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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 따라서 테스트 보러 갔다가 농구를 시작했습니다”

조아라유 0

[김종수의 농구人터뷰(82)] '코알라' 김현중

 

 

 



‘이것은 이래서 안될 것 같고…, 저것은 저래서 안될 것 같고’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 퀀텀 바스켓볼 김현중(42‧181cm) 대표의 글을 쓰기에 앞서 별명을 적는 것 부터 고민이 많았다. 아주 잘 알려진 하나의 별명으로 통일되어 있는 것이 아닌 이것저것 여러 가지 애칭으로 불렸기 때문이다. 외모의 특정 포인트가 닮았다고 해서 모 개그맨의 이름이 그대로 쓰였는가 하면 ‘아기 사자’, ‘코알라’ 등으로도 불렸다. 은퇴 후 생겨난 별명도 있지만 이것은 현재 사정상(?) 쓸 수가 없다.

해당 개그맨의 이름을 앞에 쩍 별명으로 쓰는 것이 어떨까 싶었지만 오래전 김대표의 인터뷰를 우연히 보고나서 황급히 백스페이스를 탁탁탁 세 번 눌렀다. 거기에는 그 개그맨 이름으로 별명이 불리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적혀있었기 때문이다. 기자가 아무리 해당 개그맨의 팬(열성)이라고 해도 원하지 않는 별명을 무리해서 끼워 넣을 이유는 없다.

결국 아기 사자와 코알라 중 하나를 택해야 하는데 아무리 나이에 비해 동안이라고 해도 40살을 넘긴 사람의 별명에 아기라는 단어가 들어가는 것은 쓰는 기자, 김대표 본인은 물론 읽어주시는 팬 분들에게까지 부담일 수밖에 없다.(웃음) 결국 남은 것은 코알라 하나였다. 코알라라는 별명도 주로 어린 친구들에게 많이 사용되는지라 잠시 망설였지만 그래도 언급되었던 별명 중에서는 가장 무난할 듯 싶었다.

이미지 연상이라는 것은 참 신기하다. 그동안 계속해서 아무 생각 없었다가도 ‘00에게서 00이 보인다’라는 얘기를 듣는 순간 ‘어?’하게 된다.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것이 갑자기 확 보이게 되는 것이다. 아기 사자, 코알라 등이 그랬다. 덕분에 인터뷰 전부터 호감가는, 편안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더더욱 동안같이 느껴졌던 것은 덤이다.(계속 수습해야 한다. 그 끝이 어디인지 몰라도)

코알라가 나무 늘보같이 느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사실은 다르다. 하루의 대부분을 잠으로 보내고 다른 동물들에 비해서 잘 안움직여서 그렇지 땅위를 제법 빠르게 달리거나 높이 뛰어서 나무 사이를 건너 다니기도 한다. 거기에 귀여운 겉모습과 달리 은근히 성깔도 장난 아니며 발톱도 날카롭다. 필요하다 싶으면 무서운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김대표도 그렇다. 실제 기록보다 경기에서 보여지는 영향력이 더 컸던 선수다는 평가가 많다. 팀 플레이에 신경을 쓰려는 마인드가 강해서 그렇지 마음먹고 득점에 참여하면 무섭게 폭발하기도 했다. 거기에 코알라와 달리(?) 선수 시절부터 부지런하고 열정적이기로 소문이 났다. 멘탈 자체도 뭔가를 계속 하려는 의지가 뚜렷하다. 코알라가 단순히 잠만 잔다면 김대표는 대신에 꿈을 꾼다.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이 선수 시절부터 명확했다.

◆ 김현중 정규리그 통산기록 ☞ 통산 314경기 출전 평균 3.8득점, 0.9리바운드, 2어시스트, 0.5스틸 , 0.1블록슛

​⁕ 정규리그 한경기 최다기록: 득점 ☞ 2012년 2월 4일 서울 SK전= 24득점 / 3점슛 성공 ☞ 2012년 11월 23일 서울 SK전 = 6개 / 어시스트 ☞ 2010년 12월 11일 울산 모비스전 = 11개 / 리바운드 ☞ 2008년 11월 12일 서울 삼성전 = 6개 / 스틸 ☞ 2011년 11월 25일 전주 KCC전 = 4개​


 

 

 


