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스포츠 안희수] 야구는 선수 한 명이 공격과 수비를 모두 소화한다. 축구처럼 포지션으로 구별되지 않는다. 개개인이 일정 수준 이상의 능력을 겸비해야한다. '반쪽 선수'는 활용 가치가 떨어진다. 특히 주전 도약을 노리는 젊은 선수에겐 수비력이 중요하다.
LG는 올 시즌 성공적인 리빌딩을 치렀다. 지난해 가능성을 보여준 선수와 군 제대 선수 중에 주전으로 도약할 자질을 갖춘 선수가 많았다. 주축 선수의 이적을 감수하면서 큰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실행했다. 젊은 선수들은 꾸준히 경기에 나서며 경험을 쌓았다. 어느새 팀 전력을 상승시켰다. 시즌 종료를 앞둔 현재 긍정적인 평가가 지배적이다. 리그 4위에 올라있는 성적이 뒷받침한다.
하지만 모두가 웃진 못했다. 기회를 얻은 젊은 선수들 사이에서도 희비가 엇갈렸다. 큰틀에서 보면 수비력이 부족한 선수는 아쉬움을 남겼다. 2루수 정주현이 대표적이다. 기존 주전 손주인을 밀어내고 개막전 선발 라인업에 포함된 선수다. 전지훈련과 시범 경기를 통해 공격력을 갖춘 내야수로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줬다. 하지만 한 달도 지나지 않아 다시 손주인에게 자리를 내줬다. 타석에서 성적도 두드러지지 않았지만, 수비에서 불안한 모습을 보여준 게 더 큰 감점 요인으로 보인다. 실책성 플레이가 많았다. 특히 송구가 불안했다. 현재 정주현은 손주인의 체력 관리 차원에서 대신 출전하는 경기가 많다.
지난해 거포로 성장할 가능성을 보여준 서상우도 같은 처지다. 내야수인 그는 1루 수비도 불안감을 줬다. 아직은 향상 정도를 보여주지 못했다. 퓨처스리그에선 4할 대 타율을 치는 타자다. 하지만 1군에선 대타 요원으로 활용될 뿐이다. 그마저도 팀에 자원이 많아 상대적인 가치가 떨어진다. 올 시즌 아킬레스건 부상까지 겹쳤다.
반면 외야수 이천웅과 이형종은 수비에서도 성장세를 보였다. 이천웅은 타구 처리가 어려운 코너 외야에서 비교적 안정감 있는 수비를 한다. 겨우내 훈련을 했고, 실전 경험이 쌓이면서 자신감도 붙었다. 포스트시즌 진출 분수령이던 지난 16일 잠실 KIA전에선 6회 말 2사 1루에서 브렛 필의 날카로운 타구를 몸을 날려 잡아내 리드를 지켜냈다. 양상문 감독은 "포구보다 몸을 날려 승부를 건 시도 자체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고 했다. 수비에서 자신감이 붙으면 타석에서도 신날 수밖에 없다. 최소한 주눅이 들진 않는다. 이형종도 강한 어깨로 상대 주자를 견제하는 수비를 자주 보여줬다.
주전 도약을 눈앞에 두고 다시 경쟁을 해야하는 선수도 있다. 롯데 오승택이 대표적이다. 그는 개막 7경기 만에 왼 정강이 분쇄골절상을 당했다. 겨우내 수비 훈련에 매진해 성과를 보던 상황에서 악재를 겪었다.
지난 8월 중순에서야 복귀했지만 수비는 소화하지 않았다. 타격 능력을 인정받아 지명타자로 기용됐다. 기존에 자리를 지키던 최준석보다 우선 순위에 있었다. 하지만 무릎 부상을 겪은 뒤 돌아온 강민호가 관리 차원에서 수비를 하지 않게 되면서 지명 타자는 새 주인을 맞았다. 오승택은 이후 주로 대타로 나선다. 군 제대 선수 신본기가 오승택보다 앞선 수비력으로 주전 도약을 노리고 있다. 조원우 감독은 "아직 오승택의 수비 활용은 지켜봐야한다"고 했다.
지난해 신인왕 구자욱처럼 타격 능력을 앞세워 주전으로 도약하는 경우는 드물다. 젊은 선수들이 기회를 얻기 위해선 공격보다 수비가 먼저 뒷받침돼야한다. 지난해 2차 드래프트로 삼성 유니폼을 입은 '거포 기대주' 나성용은 올 시즌 1군 무대 1경기 출전에 그쳤다. 퓨처스리그에선 3할 타율을 기록하며 펄펄 날았다. 그 역시 수비력이 부족해 중용되지 못했다.
이제는 삼성의 주전 중견수 주인이 된 박해민도 시작은 수비였다. 워낙 뛰어난 수비 범위와 탁월한 포구 능력을 갖고 있었다. 타격 능력보다는 재치 있는 번트 타구를 생산해 주목받기도 했다. 대수비, 대주자로 나서 사령탑에 눈도장을 찍은 뒤 기회를 늘려갔고 도루 능력, 그리고 타격 능력까지 선보였다. 수비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안희수 기자
기사제공 일간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