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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돗개’ 별명 허정무, 마라도나 제대로 물었죠

주간관리자 0
[스포츠 오디세이] 86 멕시코 월드컵 김정남 감독
36년 전 멕시코 월드컵을 회상한 김정남 감독은 "경험과 지원은 열악했지만 투지만큼은 최강이었다"고 말했다. 최영재 기자
 
 
 

오는 11월 개막하는 2022 카타르 월드컵은 대한민국 축구가 10회 연속 도전하는 월드컵 본선 무대다. 10연속 월드컵 출전은 브라질·독일·이탈리아·아르헨티나·스페인에 이어 세계 6번째다.

축구팬 사이에서는 ‘몇 년도 월드컵 팀이 역대 최강이냐’는 논쟁이 뜨겁다. 가장 큰 지지를 받는 팀이 10회 연속 출전의 첫발을 뗀 1986년 멕시코 월드컵 대표팀이다. 공격진에 차범근·최순호·변병주·김종부가 포진했고, 수비에는 정용환·박경훈·조영증이 버티고 있었다. 미드필드는 허정무·조광래·박창선이 중심을 잡았다.

당시에는 본선 진출 팀이 32개국이 아니라 24개국이었고, 아시아에 배당된 본선 티켓(현재 4.5장)도 두 장이었다. 이 바늘구멍을 뚫고 1954년 스위스 월드컵 이후 32년 만에 한국을 본선으로 이끈 명장이 김정남 감독이다. 김 감독은 본선에서 아르헨티나·이탈리아 등 세계 최강 팀들과 맞붙어 월드컵 첫 골, 첫 승점을 올리며 선전했다.

김 감독은 1960~70년대 김호와 명콤비를 이루며 아시아 최강 수비진을 구축했다. 지난 1월 80번째 생일을 맞은 그는 ‘축구계의 신사’라는 별명답게 꼿꼿한 원로의 풍모를 보여주고 있다. 그에게서 36년 전 월드컵의 흥미진진한 뒷얘기를 들었다.

마라도나, 어시스트 해트트릭


 

아르헨티나와의 86 멕시코 월드컵 1차전에서 허정무가 마라도나에게 거친 태클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Q : 월드컵 아시아 예선 때는 코치였죠?
A : “그렇습니다. 1차전에서 말레이시아한테 지면서 문정식 감독님이 자진사퇴 하고 그 자리를 제가 맡게 됐어요. 1패를 안고 시작하는 바람에 별로 희망이 없어 보였죠. 그런데 선수들이 정말 좋았어요. 열정도 있고 근성에 집중력도 뛰어났으니 제가 운이 좋았던 감독이었습니다. 첫 경기 이후 한 번도 안 지고 월드컵 티켓을 따냈어요.”

 


Q : 32년 만에 본선에는 올랐는데 워낙 강팀들을 만났잖아요.
A : “사실 걱정이 많았어요. 첫 상대 아르헨티나는 ‘당연히 우승할 팀’이라고 했는데 결국 우승을 했고요. 이탈리아는 지난 대회 우승팀이고, 불가리아도 동유럽 강호였거든요. 지더라도 망신당할 정도로 참패는 당하지 말자는 각오로 준비했습니다.”

 


Q : 아르헨티나전에선 마라도나에게 도움 해트트릭을 허용하며 1- 3으로 졌지요.
A : “경기 시작하자마자 두 골 먹고 후반 들어서 또 한 골 먹으니까 ‘이러다 0-10 되는 건 아닌가. 큰일 났다’ 싶더라고요. 그런데 선수들이 그때부터 분발하기 시작했고, 경기를 하면서 점점 좋아졌어요. 박창선 선수가 중거리슛으로 득점을 하면서 팀이 다시 활기를 띄게 됐죠. 경기 후 ‘우리도 하면 된다. 세계의 벽이 그렇게 높은 건 아니다’ 는 자신감을 갖게 됐어요.”

 


Q : 마라도나한테 전담 마크맨을 붙이지 않았습니까?
A : “당연히 붙였죠. 마라도나만 막으면 된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김아무개 선수가 스피드와 힘이 있고 대인 마크 능력도 좋아서 괜찮겠다 싶었죠. 그런데 이 선수가 너무 긴장을 해서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겁니다. 초반에 한 골 먹고 나서 안 되겠다 싶어서 허정무 선수와 교체했죠.”

 


Q : 허정무가 마라도나를 가격하는 ‘태권 축구’ 사진이 유명한데요. 특별한 지시를 하셨습니까?
A : “그런 건 없었고, 허정무 선수 자체가 기질이 있어요. 별명이 진돗개라서 한번 ‘물어라’ 하면 제대로 물 것 같아서 맡겼는데 물긴 꽤 물더라고요(웃음). 마라도나가 어시스트 3개를 했지만 다른 선수들도 세계적인 수준이어서 굉장히 힘든 상대였죠. 측면에서 올라오는 크로스의 속도와 회전량이 그 동안 상대하던 동남아 축구와는 비교가 안 되는 겁니다. 골키퍼와 수비진이 엄청나게 당황했죠.”

 


Q : 상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다는 거네요.
A : “그렇죠. 우리는 상대 선수 이름도 몰랐고, 아르헨티나가 경기하는 걸 본 적도 없었어요. 대회마다 특징이 다른 공인구가 있는데 저희는 월드컵 직전까지도 공인구로 연습을 하지 못했어요, 코치는 김호곤 하나뿐이고 골키퍼 코치도 없었죠. 대표팀에 스태프 20여 명이 붙는 요즘과는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죠.”
 

