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Leadership - KGC인삼공사 농구단 김상식 감독
선수 간섭 최소화, 코치에 관리 맡겨
“코트서 윽박지르는 건 선수·팬 무시”
대행만 3번… 농구와 헤어질 결심도
복귀 첫 시즌 와이어 투 와이어 1위
선수 졸업식 참석·훈련소 배웅 등
경조사 모두 챙기며 깜짝 감동 선물
주전엔 휴식, 벤치멤버엔 출장 기회
주전·후보간 기량차 좁혀 전력 강화
김상식(55) KGC인삼공사 감독은 불과 1년 전 ‘농구와 헤어질 결심’을 했다. 2004년 당시 SBS(KGC) 코치를 맡아 지도자의 길로 들어섰지만, 순탄치 않았고 공백기가 길었기 때문이다. 2006년 SBS의 후신인 KT&G의 감독대행을 맡았지만, 감독 승격은 되지 않았다. 2007년 오리온(데이원)의 수석코치로 선임됐고 2008년 감독대행이 됐다. 이번엔 감독으로 승진했지만, 시즌 도중 퇴진했다. 2012년 다시 삼성의 수석코치로 임명됐고 2년 뒤 또 감독대행이 됐지만 거기까지. 감독은 다른 지도자에게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2015년 국가대표 코치로 선임됐고, 2018년 다시 감독대행을 거쳐 감독이 됐다. 그런데 코로나19 탓에 국가대표팀 운영이 여의치 않자 2021년 사퇴했다.
감독대행은 프로에서 3번, 국가대표팀에서 1번 등 모두 4번이나 된다. 반면 프로구단에서 감독으로 선임된 건 1번뿐이고 그마저 시즌을 온전히 치르지 못했다. 국가대표팀에서 나온 뒤 그에게 관심을 두는 프로구단은 없었고, 그래서 미련을 던지기로 작정했다. 50대 중반인 나이도 부담이 됐다.
직장 상사인 감독의 경질, 또는 사퇴를 4차례나 겪었지만 그로 인한 혼란과 동요를 감독대행으로서 안정적으로 수습했다. 반대로 사령탑을 맡기기엔 못 미덥다는 평가를 받았다. 박력이 부족하다는 일종의 고정관념 탓. 농구 감독은 대부분 강골이다. 선수단을 쥐락펴락하고, 화끈하며,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 고성을 지른다. 강도 높은 훈련, 철저한 선수단 통제, 그리고 격렬한 항의가 농구 사령탑의 전형적인 이미지. 김상식과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런데 KGC가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KGC는 김 감독의 부드러움을 단점이 아닌 장점으로 바라봤다. 차분하고, 포근한 인성을 지닌 김 감독을 지난해 5월 선임했다. 계약기간은 2년. 이렇게 안양이 연고지인 SBS 코치, KT&G 감독대행에 이어 KGC의 감독이라는 독특한 경력을 보유하게 됐다.
김 감독에게선 권위를 찾을 수 없다. 자유방임 신봉자이며, 자율 DNA를 KGC 선수단에 이식했다. 선수단 간섭을 최소화하고 코치들에게 관리를 맡긴다. 코치, 선수들에게 지시하기보단 의견을 경청한다. 호통을 치는 일도 없고, 자연스럽게 소통을 유도한다. ‘경기장에 오신 팬이 뻔히 보고 있는데 선수를 큰소리로 윽박지르고 질책하는 건 팬과 선수를 무시하는 태도’라는 게 김 감독의 지론. 그래서 꾸중보다 칭찬을 더 자주 보내고, 단점이 아닌 장점에 주목한다. 팀 훈련을 대폭 줄였고, 개인 훈련으로 대체했다. 김상식과 아버지를 조합한 ‘식버지’란 별명이 생겨난 이유다. 김 감독은 “선수단의 중심은 감독이 아닌 선수”라면서 “팀과 선수 개인이 모두 발전하기 위해선 선수 스스로 동기를 찾아야 하고, 그렇게 유도하는 게 감독의 역할”이라고 설명했다.
