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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문성] 손흥민의 눈물과 알레그리의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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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흥민은 양 팀 통틀어 최다 슈팅과 선제골 등 최고의 활약을 펼쳤지만 끝내 팀은 8강에 오르지 못했다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용병술이었다. 전술 명장들의 나라, 그 중에서도 이탈리아 최고 명문인 유벤투스다운, 알레그리 감독다운 승부였다.

 

유벤투스의 알레그리 감독이 바르찰리를 오른쪽 수비에 선발 배치했을 때만 해도 고개가 갸웃거렸다. 우측 풀백 데실리오는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제외됐지만 리히슈타이너가 있는 만큼 대체 자원이 없는 게 아니었다.

 

유벤투스의 수비는 기본적으로 포백에 가까웠지만 완전한 포백이라고 하기에도 애매했다. 오른쪽 수비수 바르찰리는 되도록 수비 위치를 지키고 반대편 왼쪽 수비수 알렉스 산드루가 공격적으로 올라서면서 스리백처럼도 운영됐다. 4백과 3백이 혼합된 변칙적인 운영이었다.

 

미드필드 구성도 인상적이었다. 전체적으로는 원정 경기의 수비 부담을 생각해 중앙 집중적으로 허리라인을 꾸렸으면서도 우측 미드필더 더글라스 코스타를 넓게 벌려 공수의 넓은 범위를 커버토록 했다. 왼쪽의 마튀이디가 중앙으로 좁혔다면 오른쪽의 더글라스 코스타는 측면으로 벌린 비대칭 형태였다. 

 

토트넘 전술 특징에 따른 유벤투스 알레그리 감독의 대처였다. 토트넘의 4-2-3-1은 비대칭 성격이 강하다. 왼쪽의 손흥민은 측면으로 벌렸다 움직이지만 반대편의 에릭센은 중앙 움직임을 선호하는 ‘가짜 윙’이다. 알레그리 감독은 이와 같은 토트넘 공격의 특징에 맞춰 선수들을 배치했던 것이다. 비대칭에 대처한 비대칭이었다.

 

비대칭에 대처한 비대칭 전술

 

 

지난 새벽 수 싸움에서 알레그리 감독이 포체티노 감독에 이겼다

 

 

알레그리 감독은 손흥민이 벌려 뛰는 오른쪽 수비에 공격보단 수비에 주력할 선수가 필요했다. 알레그리 감독의 선택은 이탈리아대표팀과 유벤투스에서 잔뼈가 굵은 바르찰리였다. 중앙 수비수인 바르찰리는 오버랩을 자제하는 대신 수비에 주력, 오른쪽과 중앙을 오가며 손흥민을 막는데 집중했다. 이 과정에서 나온 손흥민을 발로 밟는 장면은 해선 안 될 동작이었지만 36살의 백전노장 바르찰리는 알레그리 감독이 주문한 전술적 미션을 전체적으론 문제없이 소화했다. 바르찰리 위에 더글라스 코스타를 넓게 벌려 적극적으로 수비에 가담토록 한 것도 토트넘의 왼쪽 공격이 벌려 뛰는 성격이 강했기 때문이었다.

 

유벤투스가 반대편의 마튀이디를 중앙으로 좁혀 세운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토트넘의 에릭센이 벌리지 않고 중앙으로 좁혀 뛰는 데 유벤투스로선 굳이 넓게 벌려 뛰는 미드필더가 필요하지 않았다. 유벤투스 입장에선 에릭센의 동선에 맞춰 중앙으로 좁혀 움직일 미드필더가 필요했고 그 역할과 자리를 부상에서 복귀한 마튀이디가 맡은 것이었다. 다만 이럴 경우 왼쪽 측면에 공간이 많이 벌어질 위험이 있었는데 알레그리 감독은 알렉스 산드루를 높게 위치시키는 것으로 이 문제에 대처했다.

 

디테일한 알레그리 감독의 대처였다. 토트넘 선수들과 전술에 하나하나 맞춘 대응이었다. 상대가 좁히는 곳엔 좁혀 서는, 넓게 서는 곳엔 넓혀 서는 선수를 배치함으로서 전략적으로 대처했다. 양복 맞추듯, 맞춤식 전략이었다.

 

 

토트넘과 유벤투스의 라인업. 유벤투스의 대형이 변칙적이다

 

 

하지만 선발 라인업과 전반의 대처는 알레그리 감독 마법의 시작에 불과했다. 알레그리 감독의 토트넘전 전술 백미는 0-1로 뒤지고 있던 후반 60분대 선수 교체와 전술 변화였다. 알레그리 감독은 60분 마튀이디를 빼고 아사모아를 투입했다. 단순히 선수 교체만 이루어진 게 아니었다. 아사모아를 왼쪽 수비로 내리고 대신 그 자리를 보던 알렉스 산드루를 왼쪽 윙으로 올려 세웠다. 교체 하나로 왼쪽 풀백과 미드필더를 동시에 바꾼 용병술이었다.

 

곧장 또 알레그리 감독은 중앙 수비수 베나티아를 빼고 리히슈타이너를 투입했다. 그러면서 우측의 바르찰리를 베나티아 자리의 중앙에, 교체 투입된 리히슈타이너를 바르찰리의 자리였던 우측 수비에 배치했다. 마찬가지로 교체 한 장으로 두 자리를 바꾼 것이었다. 생각해보면 일반적이지 않은 교체였다.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공격수가 아닌 수비수를, 그것도 양 풀백을 모두 바꾸는 건 자주 보는 장면이 아니었다.