​“스킬 트레이닝과 영상 제작 그리고 집, 단순한 패턴의 연속입니다”

​​​​Q.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레슨(스킬 트레이닝)하고 촬영(유투브)하고 그러고 지내고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저에게 너무 바쁘게 산다고 하는데 생각해보면 그런 것 같으면서도 아닌 듯 싶고 그래요. ‘퀀텀 바스켓볼(QUANTUM BASKETBALL)’에 출근해서 농구 가르치고 틈틈이 유투브 영상 촬영하고 그리고 퇴근해서 집, 그게 전부에요. 나름 열심히는 사는 듯 싶은데 패턴은 단순하죠. 스킬트레이닝을 시작한 것은 8년 조금 안된 것 같고 퀀텀은 5년째 운영중이에요.

​​​​Q.현역 때보다 지금이 더 유명한 것 같아요.
아! 그런가요? 음…, 현역 때 워낙 안 유명했으니 상대적으로 그렇게 느껴지지 않을까 싶어요.(웃음) 이런 것을 상대적 효과라고 그러죠. 하하핫.

​​​​Q.유투브 채널 운영은 어떻게 구상하게 됐나요?
많은 사람들이 농구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마음이 컸어요. 스킬 트레이닝 업체를 운영만 해서는 한계가 있는듯해서 영상을 통해 이것저것 교육 영상을 올린게 시작이었죠. 업체 홍보도 겸해서요. 예상 외로 처음부터 반응이 괜찮았어요. 하지만 교육 영상만 올려서는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농구인들은 많이 찾아주시지만 일반 신규 팬들에게는 접근성이 떨어질 수도 있겠더라고요. 그래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섞은 다양한 컨텐츠를 함께 올리게 됐습니다. 상황극, 몰래카메라 등 여러가지 스토리에 특정 캐릭터도 만들어보고 거기에 팬들이 좋아할만한 농구인들을 초대해 만담도 즐기고 아님 현역 선수들과 일대일 자리도 만들어보는 등 다방면으로 꾸려나가고 있습니다.

​​​​Q.성격이 본래 활달하신 편인가요?
하핫…, 아닙니다. 반대에요. 내향적인 쪽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영상 촬영 같은 것은 꼭 필요한 부분이다고 판단했고 다행히 많은 분들이 관심 가져주시고 응원해주셔서 더욱 용기를 낼 수 있었던 듯 싶어요. 아쉬운 것은 퀀텀은 코치님들과 함께 끌어가고 있는데 아무래도 저희들은 주업이 농구잖아요. 직업적인 유투버는 아니거든요. 그러다보니 바쁠 때는 미리 찍어놓은 것도 한참동안 못 올릴 때도 많아요. 앞으로 업체가 커지고 사람들이 늘어나면 이런저런 부분에서 더 나아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Q.가족 관계가 궁금해요.
아내와 그리고 7살 딸이 있습니다. 아무래도 농구인 2세인지라 농구시킬 생각있냐 등을 벌써 부터 물어보시는 분도 계시는데 현재로서는 전혀 생각이 없습니다. 아직 많이 어린지라 벌써부터 운동신경, 재능 등을 언급하기는 성급한 것 같지만 지금까지 아빠가 느낀 것으로는 운동 쪽과는 크게 인연이 없을 듯 느껴져요. 본인도 별로 흥미가 없고요. 그런고로 현재는 농구를 시킨다던가 그럴 계획은 전무합니다. 어쨌든 아빠가 밖에 있는 시간이 많으니까 딸에게는 늘 미안합니다. 되도록 일 끝나고 집에 들어가면 놀아주려고 노력하는데 부족하죠. 이런저런 부분 이해해주면서 내조를 잘해주고 있는 아내에게도 항상 고맙고요.



 



​“크록스맨은 재미있고 열정적인 친구입니다”

​​​​Q.퀀텀 바스켓볼하면 크록스맨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크록스맨 요새 유명해졌죠.(웃음) 저희 퀀텀의 간판스타입니다. 흔치않은 마스크맨 컨셉의 농구 캐릭터인지라 알아봐 주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아직 보여주지 못한 모습도 많고 이런저런 매력이 풍성한 친구이니 앞으로도 관심 팍팍 가져주시고 사랑해주세요.

