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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필의 언중유향]힘없이 날아간 두 P급 감독…돌려 막기의 한계와 이면

조아라유 0
▲ 김상식 전 전북 현대 감독(사진 위), 이병근 전 수원 삼성 감독(사진 아래) ⓒ한국프로축구연맹
 
▲ 김상식 전 전북 현대 감독(사진 위), 이병근 전 수원 삼성 감독(사진 아래) ⓒ한국프로축구연맹
 
 



[스포티비뉴스=이성필 기자] "자. 감독 데뷔 첫 경기는 아시아 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 조별리그 1차전 감바 오사카(일본)전, 조규성의 두 골, 바로우의 1골 1도움을 앞세워 전북 현대가 홈에서 3-1로 이겼습니다. 어떤 소감을 내놓으실 것인가요?"

"네. 조규성 선수가 정말 잘했습니다. 다만, 이제 군입대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다른 선수의 활약도 필요했고 바로우가 그 역할을 해주면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창궐로 모두가 위축됐던 2020년 12월, 울산 한 호텔에서는 지도자 자격증 최고 등급인 P급 라이선스 교육이 신중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당시 기자는 운이 좋게도 P라이선스 교육을 진행하던 측의 권유로 '미디어 교육-인터뷰 스킬'의 일일 강사로 나서게 됐다. 그 자리에는 이태호 전 대전 하나시티즌 감독, 유영실 서울시청 감독, 김은중 현 20세 이하(U-20) 대표팀 감독, 최태욱 전 A대표팀 코치 등 27명의 지도자가 모였다.

4일 자진 사임한 김상식 전 전북 현대 감독도 교육생 중 한 명이었다. 당시 전북 수석 코치 신분이었던 김 감독은 사실상 조세 모라이스 감독의 뒤를 이어 팀을 이끄는 것이 확정적이었다.

전북이 감바를 이겼다고 가정하고 김 감독이 첫 경기 후 기자회견 참석자, 나머지 수강생들이 기자로 역할을 변신했다. 저마다 김 감독에게 선수 기용을 어떻게 했는지, 시즌 계획을 어떻게 짤 것인지 등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김 감독은 재치 있게 답하며 비공식(?) 감독 데뷔 기자회견을 끝냈다.


 

▲ 비난 문구로 뒤덮였던 전주월드컵경기장 ⓒ연합뉴스
 
 
▲ 비난 문구로 뒤덮였던 전주월드컵경기장 ⓒ연합뉴스
 
 
▲ P-라이선스 교육 현장에 모인 엘리트 지도자들 ⓒ대한축구협회
 
 



당시 상황을 길게 서술한 것은 자리에 모인 27명의 지도자가 저마다 경력을 쌓아 자리에 왔다는 점이다. 단순한 전술, 전략 이상의 것을 현역 은퇴 후 하부 등급 라이선스를 취득하며 P라이선스까지 왔다. 수천만 원을 들여(=물론 개인이 미래를 위해 투자한 비용이니 제3자 입장에서는 큰 의미 없다고 하더라도)가며 스포츠 생리학, 리더십, 마케팅, 심리학 등 많은 것을 배웠다.

과목이 많은 것은 프로 스포츠 산업의 확대와 맞물린다. 현대 축구에서 한 경기를 위해 감독 홀로 다 책임을 감내하는 시대는 한참 지났다. 프런트의 지원 체계가 현대적이고 과학적이며 상업적이면서도 인간적이야 한다는 것은 팬들도 알고 있다. 산업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영진이 있다면 지도자가 아무리 배워와도 무소용이 된다. 반대로 지도자 역시 산업 구조에 자신을 넣어야 한다.

P라이선스 취득 지도자는 그만큼 귀하다. 최근 수원 삼성이 이병근 감독을 경질하면서 경영진이 벤치 지휘 시 반드시 필요한 P라이선스 보유자부터 찾았던 것과 (=최성용 대행이 보유자였음에도) 무관하지 않다. 선수 은퇴 후 지도자 대열에 합류해 감독이라는 직책에 오르기까지 10년 가까운 세월을 투자하며 승리에 기뻐하고, 패배에 쓰라리며, 자금력 부족으로 지켜야 하는 선수 이적을 막지 못해 한숨을 쉬고, 이기라 소리치는 팬들 앞에서 죄송하다고 말하는 경험 누적을 통해 명장이라 불리는 지도자의 탄생이 이어진다.

