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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중 알코올 농도 0.201% 선수가 할 소리인가

조아라유 0

[베이스볼 비키니] 한국은 용서가 없다?

● 미국 프로야구 문화가 한국 앞선다는 착각
● 타율 0.259인데도 ‘미국 삼촌’ 연봉은 17억 원
● 음주운전, 학폭 논란에도 선수 생활 유지

 

“나중에 이와 관련해 이야기할 기회가 분명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추신수(41·SSG 랜더스)는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열린 1차 스프링캠프를 마치고 한국에 들어온 뒤 이렇게 말했습니다. 한 기자가 “1월 중순 ‘소신 발언’에 대해 부연 설명을 할 생각이 있느냐”고 묻자 답한 내용입니다. 추신수는 “그 시기는 시즌 후가 될 수도 있고, 시즌 중간이 될 수고 있고, 야구 인생이 끝나고 나서도 될 수 있다”고 덧붙였습니다.

사실 ‘그 시기’는 스프링캠프 기간이 될 수도 있었습니다. SSG 구단 사정에 밝은 한 야구계 관계자는 “추신수가 현장을 찾은 취재진을 대상으로 해당 발언에 대해 해명하는 기자회견을 열려고 했다. 그런데 회견을 앞두고 한국에서 본인을 비판하는 기사가 나오자 일정을 취소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습니다. 이 관계자에게 기자회견을 열려던 게 본인 생각이었는지 아니면 구단 제안이었는지 물었지만 “팬들이 짐작하는 그대로”라는 답변만 돌아왔습니다.

‘진술거부권’ 또는 더 널리 쓰는 표현으로 ‘묵비권’은 대한민국헌법 제12호 제2항이 보장하는 권리입니다. 형사사건에서도 이 권리를 보장하는데 프로스포츠 선수에게 하기 싫은 이야기를 억지로 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지금으로서는 추신수가 입을 열고 싶어질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해 모 구단주께서 남기신 말씀처럼 야구팬은 마음에 들지 않거나 불편한 콘텐츠가 있을 때, 댓글 등으로 표현할 수는 있어도 그걸 소통이라고 착각하면 안 되는 법이거든요. (‘신동아’ 2월호 베이스볼 비키니 ‘SSG 구단주는 우승에 얼마나 기여했을까’ 기사 참고)

추신수가 1월 21일 댈러스 지역 한인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남긴 ‘소신 발언’ 가운데 야구팬들 마음을 불편하게 만든 결정적 한 마디는 “한국에서는 용서가 좀 쉽지 않은 것 같다”일 겁니다. 그런가요? 2011년 혈중 알코올 농도 0.201%로 운전하다가 경찰에 적발당한 메이저리거를 계속 응원해 결국 한국에서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한 건 ‘용서’ 아닌가요? 혈중 알코올 농도 0.201%는 한국에서 운전면허 취소를 두 번 당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2021년 송우현(27·당시 키움 히어로즈)이 0.202%로 기록을 깨기 전까지 음주 운전 단속에 걸린 어떤 종목 선수도 이보다 혈중 알코올 농도가 높았던 적이 없습니다.
 

1월 21일 유튜브에 올라온 미국의 한인 라디오 DKNET 영상에서 추신수는 안우진(34·키움 히어로즈)이 WBC 국가대표팀에서 제외된 것에 대해 “한국에서는 용서가 좀 쉽지 않은 것 같다”고 발언해 물의를 빚었다. [유튜브]
‘바나나’를 이해하는 법

1982년 부산에서 태어난 추신수는 2001년 미국으로 떠난 뒤 2021년이 돼서야 다시 한국에 일자리를 얻었습니다. 그리고 추신수 같은 ‘미국 삼촌’ 또는 ‘미국 고모’ 등이 있는 분이라면 잘 알고 계시는 것처럼 미국 교포가 “한국은 이상하다”고 불평불만을 제기하는 게 아주 드문 일은 아닙니다. 겉은 한국인인데 속은 미국 사람이라는 뜻으로 ‘바나나’라는 표현이 따로 있을 정도입니다.