​​​​Q.크록스맨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나요?
크록스맨, 그 친구가 원래 되게 털털한 성격이에요. 특별한 장소 아니면 편하고 가벼운 복장으로 돌아다니는 것을 선호하더라고요. 집히는 데로 입는 스타일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다보니 편한 크록스 신발을 좋아하게 됐다고 하네요. 근데 또 친화력은 장난 아니라 일반인들과도 일대일 농구하고 그런 것을 즐겨요. 어느 날인가 또 그런 기회가 생겼는데 신발 갈아신기도 귀찮고 양말도 안 가져오고 해서 그냥 크록스 신발을 신고 했다고 하더라고요. 그걸 옆에서 지켜보던 분이 ‘오~ 이것 캐릭터로 괜찮은데… 크록스맨 어떠냐?’고 말씀을 해주셨고 그 친구도 생각해보니 좋을 듯 싶었나 봐요. 어떻게 캐릭터를 잡아야 될지는 감이 안 잡혔지만 컨셉으로 만들고 싶다는 판단은 선거죠. 그래서 정식으로 유투브 촬영을 했는데 반응이 나쁘지 않았어요. 여기서 그 친구가 용기를 얻었어요. 충분히 될 것 같다는 판단이 선거죠. 그래서 두 번째는 일반인이 아닌 현역 프로선수들하고 일대일을 계획했어요. 그 친구 또한 명색이 스킬 트레이너인지라 이왕 할거면 좀 더 공격적으로 해보기로 한거죠. 하지만 상대가 프로 선수잖아요. 그 친구의 일대일 능력이 상당한 수준인 것은 저도 인정하지만 프로를 상대로 크록스 신발은 정말 오버죠. 그래서 크록스 신발을 신는 대신 얼굴에 크록스처럼 생긴 가면을 쓰는 쪽으로 방향을 바꿨다고 하더라고요. 일대일 농구계의 가면 캐릭터 크록스맨의 탄생 비화입니다.(웃음)

​​​​Q.가면을 쓰고 농구를 한다는 자체가 상당히 불편할 듯 싶어요.
안그래도 저도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 친구에게 물어봤어요. 불편하다고 하더라고요. 땀도 차고 시야도 가리고 거기에 무겁기까지 하니까 진지하게 일대일 할 때는 꽤 번거로운가 봐요. 무엇보다 땀을 흘리고 하면 가면이 돌아간다고 할까요. 얼굴에서 막 노는 거죠. 일대일은 어쩔 수 없이 하지만 가면을 쓰고 경기를 뛰는 것은 불가능 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근데 구태여 그 친구에게 물어볼 필요도 없이 옆에서 쓱봐도 좀 불편해보이기는 했어요.(웃음)

​​​​Q.크록스맨은 어떤 동료인가요?
나이는 저랑 비슷하고요. 전직 프로선수였다는 얘기도 있는데 정확하게는 말을 안해주더라고요. 저도 구태여 캐묻지는 않았어요. 뭔가 신비주의로 가고싶은게 있나 보죠.(웃음) 듣자하니 알만한 사람들은 크록스맨의 정체를 안다고 하던데 그냥 알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모르더라도 자신은 당분간 분리된 캐릭터로 가고 싶다고 하네요. 존중해줘야죠. 농구할 때는 꽤나 진지한 친구인데 어쩔 때는 엉뚱한 구석도 되게 많아요. 지난해 9월에는 ‘한강 멍때리기 대회’에도 참가했어요. 이것저것 바쁘게 살다보니 평온함이 그리워졌고 마음의 안식을 찾고자 멍한번 때리게 됐다고 말하더라고요. 여기 점프볼에서도 최창환 기자님이 기사로 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농구를 하는 사람이든, 보는 사람이든 똑같은 농구인이라고 생각합니다”

​​​​Q.스킬트레이닝을 시작한 이후 현역 때보다 기술이 더 늘었다는 말을 하기도 했어요. 이게 가능한건가요?

