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인 줄 알았던 벤투, 최고의 여우였다 [카타르월드컵]

고집과 불통? 곰인 줄 알았던 파울루 벤투 감독은 최고의 여우였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24일(한국시간) 카타르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월드컵 H조 우루과이와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0-0 무승부를 기록했다.

기분 좋은 무승부, 그리고 기분 좋은 승점 1점이었다. FIFA 랭킹 14위의 강호 우루과이를 시종일관 압박했다. 에이스 손흥민의 컨디션이 최고가 아니었음에도 상관없었다. 벤투 감독은 적재적소에 선수를 배치하는 용병술을 선보이며 세계 최고 선수들이 가득한 우루과이를 괴롭혔다.

벤투 대표팀 감독은 24일 우루과이와의 월드컵 첫 경기에서 멋진 공수 전술을 선보였다. 사진=ⓒAFPBBNews = News1

외국인 감독으로는 이례적으로 4년의 시간을 함께한 벤투 감독이지만 월드컵을 향한 그의 준비에 대한 시선을 언론과 여론 모두 좋지 않았다. 변화에 둔감하고 자신의 고집대로 팀을 이끈다는 혹평이 가득했다. 역대 가장 강한 전력이라는 평가에도 대회 전망을 마냥 밝게만 볼 수 없었던 이유다.

그러나 벤투 감독은 실전에 돌입하자 180도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대단히 큰 변화는 아니지만 경기력에는 엄청나게 큰 변화로 다가왔다. 곰 같은 여우도 아닌 최고의 여우가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그동안 후방부터 시작하는 빌드업을 고집했던 벤투 감독이지만 이번에는 골키퍼 김승규, 그리고 수비진에서 전방으로 한 번에 전달하는 공격으로 우루과이 수비를 흔들었다. 여기에 부상 중인 황희찬 대신 투입한 나상호의 활동량을 신뢰, 김문환과 함께 우루과이의 왼쪽 수비진을 초토화시켰다.

수비 상황에서의 포메이션 변화는 혀를 내두르게 했다. 전방에 강한 압박을 주면서도 어느새 우루과이의 중원을 괴롭히고 있었다. 덕분에 경기 내내 볼 소유권을 주도했고 더 많은 공격 기회를 얻었다.

한국은 전반 20분까지 60%의 볼 점유율을 기록했다. 전반전이 끝난 시점에는 50%를 유지했다. 후반 들어 우루과이의 반격이 시작되면서 서서히 떨어지기는 했으나 이와 같은 모습을 보인 건 아시아 국가 중 한국이 처음이다.

또 아시아 6개국의 조별리그 1차전 중 전반부터 후반까지 상대 팀을 압박한 건 한국이 유일하다. 승리를 거둔 사우디 아라비아와 일본조차 전반에는 사실상 ‘하프 코트 게임’을 당했다. 호주도 전반 20분까지 프랑스를 압박하다가 단 한 번의 카운터 펀치를 맞은 뒤 대패했다. 개최국 카타르와 이란은 시종일관 휘청거리다 무너지고 말았다.

더욱 놀라웠던 건 기용하지 않을 것처럼 외면했던 이강인을 후반 승부처에 투입했다는 것이다. 조규성과 함께 이강인 카드를 꺼내든 벤투 감독은 우루과이에 넘어간 흐름을 단숨에 다시 가져왔다. 비록 득점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지만 수세에 몰린 상황을 180도 반전시킨 수였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으나 벤투 감독이 우루과이전에서 보여준 변화무쌍한 전술, 전략은 앞으로 남은 가나, 포르투갈전을 기대하게 했다. 어쩌면 H조에서 가장 까다로울 수 있는 우루과이를 상대로 선전했으니 당연한 일이다. 또 가나와 포르투갈의 경기력이 생각보다 대단하지 않았던 만큼 2010년 이후 12년 만에 16강을 전망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민준구 MK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