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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가로막고 감독 모욕한 전북 팬들, 이 장면이 씁쓸한 까닭

조아라유 0

[주장] 상처만 주고받은 김상식 감독과 전북 팬들의 대치
 

▲  전북 서포터스석에 걸린 항의 걸개
ⓒ 한국프로축구연맹

 


 
추락하는 명가에 날개가 없다. 위기의 전북 현대가 부진한 성적에 팬들까지 등을 돌리며 흔들리고 있다. 성난 팬들의 집중 표적이 된 김상식 전북 감독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이 됐다.
 
전북은 지난 1일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치러진 포항스틸러스와의 하나원큐 K리그1 2023 5라운드 경기에서 1-2로 역전패를 당했다. 강력한 우승후보로 꼽히던 전북은 5라운드까지 단 1승(2무 2패)에 그치며 승점 5점으로 8위까지 추락했다. 
 
부진한 성적에 대한 팬들의 분위기를 반영하듯, 이날 전북은 홈경기의 이점을 전혀 누리지 못했다. 전북 서포터즈 'MGB'는 이날 홈경기에서 공식 응원을 진행하지 않는 '보이콧'을 단행했다. 지난 시즌부터 이어진 팀성적 부진과 구단 운영에 대하여 누적된 불만을 표현한 것이었다.
 
특히 팬들의 성토는 김상식 감독과 허병길 대표이사에게 집중됐다. 전북 홈팬들은 자팀을 향한 응원구호 대신 감독과 대표의 실명을 연호하며 '나가라'고 외치는 안티콜이 쏟아졌고, 경기장 곳곳에는 비난 걸개가 내걸렸다. 이날도 포항에 역전당하며 패색이 짙어지자 이번엔 전북의 전성기를 이끈 최강희-조세 모라이스 감독의 이름이 연호되기도 했다.
 
전북 입장에서는 악재가 겹쳤다. 후반 종료 직전 수비수 박진섭이 경기중 부상으로 머리에 출혈이 발생하여 병원으로 이송되는 돌발상황이 있었다. 전북으로서는 1명이 부족한 상태에서 어수선한 분위기를 수습하기 전에 제카에게 뼈아픈 결승골까지 허용했으니 운도 지독하게 따르지 않았던 셈이다.
 
전북 김상식 감독은 경기 후 "5경기를 하는 동안 3패를 한 것은 전북이 받아 들일 수 없는 결과다. 감독으로 무한한 책임을 느낀다"라며 씁쓸한 심경을 밝혔다.
 
하지만 씁쓸한 장면은 패배만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경기 직후에는 김상식 감독이 탑승한 버스가 성난 팬들에게 가로막혀 경기장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장시간 대치하는 불미스러운 상황이 또 발생하기도 했다.
 
전북 팬들은 구단 버스를 앞뒤로 가로막고 팀 부진에 항의했다. 팬들은 김상식 감독의 이름을 연호하며 해명을 요구했다. 김 감독이 버스 안에서 나오지 않자 일부 팬들은 아예 버스 진입로에 앉아서 농성을 벌였다. 현장 경비 인력에 경찰까지 출동했지만 오히려 흥분한 팬들의 야유는 더욱 커졌다.
 
그나마 1시간 정도가 지나서야 팬들의 일부 양보로 선수단을 태운 버스만 경기장을 벗어날 수 있었지만, 김상식 감독과 코칭스태프들을 태운 버스는 여전히 그 자리 그대로였다. 다시 한참 시간이 지나서야 결국 김 감독이 비로소 팬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팬들은 김 감독에게 성적 부진의 책임을 질 것과 정확한 입장 표명을 요구했다.
 
김 감독은 "책임질 일이 있으면 지겠다"고 밝했지만 팬들은 사퇴를 주장하며 여기저기서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졌다. 결국 경기 종료 후 3시간이 다 되어서야 김상식 감독과 코칭스태프를 태운 버스가 간신히 경기장을 벗어날 수 있었지만, 양측의 갈등이 해소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팬들은 떠나는 버스를 향하여 끝까지 야유를 퍼부으며 불만을 드러냈고, 지켜보는 구단 직원들의 표정도 어두웠다.
 
최근 국내 프로축구에서는 팬들의 집단행동을 통한 '버스 가로막기'와 '감독 콜'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구단에 대한 비판이나 문제제기를 하려는 팬들에게 집단적 의사표현과 실력행사의 방식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그 수위나 빈도에서 모두 도를 지나쳐서 일방적인 화풀이와 망신주기의 수단으로 변질되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이날도 선을 남은 장면들의 연속은 씁쓸함을 남긴다. 구단 버스를 정면으로 가로막고 농성을 하던 한 젊은 팬은 감독의 이름을 연신 반말로 호명하며 온갖 조롱과 인신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다수의 팬들은 여기에 맞장구를 쳤다.
 
분위기에 휩쓸려 전북 유니폼을 입은 어린이 팬까지 '김상식 나와'를 외치자 오히려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구단 버스가 약간 이동하려고 하자 일부 팬은 아예 차 바퀴 바로 앞에서 드러눕는 위험천만한 장면이 연출됐다. 일부 팬들은 이를 유튜브나 SNS를 통하여 현장 상황을 오락거리처럼 생중계하기도 했다.
 
팬들은 거듭된 감독 호출에도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김상식 감독을 "비겁하다, 답답하다"고 비난했다. 하지만 답답한 것은 팬들도 마찬가지였다. 막상 김 감독이 등장해도 대화할 준비는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어차피 패장은 '그저 열심히 하겠다. 죄송하다'는 것밖에 다른 할말이 없다. 그리고 감독을 억지로 불러세워 놓고도 정작 감독의 말을 제대로 들으려는 팬들은 아무도 없었다. 여기저기서 무질서하게 쏟아지는 감정적인 질문과 야유에 정상적인 소통은 애초에 불가능했고 감독이 해명하는 목소리도 묻혀버렸다. 처음부터 감독을 군중 앞에 세워놓고 그저 조롱하고 화풀이를 하고싶었던 데 불과했다는 것을 드러낸 씁쓸한 장면이다.
 
성적부진에 대한 가장 큰 책임은 당연히 감독과 구단이 져야한다. 김상식 감독에 향한 전북 팬들의 불만도 하루이틀에 벌어진 문제가 아니며, 그 마음을 이해 못할 반응도 아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농성을 벌여서 길을 가로막고 선수단을 압박하고 감독에게 모욕을 준다고 해서 상황이 개선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저 감정의 골만 깊어질 뿐이다.

팬들의 목소리도 중요하지만 어느 정도 지켜야할 선과 거리가 있다. 최근 프로축구에서 팬들의 무분별한 단체행동과 실력행사가 언제부터인가 마치 '당연한 권리나 관행'처럼 남발되는 현상은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보인다. 

 

기사제공 오마이뉴스

이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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