그럼요. 제가 살아있는 답이죠.(웃음) 남들은 나이먹으면 발전할 수 없다. 기술은 어릴 때 배워야 발전한다고 하는데 저는 상관없다고 생각해요. 일단 제가 바뀌었으니까 그런 말도 자신 있게 할 수 있는 거죠. 제가 특별한 사람도 아니고 그냥 평범한 농구 선수였을 뿐인데 정말 몰라보게 달라졌어요. 실제로 많은 분들이 보고 인정한 사실이고요. 꼭 농구에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겠지만 배움에 나이는 필요 없는 것 같아요. 늦었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고요. 일단 사람은 배우면 늡니다. 시기가 중요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고요. 한번씩 KBL엘리트 캠프같은 곳을 가거든요. 그곳에 프로 코치들도 오는데 저랑 같은 팀에서 현역 시절을 보낸 이들도 있어요. 저 농구하는 것 보면 놀래요. 플레이 스타일이 정말 많이 바뀌었다면서요. 그런 것을 보면서 코치들도 영감을 얻고 돌아가고 그런 경우도 있어요. 아, 되는구나 싶은거죠.

​​​​Q.어떻게 바뀌었다는거죠?
리딩이나 각종 기술 등이 변한거죠. 플레이를 하는 동작의 리듬 자체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보면 되요. 지금 스타일로 현역 때로 돌아간다면 옵션 쪽에서의 다양성이라는 장점을 가져갈 수 있으니까 좀 더 재미있게 농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Q.만약 지도자 쪽으로 가게되면 지금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될 듯 싶어요.
그렇죠. 하지만 개인 기술 한정으로 선을 그어야 될 듯 해요. 팀훈련을 시키는 것도 아니고 거기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는 많이 부족하니까요. 저는 지금 개인 기술만 7년째 연구하고 있어요. 농구라는 것이 한 사람은 무조건 제칠 수 있어야 하니까 개인 기술은 필수라고 생각해요. 팀 플레이 안에 개인 기술이 기본적으로 들어가 있어야 되는 거죠. 그러다보니 제가 만약 제 특기를 살려서 코치를 한다면 선수들에게 충분히 도움이 될 수 있을 것 같기는 해요. 하지만 지금은 코치 등 지도자 쪽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저는 지금 하고 있는 일에 집중하고 싶어요. 만약 코치를 한다면 이렇게 유투브 영상을 찍고 그런 일도 할 수 없을 것이고요. 일단 저는 목표가 있어요. 소박하나마 저희 영상을 보고 단 한 사람이라도 더 농구 쪽에 관심을 가지고 유입되었으면 하는 바램이 큽니다. 그 상대가 농구를 하는 사람이든 보는 사람이든 관계없어요. 모두가 큰 틀 안에서는 같은 농구인이라고 생각합니다.

​​​​Q.최근 농구인들 유투브를 보면 다양한 캐릭터들이 있던데 나중에 좀 더 유명해지면 한꺼번에 모여 농구 어벤져스 영상 한번 찍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네요.
그렇게 될 수 있으면 진짜 좋겠죠. 그만큼 인지도를 쌓았다는 얘기인데 그런 캐릭터들이 한꺼번에 나와서 관심을 받으면 그것만큼 좋은게 어디 있을까요. 저희 퀀텀의 크록스맨도 분발해야겠는데요. 가면을 썼으니 아이언맨 포지션하면 딱 좋겠어요. 평소에는 평범한 스킬트레이닝업체 직원으로 있다가 일대일의 고수가 나타나면 크록스맨 가면을 쓰고 진검승부를 벌이는거죠. ‘농구에 진심인 사나이, 그 이름 크록스맨’하면서요.(웃음) 제가 너무 앞서나가고 있나요? 하하핫…

​​​​Q.캐릭터가 너무 좋아서 그 이상도 가능할 것 같아요. 영화나 만화 등을 보면 농구로 유명한 캐릭터가 많지않는데 ‘복면달호’, ‘반칙왕’같이 복면 농구왕 영화 한편 제작되면 기가 막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웅장해집니다.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정말 뿌듯하고 흐뭇하고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로 기쁠 듯 싶어요. 크록스맨 그 친구 대답은 안 들어봤지만 너무너무 좋아할 것같아요. 꼭 저희 퀀텀의 크록스맨이 아니더라도 농구 발전을 위해 모두가 알만한 농구 캐릭터 하나 나와주는 것도 나쁠 것 없죠. 아주 오래전 캐릭터지만 타이거 마스크하면 프로레슬링이 바로 떠오르잖아요. 더불어 제 또래는 기억할 듯 싶은데…, 저희 어릴적 김철호 화백이 그린 축구 만화에서 빵봉투 캐릭터도 있었고요. 재작년인가 프로당구 피비에이(PBA)에서 가면 쓴 당구선수 해커가 화제가 되었던 것도 떠오르네요.


