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뉴스 | 박정욱 기자]
지난 15일 울산 HD와 2023~2024 AFC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에서 울산 원정 응원에 나선 반포레 고후 팬들의 모습.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한국프로축구 K리그1 2연패에 빛나는 울산 HD의 2023~2024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16강 상대는 일본 프로축구 J2리그의 반포레 고후다.
울산은 지난 15일 열린 16강 홈 1차전에서 주민규의 멀티골과 설영우의 쐐기골에 힘입어 3-0으로 완승을 거뒀다. 2차전은 21일 오후 6시 일본 도쿄국립경기장에서 열린다. 울산은 2012년과 2020년 이후 4년 만에 역대 세 번째 ACL 우승을 노린다.
반포레 고후는 2부리그 소속이면서도, 아시아 축구클럽 최강자를 가리는 ACL 무대에 오른 팀이다. 2022년 한국의 대한축구협회(FA)컵과 같은 성격의 일왕배 우승팀 자격으로 ACL 진출권을 얻었다. 구단 역사상 처음이었다. 2022년 일왕배 결승에서 당시 J1리그 3위팀 산프레체 히로시마를 연장 접전 뒤 승부차기 끝에 물리치는 등 1부리그 네 팀을 연파하고 우승컵을 차지했다. 2011년 J2리그에 있던 FC 도쿄 이후 역대 두 번째로 2부리그 팀의 일왕배 우승 이변이었다. 2021년 FA컵에서 한국프로축구 K리그2 소속의 전남 드래곤즈가 우승해 2022 ACL에 출전한 데 이어 추춘제로 바뀐 2023~2024시즌에는 반포레 고후가 또다시 2부 리그 소속 구단의 ACL 진출 역사를 썼다. 기업구단인 전남과 달리 2부리그 시민구단으로는 첫 ACL 진출이었다.
요시유키 시노다 반포레 고후 감독.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전남이 2022년 조별리그에서 조기 탈락한 것과는 다르게, 고후는 조별리그 H조에서 3승 2무 1패(승점 11)를 기록하며 호주의 멜버른시티 FC(2승 3무 1패, 승점 9), 중국의 저장FC(2승1무3패, 승점 7), 태국의 부리람 유나이티드(2승 4패, 승점 6)를 제치고 당당히 조 1위로 16강 토너먼트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UCL) 등 각 대륙의 최상위 클럽대항전에서 2부리그 팀의 첫 토너먼트 진출이었다.
고후는 멜버론과 원정 1차전에서 0-0으로 비긴 뒤 부리람과 2차전에서 극장골을 터트리며 1-0으로 첫 승을 신고했다. 저장과 원정 3차전에서 0-2로 패했지만 곧바로 4차전 홈 경기에서 4-1로 설욕하며 2승째를 챙겨 경쟁력을 확인한 뒤 멜버른과 홈 5차전에서 3-3으로 비기고 부리람과 원정 6차전에서 3-2로 승리하며 ACL 16강 토너먼트 진출을 확정했다.
지난 15일 울산과 반포레 고후의 ACL 16강 1차전 경기 장면. /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반포레 고후는 야마나시현의 인구 20만명에 불과한 소도시 고후(甲府)시를 연고로 해 1999년 J리그에 가입한 시민구단이다. 고후제일고교 축구부 출신의 실업가가 1965년 창단한 실업 구단 '고후 축구클럽'을 모태로 하며 1995년 구단명을 '반포레 고후'로 바꾸고 준비기간을 거쳐 1999년 J리그 디비전2(J2)에 편입됐다. '반포레'는 프랑스어로 바람을 뜻하는 Vent와 숲을 뜻하는 Foret의 합성어다. 홈 구장은 1만 7256명 수용의 JIT 리사이클 잉크 스타디움이다. ACL 홈경기 개최를 위해서는 30cm 이상 높이의 등받이 좌석이 5000석 이상 돼야 한다는 AFC의 규정 때문에 이번 대회 홈경기를 홈 구장 대신 도쿄국립경기장에서 치르고 있다.
