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LA 다저스와 한국인 메이저리거의 인연은 1994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양대 재학 시절 강속구를 던지던 박찬호를 국제무대에서 보고 그 가능성에 반한 다저스는 여러 팀과 경쟁 끝에 1994년 1월, 결국 박찬호에게 자신들의 유니폼을 입혔다.
사실 '황금세대'로 불렸던 92학번 동기들 중 당장 박찬호보다 완성도가 높은 투수들은 몇몇이 있었다. 이들에 비하면 박찬호는 원석에 가까웠다는 게 당시를 기억하는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그러나 다저스는 가능성만큼은 92학번 황금세대 동기 중 누구보다도 크다고 여겼고, 이 원석을 다듬을 자신이 있었다. 다저스의 선구안은 적중했다. 박찬호는 '코리안 특급'이라는 수식어를 얻으며 다저스와 전성기를 같이 했다.
1994년 메이저리그 무대에 데뷔한 박찬호는 1996년부터 본격적인 메이저리거로서의 생활을 하기 시작했고,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어 텍사스로 떠나기 전인 2001년까지 221경기(선발 176경기)에서 80승54패 평균자책점 3.80의 대활약을 선보였다. 3.80의 평균자책점이 높은 것처럼 보이지만 당시는 '스테로이드의 시대'였음을 고려해야 한다. 박찬호는 200이닝을 던질 수 있는 뛰어난 내구성과 함께 1997년부터 2001년까지 5년 연속 두 자릿수 승수를 거뒀다.
다저스는 이후로도 한국과 꾸준히 인연을 이어 가고 있다. 영입한 선수는 많지 않아도 동아시아 스카우트가 아마추어 무대를 지속적으로 관찰하고 있다. 메이저리그 구단마다 동양인 선수에 대한 호불호는 갈리기 마련인데, 이미 박찬호와 노모 히데오를 시작으로 동아시아 선수들을 충분히 봐왔던 다저스는 굉장히 호의적인 편으로 알려졌다. 그리고 박찬호 스카우트 29년 뒤, 다저스는 또 하나의 한국인 유망주를 품에 안았다.
마산 용마고를 졸업할 예정인 우완 장현석(19)이 그 주인공이다. 장현석은 올해 신인드래프트 1순위가 확실시됐던 특급 유망주다. 건장한 체격에서 나오는 최고 시속 157㎞ 수준의 묵직한 패스트볼이 일품이다. 여기에 여러 결정구를 던질 수 있고 커맨드와 경기 운영도 나쁘지 않다. 소위 말하는 '에이스 기질'은 당연히 갖추고 있다. 1992~1993년 당시의 박찬호보다 오히려 더 다듬어진 선수라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다저스는 장현석을 계속해서 추적했고, 그가 메이저리그 도전을 선언하자 주저 없이 나서 유니폼을 입혔다.
업계에서는 다저스가 굉장한 속도전을 벌여 장현석을 입도선매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국제 유망주 계약은 보너스 풀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 페널티나 보너스 풀 거래에 따라 각 구단이 가진 한도는 조금 다른데, 대다수 팀들은 이미 지난겨울과 봄에 이를 소진한 상태였다. 다저스도 마찬가지였다. 페널티가 있어 가뜩이나 쓸 돈이 다른 팀에 비해 적은(414만4000달러) 다저스는 봄에 여러 선수들을 영입하며 돈을 다 쓴 상황이었다.
'베이스볼 아메리카'의 벤 벤들러의 계산에 따르면 다저스는 2023년 국제 유망주 영입 보너스 풀이 단 1500달러(약 200만 원) 남은 상태였다. 장현석을 영입하려면 많은 돈이 필요한데 한도가 다시 만들어지는 건 내년이었다. 그 사이 상황이 어떻게 변할지 몰랐다. 그러자 애가 탄 다저스는 묘수를 냈다. 알드린 바티스타와 막시모 마르티네스라는 유망주를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보냈다. 대신 국제 계약 보너스 풀을 받아왔다.
다저스가 얼마를 받아왔는지는 정확하게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화이트삭스는 리그 30개 팀 중 유일하게 이 보너스 풀이 100만 달러 이상 남은 팀이었다. 장현석에게 계약금으로 90만 달러를 줬음을 고려하면, 현지 언론들은 이 트레이드로 90만 달러 정도를 확보해 모두 장현석에게 쏟아 부었다고 추측하고 있다. 유망주 둘을 희생할 정도로 다저스는 장현석이 급했던 것이다. 다른 팀들로서는 뒤통수를 얻어 맞은 느낌이었을 수 있다.
장현석의 잠재력을 확신했기에 가능했던 거래였다. 다저스는 앤드루 프리드먼 현 야구부문 사장의 팀 합류 이후 팀 규모와 이름값에 걸맞은 대형 지출은 물론, 팜 시스템 정비에도 힘을 쏟았다. 그 결과 프리드먼 사장 이전에 리그 중하위권이었던 다저스 팜은 현재 못해도 중상위권으로 평가받는다. 매년 추가되는 선수, 졸업하는 선수, 트레이드되는 선수에 따라 평가는 달라지지만 최정상급 팜이라는 평가도 곧잘 나온다.
그런 다저스 팜에서도 장현석이 충분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봤기에 과감한 베팅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당장 다저스가 올해 지출한 국제 계약 보너스 풀 한도 중 약 15~20%를 장현석 한 명에게 쓴 셈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 지출은 장현석이 메이저리그에 데뷔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졌다고 확신했기에 가능했다고 봐야 한다.
장현석이 언제 메이저리그에 데뷔할 수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팀 내 팜 수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다. 다저스는 이미 메이저리그 무대에 데뷔했거나 데뷔를 앞둔 우완들이 상당히 많다. 메이저리그 파이프라인의 다저스 유망주 랭킹에 따르면 상위 15위 내에 우완 투수가 7명이나 된다. 다만 이들의 메이저리그 데뷔는 2024~2025년 사이가 대부분이고, 그 뒤를 이을 만한 선수로 장현석을 낙점했다고 볼 수 있다.
다저스 팜의 수준으로 봤을 때 빠른 승격이 타 팀에 비해 쉬운 건 아니다. 결국 이제 모든 건 장현석 스스로에게 달렸다. 다행히 다저스가 보너스 풀을 트레이드하면서까지 파격적인 투자를 한 선수이기에 앞으로 꾸준한 관심과 기대치를 줄 것이라는 점은 긍정적이다. 마이너리그 레벨에서 '계약금이 벼슬'이라는 말이 괜히 나오는 건 아니다. '제2의 박찬호'가 탄생할 수 있을지, 3년 뒤가 주목되고 있다.
기사제공 스포티비뉴스
김태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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