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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에게 김연경 보인다…"남자냐" 얻어맞던 女축구 괴물 부활

조아라유 0

#“온실 화초처럼 보호하다 월드컵 동행”


 

37세 늦은 나이에 대표팀에 다시 뽑혀 월드컵 출전이 유력한 박은선의 담대한 각오를 앵글에 담았다. 왼쪽 팔의 문신은 자신의 띠 동물인 호랑이. 오른쪽에는 십자가 문양을 새겼다. 장소는 서울월드컵경기장 보조구장 지하에 있는 서울시청 여자축구팀 라커룸. 최영재 기자
 
 
 

콜린 벨(잉글랜드)은 한국 여자축구 대표팀 최초의 외국인 감독이다. 그가 지난 4월 잠비아와의 평가전 이후 박은선에 대해 이렇게 언급했다. 37세 늦은 나이에 대표팀에 다시 뽑힌 박은선(서울시청)은 잠비아와의 1차전에서 1골·1도움, 2차전에서 2골·1도움을 올리며 팀 승리를 이끌었다. 오는 7월 개막하는 호주-뉴질랜드 여자 월드컵을 앞두고 벨 감독은 박은선을 콕 집어 ‘월드컵에 데려 가겠다’고 못 박은 것이다.

“처음 대표팀 뽑혔을 때 단체 미팅에서 감독님이 그 얘기를 하셨고, 잠비아전 끝나고도 그 말씀을 하셨더라고요. 월드컵 때문에 국내 리그 일정이 빡빡해졌으니까 혹시나 부상당하지 않을까 걱정하신 거죠. 그 얘기 듣고 재밌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어요.”

지난 18일 서울월드컵경기장 보조구장에서 만난 박은선은 ‘온실 속 화초’라는 표현이 어색한 듯 웃었다. 하기야 온실은커녕 폭풍의 골짜기에서, 화초는커녕 끈질긴 잡초로 살아온 박은선 아닌가.

#“괴물이 나타났어. 미아 햄 넘을 거야”

2003년 여름, 이의수 당시 한국여자축구연맹 회장이 나에게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위례상고(현 서울동산고) 2학년이었던 박은선은 1m80㎝ 키에 남자 못지않은 스피드와 파워가 있어서 실업 선배들도 쩔쩔 매는 골잡이라고 했다.

박은선은 그해 2003 미국 여자월드컵에 출전했다. 한국 여자축구 사상 첫 월드컵 무대를 언니들과 함께 밟은 것이다. 브라질·노르웨이 등 당대 최강국에 참패했지만 그는 큰 경험과 자신감을 안고 돌아왔다.

2004년 말 ‘1차 박은선 파동’이 났다. 고교 졸업을 앞둔 박은선이 그를 발굴하고 키워준 서정호 감독이 있는 서울시청으로 진로를 정한 것이다. 당시 여자축구연맹에는 ‘고졸 선수는 대학 팀에서 2년 이상 뛰어야 실업 팀에 갈 수 있다’는 규정이 있었다. 실업 팀이 두 개밖에 없었던 당시에 성인 축구를 받치는 큰 기둥인 대학을 살리고, 많은 선수들에게 출전 기회를 주기 위한 고육책이었다. 그러나 컨테이너 박스를 개조한 집에서 살 정도로 가난했던 박은선은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월급을 주는 팀으로 가야 했다. 은사를 따라간 박은선은 3개 대회 출전금지, 서정호 감독은 2년 자격정지의 징계를 받았다.

열악한 여자축구 환경, 엄청난 재능의 선수를 둘러싼 어른들의 욕심…. 겹겹이 막혀 있는 모순의 벽을 마주한 박은선은 절망했다. 축구를 때려 치겠다고 짐을 싼 적도 여러 번이었다.

“어떻게든 집안을 일으켜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어쨌든 제가 선택한 길이었으니까 제가 책임을 져야 했죠. 그때는 어려서 잘 몰랐는데 도움을 주려고 하신 분들이 정말 많았어요. 그 덕에 징계도 줄었고요. 지금 생각하면 감사하죠.”