KGC인삼공사 선수단이 지난달 7일 2022∼2023 SKT 에이닷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7차전에서 승리, 통합우승을 차지한 뒤 환호하고 있다. 연합뉴스
부드럽고, 상식적이며, 포근한 식버지의 ‘아빠 리더십’은 시즌 내내 빛을 뿜었다. KGC는 정규리그에서 단 한 번도 선두를 뺏긴 적 없이 1위를 차지했다. 그리고 챔피언결정전에서 승리했다. 정규리그 와이어 투 와이어 1위와 통합우승을 이뤘다. 구단의 4번째 챔피언결정전 우승, 2번째 통합우승. 동아시아 슈퍼리그까지 합쳐 ‘3관왕’을 달성했다. 정규리그 와이어 투 와이어 1위와 챔피언결정전 우승은 2018∼2019시즌 현대모비스에 이어 KGC가 역대 2번째다. 8년 만에 프로농구에 복귀한 김 감독은 부임 첫 시즌에 정규리그 와이어 투 와이어 1위와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한 첫 번째 사령탑으로 등록됐다.
김 감독은 선수, 아니 KGC의 모든 구성원을 가족으로 여긴다. 생일 등 대소사를 빠짐없이 직접 챙긴다. 지난달엔 상무에 입대한 변준형과 한승희를 충남 논산시 육군훈련소까지 직접 배웅했다. 김 감독은 훈련소로 들어가는 변준형과 한승희에게 군사훈련을 잘 받고 건강하고 착실하게 군 생활을 하라고 당부하면서 면회도 가겠다고 약속했다. 지난 2월엔 신인 유진의 졸업을 축하하기 위해 최승태, 조성민 코치와 함께 동국대를 찾아갔다. 프로구단 코칭스태프가 신인 선수의 졸업식에 참가한 선례는 없었다. “신인의 기를 살려주고 싶었다”는 게 김 감독의 설명. 유진에겐 사전에 알리지 않은 깜짝 방문이었다.
김 감독은 우승을 확정한 챔피언결정 7차전에선 100-97로 앞선 종료 3.4초 전 주장인 양희종을 코트에 내보냈다. KGC에서 15년 동안 활약했고, 챔피언결정전을 끝으로 은퇴하는 양희종이 마지막 순간에 우승의 감격을 누릴 수 있도록 배려했다.
김 감독은 현역시절 슈터였다. 배재중, 양정고, 고려대, 실업팀 기업은행을 거쳐 프로에 입문했다. 키는 182㎝로 과거에도 작은 편에 끼었지만, 정확한 3점슛이 일품이었다. 하지만 우승과는 늘 거리를 두었다. 실업팀에서도, 프로가 출범한 뒤에도 정상에 오른 적이 없다. 지도자로서도 우승은 이번이 처음. 2022∼2023시즌 한국농구연맹(KBL) 감독상까지 받았으니, ‘상복’이 터진 셈이다. KGC는 최고의 시즌을 보낸 김 감독에게 계약기간 1년 연장이라는 선물을 안겼고, 김 감독은 2024∼2025시즌까지 팀을 이끌게 됐다.
김 감독은 이제 또 다른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우승 멤버이자 대들보였던 센터 오세근이 SK로, 최강 수비력을 뽐내는 포워드 문성곤이 KT로 이적했다. 가드이자 전술·전략의 중심인 변준형은 상무에 입단. 빅3가 모두 빠져나갔다. 사실상 전혀 다른 팀으로 다음 시즌을 치러야 한다.
2022∼2023시즌 정상에 올랐지만, 시즌을 앞두고는 우승 후보로 거론조차 되지 않았다. 특히 주득점원이었던 전성현이 KGC를 떠나 자유계약(FA)으로 데이원 유니폼을 입어 전력 누수가 우려됐다. 하지만 김 감독은 배병준과 정준원을 데려와 전성현의 공백을 메웠다. 그리고 주전들에게 충분한 휴식을 보장하고, 벤치 멤버의 출장시간을 늘리면서 주전과 후보의 기량 차이를 좁혀 전력을 강화했다.
