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NBA 파이널 진출을 확정한 마이애미 히트의 지미 버틀러(33‧201cm)는 국내 팬들 사이에서 ‘꼰틀러’라는 애칭으로 불린다. 최근 자주 쓰이는 꼰대라는 단어에 버틀러의 이름이 섞여서 만들어졌다. 꼰대라는 말이 좋지않은 쪽으로 자주 쓰인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버틀러가 비호감 선수인가?’라고 오해할 수도 있겠지만 사실은 다르다.
버틀러는 현재 누구보다도 많은 응원을 받고있는 선수중 한명이다. 마이애미가 플레이오프 내내 뜨거운 관심을 받았던 배경에는 외인부대같은 선수진, 8번시드의 반란 등 핫한 팀 스토리도 있었지만 순수하게 버틀러가 좋아서, 버틀러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갈채를 보낸 팬들도 적지않다. ‘팀은 덴버를 좋아하지만 버틀러 때문에 마이애미가 우승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말도 심심치않게 들려올 정도다.
전 KBL 스타 출신 전태풍(43‧179cm)은 “개인적으로는 화려한 드리블로 휘젓고 다니는 어빙같은 유형의 선수를 좋아한다. 하지만 이번 플레이오프에서는 버틀러를 응원하고 싶다. 플레이 스타일은 개인적인 선호도와 살짝 거리가 있지만 그냥 버틀러가 좋다. 그 선수의 백스토리, 인성, 경기에 임하는 자세와 리더십 등 정말 잘됐으면 하는 바램이 크다”고 말했다.
이항범(42‧168cm) JBJ 바스켓볼 클럽 대표 또한 “누가 버틀러같은 사람을 싫어할까 싶다. 특히 한국인이라면 버틀러같은 선수는 무조건 선호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소속팀, 플레이스타일 등을 떠나, 싫어하면 안될 것 같은 느낌까지 주는 선수다.(웃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선수가 있는데 버틀러의 인성과 멘탈을 절반이라도 닮았으면 좋겠다”는 말로 칭찬을 아끼지않았다.
그 외 김성철 전 원주 DB 수석코치, 김민수 경희대 코치 등 다수의 농구인들이 버틀러를 응원한다고 밝혔으며 각종 커뮤니티에서도 ‘버틀러가 우승하고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보고싶다’는 글들이 꾸준히 올라오고 있다. 앞서도 언급했다시피 상대인 덴버와는 아무 관계없다. 덴버 또한 컨트롤 타워형 센터 니콜라 요키치(28‧211cm)로 인해 인기가 부쩍 높아진 팀이다. 버틀러만 아니었다면 요키치 쪽으로 팬심이 몰렸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팬들은 왜 이렇게까지 버틀러를 응원하고 좋아하는가? 정답은 버틀러는 꼰대이기 때문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꼰대는 좋지않은 의미로 쓰일 때가 많다. 꽉 막힌 사람, 잔소리가 심한 사람, 자꾸 누군가를 가르치려고 드는 사람, 예전 사고 방식에 사로잡힌 사람 등을 지칭할 때 여지없이 꼰대라는 단어가 소환된다.
하지만 버틀러를 향한 꼰대라는 표현은 좋은 의미가 주로 담겨져있다. 시대가 바뀜에 따라 최근 NBA의 분위기도 많이 달라졌다. 마이클 조던이 한창 활약하던 시대만 해도 리더를 중심으로 서로 희생할 것은 희생하면서 선수단이 함께 성장하는 기조가 강했다면 최근에는 자유분방, 마이웨이의 트랜드가 많다.
조그만 것도 손해보려고 하지 않으며 자존심은 세지만 책임감은 떨어지는 선수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러한 기조 속에서 예전에는 드물었던 슈퍼팀도 우후죽숙으로 자주 생겨나고 있는 모습이다. 이렇듯 ‘나’하나 챙기기도 바쁜 세상에서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동료를 챙기고 ‘우리’를 강조하는 구닥다리(?) 클래식 스타가 있으니 다름아닌 버틀러다.