고후는 2005년 J2리그 3위에 올라 승강 플레이오프를 거쳐 J1리그에 처음 승격한 뒤 1, 2부를 오갔다. 2007년 17위에 그치며 J2리그로 강등됐고, 2010년 J2리그에서 준우승하며 4년 만에 승격했다가 곧바로 이듬해 다시 강등의 아픔을 겪었다. 2012년 구단 최초로 J2리그에서 우승하며 J1리그에 다시 복귀했지만, 2017년 강등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고후는 J리그 참가 초창기만 해도 평균 관중은 600명대에 불과했고 만성 적자에 시달리며 해체 위기에 몰려있던 구단이었다. 2000년에는 J2리그 26경기 연속 무승의 부진 속에 해체설에 휩싸였다. 하지만 자국에서 개최하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앞두고 팀 해체를 손 놓고 있을 수 없다는 여론이 형성됐다. 이때부터 지역 밀착 마케팅을 펼치며 재정 상태를 개선하고 팀 성적 상승과 함께 평균 관중도 2013, 2014년 1만 2000명대까지 끌어올렸다.
반포레 고후의 홈 구장 모습. 골문 뒤와 그라운드 좌우에 잔뜩 들어선 광고판이 눈에 띈다. /사진=반포레 고후 구단 SNS
심각한 재정난에 빠져있던 2001년 구단 회장으로 취임한 우미노 가즈유키는 지역 언론인 출신의 인맥을 활용해 대기업과 지방자치단체를 넘어서 지역 소상공인들을 저인망식으로 공략해 흑자 경영에 성공했다. 고후는 지역 밀착형 구단으로서 확실하게 자리잡아갔다. 골문 뒤와 경기장 좌우 육상 트랙에 지역 후원 업체의 광고판을 촘촘히 세운 'A보드 쇼'는 고후 홈구장의 명물이 됐다. 유니폼은 물론이고 양팀 벤치와 볼보이용 의자, 의료용 들것, 멀리뛰기용 모래판에도 광고를 붙이며 수익을 창출했다. 볼보이와 구단 마스코트는 경기 전에 지역 후원업체의 광고판을 들고 그라운드를 돌며 적극적인 홍보 활동을 펼쳤다.
또 선수단과 구단 프런트 모두 지역 학교 방문, 벼농사 일손 돕기, 요양 시설 환자 돌보기 등 지역 봉사와 사회 공헌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를 통해 새로운 팬을 확보하고 크고 작은 지역 업체의 새로운 후원도 끌어들여 흑자 구단으로 거듭났다. 고후는 코로나19의 대유행에 따른 어려움 속에서도 2022년 일왕배 우승에 힘입은 관중과 상품 판매 등의 증가로 최근에도 흑자를 기록하고 있다. 고후의 2부 리그 기적은 일본 내에서뿐 아니라 국내 K리그에서도 큰 관심을 받아, 일부 시민구단들이 벤치마킹의 롤모델로 삼기도 했다.
2023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경고를 받는 이토 준야(오른쪽). /사진=뉴시스
반포레 고후 출신의 유명 선수로는 이토 준야(31·스타드 드 랭스)가 있다. 2023 AFC 카타르 아시안컵에 출전했다가 일본 내에서 불거진 성폭력 사건 혐의 탓에 중도 하차한 일본 대표팀의 주전 윙어다. 그는 2015년 고후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한 뒤 가시아 레이솔, 헹크(벨기에)를 거쳐 2022년부터 프랑스 리그1 랭스에서 뛰고 있다. 지난해 12월 태국과 친선경기 때 일본 대표팀에 선발됐던 왼쪽 풀백 미우라 소타(가와사키 프론탈레)는 2022~2023년 고후에서 활약한 뒤 올해 가와사키로 이적했다. 2021년 충남 아산에서 잠깐 뛰었던 공격수 미치부치 료헤이(몰타 발잔FC)도 2017년 J1리그 시절 고후에서 프로에 입문해 2018년까지 뛰었다.
한국 선수와 인연도 있다. 1999년생 재일교포 수비수 손 타이가(孫大河)가 뛰고 있다. 지난 15일 울산전에서는 교체 명단에 이름을 올렸지만 그라운드에 나서지는 못했다. 한국 국가대표 수비수 출신의 김진규(현 FC서울 전력강화실장)가 2011년 고후에 몸담았고, 2014 인천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인 미드필더 최성근(수원 삼성)은 2012~2013년 고후에서 프로 무대에 데뷔한 뒤 사간 도스를 거쳐 2017년 수원으로 이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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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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