김 감독은 오세근, 문성곤, 변준형의 이탈로 인한 위기도 기회로 삼겠다는 각오다. KGC는 FA 시장에서 센터 이종현, 포워드 정효근, 가드 최성원을 영입하며 빠져나간 우승 멤버 빅3의 자리를 채웠다. 인적 구성에 큰 변화가 있었지만 2022∼2023시즌처럼 짜임새 있는 조직력, 폭넓은 용병술, 공수의 균형을 유지한다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다.
농구열정·온화한 성품 등 빼다 박아… 아버지는 ‘KBL 탄생’ 산파
■ 김영기-김상식 父子
항상 묵묵히 응원 ‘최고 우군’
代 이어 국가대표팀 감독 활약
농구에서 대를 잇는 부자는 여럿 있다. 신체조건, 특히 키가 커야 하고 지구력과 순발력 등 복합적인 운동 능력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아버지로부터 탁월한 운동 DNA를 물려받으면, 자연스레 농구에 입문하게 된다. 허재 전 국가대표팀 감독과 웅(KCC)-훈(상무) 형제가 대표적. 김승기 데이원 감독의 아들 동현(KCC)-진모(한국가스공사) 형제도 프로농구 선수다. 이창수-원석(삼성), 정재근-호영(DB), 양원준-재혁(가스공사)도 대를 이어 프로농구에 종사하고 있다.
김상식 KGC인삼공사 감독도 농구인 2세다. 부친은 한국농구연맹(KBL) 탄생 과정에서 산파 역할을 맡았던 김영기(87·사진) 전 KBL 총재다. 김 전 총재는 배재고-고려대-기업은행 등을 거쳤고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KBL 전무, 부총재를 거쳐 2002년부터 2004년까지 제3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제8대 총재직을 수행했다.
김영기-상식 부자는 특히 대를 이어 국가대표팀 감독을 지냈다. 김 전 총재는 대표팀 감독을 맡아 한국농구 사상 처음으로 아시아남자농구선수권대회(1969년)와 아시안게임(1970년) 우승을 이끌었다. 김 감독은 2021년까지 국가대표팀을 지휘했다. 부자 모두 현역 시절 가드였다.
김 전 총재는 한국농구사에 가장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 선수 시절 슈퍼스타였고, 감독으로 뛰어난 성과를 거뒀으며, 특히 KBL의 밑그림을 그렸고 출범에 앞장섰다. 선수, 지도자, 행정가로 모두 성공했으며 해박한 지식과 온화한 인성으로 후배 농구인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김 감독은 농구를 시작한 순간부터 ‘김영기의 아들’로 불렸다. 그래서 더욱 이를 악물었다. 부친의 명성이 아닌 실력으로 인정받아야 하고, 반대로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부친에게 누를 끼치게 된다고 생각했다.
김 전 총재는 아들에게 진 마음의 빚이 있다. 아버지 탓에 아들의 지도자 인생이 순탄치 않았다는 생각 때문이다. 김영기의 아들에게 감독을 맡긴다는 건 부담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 실제로 김 감독은 KGC 지휘봉을 잡기 전 프로농구에서 3차례 감독대행을 맡았지만 감독으로 승격된 건 1번뿐이었다.
2022∼2023시즌 정상에 오르면서 김영기-상식 부자는 마음의 짐을 내려놓았다. 아버지는 지도력을 입증한 아들이 대견스럽고, 아들은 묵묵히 성원해준 아버지가 자랑스럽다. 김 감독은 “아버지는 여전히 제겐 넘지 못할 산 같은 존재”라면서 “부족하지만, 아버지께 선물(우승)을 드린 것 같아 마음이 편하다”고 말했다.
기사제공 문화일보
이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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