 

 



“포인트가드는 자신감이 절반은 먹고 들어갑니다”

​​​​Q.농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저희 형이 이른바 농구 일짱이었어요. 선수는 아니고 일반 학생이었는데 그 사이에서는 정말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탓을 만큼 농구를 잘했던 기억이 나요. 그러다보니 선수를 하고 싶어서 저희는 서울에 살았지만 인천에 있는 송도중학교까지 가서 테스트를 보게 됐어요. 당시 저는 형 껌딱지였던 만큼 졸졸졸 따라다녔어요. 형이 테스트를 본다기에 저도 함께 따라가서 보게된거죠. 나이가 걸림돌이기는 했어요. 당시 저도 중학교 2학년이었던지라 꽤 늦은건데 저희 형은 저보다 두 살이 많았으니까 그쪽 입장에서도 그 부분이 걸리지 않을 수가 없었죠. 농구부 측에서 일년을 유급하고 운동을 해라. 그러면 선수를 시켜주겠다고 했어요. 형은 유급하는게 싫다고해서 안하게 됐고 얼떨결에 따라간 저는 유급을 선택해서 농구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형 때문에 갔다가 저만 농구를 하게된 케이스죠.

​​​​Q.형 입장에서는 좀 아쉽겠네요.
모르겠어요. 형 속내까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본인이 스스로 선택한 것이니까 크게 회한이 남았다거나 그런 정도는 아닐 것 같아요. 타의가 아닌 본인의 의지였잖아요. 물론 선수는 아니지만 형은 여전히 농구는 좋아해요. 현재는 농구 의류 판매하는 사업을 하고 있고요. 아울스라고 전국적으로 유명한 길거리 농구팀이 있어요. 그쪽에서는 최강팀이죠. 거기에 소속되어서 농구를 즐기고 있기는 해요.

​​​​Q.어릴 때도 키빨은 못 받으셨을 듯 싶은데 처음부터 포지션은 가드였을까요?
키는 작았지만 고등학교 때까지는 저는 주로 2~3번을 봤어요. 주전 1번 선수가 있었거든요. 때문에 저는 대학교 올라가서 본격적으로 1번을 보게 된 케이스에요. 이왕지사 미리 포인트가드 수업을 받고 경험을 쌓았으면 좋았겠지만 제가 선택할 입장은 아니었어요. 중학교 2학년 때 농구를 시작했다보니 이미 1번은 임자가 있었고 제가 뛰려면 2번 밖에 자리가 없었습니다.

​​​​Q.송도중, 송도고, 동국대까지, 김승현 선배의 라인을 그대로 따라갔어요.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죠?
없지 않아 있기는 했어요. 워낙 존경하는 선배인지라 저도 형처럼 되고 싶었거든요. 그렇게만될 수 있으면 대성공이잖아요. 형처럼 엄청난 선수는 되지 못했지만 나름 그 라인으로 가서 잘됐다고 생각은 하고 있어요. 좋은 선생님들 만나서 좋은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으니까요.

​​​​Q.닮고는 싶었겠지만 김승현 선배가 있는 팀으로 가고 싶지는 않았을 듯 싶은데요.
대학교같은 경우는 겹치지가 않아서 아무 상관이 없었는데 오리온스에 지명되었을 때는 사실 좀 그랬죠. 형이 한창 잘하고 있었던 시절인지라 그 어떤 유망주가 가도 주전을 차지하기는 불가능한 팀이었잖아요. 문제는 당시 오리온스는 승현이형만 있던게 아니라는 점이었어요. 형이야 논외로 친다해도 같은 포지션에 다른 쟁쟁한 형들까지 있었다는게 당시 입장에서 앞이 캄캄했습니다. 승형이형만 있었다면 옆에서 배우면서 백업으로 뛰면 되니까 문제가 없었어요. 하지만 (박)지현이형에 다른 가드 형들까지 버티고 있던 터인지라 제가 기회를 받기는 매우 어려운 현실이었습니다. 지현이형같은 경우 승현이형과 비슷하게 출장시간을 보장받을 정도로 주가를 올리고 있었거든요.


