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성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장. 서형권 기자
황선홍 U23 대표팀 감독은 '도하 참사'를 겪었다. 이런 일이 벌어지면 책임지겠다며 황 감독의 본업을 사실상 방해한 인물이 있다. 정해성 대한축구협회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장이다.
황선홍 감독이 이끄는 올림픽 대표팀은 26일 오전 2시 30분(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의 압둘라 빈 칼리파 스타디움에서 2024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아시안컵 8강전에서 인도네시아와 2-2로 연장까지 승부를 가리지 못했고, 승부차기 끝에 10-11로 패하며 탈락했다.
2024 파리 올림픽 남자축구 예선을 겸하는 대회다. 아시아에 배정된 올림픽 티켓은 3.5장으로, 4강에 들어야 했다. 한국은 올림픽에 나가지 못한다.
황선홍 남자 축구대표팀 임시감독. 서형권 기자
준비 단계부터 예고된 일이다. 황 감독은 2년 전 U23 아시안컵에서 8강 진출에 그치며 이미 이 대회가 쉽지 않다는 걸 체험했다. 그런데 이번 대회 직전에 공석이 된 A대표팀 감독으로 불려가는 바람에 본업에 집중할 수 없었다.
황 감독을 A대표 임시 사령탑으로 선임했던 정 위원장은 당시 "모든 것에 대해 결과가 부정적으로 나왔을 때 어떻게 할 건지는 전력강화위원장으로서 책임지겠다"고 말했다.
정 위원장이 걸 수 있는 건 자신의 목, 즉 위원장 자리 정도다. 하지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올림픽 남자축구는 보통 한국에서 아시안컵보다 중요한 취급을 받고, 더 큰 주목을 받는 메가 이벤트다. 월드컵 다음으로 큰 대회라 볼 수 있다. 고작 월드컵 2차 예선 임시감독을 싼 값에, 가장 편한 감독에게 맡기려다가 메가 이벤트를 등한시한 꼴이 됐다. 특히 이번 올림픽은 남자축구의 비중과 흥행성이 기존 대회들보다 더 클 거라는 전망까지 나오는 와중이었다. 정 위원장이 자리를 내놓든 말든 이 손해를 벌충하는 것과는 무관하다.
황선홍 올림픽 남자 축구대표팀 감독. 대한축구협회 제공
한국이 앞선 9회 올림픽 본선에 나간 건 당시 난이도가 더 낮은 덕분이기도 했다. 이번엔 달랐다. 아시아 축구가 상향평준화된데다 황 감독이 이 대회를 잘 소화하지 못한다는 점까지 이미 경험해 본 마당이라 모든 힘을 쏟아 부어도 될까 말까 했다. 이 점을 황 감독 본인이 간파하지 못해 A대표 임시 감독까지 욕심 내고, 정 위원장도 무리한 인물을 1순위로 정했다.
감독 선임과 팀 운영의 첫 단계이자 가장 중요한 단계는 역량 파악이다. 축구협회 소속 모든 감독이 본업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하고 충분한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일반론을 넘어, 황 감독의 U23 아시안컵은 더 집중적인 지원이 필요했다. 2년 전 이미 이 대회를 쉽게 치를 역량이 없다는 걸 노출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러나 황 감독 본인과 정 위원장, 나아가 축구협회는 주제파악에 실패한 상태에서 대회를 준비했다. 단순히 한 경기의 전술 패착에서 비롯된 탈락이 아니었다.
정 위원장은 자신의 책임을 운운했지만 실제로는 A대표팀 감독직의 해외 후보들을 면담하러 가는 길에 카타르에 들러 황 감독과 만나고, 대표팀 경기를 현장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자신의 소관인 A대표팀 감독도 아닌데 이미 운명공동체처럼 보이는 행보를 취했다. 개인의 독단적 행동을 넘어 축구협회가 여러모로 방향을 잘못 잡았다는 걸 보여주는 탈락이다.
사진= 풋볼리스트, 대한축구협회 제공
김정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