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VNL] 2주차까지 8전 전패, 세자르 감독 부임 후 VNL 20연패 수렁
지난 4일(이하 한국시각) 세자르 에르난데스 곤잘레스 감독이 이끄는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튀르키예에서 열린 2023 국제배구연맹 발리볼네이션스리구(VNL) 1주차 4경기를 4전 전패로 마감했다.
한국은 브라질에서 열린 2주차 4경기에서도 브라질과 일본, 크로아티아, 독일에게 차례로 패하며 또 다시 4전 전패를 기록했다. 19일 독일전에서 한 세트를 따냈을 뿐 여전히 대회 8전 전패로 최하위에 머물러 있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1주차 전패팀이었던 크로아티아와 네덜란드가 2주차에서 나란히 2승씩 챙기면서 한국이 이번 VNL 16개 참가팀 중에서 유일하게 승리를 기록하지 못한 나라가 됐다는 점이다.
이제 한국은 오는 27일부터 안방인 수원에서 불가리아와 도미니카 공화국, 중국, 폴란드를 상대로 3주차 일정을 소화한다. 한국은 안방의 이점을 살려 1승7패의 불가리아를 '1승 제물'로 삼으려 하지만 이번 대회 세자르호가 처한 현실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작년부터 VNL 대회에서만 20전 20패를 당하고 있는 현재의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에게는 뚜렷한 목표의식조차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스포츠에서 매우 중요한 목표의식과 동기부여
▲ 한국은 8경기에서 47득점을 올린 정지윤이 이번 대회 최다득점을 기록하고 있다. |
ⓒ 국제배구연맹 |
스포츠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선수들이 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최대치로 끌어 올릴 수 있는 목표의식과 동기부여다. 특히 팀워크와 조직력이 매우 중요한 단체 구기종목에서는 선수 개개인이 하나의 목표를 향해 뭉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비록 종목은 다르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신화를 달성한 축구대표팀을 보면 스포츠에서 목표의식과 동기부여가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다.
지난 2001년 1월 한국축구 대표팀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한국에게 0-5 참패를 안겼던 네덜란드의 사령탑 출신 거스 히딩크 감독을 선임했다. 히딩크 감독은 부임 후 프랑스와의 컨페더레이션스컵과 체코와의 평가전에서 나란히 0-5로 패하며 '오대영'이라는 불명예스런 닉네임을 얻었다. 특히 '정신력과 체력은 뛰어나지만 기술이 부족하다'고 알려진 한국에서 체력훈련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며 축구팬들과 언론의 비판에 시달리기도 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히딩크의 지도방식은 틀리지 않았다. 한국축구 대표팀은 월드컵 본선에서 강인한 체력과 풍부한 활동량을 앞세워 포르투갈과 이탈리아, 스페인 같은 축구강국들을 차례로 꺾으며 '4강신화'를 달성했다. 특히 히딩크호의 강철체력을 상징하던 박지성(전북현대 테크니컬 디렉터)은 월드컵 후 히딩크 감독을 따라 PSV아인트호벤에 진출했고 2005년 세계적인 명문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FC에 입단하며 한국축구를 빛냈다.
히딩크 감독과 축구 대표팀에게 '2002 월드컵'이라는 확실한 목표가 있었다면 스테파노 라바리니 감독(페네르바흐체 SK, 폴란드 대표팀)과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에게도 '2020 도쿄 올림픽'이라는 확실한 목표가 있었다. 2020년1월 아시아 대륙예선에서 태국을 꺾고 올림픽 본선티켓을 따낸 한국 여자배구는 코로나19로 올림픽이 연기되면서 목표의식이 낮아졌다. 설상가상으로 2021년 2월에는 '쌍둥이 자매 학교폭력사건'이라는 대형 악재도 있었다.
하지만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여러 악재들을 극복하고 라바리니 감독과 주장 김연경(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을 중심으로 하나로 뭉쳤다. 결국 한국은 2021년에 열린 2020 도쿄 올림픽에서 도미니카와 일본, 튀르키예 등 강호들을 차례로 꺾고 2012년 런던 올림픽에 이어 9년 만에 또 다시 4강에 진출하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5세트 12-14 열세를 16-14로 뒤집었던 '한일전 역전 드라마'는 배구팬들을 감동시키기 충분했다.
'세자르호'의 초라한 성적표
▲ 세자르 감독은 한국 대표팀 부임 후 VNL 대회에서 단 한 번도 팀을 승리로 이끌지 못했다. |
ⓒ 국제배구연맹 |
대한배구협회는 올림픽이 끝난 후 라바리니 감독에게 계약연장을 제안했지만 올림픽 이후 유럽 각지에서 많은 러브콜이 쏟아졌던 라바리니 감독은 계약연장을 최종적으로 고사했다. 결국 대한배구협회는 2021년10월 라바리니 감독의 후임으로 대표팀에서 수석코치로 활동하던 세자르 감독을 선임했다. 당시 세자르 감독은 튀르키예의 바키프방크 SK에서 코치를 역임하고 있었고 대표팀 감독을 맡은 것은 한국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김연경을 비롯해 김수지(흥국생명), 양효진(현대건설 힐스테이트) 등 '언니라인'이 대거 대표팀을 은퇴했고 2020 도쿄올림픽 같은 확실한 목표의식이 사라진 세자르호는 과거와 같은 경기를 보여주지 못했다. 한국은 세자르 감독 부임 후 출전한 첫 국제대회였던 2022 VNL 대회에서 12전 전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다. 세자르 감독은 이어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4연속 0-3 패배 끝에 크로아티아를 꺾고 간신히 부임 후 첫 승을 따냈다.
2023년에도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은 작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세자르 감독은 소속팀 일정 때문에 대표팀의 전지훈련을 직접 지휘하지 못했고 그 결과 한국은 2023 VNL 8연패와 작년부터 이어진 VNL 20연패의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세계 랭킹 10위 언저리를 유지했던 한국은 어느덧 33위까지 세계랭킹이 하락했다. 올림픽이 아니면 좀처럼 만날 일이 없는 케냐(28위)와 카메룬(31위)보다도 낮은 순위다.
배구팬들은 선수들의 실망스러운 경기에 분노도 하고 비판도 할 수 있지만 선수들 입장에서는 VNL 대회에 큰 목표의식을 갖기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소속팀에서 시즌을 치르며 엄청난 강행군을 소화하는 국가대표 선수들은 시즌이 끝난 후 휴식을 취하고 다음 시즌을 위한 준비를 해야 할 시기에 대표팀에 소집돼 국제대회를 소화한다. 자칫 국제대회에서 부상이라도 당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보는 것은 선수 본인이다.
VNL 3주차 경기는 국내에서 열리는 만큼 해외에서 적은 관중 속에 경기를 치렀던 1,2주차에 비하면 더 좋은 경기내용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안방의 이점을 얻어서 당장 대회 첫 승을 따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국 여자배구는 앞으로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대표팀을 디테일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 아무런 목표의식과 동기부여도 주지 않고 선수들에게 '투혼'만 강요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뜻이다.
기사제공 오마이뉴스
양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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