 

 

 


​​​​Q.드래프트 당시에 2라운드에 뽑혔잖아요. 내가 이것 밖에 안되나 그런 생각은 안 들었을까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당시에는 그런 생각도 좀 했어요. 동국대 시절에 프로선수들이랑 연습 게임 할 때도 잘했고 나름대로 유망주로 언론에 종종 소개됐던 터인지라 어느 정도 기대한 부분이 있었으니까요. 분해서 울기도 하고 그랬어요. 지금와서 돌아보면 바보 같은 짓이었죠. 그 정도 실력도 아니었을뿐더러 어쨌든 뽑힌 것만으로도 소중한 기회를 받은 것인데 쓸데없이 순위에 목매달 필요가 없었구나라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습니다. 당시를 떠올리면 좀 창피합니다. 인격적으로 성장이 덜 되었던 시기같아요. 흔히 하는 말로 어렸죠.

​​​​Q.본인이 생각하는 플레이 스타일은 어땠을까요?
그래도 개인적으로 전성기를 꼽자면 모비스 때였거든요. 그때는 공격적인 가드가 되고 싶었어요. 당시 유재학 감독님께서 ‘무미건조한 가드는 되지말아라. 평균 10~15득점 정도는 잡아 줘야 한다’고 말씀해주셨던 기억이 나요. 저도 그 말씀을 잊지않고 조율도 조율이지만 득점에 대한 욕심 그런 것도 가지고 코트에 나섰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농구를 하다보니 자신감으로 드러났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1번으로서 그만한 득점을 올리려면 자신감이 없으면 안되요. 앞에 누가 있든 간에 돌격을 해야되는거에요. 슛을 쏠 때도 과감하게 쏘고 그래야 득점이 되는 것이거든요.

​​​​Q.확실히 선수에게 자신감은 정말 중요한 것 같네요.
그럼요. 자신감이 반은 먹고 들어간다고 봐요. 그렇게 쭉 거침없이 자신감을 가지고 갔어야 하는데 이후에는 많이 떨어져 버렸어요. 특히 나이를 먹어가면서 몸이 예전 같지 않아지면서 자신감도 하락하고 말았습니다. 플레이 하나하나에 소심해지고 은퇴에 대한 걱정 등 이런저런 잡념을 달고 살았죠. 그러다보니 플레이에 그대로 나오더라고요. 막바지에는 패스를 주고 구석으로 가서 기다리다가, 팀의 주축 선수가 공격을 하다가 안되면 받으러 가고 패스를 주면 슛을 쏘고 안되면 빼고 그렇게 기죽은 플레이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가장 하면 안되는 무미건조한 플레이를 했던 거죠.

​​​​Q.여러가지가 안좋은 방향으로 복합적으로 작용했네요.
그렇죠. 1번은 야전사령관이라고 불리잖아요. 백업이든 주전이든 포인트가드라고하면 코트에 서는 순간 만큼은 자신이 흐름을 이끌어간다는 마인드가 필요해요. 방법은 중요하지 않아요. 리딩과 패스를 잘하면 조율을 통해 팀 플레이를 만들어 가는 것이고 득점에 자신이 있으면 돌격대장이 되는 것이죠. 감독님이 말씀하셨던 것도 그런 의미였지 않나 싶어요. 경기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포인트가드는 필요가 없는 것이잖아요. 색깔을 제대로 갖추고 다만 얼마라도 그것을 보여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죠.


 

 



​​​​Q.현역 시절 어떤 선수와 플레이 스타일이 비슷했을까요?
음…, 앞서도 언급했다시피 초반에는 승현이형을 따라하려고 많이 노력했어요. 하지만 그게 따라하려고 한다해서 되나요. 처음에는 되도 않는 것을 따라하려고 하다가 실책도 많이 했어요. 특히 패스. 승현이형의 감각적인 패스같은 것은 진짜 형만이 가능한 것이었거든요. 그렇게 안 좋은 패스를 남발하다 보니 불안한 선수라는 낙인이 찍히고 말았어요. 이후 따라하는 것 보다는 제 스타일의 농구를 하자고 마음을 고쳐먹었고 점점 플레이가 잘 풀리기 시작했습니다. 공수전환이 될 때 최대한 빨리 하프라인을 넘어가서 샷 클락을 확보하고 찬스나면 던지고, 2대2 플레이 등을 좀 더 자신있게 펼치고…, 그런 스타일이었던 것 같아요.