이런 발언을 통해 ‘선민의식’을 드러내는 분이 없다는 건 아닙니다. 그보다는 본인이 떠나 있는 동안 한국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잘 몰라서 저런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세월이 흘러 세상이 변한 걸 마치 ‘미국은 이런데 한국은 여전히 그렇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이런 겁니다. 미국 특파원이던 한 베테랑 스포츠 기자가 야구장에서 “신수야, 이리 좀 와봐”라고 추신수를 부른 적이 있습니다. 그러자 추신수는 “언제 봤다고 반말을 하시느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실제로 이 기자는 추신수와 안면이 없던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다른 선수에게 하던 대로’ 추신수를 불렀다가 망신을 당했고, 결국 사과해야 했습니다.

처음 본 선수에게 반말로 이야기하는 건 언론사 입사 20년이 다 돼가는 저도 전해 듣기만 한 옛날이야기일 뿐 이제는 ‘구악(舊惡)’으로 통합니다. 이런 사정을 알면 ‘그 기자가 이상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모르면 ‘한국 기자는 이상해’라고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음주 뺑소니 사망사고를 내고 실형을 살았지만 메이저리그에 진출에 성공한 맷 부시. [AP]

거꾸로 평생 한국에서만 산 저는 맷 부시(37)가 용서받은 게 이상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부시는 2004년 신인 지명회의(드래프트) 때 샌디에이고로부터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았습니다. 지명 이후 그는 초특급 유망주답게(?) 미성년자 음주, 음주 운전, 폭행 등 각종 사건 사고를 일으키며 스포츠면보다 사회면에 더욱 자주 등장하는 선수가 됐습니다.
 

음주·뺑소니도 용서한 한국

결정타가 터진 건 탬파베이 산하 마이너리그 팀에서 뛰던 2012년이었습니다. 플로리다주 포트 샬럿에서 술에 취해 팀 동료 차를 몰고 가다가 70대 남성이 몰고 가던 오토바이를 들이받은 뒤 달아난 것. 이 남성은 현장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부시는 결국 2015년 10월 30일까지 실형을 살고 나왔습니다.

평소에 사회면을 꼼꼼히 읽으신 분이라면 이즈음에서 한화 투수 A(39)가 떠오르실 수도 있습니다. 2007년 1차 지명자 출신인 A는 2011년 6월 4일 새벽에 횡단보도를 건너던 20대 남성 보행자를 차로 치어 숨지게 만든 뒤 역시 도망쳤습니다. 당시 그는 음주 운전을 했다는 의심을 받았지만 사고 이틀 뒤에야 붙잡히는 바람에 음주 여부는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A는 결국 징역 5년을 받았고 선수 생활도 그걸로 끝났습니다.

반면 부시는 출소 후 텍사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습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6년 5월 13일 메이저리그로 올라오면서 추신수와 팀 동료가 됐습니다. 부시는 데뷔 첫해 58경기에 등판해 61과 3분의 1이닝을 평균자책점 2.48로 막으면서 메이저리그에 연착륙했습니다. 그리고 올해도 185만 달러(약 24억 원)를 받는 조건으로 밀워키에서 뛸 예정입니다.
 

한국에서는 왜 용서가 쉽지 않을까

사실 한국도 예전에는 이 정도(?)는 용서하던 나라였습니다. OB(현 두산) 베어스 내야수 B(51)는 1995년 1월 음주 운전 단속 중이던 의경을 차에 매단 채 질주한 일이 있었습니다. B는 술을 마신 상태는 아니었지만 무면허였던 게 문제였습니다. 문을 붙잡고 버티던 의경은 B가 차를 오른쪽으로 급회전하는 와중에 차에서 떨어졌고 반대편에서 오던 택시에 치여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B는 이후로도 1㎞ 정도 차를 몰고 달아나다 결국 택시 기사에게 붙잡혔습니다.

