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집권시 알리바이 증명? 이메일 스캔들 종지부? 관측 다양
(워싱턴=연합뉴스) 강영두 특파원 = 미국 대선을 불과 열하루 앞두고 사실상 꺼진 줄 알았던, 민주당 대선후보 힐러리 클린턴의 최대 약점인 '이메일 스캔들'의 불씨가 다시 살아났다.
미 연방수사국(FBI)이 28일(현지시간) 클린턴이 국무장관 시절 개인 이메일 서버로 송수신한 이메일 중에서 기밀을 담고 있는 이메일이 더 있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재수사에 나서겠다고 발표하면서다.
미 언론은 일제히 이번 돌발 사태를 클린턴이 사실상 승기를 굳힌 대선 판도를 흔들 수 있는 '10월의 폭탄'이라며 경합주의 표심 변화 등 그 향방에 상당히 주목했다.
제임스 코미 FBI 국장은 의회 감독위 공화당 지도부 앞으로 보낸 서신에서 "당초 이메일 수사와 무관한 것으로 분류한 이메일 중에서 수사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이메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수사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이 같은 사실을 하루 전인 27일 수사팀에게서 보고받았다고 밝혔다.
아무런 고려나 지체 없이 재수사 결정을 한 것이라는 사실을 우회적으로 강조한 것이다.
CNN 등에 따르면 이들 이메일은 클린턴의 '문고리 권력' '수양딸'로 불리는 최측근 수행비서 후마 애버딘의 전 남편과 관련이 있다고 한다.
FBI와 뉴욕 경찰이 그녀의 전 남편인 앤서니 위너 전 하원의원이 미성년 소녀와 음란 사진과 문자를 주고받은 '섹스팅'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나온 새로운 이메일들이 발견된 것.
이들 이메일은 애버딘이 누군가와 주고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내용은 아직 확실치 않다.
코미 국장 조차도 이메일이 기밀 정보를 담고 있는지 아직 모르며, 조사를 언제 마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고 서한에서 설명했다.
이미 FBI는 1년여에 걸친 수사 끝에 '110건의 기밀이 담긴 이메일을 발견했다. 클린턴이 극히 부주의했지만, 고의성은 없는 것으로 판단해 불기소 권고를 한다'는 결론을 낸 바 있다. 법무부도 FBI의 권고를 받아들여 불기소 처분을 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FBI가 불기소가 아닌 기소를 해야 할 정도로 클린턴의 위중한 행위를 인지한 게 아니냐는 추론이 우선은 가능하다. 이 경우, 클린턴이 불법이라는 사실을 알고서도 관용 메일이 아닌 개인 이메일 서버를 사용했다는 것과 관련된 것일 수 있다.
FBI가 당시 밝힌 불기소 결정은 이메일에 담긴 기밀의 수준이나 내용이 아니라 클린턴의 '고의성' 여부에 따른 것이었기 때문이다.
코미 국장은 서신에서 "아직 해당 이메일이 심각한 것인지 아닌지는 평가할 수 없다"며 더는 언급을 피했다.
이와 관련, 논란이 된 클린턴의 뉴욕 자택에 있던 사설 서버와는 무관한 또 다른 시스템의 존재 가능성도 언급되고 있어 주목된다.
사법당국의 한 고위 인사는 폭스뉴스에 "새로 발견된 이메일은 클린턴의 (개인) 서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다른 정부 기관이 갖고 있던 기기에서 나온 것"이라고 전했다.
그것보다 더욱 궁금한 것은 대선을 11일 불과 11일 남겨둔 가장 민감한 이 시점을 굳이 택해 코미 국장이 재수사 결정 을 했다는 서한을 언론에 전격 공개했느냐 하는 점이다.
지금 재수사를 하더라도 대선 전에 결론을 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코미 국장은 실무 수사팀의 보고 직후 재수사 방침이 결정됐다고 했지만, 수사팀이 언제 그 '수상한' 이메일을 인지해 상부로 보고했는지 그 시점은 공개하지 않았다.
클린턴의 최대 아킬레스건인 이메일 스캔들이 보여준 휘발성을 고려할 때 코미 국장의 '이메일 재수사' 공개가 정치적 고려에 따른 것이며 그 파장도 가늠하기 어렵다는 관측이 나오는 배경이다.
클린턴의 당선 가능성을 누구도 의심치 않지만, 최대 격전지인 플로리다 주가 '클린턴 우세'에서 '경합' 이나 '트럼프 우세'로 바뀌고 있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경합주 흐름의 일부 변화 조짐이 FBI 결정에 영향을 준 게 아니냐는 시각도 나온다.
9개로 파악되는 경합주에서 제대로 바람몰이를 해 보수층이 뭉친다면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가 막판 역전극을 펼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트럼프와 공화당으로부터 "클린턴에게 면죄부를 준 수사"라는 비난을 받아온 FBI로서는 새로운 이메일 발견을 계기로 부담을 털고 가겠다는 정치적 판단을 했을 수 있다.
트럼프는 미 전역 유세장을 돌며 클린턴의 이메일 스캔들을 연일 공격하면서, 집권 즉시 특검을 통해 전면 재수사에 들어가 "힐러리를 감옥에" 보내고, FBI를 비롯한 관련 기관에 책임을 묻겠다고 지속해서 위협해왔다.
이런 와중에 대선 때까지 '묻고 가기'엔 부담스러운 새로운 이메일이 보고됐고, 가뜩이나 트럼프의 공격이 부담스러웠던 코미 국장을 비롯한 FBI로서는 트럼프 집권시 '보험용'이나 '알리바이 증명' 차원에서라도 차제에 어느 정도 털고 가자는 판단을 했을 개연성이 있어 보인다.
이와는 반대로, 일각에선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의 패색이 짙어지자 지난 7월 클린턴을 불기소 권고했던 FBI가 이메일 스캔들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있다.
새로운 뭔가가 나와 수사원칙에 따라 추가 수사를 했으나, 부주의했지만 1차 수사 때의 불기소 권고를 바꿀만한 사유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결론을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날 FBI는 기밀이 담겼을 수도 있는 이메일 개수를 공개하지 않고, 재수사 종료 시점도 특정하지 않았다.
코미 국장이 "추가 수사를 끝내는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도 예상할 수 없다"고 한 것은, 사실상 대선 전에 수사 결과를 내놓진 않을 것이라는 의미도 받아들여지고 있다.
코미 국장은 서신 발송 이후 기자들의 접촉에 아무런 발언을 내놓지 않았다.
FBI의 재수사 배경과 결과가 어떤 것이든 간에 당장은 이메일 스캔들 불똥이 대선판을 다시 달굴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선거 조작, 대선 불복' 카드로 지지층 결집에 나선 트럼프는 이메일 스캔들까지 총동원해 꺼져가던 불씨를 되살릴 것으로 보인다.
당장 그는 이날 뉴햄프셔 맨체스트 유세 도중 소식을 듣고 "클린턴의 부패는 우리가 지금껏 보지 못했던 정도"라며 "(이 소식을 제외한) 다른 얘기는 따분할 것 같다"고 청중을 부추기는 등 대대적인 공세에 나섰다.
그러나 막판 예상치 못한 최대 위기에 봉착한 클린턴은 아이오와 주(州) 유세 도중 기자들의 질문이 쇄도했으나 아무런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고 AP통신이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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