​​​​Q.확실히 선수에게 출전시간은 중요한것같아요. 모비스때 잘했던 것도 그런 영향이 컷죠?
당연하죠. 사실 시즌전 전지훈련 가서는 잘 못했어요. 거의 뛰지도 못했고요. 하지만 훈련은 다른 선수들 이상으로 열심히 소화했고 그런 부분을 알아주셔서인지 시즌 들어서 기회를 주셨어요. 다행히 잘했고 좋은 결과로 이어졌던 듯 싶어요.

“실제 경기에 도움이 되는 실전 개인기를 가르쳐주려고 노력중입니다”

​​​​Q.페이스가 올라온다 싶을 때마다 부상으로 상승세가 꺾였어요.

그런 부분도 있었지만 사실 핑계죠. 부상으로 고생한 선수가 저만 있었겠습니까. 부상 이후에도 잘한 선수들도 많잖아요. 솔직히 당시에는 속상하고 심리적으로 흔들리기도 했지만 좀 더 다잡고 잘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발목인대 수술하고 5~6개월 정도 쉰 것을 비롯 아킬레스건도 수술한적 있고…, KT때도 비시즌 때 나름 잘했는데 2013년 9월 KCC와의 연습경기에서 상대 외국인선수 타일러 윌커슨의 팔꿈치에 맞아서 앞 이빨 5개가 나가는 부상을 당하기도 했어요. 기습적인 협력수비를 펼치는 과정에서 일어난 돌발적인 사고였죠.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다른 쪽으로 아쉬워요.

​​​​Q.다른쪽요?
그 당시에는 이른바 몸으로 농구하던 때에요. 힘, 스피드, 연습량 그런 것들이 저를 만들었던 때인지라 한번 다쳐서 쉬면 이전 몸 상태로 끌어올리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기술력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어요. 기술적으로 뛰어나다 보면 몸을 회복하고 팀에 들어와서도 적응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을 것 같아요. 하지만 그 당시 저는 기술적인 부분에서 부족했던지라 그런 점에서 아쉬움이 남아요.

​​​​Q.프로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언제였을까요?
상무가기 전까지 한시즌동안 총 100분을 못 뛰었을 거에요. 그러다가 모비스에서 주전으로 뛰었잖아요. 그 순간이 정말 좋았어요. 이렇게 뛸 수도 있는 것이구나하고 마치 꿈길을 걷는 기분을 계속 느꼈던 기억이 나요. 그전까지 제가 그렇게 꾸준히 뛸 수 있을 것으로는 상상도 못 했거든요. 예를 들면 제가 1~2년차 때까지는 게임을 거의 못 뛰었잖아요. 당시 경기에 나서는 선배들은 시합 다음 날은 본운동을 안하고 컨디셔닝 위주로 몸을 풀거든요. 대신 시합을 안 뛴 저희같은 선수들은 본운동을 빡세게 하는거죠. 그때 선배들을 보면 되게 부러웠어요. 우리는 죽을 만큼 뛰고 있는데 선배들은 반대 코트에서 슛을 던지고 있고…, 하지만 모비스 때 경기를 많이 뛰면서 그것을 반대로 겪게 된거죠. 처음에는 실감이 나지 않았어요. 다른 선수들은 저쪽에서 엄청 힘들게 훈련하고 있는데 나는 여기서 슈팅 컨디셔닝을 하고 있네. 신인 때부터 팀내 주축으로 뛰었던 스타 플레이어들은 그런 기분을 실감하지 못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같이 완전 밑바닥부터 경험해본 선수에게는 그 순간이 정말 특별하게 다가왔던 기억이 납니다.