#“박은선 성별 검사 안하면 대회 보이콧”


 

지난 4월 11일 잠비아전에서 박은선(오른쪽)이 골을 넣은 뒤 기쁨을 나누고 있다. [뉴스1]
 
 
 

2013년 11월, 서울시청을 제외한 여자축구 WK리그 6개 팀 감독들은 이렇게 결의했다. ‘2차 박은선 파동’이었다. 박은선은 2013년 19골로 리그 득점왕에 올랐으며, 약체로 꼽히던 서울시청도 2위로 시즌을 마쳤다. 박은선의 부활에 위협감을 느낀 타 팀 감독들이 뒤통수를 친 셈이었다.

그러잖아도 박은선은 “남자 아니냐”는 수군거림을 받아왔고, 국제대회 때마다 중국·일본 등에서 성별검사를 요구하며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 박은선은 페이스북에 ‘2003년 월드컵과 2004년 올림픽 예선 등 국제대회에 나갈 때 수 차례 검사를 받았고 당시에도 수치심을 느꼈는데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가족들 심정이 어떨지는 생각해 봤냐’며 분노와 참담함을 털어놨다.

이 문제는 국가인권위원회에까지 올라갔고, ‘명백한 성희롱이니 관계자들을 징계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당시 감독 2명이 자진사퇴했지만 박은선의 마음은 풀리지 않았다. 결국 2015년 러시아 로시얀카 팀으로 자의반 타의반 떠났다. 2년 뒤 국내로 돌아왔을 때 몇 명의 감독은 여전히 벤치를 지키고 있었고, 심지어 박은선이 이적한 팀에도 ‘관계자’가 지휘봉을 잡고 있었다.

당시 심정을 물었더니 역시 짧은 답이 돌아왔다. “이미 지나간 일이고, 저는 잘 이겨냈기 때문에 다시 들추어서 굳이 이야기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요.”

서울시청 팀은 2003 미국 월드컵 주장이었던 ‘여자 홍명보’ 유영실 감독이 맡고 있다. 박은선을 친동생처럼 아끼는 유 감독은 “은선이는 2013년이 최고 전성기였어요. 파워에 노련함까지 더해졌으니까요. 하지만 당시 일로 인해 기세가 확 꺾였고, 한국 여자축구도 도약의 분위기에 스스로 찬물을 끼얹어버렸죠”라며 아쉬워했다.

#“지금 제 축구인생은 연장 전반 10분”

자신의 현재 상태를 축구 경기에 비유해 달라고 했더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37세 늦은 나이에 태극 마크를 다시 달고 월드컵 출전 기회가 생겼다. 세 번째 월드컵을 나간다면 1분을 뛰어도 최선을 다할 거고, 경기를 못 뛰면 밖에서 열심히 응원해 줄 수 있는 언니가 되고 싶다고 했다.

박은선은 서울 은평구에 있는 숙소(오피스텔)에서 후배들과 함께 지낸다. 방이 좁지만 불편하지는 않다고 했다. 쉬는 날에는 후배들과 함께 자전거도 타고 한강에도 나간다.

박은선을 보면서 자꾸 배구 ‘월드스타’ 김연경이 떠올랐다. 둘은 ‘걸 크러시’ 느낌도 비슷하고, 자신의 종목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실력자다. 김연경은 세계적인 팀에서 뛰었고, 높은 연봉을 받으며 최고 인기를 누리고 있지만 박은선은 아직도 형편이 넉넉지 않다. 박은선은 “김연경 선수는 워낙에 유명하시고 대단하시죠. 이것도 제 복이고 운이죠 뭐. 안타까워 할 필요도 없고 여기서 더 열심히 하면 되는 거죠”라고 말했다.

박은선의 왼쪽 팔에는 호랑이 문신이 있다. 자신의 띠(86년생 범띠) 동물이 그를 지켜주는 수호신 같은 존재라고 한다. 오른쪽 팔에는 십자가 문양과 함께 ‘12. 5. 2013’ 이라는 날짜와 ‘Beginning of New Day’(새로운 날의 시작)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그날이 무슨 날인지 물었더니 “그냥 이때 마음가짐을 다잡고자 했던 거죠”라고 대답했다. 그의 생에 가장 슬프고 어두운 날이었지 싶다.

인터뷰를 마치고 운동장에서 서울시청 선수단과 기념촬영을 했다. 누군가 다가와 왼팔로 어깨를 두르는 게 느껴져 돌아보니 박은선이었다. 순간, 속에서 뜨거운 게 울컥 올라왔다. 그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기사제공 중앙일보

정영재 문화스포츠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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