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저스, 김혜성 영입 후 전천후 자원으로 육성…팀내 베테랑 선수 은퇴·부진도 호재
김혜성·이정후·김하성 모두 메이저리그에서 뛰면 키움 출신 선수들의 대활약 가능
2024년은 일본 야구의 미국 도전사에 길이 남을 시즌이었다. 오타니 쇼헤이(LA 다저스)는 50홈런, 50도루를 역대 최초로 달성했다. 통산 세 번째 MVP 역시 만장일치로 수상함으로써, 북미 4대 프로 스포츠(야구, 농구, 미식축구, 아이스하키)에 없었던 3회 기록을 달성했다. 야마모토 요시노부와 다르빗슈 유(샌디에이고)는 일본인 투수 최초로 포스트 시즌에서 선발 대결을 했고, 일본의 TV 시청자 수가 미국의 시청자 수보다 많았던 월드시리즈에서는 오타니와 야마모토의 소속팀 다저스가 우승을 차지했다. 일본 선수가 5명이나 출장한 다저스와 시카고 컵스의 2025년 도쿄 개막전은 그야말로 축제였다.
한국 선수들에겐 우울한 2024 시즌이었다. 큰 기대를 모았던 이정후(샌프란시스코)는 시즌을 마감하는 어깨 부상을 5월초에 당했고, 김하성(샌디에이고)마저 8월에 어깨를 다쳐 포스트시즌에 참가하지 못했다. 고우석(현 마이애미)은 샌디에이고와 계약했지만 데뷔하지 못한 채 트레이드됐고, 최지만의 경력도 단절됐다. 배지환(피츠버그)까지 자리를 잡지 못하면서, 한국 선수들이 기록한 홈런 13개는 오타니 혼자 친 59개보다 46개나 적었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은 깊은 잠에서 깨어나 기지개를 켜고 있다.
LA 다저스 김혜성이 2월22일 피닉스에서 열린 캔자스시티 로열스와의 스프링 트레이닝 경기에서 타석에 들어서 있다. ⓒAP연합
악재 떨치고 반격 준비하는 2025 시즌
이정후가 지난해 아시아 타자 최고 대우로 계약했을 때, 의심의 눈초리가 등장한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애런 저지에 이어 오타니를 놓친 샌프란시스코가 당황한 나머지, 이정후를 충동구매했다는 것. 저지가 한 해 친 홈런이 62개(2022년)인데, 이정후의 KBO 통산 홈런이 65개인 걸 놀리는 반응도 있었다. 이정후는 부상을 당했고, 이정후를 영입한 단장은 해임됐다.
하지만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졌다. 이정후는 4월12일 양키스타디움 경기에서 역풍을 뚫고 날아간 시즌 1호 홈런을 날렸다. 시작하자마자 이정후에게 스리런 홈런을 맞은 양키스의 선발투수는 1회를 버티지 못했다. 4월14일 이정후는 좌완 카를로스 로돈을 상대로 홈런 두 개를 때려냈다. 통산 200번째 선발을 앞둔 로돈이 같은 좌타자에게 두 개의 홈런을 맞은 경기는 데뷔 후 처음이었다. 로돈은 이정후에게 솔로 홈런과 스리런 홈런을 맞는 바람에 4실점 패전을 안았다. 이정후는 2루타라는 숙제를 가뿐히 풀더니, 홈런까지 치기 시작했다.
유격수가 어깨 부상을 당한 건 엄청난 악재였다. 김하성은 FA 유격수 중 두 번째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계약은 해를 넘기고도 발표되지 않았다. 스프링 트레이닝 시작을 2주 앞두고, 마침내 행선지가 정해졌다. 탬파베이 레이스였다. 돈을 적게 쓰기로 유명한 탬파베이가 2년 2900만 달러 계약을 주면서, 김하성은 팀내 최고 연봉 선수가 됐다. 김하성이 초반에 결장하더라도 절대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탬파베이가 판단한 것이다. 김하성은 5월을 목표로 복귀를 준비하고 있다.
김혜성, 다저스가 낸 두 가지 숙제 풀어야
김혜성이 LA 에인절스 대신 다저스와 계약한 건 무모한 것처럼 보였다. 다저스는 선수단 연봉이 4억 달러로, 에인절스의 두 배, 탬파베이의 네 배인 팀이고, 그만큼 선수층이 두터웠다. 아니나 다를까, 김혜성은 일찌감치 마이너리그행이 발표됐다. 박병호는 개막 석 달 만에 마이너리그로 내려간 후 다시 올라오지 못했다. 마이너리그에서 시작해 데뷔하지 못하고 돌아온 윤석민, 데뷔는 했지만 몇 경기 못 뛰고 돌아온 양현종과 황재균도 있었다.
