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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남자 배구 대표팀이 정상에 오른 세 가지 이유

조아라유 0

 



2022년은 4년마다 찾아오는 ‘빅 이벤트’, 국제배구연맹(FIVB) 주최 세계선수권이 열린 해였다. 8월 26일부터 9월 11일까지는 남자, 9월 23일부터 10월 15일까지는 여자 세계선수권이 세계배구 팬들의 가슴을 뛰게 했다.
특히 남자부 우승팀 이탈리아는 폴란드의 대회 3연패를 저지하고 24년 만에 우승을 차지하며 많은 관심을 받았다. 2022년의 끝자락에서, 지난 늦여름으로 돌아가 이탈리아가 정상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는지 살펴봤다.
 

1. 높은 수준의 자국 리그와 두터운 유소년 선수층
이탈리아 리그에서 총 8시즌을 뛰었고 지금은 한국전력의 외국인 선수로 활약하는 타이스 덜 호스트(등록명 타이스)는 <더스파이크>와의 인터뷰에서 “이탈리아 리그의 수준과 국가대표팀의 성적은 연관이 깊다. 이탈리아는 1부부터 3부까지 리그가 매우 체계적으로 운영된다. 선수들 역시 최고 수준이다. 특히 유소년 체계가 매우 탄탄한데, 최근에는 모든 유소년 대회를 휩쓸다시피 했다. 이런 선수들이 성장해서 1부 리그로 향하고, 국가대표가 된다. 엄청난 시스템이다”고 밝혔다. 이탈리아가 정상에 오른 데는 자국 리그의 높은 수준과 탄탄한 유소년 체계가 큰 공헌을 했다는 것이다.

타이스의 말처럼 이탈리아 리그는 세계 최고의 남자 배구 리그로 손꼽힌다. 자국 선수 시모네 지아넬리, 알레산드로 미켈레토 등은 물론이고 윌프레도 레온(폴란드), 에르벵 은가페(프랑스), 욘디 레알 히달고(브라질) 등 타국의 슈퍼스타들이 모두 이탈리아 최상위 리그인 세리에 A1에서 뛰고 있다. 총 12개의 팀이 참여하는 A1뿐만 아니라 14개 팀이 뛰는 A2, 28개 팀의 A3에 더해 하위 리그인 세리에 B, C도 운영 중이다. 컵 대회인 이탈리안 컵과 슈퍼컵도 리그 못지않게 긴 역사와 높은 권위를 자랑한다. 이처럼 리그의 수준이 높다 보니 당연히 배구와 리그를 향한 팬들의 관심과 애정도 크다. 배구 강국이 되기 위한 튼튼한 인프라와 뿌리를 두루 갖추고 있다.

두터운 유소년 선수층 역시 그 뿌리 중 하나다. 이탈리아 남자 대표팀은 2019년 19세 이하(이하 U19) 세계선수권과 2021년 U21 세계선수권에서 모두 우승을 차지했다. 연령별 대표팀을 거쳐 현재 성인 대표팀의 주전 멤버로 성장한 선수들도 있다. 이번 세계선수권 우승의 주역이었던 알레산드로 미켈레토가 2021년 U21 세계선수권의 MVP였다. 미켈레토와 함께 세계선수권에서 주전 아웃사이드 히터로 활약한 다니엘레 라비아 역시 이탈리아가 준우승을 차지했던 2019년 U21 세계선수권의 MVP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올해 유럽배구연맹(CEV)이 주최한 연령별 유럽 선수권에서도 이탈리아 남자 대표팀은 U22, U20, U18까지 개최된 모든 대회를 석권했다. 이번 연령별 유럽 선수권에 출전한 선수 중에서도 제2의 미켈레토와 라비아가 되어 성인 대표팀의 주역으로 성장할 선수가 있을 것이다. 이탈리아가 배구 강국의 자리를 당분간 지속해서 유지할 것으로 예상하는 이유다.
 

2. 과감한 세대교체 결실을 맺다



 



이탈리아의 세계선수권 최종 로스터가 발표됐을 때, 배구 팬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스타 플레이어였던 이반 자이체프가 로스터에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자이체프는 올림픽 은메달(2016 리우데자네이루)과 동메달(2012 런던)은 물론, 유럽선수권 준우승 2회(2011, 2013)·월드리그 3위 2회(2013, 2014) 등 2010년대 이탈리아 대표팀에서 영광의 순간을 함께 한 선수였다. 아웃사이드 히터와 아포짓 포지션을 고루 소화했던 경험과 코트를 장악하는 폭발적인 카리스마는 대체 불가한 자이체프만의 강점이기도 했다. 이런 선수를 로스터에서 제외한 페르디난도 데 조르지 감독의 선택은 몇몇 팬들의 의문을 자아냈다.

물론 데 조르지 감독의 선택은 충분한 근거를 바탕으로 이뤄졌다. 먼저 세계선수권 직전에 치러진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 보여준 자이체프의 경기력에서 노쇠화 조짐이 보였다. 자이체프는 대회 기간에 총 34점을 올리는 데 그쳤다. 서브 득점은 1점에 불과했다. 자이체프가 가장 많은 14점을 올린 이란전에서도 공격 성공률은 46.67%로 50%를 밑돌았고, 네덜란드전에서는 11점-성공률 45.83%로 더 좋지 않았다. 다양한 코스를 공략하는 능력과 특유의 카리스마는 여전했지만, 1988년생으로 적지 않은 나이인 만큼 점프와 같이 신체 능력의 영향을 받는 부분에서는 하락세에 접어든 것이 느껴졌다.

