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수는 핵심 불펜이 떠난 올 시즌 넥센의 새 영웅으로 떠올랐다(사진=넥센)
[엠스플뉴스]
넥센 히어로즈는 창단 이후 4번째 포스트시즌 무대를 앞두고 있다. 주축 선수들의 대거 이탈로 개막 전까지만 해도 꼴찌후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보란듯이 정규시즌 3위를 차지했다. 슈퍼 영웅들이 떠난 자리에는 지난해까지 백업이던 선수, 누구도 주목하지 않던 선수들이 새로운 영웅으로 등장해 빈 자리를 채웠다.
“우리 팀은 특출한 선수 한 두명이 잘해서 여기까지 온 게 아닙니다. 선수단 전체가 각자 위치에서 자기가 가진 능력을 최상으로 발휘해준 덕분에 좋은 성적을 내고 있어요.” 넥센 염경엽 감독의 말이다.
그런 면에서 우완 불펜 김상수는 소속팀 넥센과 닮은 점이 많은 선수다. ‘장원삼 트레이드’에 포함되어 2010년 처음 넥센에 건너왔을 때만 해도, 김상수의 잠재력을 주목하는 이는 많지 않았다. 넥센을 향해 ‘주축 선수를 현금 트레이드로 팔아 치웠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김상수와 박성훈을 장원삼과 트레이드했다는 시각보다는, 현금 20억원에 ‘덤’으로 선수까지 얹어줬다는 시각이 많았다.
“많은 분들이 트레이드 당시 삼성에 배신감이나 서운함을 느끼지 않았느냐고 물어보세요. 그런데 그 때는 너무 어려서 그런지, 별다른 느낌이 없었어요. 오히려 주위에서는 ‘좋은 기회다’ ‘넥센에서 꼭 기회를 잡아라’고 격려해 주셔서 감사했죠.” 김상수의 말이다.
김상수의 삼성 시절(사진=삼성)
확실히 넥센 이적 후 김상수는 삼성 시절보다 많은 기회를 받았다. 데뷔 이후 첫 선발등판도 했고,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1군에서 꾸준히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성적이 생각만큼 따라주질 않았다. 2010년 17경기 45이닝 동안 1승 2패 평균자책 6.20, 2011년에도 24경기 59.2이닝 1승 4패 평균자책 6.49로 부진한 기록을 이어갔다. 트레이드 당시의 부정적인 평가가 현실이 되는 것처럼 보였다.
“넥센에 온 뒤 1, 2년 동안은 정말 야구가 너무 안 되더라구요. 철없는 어린 나이에, 몸과 마음이 너무 힘드니까 야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죠.” 김상수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다행히 주위에서 힘을 주시고 붙들어준 덕분에, 마음을 다잡고 다시 야구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2014년 국군체육부대(상무) 입대는 김상수의 야구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됐다. 입대 첫해 김상수는 10승 3패 평균자책 4.04로 퓨처스 남부리그 다승 공동 1위에 오르는 활약을 했다. 2015년에는 한 단계 더 도약해 14승 3패 평균자책 3.02로 남부 다승부문 단독 1위와 탈삼진 1위를 차지했다. 아시아야구선수권 대표로 출전해 우승 멤버가 되는 기쁨도 맛봤다.
군 복무를 마치고 팀에 복귀했을 때, 김상수는 트레이드 직후의 앳된 모습과는 전혀 다른 선수가 되어 있었다. 70kg대로 호리호리했던 체격은 90kg대 근육질 몸이 됐고, 불안했던 제구와 변화구 구사도 안정감을 찾았다. 무엇보다 마운드에서 전에는 볼 수 없던 당당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이런 자신감은 올 시즌의 좋은 성적으로 고스란히 이어지고 있다. ‘불펜 3대장’ 한현희, 조상우, 손승락이 빠져나간 올해 넥센 마운드에서 김상수는 김세현, 이보근과 함께 새로운 불펜 필승조로 활약하고 있다. 마운드 운용에서 ‘선택과 집중’을 중시하는 염경엽 감독은 김상수를 철저하게 이기는 경기, 꼭 잡아야 할 경기에만 집중적으로 투입하고 있다.
10월 7일까지 김상수는 팀내에서 가장 많은 67경기에 등판해 불펜 투수 중 가장 많은 74이닝을 던졌다. 홀드는 21개로 이보근에 이어 팀내 2위, 리그 전체에서도 3위에 올라 있다. 대체선수대비 기여승수(WAR)도 1.4승으로 불펜투수로는 김세현(2.9승)에 이어 팀내 2위, 팀내 투수 전체에서도 6위에 이름을 올려놓고 있다. 마무리 김세현과 함께 가장 ‘믿고 쓰는’ 투수로 자리를 잡은 셈이다.
