤선은 이와 관련해 다른 사안과 마찬가지로 철저히 모르쇠로 일관했으나, 관련 증거를 숨기거나 없애는 일에 상대적으로 소홀했을 가능성이 있다. 최순실 사태의 핵심사건이 아니었기에 특검의 주된 관심이 아닐 것이라고 판단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문화체육부 실무자나 관계자들로부터 블랙리스트와 관련한 증언들이 줄이어 터져나왔고, 그 책임 소재가 윗선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여기에 국정조사특위에서 했던 그들의 발언이 위증임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게 되고 결국 구속사태까지 오게 된 것이다. 

정권에 비판적인 인사들을 정부 지원에서 배제한 블랙리스트 사건은, 평등한 대우를 받아야 할 국민을 임의로 차별하는 위헌 행위라는 점에서 충격과 파장이 클 수 밖에 없다. 청와대와 문체부가 블랙리스트를 작성 ·관리하며 문화 ·예술 분야에 개입한 것은 자유민주주의의 핵심 가치인 사상 ·표현 ·언론의 자유를 침해한 반헌법적인 중대 범죄라고 특검은 분명히 밝히고 있다. 특검의 관계자에 따르면 첫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이 2014년 5월이었으며, 이것을 지시한 사람은 박근혜대통령이었다고 한다.(동아일보 19일자 보도). 세월호 참사(2014년 4월16일)가 일어난 직후의 일이다. 정부의 부실대응에 대한 각계의 비판여론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대통령이 "좌파 문화 예술계 인사들에게 정부 예산이 지원되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지시를 내렸다고 특검은 판단한다. 박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신동철(56ㆍ구속) 당시 청와대 정무비서관이 주도해 80여명의 문화계 인사 명단을 작성했다는 것이다. 이후 청와대와 문체부로 문서가 오가면서 리스트에 담긴 이름의 숫자는 폭발적으로 늘어나 1만명에 육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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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알고싶다' 김기춘, 최순실, 박근혜 / 사진=SBS '그것이알고싶다' 제공

 

 

이런 일이 빚어지고 있을 때 김기춘과 조윤선은 어디에 있었을까. 김기춘은 2013년 8월에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부임했고, 세월호 사건 때는 8개월쯤 재직한 때였다. 또 조윤선은 세월호 사건 두 달 뒤인 2014년 6월에 청와대 정무수석으로 임용됐다. 이후 약 1년간 정무수석 자리에 있다가 사임하여 총선에 도전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 뒤 작년 8월에 문화체육부 장관으로 내정됐다. 김기춘은 대통령의 발언이 있었다는 당시의 비서실장으로 블랙리스트에 관여했을 가능성이 가장 높고, 그 한 달 뒤 정무수석이 되었고 최근 문화체육부 장관에까지 기용된 정황을 살피면, 블랙리스트의 추가작업들과 구체적인 '지원 배제'를 실행하는 일을 했을 개연성이 높다. 특검은 이와 관련해 구체적인 증언을 비롯한 증거를 제시하지는 않았지만, 혐의 입증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이제 눈길은 대통령에게로 쏠린다. 특검 관계자로부터 나왔다는 저 발언은, 블랙리스트를 지시한 당사자가 대통령임을 명시하고 있는 만큼 그 책임에서 초연할 수 없는 상태다. 특검은 대통령이 지시했다는 사실을 영장에 포함시킬 예정이다. 21일 MBN 뉴스와이드에서 김남국 변호사는 "블랙리스트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이 지시가 없이 이하의 공직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냈을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일정한 재가 과정을 거쳤을 것이 확실하다"면서 "이번 사건은 대통령에게 어쩌면 국정농단 공모 혐의나 재단 지원과 관련한 뇌물죄보다 더 심각한 타격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유진룡 전 문화체육부 장관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장관 시절 대통령을 만났을 때 이미 그 부당성에 관해 문제 제기를 한 바가 있다고 밝힌 바 있고, 당시 블랙리스트 정책에 부정적이었던 일부 문체부 공무원들에 대한 사임 강요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블랙리스트에는 박근혜대통령에 대한 비판 그림으로 눈길을 끈 화가 홍성담을 비롯해, 고은 시인, 맨부커상수상 작가 한강, 영화감독 박찬욱 ·김지운, 영화배우 송강호 ·김혜수 ·하지원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CJ그룹 이미경 부회장이 '좌파 성향적' 영화를 만드는데 앞장 서고 있다는 이유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것과 관련해, 특검은 대통령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문화계 좌파' 문제에 대해 상당한 교감을 지니고 다양한 영역에서 유사한 정치적인 입김을 행사했을 가능성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대를 몇 바퀴 거꾸로 돌린 듯한 '빨간 딱지(좌파 낙인)의 유령'이 현 대한민국의 사상과 표현을 옥죄고 있었던 현실. 그 정점으로 칼이 향하고 있다. 작은 입을 막는 큰 입이 정상적으로 단죄될 수 있는 세상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일까. 




이상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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