 

하지만 양 풀백을 바꾼 이 교체 하나로 이날 승부의 희비는 완전히 뒤집혔다. 양 풀백을 바꾼 알레그리 감독의 판단은 수비 안정 때문이 아니었다. 역설적이게도 수비를 바꿔 공격을 강화하는 파격적인 승부수였다. 

 

소름 끼치는 알레그리 감독의 용병술

 

 

유벤투스 8강행의 주역 부폰, 이과인, 디발라

 

 

에릭센 대응 카드로 투입했던 마튀이디를 뺐다는 건 더 이상 대응 카드로서의 효용이 사라졌다는 걸 의미했다. 손흥민에게 선제골을 허용, 끌려가고 있던 만큼 상대 공격에 대한 대응보단 자체의 공격을 강화할 카드가 필요했다. 이 때 알레그리 감독이 생각해낸 것이 알렉스 산드루의 전진 배치였다. 중앙으로 좁혀 수비에 주력했던 마튀이디 대신 측면으로 넓게 벌려 공격을 전개할 수 있는 왼쪽 풀백 알렉스 산드루를 윙으로 끌어 올리는 방식이었다. 공격의 형태를 아예 달리하겠다는 변화였다. 알레그리 감독이 왼쪽 풀백 아사모아를 왼쪽 풀백 알렉스 산드루를 빼고 넣지 않은 이유다. 알레그리 감독은 아사모아를 마튀이디 대신 넣고 알렉스 산드루를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그 전까지와는 다른 전술 변화를 가져갔다. 전술 시프트였다.

 

오른쪽 풀백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수비에 주력했던 바르찰리보단 공격을 전개할 선수가 필요했다. 그러면서도 원정 경기에서의 수비 안정은 무너뜨릴 수 없었던 과제였는데 이를 위해 알레그리 감독은 공격 가담이 좋은 전형적인 오른쪽 풀백 리히슈타이너를 중앙 수비수 베나티아를 빼고 투입했다. 대신 우측 풀백을 보던 바르찰리를 센터백으로 옮기는 변화를 단행했다. 오른쪽 역시도 왼쪽과 마찬가지로 선수 교체 하나로 위치 변화까지 가져가는 전술 시프트를 이루어낸 것이다. 이유는 하나였다. 경기를 뒤집기 위한 전술 특히 공격 형태를 바꾸는 변화였다.

 

 

유벤투스의 후반 선수 교체와 위치 이동

 

 

이와 같은 알레그리 감독의 변화는 적중했다. 마튀이디 대신 왼쪽 위로 올라간 알렉스 산드루와 오른쪽 풀백으로 교체 투입된 리히슈타이너의 공격 가담에 토트넘의 수비라인이 급격히 흔들렸다. 알렉스 산드루는 마튀이디와 달리 측면으로 넓게 벌려 공격해 들어왔으며 리히슈타이너도 바르찰리 때는 없던 오버래핑을 강하게 시도했다. 이처럼 유벤투스가 수비에서 공격으로 전환하고, 공격의 형태를 바꾸었을 때 토트넘은 빠르게 대처했어야 하지만 전술적 대응은 늦었고 선수들은 당황했다. 

 

이러한 과정에서 리히슈타이너는 교체 투입 후 3분 만에 깊게 올라서 크로스 공격으로 골을 만들어냈으며(케디라와 이과인으로 연결된 동점골) 알렉스 산드루가 넓게 벌려서면서 생긴 중앙 공간에서는 유벤투스의 두 번째 득점(이과인과 디발라로 이어진 결승골)이 나왔다. 이 두 골 모두가 알레그리 감독이 선수 교체와 전술 변화를 가져간 뒤 10분도 되지 않아, 골만 보면 3분 사이에 벌어진 놀라운 일이었다. 

 

힘이 떨어져 가는 후반 중반 이후 선수 교체와 자리 이동으로 만든 알레그리 감독의 마법과도 같은 전술 시프트였다. 만약 이 모든 걸 알레그리 감독이 미리 예상하고 진행한 용병술이었다면 소름 끼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유벤투스가 2-1로 역전하자 알레그리 감독은 이과인을 빼고 활동량이 많은 스투라로를 투입해 경기를 마무리했다. 경기는 그대로 끝이었다. 결과는 토트넘의 역전패. 8강은 챔피언스리그의 DNA를 지닌 유벤투스의 몫이었다. 경기 전체적으로 보면 22개 대 9개의 슈팅 숫자가 말해주듯 토트넘의 페이스였으나 알레그리 감독의 전술 변화 이후 바뀐 경기 흐름과 양상에 토트넘이 전술 대응을 못하고 수비라인이 중심을 잡지 못한 결과였다. 토트넘 입장에선 안정감 있고 경험 많은 수비수 알더웨이럴트의 부재가 못내 아쉬운 경기이기도 했지만 현대축구와 큰 무대에서 감독의 존재감이 얼마나 중요한지, 경험으로 대표되는 챔피언스리그 DNA가 얼마나 절실한지를 다시금 절감한 일전이었다.

 

 

기사제공 박문성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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