 

86 멕시코 월드컵 당시 벤치의 김정남 감독(오른쪽)과 김호곤 코치. [중앙포토]
 
 
 

당시 세계 최고 리그인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활약하던 차범근이 합류하느냐가 큰 이슈였다. 설왕설래 끝에 합류는 했지만 본선에서는 기대만큼 큰 활약을 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김 감독은 “아무래도 차 선수가 대표팀에서 나간 지 꽤 오래 됐고 유럽 축구에 숙달돼 있는 선수였죠. 한 달 전에 합류했는데 함께 훈련하는 시간도 얼마 안 됐고 차범근 스타일과 우리 팀 스타일이 금방 융화되지는 못했어요”라고 회고했다. 그렇지만 상대가 차범근을 밀착마크 하는 바람에 다른 선수들이 숨 쉴 여유가 생겼고, 차범근이 움직이는 과정에서 공간이 많이 생겼다고 김 감독은 설명했다.
 


Q : 박창선의 본선 첫 골은 어땠나요.
A : “원래 그 선수가 중거리슛 시도를 많이 하고 골도 곧잘 넣었어요. 워낙 임팩트가 좋았지만 골이라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원래 큰 경기에서 골을 넣는 선수는 평소에 골을 넣겠다는 집념이 강한 선수입니다. 우리가 4골을 넣고 7골을 먹었으니 나름대로 선전한 거죠.”

 


Q : 빗속에서 열린 불가리아전에서 김종부의 동점골로 월드컵 첫 승점을 얻었죠.
A : “당시만 해도 비가 오면 잔디가 훼손된다는 이유로 잔디 운동장을 못 쓰게 했어요. 월드컵을 앞두고 훈련 중인 대표팀도 예외가 아니었죠. 1차전 결과로 자신감이 생겨서 ‘불가리아는 한번 해볼 만하다’고 벼르고 있었는데 비가 엄청나게 오더라고요. 비 맞으면서 잔디 구장에서 축구해 본 적이 거의 없으니 우리 선수들은 자꾸 넘어지고 중심 이동도 잘 안되고, 패스도 부정확하고 체력 소모도 심했죠.”


이탈리아전 최순호 골은 예술
 


Q : 이탈리아전(2-3 패)이 가장 아쉬웠고, 편파 판정으로 화도 많이 난 경기였죠.
A : “사실은 좀 억울한 부분이 있었어요. 그렇다고 지금처럼 VAR(비디오 판독 시스템)이 있지도 않았으니 무조건 심판 판정이 마지막 결정이었죠. 한 골만 더 넣거나 덜 먹었어도 조 3위로 16강에 올라가는 경기였어요. 끝나고 이탈리아 선수들이 우리를 칭찬했어요. 최순호의 골은 예술이었고, 막판 최순호의 헤딩 패스를 받아 허정무가 슬라이딩 슈팅으로 골 넣은 것도 멋진 장면이었죠.”


김 감독에게 86 멕시코 월드컵에 대한 총평을 부탁했다. “상대에 대한 정보나 분석, 국제대회 경험, 대표팀에 대한 지원 등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했죠. 그렇지만 태극 마크에 대한 자부심과 투지만큼은 어느 팀보다 강했고, 결과적으로 세계 최강 팀들과 대등한 경기를 할 수 있었습니다. 86 멕시코 팀의 경험과 성과를 디딤돌 삼아 2002 월드컵 4강 신화, 10회 연속 월드컵 진출의 역사가 만들어졌다고 믿습니다.”

“이천수는 경기장선 무조건 반말, 손흥민 부친은 아들 평가 냉정”
이천수
김정남 감독은 2000년부터 9년간 K리그 명문 울산 현대를 이끌었다. 2005년 리그 우승을 차지해 2006년 한·중·일 챔피언 대결이었던 A3 챔피언스컵에 출전했다. 울산은 J리그 우승팀 감바 오사카를 6-0으로 대파했는데, 이천수(사진)가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김 감독은 ‘악동’ 이천수를 순한 양처럼 만들 정도로 선수 관리에 능했다. “천수는 경기장에 나가면 자기가 선배예요. 킥오프 전 파이팅 할 때 천수가 ‘야야, 전반전만 버텨. 후반에 내가 때려 넣을 테니까’ 라면서 대놓고 반말을 해요. 자신감만큼은 누구도 못 말리는 선수였죠” 라고 그는 회고했다.

10여년 전 프로축구연맹 부총재를 맡았을 당시 얘기도 들려줬다. “손흥민 선수가 독일 함부르크에 있을 때였어요. 프로축구 올스타전을 앞두고 손 선수를 만나 ‘축구팬들이 너를 좋아하니 관중에게 인사하고 손 한번 흔들어주면 어떻겠냐’고 했더니 손 선수가 ‘전 못해요. 아버지에게 물어보세요’ 하는 겁니다. 아버지 손웅정씨가 운영하는 춘천의 축구교실까지 달려가서 부탁했는데 ‘걔는 아직 선수가 아니에요. 그런 거 못 합니다’라면서 일언지하에 딱 자르더라고요.”

김 감독은 “아들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 무한 헌신이 오늘날의 손흥민을 만든 힘”이라며 부정(夫情)을 높이 평가했다.


 

기사제공 중앙SUNDAY

정영재 스포츠전문기자/중앙UCN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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