“감독님, 코치님이 많이 배려해 주시고 믿음을 주시는 게 느껴집니다.” 김상수의 말이다. “덕분에 조금씩 자신감을 얻으면서 좋은 투구를 할 수 있었어요.” 4월에 홀드 2개였던 김상수는 5월에 7홀드, 6월에 6홀드를 추가하며 ‘필승조’라는 코스튬에 점차 익숙해졌다.
“마운드에 올라가면 우선 상황을 생각합니다. 스코어와 상대 타자, 그리고 이전 승부 결과가 어땠는지를 생각하고 상황에 맞게 투구하려고 합니다.” 김상수의 얘기다. “무엇보다 마무리 (김)세현이가 올라왔을 때 최대한 편안한 상황을 만들어 주려고 해요. 제가 못 던져서 아슬아슬한 점수차가 되거나 주자를 쌓아둔 상태로 세현이가 올라오지 않게, 9회에 편안하게 올라올 수 있도록 제가 맡은 이닝은 반드시 제가 막는다는 생각을 하죠.”
언제나 부담과 긴장이 가득한 상황에서 마운드에 오르지만, 위기를 잘 막아냈을 때는 큰 보상이 따른다. “정말 짜릿합니다. 타자로 치면 마치 만루홈런을 친 것 같은 쾌감을 느껴요. 늘 부담은 되지만, 긍정적으로 제 역할을 받아들이려 하는 이유죠.” 김상수의 말이다.
맞혀잡는 넥센 마운드의 닥터 K
김상수의 장점은 묵직한 패스트볼이다(사진=넥센)
특히 김상수의 가장 큰 장점은 넥센 투수진 중 가장 뛰어난 탈삼진 능력이다. 김상수는 불펜 투수임에도 탈삼진 75개로 팀내 투수 중 3위에 올라 있다. 또 9이닝당 탈삼진도 9.24개로 에이스 밴헤켄(10.13)에 이어 팀내 2위다. 넥센 마운드는 삼진을 잡기보다는 존 안으로 공을 던져 인플레이 타구를 유도하는 피칭 전략을 구사한다. 이에 9이닝당 탈삼진도 6.30개로 리그 10개 팀 중 가장 적다. 이런 넥센에서 이닝당 1개꼴로 삼진을 잡아내는 김상수는 예외적인 존재다.
“공격적인 피칭을 한 게 비결인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선발로 던지던 때는 완급 조절을 해야 했고 투구수를 절약하는 피칭이 필요했어요. 이제는 불펜으로 던지다 보니 보다 공격적 투구를 하게 됩니다.” 김상수의 말이다. “공격적 투구를 하면 투수에게 유리한 카운트가 만들어질 때가 많아요. 그러면 유인구를 던질 기회가 오고, 볼을 던져도 타자들이 스윙을 하게 되죠. 그런 면에서, 투수에게 자신감 만큼 중요한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잘 던지는 공 위주로 변화구 구종을 단순화한 것도 도움이 됐다. “원래는 슬라이더와 서클체인지업도 던졌는데, 올해는 조금 더 단순하게 가기 위해 비중을 줄였습니다. 패스트볼, 스플리터, 커브. 이렇게 세 가지 구종 위주로 승부하는 게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김상수의 말이다. 실제 올 시즌 김상수는 패스트볼 비율 55.4%에 19.7%로 스플리터를, 14.3%의 비율로 커브를 구사했다.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은 합쳐서 10%가 되지 않았다.
손혁 투수코치는 김상수의 가장 큰 강점이 패스트볼의 구위에 있다고 말한다. “상수의 최고 무기는 패스트볼이에요. 상무 입대 전보다 구속도 훨씬 빨라졌지만, 공의 회전력이 워낙 좋아서 힘있는 공이 들어옵니다. 그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유도하고 있어요. 자기 장점을 살리는 피칭을 해야죠.” 손 코치의 얘기다.
김상수 스스로도 가장 자신있는 무기는 “직구”라고 망설임 없이 말한다. “제 공에 대한 자신감이 있습니다. 제 공을 믿어요. 아무리 좋은 타자가 나와도, 제가 좋은 공을 던지면 타자를 막아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김상수의 강력한 구위는 통계를 통해서도 드러난다. 김상수는 헛스윙 비율 23.1%로 팀내 투수 중 마무리 김세현(23.5%) 다음으로 높은 헛스윙율을 기록하고 있다. 김세현의 패스트볼 구속이 150km/h를 넘나드는 반면, 김상수는 평균 142km/h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다.