 

 



​​​​Q.반대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요?
가장이라는 표현이 의미가 없을만큼 힘들었던 순간은 꽤 많았죠.(웃음) 부상 당했을 때도 그렇고 무엇보다 경기에서 못 뛸 때가 힘들었습니다. 벤치를 지키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면 어느 순간부터는 코트에 나서는 것이 싫어지는 것을 넘어 두려워집니다. 감독님이 교체를 하려고 벤치 쪽을 쳐다보시면 황급히 시선을 피해버립니다. 그리고 속으로 ‘제발 나 부르지마라. 부르지마’ 외치게 됩니다. 정말 운동선수로서는 최악이죠. 이해할 수 없다는 분들도 계실지 모르겠지만 정말 안 좋을 때는 그렇게까지 되더라고요. 물론 항상 그랬던 것은 아니었지만 그 시기가 개인적으로는 참 힘들었다고 기억됩니다.

​​​​Q.함께 뛰어본 선수중 기억에 남는 외국인선수로는 누가 있을까요?
모비스때 브라이언 던스톤이 정말 잘했어요. 역대 빅맨 중에서도 포스트 수비를 정말 잘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잖아요. 그럴 수밖에 없는게 팔 길고 손 크고 거기에 점프력도 엄청 좋았거든요. 수비를 못하는게 이상하죠. 타고난 장점이 정말 많았어요. 그러다보니 패스를 대충 띄워줘도 자기가 알아서 척척 잘 잡아요. 드리블 치면서 뛰다가 매치업 상대 색깔이 다르면 보지도 않고 공을 띄울 때도 많았어요. 상대 외국인선수가 앞에 있으니 가까운 곳에 던스턴이 있다는 것이잖아요. 그럼 아니라 다를까 귀신같이 공을 캐치해서 득점으로 연결시켜 버렸죠. 거기에 볼을 오래 가지고 플레이하는 스타일도 아닌지라 볼 없는 움직임도 무척 좋았어요. 아참, 오해하지 마세요. 저 지금 인종 차별하는 것 아닙니다. 당시 상황을 디테일하게 설명하려고 한 것이고 악의적인 의미는 전혀 없습니다. 오해를 받을 수도 있는 부분이라서 꼬리말을 달아봅니다.

​​​​Q.NBA도 자주 보시나요?
보죠.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뛰고 있는데요. 문제는 제가 하는 일이 스킬트레이닝이다보니 즐기지를 못해요. NBA팬분들 같은 경우 특정팀 혹은 특정 선수를 응원하면서 보실 때가 많잖아요. 실제로 그렇게해야 더 잘 빠져들고 재미도 있어요. 하지만 저는 팀이나 선수보다는 플레이 자체를 보다보니까 어떨 때는 경기 결과나 그런 것들도 눈에 안들어와요. 좋은 플레이다 싶으면 그것을 세분화해서 연구하기 시작하죠. 어떻게하면 이것을 응용시켜 가르칠 수 있을 것인가에 몰두하게 되요. 물론 그렇게 분석했다고 바로 써먹지는 않아요. 일단 제가 먼저 해봐요. 그리고 어렵거나 힘들면 과감하게 버려요. 저보다 습득 능력이 좋은 분들도 계시겠지만 일단 제가 어려우면 그것을 어떻게 가르치겠어요. 머리와 몸으로 완전히 숙달했다해도 다른 이에게 가르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Q.현장 지도자 중에는 전략이나 전술 중심으로 보는 경우도 많던데 스킬 트레이닝을 하다보니 기술적인 부분에 초점을 주로 두는군요.
아무래도요. 제가 하는 일이 그런 쪽이다보니 저절로 시선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죠. 하지만 전략 전술을 전혀 안보지는 않아요. 전체적으로 보기도 하는데 큰 틀보다는 작은 틀 위주로 봅니다. 서서 하는 기술보다 여러 가지 상황에서 써먹을 수 있는 기술을 알려주려는 것이죠. 농구 경기는 끊임없이 뛰고 달리면서 펼쳐지잖아요. 아무리 기술이 좋아도 정적인 스킬은 의미가 없을 때가 많죠. 예를 들면 스크린을 타면서 상대를 공략하거나 혹은 속공 상황에서 빠르게 득점할 수 있는 기술 등 경기에 연관된 쪽으로 스킬이 장착되었을 때 비로소 실전 테크닉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오늘 감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김현중에게 농구란 무엇일까요?
목표라고 하고 싶습니다. 이루고 싶고 아직도 갈길이 먼. 그러기에 더욱 열심히 정진하도록 만드는 그런 존재죠. 노력으로 파랑새를 잡아보고 싶습니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본인제공, KBL 제공

기사제공 점프볼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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