홍명보 울산 현대 감독이 그랬다. 2006 독일 월드컵 당시 딕 아드보카트 감독은 선수단과 가교 역할로 홍 감독을 코치로 지정했다. 연령별 대표팀을 거치며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동메달로 선수들과 같이 울었고 2012 런던 올림픽 동메달로 환희를 나눴다. 2014 브라질 월드컵에서는 땜질 지도자로 들어와 조별리그 탈락과 함께 경기 외적 논란에 사퇴하며 숨어 지내는 고생이 있었다.

중국 슈퍼리그 경험 후 홍 감독은 대한축구협회 전무 이사로 돌아와 행정가의 길을 걸었다. A대표팀 감독 선임 여론에 고민하던 김판곤 전 감독선임위원장에게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고 그 결과 파울루 벤투 감독을 선임해 2022 카타르 월드컵 16강이라는 결과물을 만들었다. 이후 울산 현대 감독을 맡아 '준산'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아픈 2위를 경험한 뒤 지난해 우승의 기쁨을 누렸다.

지도자는 굴곡을 거치며 성장한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홍 감독에게는 이런 인생 역정이 쌓였다. 국민적 비난을 받다가 울산 우승과 함께 적어도 울산시민들에게는 오랜 우승의 한과 응어리는 풀어준 영웅으로 올라섰다. 또, 축구협회의 몰상식한 행정력을 보면서 홍 감독-김 전 위원장 체제를 그리워하는 팬들까지 생겼었으니 격세지감이다. 물론 여론은 생물이라 그의 행보에 따라 또 갈릴 가능성도 있다.

김상식 감독은 처음부터 전북 사람은 아니었다. 그에게는 성남 일화 색채가 강했다. 베테랑의 세대교체로 쫓겨나듯 2009년 성남에서 전북으로 이적해 그해 첫 리그 우승에 기여하며 전북의 녹색 전사로 함께 했고 코치와 수석 코치로 경험치를 쌓은 뒤 감독 지휘봉을 잡았다.

초보 감독인 김 감독은 2021년 K리그 우승을 제조했다. 2022년에는 K리그 2위, FA컵 우승을 해냈다. 분명 성과를 낸 인물이지만, 구단이 성장해 눈높이가 높아진 전북 팬들 앞에는 성이 차지 않았다. 호불호가 갈리는 감독이 됐고 "김상식 나가!"라는 외침을 어렵게 견디다 결국 옷을 벗었다.


 

▲ 수원 삼성이 18일 이병근 감독의 경질 소식을 알렸다. ⓒ수원 삼성
 
 
▲ 김상식 감독과의 결별을 알린 전북 현대 ⓒ전북 현대
 
 



김 감독에게는 분명한 선수단 구성 단, 장기 계획이 있었다. P라이선스 교육에서 조규성의 입대를 은연중 말했던 것은 김천 상무를 통해 군복무를 빨리 해결하고 와서 홀가분하게 뛰라는 김 감독의 숨은 배려가 있었던 것이다. 조규성은 월드컵 가나전에서 두 골을 넣으며 날아다녔고 국민적인 스타로 올라섰다. 유럽행 가능성이 거론되는 등 거물급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조규성의 곁에 김 감독은 없다. 김두현 코치가 대행 체제를 맡았다. 김 코치가 맡은 것도 올해 P라이선스 교육 자격을 얻어 가능했다. P라이선스 없이 임시 지휘를 해도 60일 내라는 기한 규정이 있기에 전북이 훨씬 어려운 상황에 빠질 가능성이 있었다. 일단 김 대행 체제지만, 새 감독을 빨리 구해야 하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전북이 우승권 팀이니까 이런 상황은 충분히 지도자가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리도 분명 맞는 말이다. 과거 명성을 떨치지 못하는 여전히 기대치가 묻어 있는 수원도 그렇다. 관심을 크게 받는 만큼 지도자가 갖는 마음도 하위권 팀과는 달라야 한다. 레알 마드리드, FC바르셀로나, 첼시 등 유수의 구단도 우승을 못 하면 감독에게 책임을 물었고 결별의 수순을 밟았다.

