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뉴스 | 김동윤 기자]
이정후. /AFPBBNews=뉴스1
이정후(26·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가 한국인 메이저리거 최초 기록을 단 몇 ㎝ 차이로 놓쳤다. 모두가 홈런임을 직감하고 벌떡 일어설 정도로 아쉬운 타구였다.
이정후는 22일(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의 오라클 파크에서 펼쳐진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 2024 메이저리그(MLB) 정규시즌 홈 경기에서 1번 타자 겸 중견수로 선발 출전해 2타수 무안타 2사사구(1볼넷 1몸에 맞는 볼) 기록했다. 시즌 타율은 0.289에서 0.282로 떨어졌고 출루율은 0.330에서 0.337로 올랐다.
4타석에서 안타를 만들지 못하면서 지난 8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전부터 이어온 이정후의 한국인 메이저리거 연속경기 안타 행진은 '11'에서 멈췄다. 2경기를 더 쳤다면 2022년 최지만(뉴욕 메츠), 3경기를 더 쳤다면 2012년, 2015년 추신수(SSG 랜더스)와 2023년 김하성의 한국인 메이저리거 최장기간 연속 안타 기록에 도전할 수 있었다. 하지만 11경기 연속 안타로 2015년 강정호(당시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와 2016년 김현수(당시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기록한 10경기 연속 달성을 넘어 한국인 메이저리거 데뷔 시즌 연속 안타 신기록을 세웠다.
가장 아쉬운 타석이 샌프란시스코가 2-3으로 뒤진 6회 말 타석이었다. 선두타자로 나선 이정후는 애리조나 선발 슬레이드 세코니의 초구 포심 패스트볼(시속 91.9마일)을 통타해 오라클 파크 우측 담장을 크게 넘겼다. 오라클 파크 우측에 위치한 맥코비만에 그대로 빠지는 대형 타구였다. 단, 육안으로 봐도 몇 ㎝가 모자랐다. 이 타구는 우측 파울 폴대 바깥쪽으로 향하면서 아쉽게도 홈런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이 타구가 폴대 안쪽으로 들어왔다면 이틀 연속 홈런에 이어 연속 안타 기록도 이어갈 수 있었다.
놓친 기록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이정후 스스로도 욕심을 냈던 스플래시 히트였다. 스플래시 히트는 2000년 오라클 파크가 개장한 이후 단 102개밖에 나오지 않은 진기록이다.
조건부터가 까다롭다. 스플래시 히트는 샌프란시스코 소속 선수가 맥코비만의 강한 맞바람을 이겨내고 타구를 바다 안에 바로 보낸 것만 인정받는다. 원정 선수가 기록한 홈런은 스플래시 히트로 인정받지 못하고 맥코비 만에 떨어진 홈런(Other Home Runs into McCovey Cove)이라는 이름으로 따로 명단을 작성해 기린다.
이정후. /AFPBBNews=뉴스1
한국인 메이저리거 중에서는 최희섭과 추신수가 각각 한 번씩 성공했다. 최희섭은 플로리다 말린스(현 마이애미 말린스) 소속으로 2004년 5월 1일 케빈 코레이아, 추신수는 텍사스 레인저스 소속으로 2020년 8월 3일에 제프 사마자를 상대로 기록했다. 과거 샌프란시스코에서 뛰었던 황재균은 기록하지 못했다.
넘기는 것 자체가 까다롭다. 홈, 원정 선수 모두 포함해도 25시즌 동안 163개 홈런만이 스플래시 히트 최소 조건을 충족했다. 오라클 파크의 우측 폴대는 94m로 거리는 짧지만, 7.3m가 넘는 담장을 해풍을 뚫고 그대로 넘겨야 해 타구 속도와 비거리 모두 중요하다. 그만큼 밀어 쳐 넘기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우타자가 맥코비 만에 공을 빠트린 사례도 한 번도 없다.
오라클 파크 우측 인도에 맞고 바다에 들어간 것도 인정되지 않는다. 2017년 5월 13일 신시내티전에서 디너드 스팬(은퇴)이 친 홈런도 바다에 빠지긴 했으나, 보도블록에 맞고 튕겨 빠진 것이기에 73번째 스플래시 히트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 탓에 파워와 정교한 타격 기술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기록하기 어렵다. 배리 본즈가 35개로 가장 많은 스플래시 히트를 기록했고, 브랜든 벨트가 10개, 파블로 산도발이 8개로 뒤를 이었다.
그만큼 어려운 기록이기에 이정후는 샌프란시스코 입단 당시부터 스플래시 히트에 욕심을 냈었다. 이정후는 지난해 12월 입단식 당시 "한국에서는 돔구장에서 뛰었는데 천연잔디 구장에서 뛰게 돼 좋다. 가장 유명한 스플래시 히트가 기대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이정후(왼쪽). /AFPBBNews=뉴스1
미국 현지 취재진에게도 이정후의 스플래시 히트는 관심사였다. 전날 이정후가 오라클 파크에서 첫 홈런을 기록하자, 현지 취재진은 "스플래시 히트는 얼마나 시간이 필요할까?"라고 질문했다. 이에 이정후는 "그러게요, 그건 어떻게 될까요. 잘 모르겠네요"라며 멋쩍은 미소와 함께 답한 바 있다.
한편 이정후와 메릴 켈리의 맞대결도 무산됐다. 당초 이날 애리조나는 켈리를 선발로 예고했다. 2015년부터 2018년까지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에서 활약했던 켈리를 상대로 이정후는 타율 0.467(15타수 7안타), 출루율 0.526 장타율 0.600으로 매우 강했다. 그 때문에 연속 안타 기록이 기대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켈리가 등판 전 캐치볼을 하다 어깨 통증을 느껴 등판이 미뤄지면서 맞대결이 무산됐다. 메이저리그 공식 홈페이지 MLB.com에 따르면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결과 어깨 근육에 손상이 발견됐다. 결국 애리조나는 선발을 2년 차 슬레이드 세코니로 교체했다.
세코니는 깜짝 선발 등판에도 최고의 활약을 펼쳤다. 세코니는 5회 2아웃까지 노히트 행진을 이어가는 등 6이닝 2피안타(1피홈런) 1몸에 맞는 볼 3탈삼진 2실점으로 샌프란시스코 타선을 잠재우면서 시즌 첫 승을 거뒀다. 반면 샌프란시스코 선발 요르단 힉스는 5이닝 1피안타 6사사구(4볼넷 2몸에 맞는 볼) 1실점으로 흔들렸고, 에릭 밀러가 1이닝 2피안타 무사사구 1탈삼진 2실점(1자책점)으로 패전 투수가 됐다.
김동윤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