2스트라이크 이후 공이 커트당한 비율도 68.3%로 팀내 투수 중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또 뜬공 중 내야뜬공 비율 역시 40%로 팀내 투수 중 가장 높은 비율을 기록 중이다. 타자가 배트에 컨택트한 비율을 나타내는 컨택트%도 김세현(76.7%)에 이어 두번째로 좋은 76.9%다. 위력적인 구위가 숫자를 통해 증명되고 있는 셈이다.
“확실히 군입대하기 전보다 스스로 힘이 좋아졌다는 걸 느껴요.” 김상수가 말했다. “웨이트 트레이닝 덕분이죠. 트레이너 코치님들 도움으로 열심히 웨이트 트레이닝을 하면서 구위가 부쩍 좋아진 것 같습니다.”
김상수와 넥센의 동반 성장 스토리
팀이 필요할 때면 언제나 마운드에 오른다(사진=넥센)
처음 트레이드로 넥센에 건너왔을 때, 김상수는 누구도 주목하는 이 없는 평범한 투수였다. 하지만 7년이 지난 지금, 김상수는 위력적인 공을 던지는 핵심 불펜투수로 성장했다. 염경엽 감독은 이런 성장이 코칭스태프가 아닌 선수 개인의 노력이 만든 결과라고 지적한다.
“선수가 입단 이후 3년 이내에 성공을 거뒀다면, 코칭스태프의 육성 능력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그보다 오랜 기간, 6~7년이 걸려서 성공했다면 그건 선수 스스로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해서 이룬 결과입니다.” 염 감독이 들려준 얘기다.
물론 김상수의 생각은 전혀 다르다. “감독님 코치님이 믿어 주시고 기회를 주셨기에 지금처럼 좋은 투구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투구수 관리도 잘 해주셨구요. 또 부상 없이 시즌을 치르게 도와준 트레이너 코치님들도 많은 도움을 주셨구요. 항상 감사한 마음 뿐입니다.”
이처럼 서로간의 끈끈한 믿음은 누구도 주목하는 이 없던 김상수를, 그리고 넥센을 강하게 만든 비결이다. ‘트레이드 카드로 쓰인 평범한 투수’였던 김상수는 팀 승리를 책임지는 필승조 투수가 됐고, 소속팀 넥센도 ‘꼴찌후보’ 평가를 딛고 4년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을 앞두고 있다.
김상수는 “외부에서 보는 사람들은 넥센을 약하다고 생각했을지 몰라도, 선수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고 말한다. “캠프 때부터 선수들끼리 이야기했어요. 팀에서 아무리 좋은 선수가 나갔더라도 여전히 우리는 강하다. 우리는 하나다. 그런 말을 주문 외우듯 계속했습니다.” 김상수가 자세를 가다듬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염경엽 감독님도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주축 선수들이 나간 자리에는 또 다른 선수가 나와서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우리가 준비만 잘 한다면, 얼마든지 잘 할 수 있다. 믿음을 갖자’고 말이죠. 그런 믿음이 있었기에, 저도 함께 조금씩 강해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계속된 자기 암시가 저에게도, 팀에게도 큰 힘이 됐다고 봅니다.”
조만간 시작될 포스트시즌은 불펜의 힘에서 승부가 갈리는 무대다. 또한 실책 등의 불확실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투수진의 탈삼진 능력도 중요하다. 정규시즌과 거의 동일한 전력으로 포스트시즌을 치르는 넥센으로서는, 큰 경기에서 갑자기 투수들이 삼진을 많이 잡는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결국 보유하고 있는 선수들로 경기를 치러야 한다. 승부처에 등판해 삼진으로 위기를 막아낼 수 있는 김상수의 역할이 더욱 중요한 이유다.
김상수도 포스트시즌에서 자신이 가진 모든 능력을 동원해 팀의 우승에 일조할 생각이다. “이 멤버들과 함께 우승 한번 꼭 해보고 싶어요. 사람 냄새 나는 지금의 우리 팀과 동료들이 좋습니다. 우리 팀원들과 함께 야구하는 지금이 정말 좋아요. 야구를 정말로 사랑합니다.”
김상수와 넥센의 성장 스토리를 지켜보는 우리들의 마음도 다르지 않다. 이런 스토리가 가득한 야구를,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통계출처=스탯티즈
기사제공 엠스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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