다만, 이들 구단은 어떤 대회라도 우승하면 상황이 나빠져도 감독을 최대한 외부의 부정 여론으로부터 보호하려 구단주나 대표, 단장 등 사무국이 나서 언론을 통하든 팬들 앞에 서서든 이해를 구했다. 연장선상에서 전북이나 수원은 이런 모습이 단 1%도 보이지 않았다. 사과문을 냈다고는 하나 팬들이 이해하지 못했고 수긍하지도 않았다.

김 감독을 통해 향후 K리그에는 적어도 부임 3년 내 우승을 해내도 다시 성적이 고꾸라져 강등권이라도 간다면 명줄이 잘리는 선례가 만들어졌다. 김 감독의 전략, 전술이 팬들의 마음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것을 떠나 성적지상주의가 우선이라고 하더라도, 지도자 자체가 파리 목숨인 비정규직 계약직이더라도, 최소한의 인정과 기다림이 있었던 문화는 이번 일을 계기로 확실하게 사라졌다.

김 감독보다 먼저 경질된 이병근 전 감독은 조만간 일본으로 향한다. 정성룡이 뛰는 가와사키 프론탈레 등 J리그 현장을 보면서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일본 축구는 얼마나 달라졌는지 등을 머릿속에 넣고 오겠다고 한다.

경질 후 최성용 감독대행 체제에서 치른 FC서울-포항 스틸러스-대구FC전 모두 패했다. 이 감독은 "사실 서울과 포항전까지는 치르고 싶었다. 분명 경기력 개선의 기미가 보였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경질 통보였다. 어쩌겠나. 받아들여야 한다"라며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

김상식 감독은 당분간 휴식을 취한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많이 지쳐 있어 회복이 필요하다. 김 감독의 한 측근은 "겉으로는 단단한 사람이지만, 마음고생이 정말 심했다. 버스 막기에서 비판을 사실상 혼자 다 받지 않았나. 육체적, 정신적 피로가 극에 달했고 겨우 버텼다"라고 전했다.


 

▲ 김병수 신임 수원 삼성 감독 ⓒ수원 삼성
 
 
▲ 김두현 전북 현대 감독대행 ⓒ한국프로축구연맹
 
 



K리그 구단들은 유독 새로운 지도자를 빨리 갈아 끼우는 경향이 있다. 경험 풍부한 지도자를 다시 중용하는 유럽 리그나 국내 프로야구, 프로농구, 프로배구와는 결이 다르다. 많은 경험을 쌓은, 자비를 들여 해외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는 '학범슨' 김학범 감독마저도 퇴물 취급하는 안타까운 문화가 상존한다. 지도자가 경험을 쌓아 익어가며 졸장에서 지장으로 또 용장과 명장으로 성장하는 시간과 기회를 얻는 것을 사치라고 보는 일부 시각이 존재한다. K-알렉스 퍼거슨, 아르센 벵거, 위르겐 클롭을 보는 것이 쉽지 않은 이유다.

어쨌든 공은 '시즌 중 감독 결별'을 선택한 허병길 전북 대표이사와 이준 수원 대표이사, 오동석 단장에게 넘어갔다. "프런트는 뒤로 숨지 말라"라는 팬들의 외침에 자신들이 각자의 모기업에서 근무하며 쌓은 비책으로 대답할 차례다. 위기를 수습하는 것도 능력이다. 프로 스포츠단 운영 능력을 이럴 때 보여줘야 한다. 새 감독 선임으로 모든 것이 해결된다 생각하면 오산이다. 분업화 시대에 감독은 마법사가 아니라는 시선을 인정하고 움직여야 한다.

두 팀의 올해 평균 관중 수는 전북이 6경기 9,988명(총관중 5만9,927명)으로 전체 4위, 수원이 5경기 8,458명(총관중 4만2,291명)으로 6위다. 수도 프리미엄을 안고 있는 1위 FC서울(4경기 총관중 11만7,946명, 평균 2만9,487명)을 빼고 2위 울산 현대(5경기 총관중 8만7,279명, 평균 1만7,456명), 3위 대전 하나시티즌(5경기 총관중 7만1,380명, 평균 1만4,636명)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극약 책을 쓴 만큼 현재(전북)와 과거(수원) 한국 축구를 선도하는(했던) 구단으로서의 책임감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무엇보다 두 구단은 아시아 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ACL)를 통해서도 구단의 가치를 키웠다. 한국을 품은, 아시아까지 생각하는 '글로벌 구단'의 책임감을 통감하기를 바라는 것은 사치일까.


 

기사제공 스포티비뉴스

이성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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