여기에 유리 로마노(1997년생), 다니엘레 라비아(1999년생), 알레산드로 미켈레토(2001년생) 등 자이체프를 대체할 젊은 윙 자원들의 기량도 물이 오른 상태였기에, 자이체프가 세계선수권에서 주전으로 뛰진 못할 것이라는 예측은 어느 정도 가능했다. 그러나 슈퍼스타인 자이체프를 단순히 주전으로 기용하지 않는 것을 넘어 아예 로스터에서 제외하는 것은 상당한 결단이 필요했다. 부담을 안고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은 데 조르지 감독의 대대적인 세대교체 선언임과 동시에 젊은 윙 자원들을 향한 확고한 신뢰를 드러내는 방식이기도 했다.

결국 감독의 과감한 결단은 성공했다. 미켈레토-라비아-로마노의 영건 3인방은 대회 내내 맹활약을 펼치며 이탈리아의 우승을 견인했다. 이러한 이탈리아의 행보는 대표팀 은퇴를 선언한 왈라시 데 소우자(1987년생)를 복귀시키고 브루노 헤젠데(1986년생)에게 여전히 적지 않은 출전 시간을 맡겼지만 3위에 그친 브라질이나, 빡빡한 일정 속에서 주포 바르토즈 쿠렉(1988년생)이 체력 문제를 드러내며 결승에서 무너진 폴란드와 비교되며 더욱 주목받았다.
 

3. ‘상수’가 돼 준 슈퍼스타 ‘변수’를 만든 히든카드
이탈리아의 우승 비결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당연히 결승전을 세밀하게 돌아봐야 한다. 9월 11일 폴란드 카토비체에서 펼쳐진 이탈리아와 폴란드의 세계선수권 결승에서는 두 명의 스타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한 명은 늘 그래왔듯 팀의 ‘상수’가 되어 맹활약을 펼쳤고, 다른 한 명은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등장해 ‘변수’로 작용하며 경기의 흐름을 가져왔다.

‘상수’가 된 선수는 이탈리아의 세터이자 주장 시모네 지아넬리였다. 미카 크리스텐슨(미국), 앙투안 브리자드(프랑스) 등과 함께 세계 최고의 세터로 평가받는 지아넬리는 대회 내내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독특한 스텝에서 나오는 날카로운 서브와 절묘한 싱글 핸드 패스, 기습적인 패스 페인트 등 자신의 장점들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팀을 우승까지 인도했다. 24년 만의 우승에 도전하는, 그것도 상대 팀의 나라에서 펼쳐진 결승이었지만 지아넬리는 전혀 위축되지 않았다. 오히려 대회 최고의 활약이라고 봐도 무방할 경기력을 자랑했다.

지아넬리는 미켈레토-라비아-로마노의 윙 자원들과 지안루카 갈라시, 시모네 안자니 등의 미들블로커를 골고루 활용하며 여유롭게 경기를 풀어갔다. 나아가 공격에도 직접 가담하며 상대 블로커들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패스 페인트뿐만 아니라, 과감한 오픈 공격도 여러 차례 성공시키며 자신이 전위에 있을 때 팀의 공격 옵션을 더욱 다양화했다. 이날 지아넬리는 공격으로만 5점을 기록하며 이탈리아의 쏠쏠한 득점원이 됐다.



 



서브 역시 날카로웠다. 특히 2세트가 백미였다. 2개의 에이스를 포함해 폴란드의 리시브 라인을 흔드는 날카로운 서브를 연달아 구사했다. 폴란드에 1세트를 내준 상황에서 반드시 가져와야 했던 2세트를 자신의 개인기로 따낸 것이다. 대회 내내 이탈리아의 ‘상수’로 작용한 지아넬리는 대회 MVP와 베스트7 세터 부문을 석권하며 자신의 시대가 왔음을 확인시켰다.

지아넬리가 ‘상수’의 역할을 잘 수행했다면, ‘변수’를 만든 선수는 미들블로커 로베르토 루소였다. 이탈리아는 결승 1~2세트 동안 대부분의 포지션에서 폴란드에 앞섰지만, 미들블로커에서는 그렇지 못했다. 폴란드의 마테우스 비에니엑-야쿱 코하노프스키 듀오는 계속해서 강서브와 날카로운 속공을 구사하며 이탈리아의 갈라시-안자니 듀오에 뒤지지 않는 활약을 이어갔다. 데 조르지 감독은 변화를 주기 위해 1, 2세트에서 갈라시의 교체 자원으로 활용했던 루소를 3세트부터 선발로 기용했고, 이 선택은 적중했다.

루소는 연속 득점으로 치열했던 3세트의 흐름을 이탈리아 쪽으로 끌고 왔다. 17-15로 이탈리아가 앞선 상황, 루소는 날렵한 속공을 성공시키며 18-15, 3점 차를 만들었다. 루소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곧바로 비에니엑의 속공을 정확한 타이밍의 블로킹으로 가로막으며 포효했다. 미들블로커 포지션 강화를 위해 투입한 루소가 자신의 속공은 성공시키고 상대 미들블로커의 속공을 블로킹으로 막아낸 것은 완벽한 전술적 성공이었다.

루소의 활약은 전술적 성공을 넘어 팀 분위기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루소의 활약으로 4점의 리드를 안은 이탈리아는 한결 여유로운 경기 운영을 펼치며 3세트를 25-18로 따냈고, 기세를 몰아 4세트까지 승리하며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루소는 팽팽했던 양 팀의 중앙 대결에 큰 균열을 일으키며 승리의 ‘변수’가 됐다. ‘상수’ 지아넬리와 ‘변수’ 루소는 정상을 향한 이탈리아의 오랜 여정에 마지막 방점을 찍었다.

 

글. 김희수 기자

사진. FIVB
 

기사제공 더 스파이크

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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