하지만 김혜성은 차분했다. 처음부터 각오하고 있었던 데다, 팀의 의도를 확실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저스는 김혜성이 매우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도 장타를 많이 못 치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파악했다. 다저스는 시범경기가 시작되자마자 김혜성에게 레그킥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일본에서 레그킥을 하던 오타니가 첫해 시범경기에서 레그킥을 버린 것과 같았다.
김혜성은 트리플A에서 거의 전 경기에 출전 중이다. 다저스는 최대한 많은 타석에 들어설 수 있도록 1번에 고정시켰고, 10경기가 넘어서자 홈런이 나오기 시작했다. 지금까지는 다저스의 계획 그대로다.
다저스가 시간이 많이 필요하다고 본 다른 이유는 유격수와 중견수도 맡기기 위해서였다. 김혜성은 한국에서 외야 경험이 없다시피 했고, 유격수 도전도 송구 불안 때문에 실패했다. 하지만 다저스는 김혜성의 신체 능력과 성실성이라면 새로운 수비를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현재 김혜성은 2루수, 유격수, 중견수로 계속 번갈아가면서 출전하고 있다.
시간도 김혜성의 편이다. 지난해 무키 베츠의 부상 공백을 완벽하게 메웠던 미겔 로하스(36)는 올해가 마지막 시즌이고, 지난해와 같은 활약을 다시 기대하기 어렵다. 크리스 테일러(34)는 연봉이 1300만 달러에 달하지만 부진에 빠진 지 오래이기 때문에, 시즌 중 방출될 가능성이 높다. 포스트시즌 성적이 뛰어난 키케 에르난데스(33) 역시 나이가 많고, 시즌 후 계약이 종료된다. 다저스는 빠르면 올 시즌 중반, 혹은 시즌 후 이들 중 일부, 혹은 전부가 사라질 수 있다고 판단해 김혜성을 영입했다. 또한 앤디 파헤스(24)의 중견수 수비가 계속 불안할 경우, 토미 에드먼을 중견수로 옮기게 되면 2루 자원이 필요해진다.
메이저리그는 뛰는 야구가 흥행의 열쇠라고 믿고 있다. 베이스 크기를 키우고, 견제를 제한하자 도루가 크게 늘었고, 인기도 높아졌다. 초호화 전력을 만든 다저스지만, 약점은 존재한다. 도루를 할 수 있는 선수가 부족하다는 것. 2004년 ALCS 4차전에서 4연패 탈락 위기에 몰린 보스턴이 9회말 대주자 데이브 로버츠(현 다저스 감독)의 도루를 발판으로 3연패 후 4연승 신화를 만든 것처럼, 단기전에선 대주자가 대단히 중요하다. 다저스에서 확실한 대주자가 될 수 있는 선수는 김혜성이 유일하다.
정규시즌 승률이 월드시리즈 우승과 관계가 없다는 걸 깨달은 다저스는 지난 시즌 내내 속도 조절을 했다. 이길 수 있는 경기도 포기하면서 투수들을 아꼈고, 지치지 않은 투수들로 가을야구를 시작했다. 다저스는 올해도 가을이 다가올 때 최종 전력을 만들 것으로 보인다. 디데이는 트레이드 마감일인 8월1일이다. 8월1일이 됐을 때, 김혜성도 다저스의 전력 구상 안에 있어야 한다. 그러려면 다저스가 내준 두 가지 숙제, 레그킥을 하지 않고 장타를 때려낼 것과 세 포지션에서 안정적인 수비를 증명해야 한다.
김혜성까지 올라오면 메이저리그의 '히어로즈 삼국지'가 시작된다. 키움 히어로즈 출신 김하성, 이정후, 김혜성이 함께 활약하는 것이다. 내년 WBC에서 역대 최고 전력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한국 야구는 히어로즈 트리오가 타선의 틀을 잡아줄 것이다. 국제대회에서의 연속된 부진 후 재도약을 꿈꾸는 한국 야구의 마지막 퍼즐은 김혜성이고, 김혜성의 메이저리그 활약이 될 것이다.
김형준 SPOTV 메이저리그 해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