이 사건으로 1996년 8월까지 1년 6개월간 감옥살이를 한 B는 바로 팀에 돌아와 다음 해(1997년) 개막전부터 1군 경기에 출전했습니다. 5회 말 대주자로 경기에 들어선 B는 7회 말 중견수 키를 넘어가는 3루타로 복귀 첫 안타를 신고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조선일보는 “‘암흑 탈출’ B, 다시 섰다”는 기사를 통해 “깜깜한 감옥에서 오로지 야구 생각밖에 없었다. 다시 야구만 할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는 그의 발언을 전했습니다. B는 그해 118경기에 나와 타율 0.304, 3홈런, 30타점을 올렸고 2002년까지 선수 생활을 한 뒤 유니폼을 벗었습니다.

그러다 2000년대 중반이 되면서 분위기가 바뀌었습니다. 2005년 12월 성폭행을 저지른 C(40)를 역시 두산에서 2006년 곧바로 1군에 등록하려다 팬들 비판으로 뜻을 이루지 못한 적이 있습니다. 두산 김경문(65) 감독은 2007년에도 역시 발이 빠른 C를 1군에서 대주자로 쓰려 했지만 팬들 반응은 여전히 냉담했습니다. 결국 그는 2군에서만 뛰다가 2008년 시즌 종료와 함께 임의탈퇴로 팀을 떠나야 했습니다. 2011년 시즌 개막을 앞두고 KIA에서 임의탈퇴 기간이 끝난 C를 영입하려 했지만 이번에도 팬들 반응은 마찬가지였습니다.
 

학교폭력으로 징계를 받은 이력이 있는 키움 히어로즈 투수 안우진. [동아DB]

그러니까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이런 ‘사고’가 켜켜이 쌓이면서 미국 관점으로 보기에 ‘용서가 쉽지 않은 나라’가 된 겁니다. 프로야구 선수들이 처음부터 올바르게 처신했다면 지금과는 상황이 크게 달랐을지도 모릅니다. 게다가 한국 사회에서 학교폭력은 프로야구 또는 스포츠계뿐 아니라 문자 그대로 전 방위적인 이슈입니다.

추신수가 두둔한 안우진(34·키움 히어로즈)이 올해 연봉 3억5000만 원을 받을 수 있는 것부터 그가 “박찬호(50) 다음가는 재능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안우진에게 이 정도 재능이 없었다면 선수 생활이 진작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추신수가 혈중 알코올 농도 0.201%를 기록하고도 한국에서 계속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이유로 안우진도 용서를 일부 받은 겁니다.
 

WBC KBS 해설을 맡은 박찬호 해설위원은 안우진의 학교폭력 논란과 관련해 “처벌이 가혹하면 가혹할수록 오히려 후배들이나 어린이들에게 좋은 사례, 교육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KBS]
한국이라 용서한 일들

시즌 중에 만 41세가 되는 미국 거주 타자가 전년도에 타율 0.259, 16홈런, 58타점에 그치고도 연봉 17억 원에 재계약을 맺을 수 있는 것 역시 그의 국적이 한국이기 때문입니다. 1991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타격왕에 올랐던 훌리오 프랑코(65)는 (만 39세 시즌이라고 잘못 알고 있던) 2000년 삼성 라이온즈에서 타율 0.327, 22홈런, 110타점을 올리고도 팀을 떠나야 했습니다. 한국 프로야구 기록은 물론 메이저리그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봐도 프랑코가 한 수 위라고 할 수 있지만 프랑코는 도미니카공화국 출신이라 추신수와 계약 결과가 다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누구는 ‘절친’ 이대호(41) 이야기처럼 “3박 4일 동안에도 다 구경 못 하는” 집에 사는 반면 누구는 용서가 쉽지 않은 나라에 살아야 하는 운명이니 말입니다. 그리고 이럴 때는 이야기를 주고받는다고 해서 소통이라고 착각하면 안 되는 건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절대 틀린 이야기가 아닌데 말입니다. 그러니 조심하셔요. 자칫 잘못했다가는 “영원히 안 보이게 해드리겠다”던 그 팀 구단주 이야기가 현실이 될지 모릅니다.
 

기사제공 신동아

황규인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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