버틀러의 꼰대력은 유명하다. 그냥 본인만 챙기면 세상 편할진데 자꾸 주변을 신경쓴다. 특히 재능은 있지만 노력을 덜한다던가 하는 동료들이 보이면 견디질 못한다. 충고가 지나쳐 잔소리가 될 정도로 오지랖을 떤다. 어떻게보면 잠재적인 경쟁자가 될 수도 있지만 버틀러는 진심으로 상대가 잘되기를 바란다. 이같은 성향은 신인시절부터 꾸준히 이어졌는데 베테랑이 된 지금까지도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크게 변하지 않고 있다.
소위 꼰대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로는 ‘열심히하면 안되는 것은 없다. 좀 더 노력해야돼’, ‘다 너 잘되라고 하는 말이야’ 등이 있다. 사실 듣는 사람도 그말이 틀리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안다. 그냥 듣기 싫을 뿐이다. ‘지금까지 이렇게 살아왔는데 나더러 어쩌라고! 그냥 내버려둬’라고 반항하거나 한귀로 듣고 한귀로 흘려버리기 일쑤다. 특히 말은 그렇게하면서도 정작 본인은 언행을 실천하지 못하는 경우 그야말로 최악의 ‘말뿐인’ 꼰대가 될 수도 있다.
버틀러는 다르다. 노력이 곧 생존인 NBA에서도 소문난 훈련광으로 유명하다. 신인시절 성장가능성적인 측면에서 별반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음에도 현재 리그에서 제일가는 승부사가 된 배경에는 남보다 훨씬 간절하게 지독한 노력을 멈추지않은 이유가 크다. 그저 막연하게 ‘무조건 열심히 해’가 아닌 ‘내가 이 정도로 해보니까 되던데, 우리 같이 해보자’며 동행을 권유한다.
너무도 당연한 얘기겠지만 일부 핵심 선수를 제외하면 언드래프티와 노장들로 구성된 마이애미가 예상을 깨고 파이널까지 진출한 배경에는 버틀러의 존재감이 절대적이었다는 평가다. 요키치처럼 괴물같은 성적으로 상대를 압살하지는 않지만 꾸준하게 활약을 이어가주고 무엇보다 중요한 승부처에서 제몫을 해주는 믿을맨 역할을 통해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않는 버팀목이 되어주고 있다.
마이애미가 파이널까지 진출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험난했다. 애틀란타와의 플레이-인 토너먼트에서 고배를 마셨던 마이애미는 이어진 시카고와의 경기를 잡아내며 8번시드를 받고 가까스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한다. 1회전 상대는 1번시드로 올라온 우승후보 밀워키였다. 객관적 전력에서 차이가 커보였다.
설상가상으로 빅터 올라디포와 타일러 히로 마저 부상으로 이탈했다. 하지만 버틀러를 중심으로 똘똘 뭉친 마이애미는 밀워키를 완파했고 2라운드에서 만난 뉴욕마저 어렵지않게 무너뜨렸다. 또 다른 우승후보 보스턴과의 동부 컨퍼런스 파이널은 그야말로 한편의 영화를 보는듯 했다. 내리 3연승을 가져갈 때만해도 쉽게 파이널에 올라가는 듯 싶었지만 이후 매서운 반격에 시달리며 3연패로 궁지에 몰린다.
8번시드의 기적은 커녕 역사상 한번도 없었던 리버스 스윕의 희생양이 되는 듯 했다. 똑같은 3승 3패였지만 불안한 쪽은 마이애미였다. 하지만 버틀러가 이끄는 마이애미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외나무다리 대전을 승리로 장식하며 파이널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룩한다. 중대한 승부를 앞두고 버틀러는 늘 그랬듯이 ‘우리는 강하다. 이길 수 있다’는 말을 했을 것이다. 어찌보면 평범하기 그지없는 발언이지만 버틀러이기에 팀원들은 끝까지 믿음을 잃지않았고 다시 한번 기적을 썼다.
익히 잘 알려진데로 버틀러는 매우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일찌감치 나쁜 길로 빠져도 이상하지 않을 환경이었지만 그는 끝까지 이겨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느끼고 배운 모범적인 꼰대력을 한결같이 가져가고있는 모습이다. 플레이오프 내내 그랬듯이 마이애미는 이번에도 언더독의 입장에 서있다. 하지만 그 중심에서 전의를 다지고있는 버틀러라는 꼰대는 늘 그래왔듯이 무슨 대형사고를 쳐도 이상하지 않을 남자다. 많은 이들이 마이애미의 기적을 기대하고있는 이유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AP/연합뉴스
기사제공 점프볼
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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