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 100억 시대, 프로야구에 남길 영향은?
[오마이뉴스이준목 기자]
드디어 프로야구 FA 100억원 시대가 열렸다. 지난 24일 2017 프로야구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외야수 최형우가 기아 타이거즈와 4년 계약금 40억원, 연봉 15억원 등 총액 100억원에 계약했다.
지난 시즌까지 삼성 라이온스에서 뛰었던 최형우는 옛 동료였던 박석민이 2015년 삼성에서 NC 다이노스로 FA 이적하며 기록한 4년 최대 96억원을 뛰어넘는 역대 최고 대우를 경신했다. 기아는 2014년 미국에서 국내로 복귀한 투수 윤석민과 4년 90억에 계약한 데 이어 투타 최고액 FA를 동시에 보유하게 되는 진기록을 세웠다.
삼성 왕조의 간판 4번타자로 꼽혔던 최형우는 일찌감치 올해 야수 최대어로 평가받았다. 대기만성형 선수의 대명사로 꼽히는 최형우는 2002년 전주고를 졸업하고 삼성에 포수로 입단한 후 빛을 발하지 못하고 2005년 방출되는 등 시련을 겪었다. 하지만 경찰청 야구단에 입단해 외야수로 전환하면서 서서히 재능을 꽃피우기 시작하했다. 2007년 퓨처스리그 타격 7관왕에 오른 최형우는 전역 후 다시 삼성에 재입단하며 일약 세대교체의 중심에 섰다.
최형우는 2008년 타율 0.276, 19홈런, 71타점을 올리며 최고령 신인왕에 올랐고 이후 꾸준한 성적을 올리며 삼성의 4번 타자 자리를 꿰찼다. 2014년부터 올 시즌까지는 3년 연속 3할·30홈런·100타점을 기록하기도 했다.
특히 올 시즌엔 타율 0.376, 31홈런, 144타점, 195안타로 타격 3관왕과 자신의 역대 기록을 잇달아 갈아치우며 개인 최고의 시즌을 보냈다. 삼성은 최형우와 함께하는 동안 전대미문의 4년 연속 통합우승과 5년 연속 정규리그 우승 등을 달성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최형우는 프로통산 1147경기에서 타율 0.314, 234홈런, 911타점을 기록했으며 리그에서 가장 기복 없고 꾸준한 타자 중 한 명으로 꼽혔다.
FA 100억 시대, 시장 상황이 만들었다
한편으로 최형우의 FA 대박은 때와 시기를 잘만난 행운의 결과이기도 하다. FA 100억 시대가 열린다면 최형우가 첫 주인공이 될 것이라는 전망은 이미 유력했다. 지난해 박석민이 FA 최고액을 96억까지 올려놓은 가운데 2016년 이후에 등장하는 대형 FA들은 무조건 기본 100억을 기준으로 시작한다는 소문이 야구계에 파다했다. 올 겨울 양현종, 김광현, 황재균 등 유독 대어급 선수들이 넘쳐났던 것도 몸값 경쟁을 부추겼다.
하지만 최형우를 제외하면 다른 FA 대어들은 대부분 나이가 아직 젊은데다 해외진출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는 게 변수였다. 실제로 최형우는 올해 FA 최대어 4인방 중 가장 먼저 거취를 결정지었다. 최형우도 해외 구단들의 관심을 받는다는 이야기는 있었지만 구체적인 제의는 없었고, 선수 본인도 30대 중반에 접어든 나이와 현실적인 문제를 고려하여 처음부터 국내 잔류에 무게를 둔 것으로 보인다.
친정팀 삼성은 모기업이 제일기획으로 이관된 이후 지난해 박석민에 이어 대형 FA를 잡는 데 많은 지출을 꺼렸다. 이 틈을 노려 중심타선 보강이 필요하던 기아가 최형우에게 접근했다. 올해부터 원 소속팀 우선협상 기간 규정이 사라진 탓에 최형우는 별다른 고민없이 최고 대우를 보장하는 기아행을 선택할 수 있었다. 일각에서 FA 몸값 거품에 대한 우려가 나오기는 했지만, 어쨌든 향후 3~4년 이내에는 올해를 능가할 만한 거물급 FA들이 나오기 어렵다는 시장 상황 역시 '오버페이' 논란에도 불구하고 최형우의 100억 대박이 가능했던 배경이다.
그렇다면 최형우의 100억과 기아행이 야구계에 남긴 의미는 무엇일까. 일단 구단간 지형도로 보면 2010년대를 풍미한 '삼성 왕조'시대의 사실상 종말을 꼽을 수 있다.
삼성은 최근 몇 년간 연속 우승의 주역들을 대거 떠나보냈다. 2012년 정현욱(은퇴)을 LG에 내줬고, 2013년에는 마무리 오승환(현 세인트루이스)이 일본에 진출했으며 2014년 권혁과 배영수가 한화로 떠났다, 2015년에는 박석민이 NC로, 채태인은 넥센으로 갔으며, 임창용은 방출되어 기아로 이적했다. 임창용-오승환과 도박 파문에 연루되었던 안지만은 이적은 아니지만 방출당했다.
그리고 이제는 팀내 최고의 활약을 펼쳤던 4번타자 최형우마저 경쟁팀 기아에 내주면서 이제 삼성 왕조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던 주역들은 일부 노장 선수들을 제외하고 모두 팀을 떠났다. 심지어 류중일 감독마저 올해 9위에 그친 부진한 팀성적에 책임을 지고 재계약이 무산됐다. 또다른 주력 투수인 차우찬마저 해외진출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어서 삼성은 이제 다음 시즌 리빌딩을 통한 완전한 새 판짜기가 불가피해졌다.
삼성 왕조 시대 종말, 대권 도전 꿈꾸는 기아
반면 올해 4년 만에 5강 진출에 성공하며 명가 재건의 기틀을 쌓은 기아는 내부 FA 나지완을 잡은 데 이어 최형우까지 영입하며 약점이던 타선의 무게감을 극대화할 수 있게 됐다. 올해에만 2명의 FA를 잡는 데 140억이라는 큰 돈을 투자한 기아는 한화-롯데-두산 등을 제치고 사실상 FA 시장의 큰 손으로 자리매김했다. 만일 투수 최대어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양현종까지 잔류시킬수 있다면 당장 다음 시즌 기아의 대권 도전도 꿈이 아니라는 평가다.
하지만 한편으로 신중한 시각도 존재한다. 기아는 최근 외국인 투수 지크 스프루일-타자 브렛 필을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화며 결별을 선택했다. 특히 필은 영양가 논란이 있기는 했지만 타이거즈 외국인 타자 최장수인 3년을 활약하며 평균 20홈런-80타점을 보장하던 타자다.
일단 최형우로 필의 공백을 최소화했다고는 하지만 나이가 어느덧 30대 중반을 바라보는 타자에게 100억을 들였다는 것은 모험이라는 우려도 많다. 젊은 선수들로 리빌딩을 추진하며 어느 정도 성과를 내던 기존의 노선과도 배치되는 선택이다.
최형우와 나지완 모두 공격력에 비하여 외야수비는 그리 높은 평가를 받지못하는 선수들이라는 점에서 수비 불안에 대한 고민도 풀어야 할 대목이다. 무엇보다 양현종의 해외진출 가능성이 높고 윤석민-김진우의 부활 여부나 임창용의 노쇠화 등 불안요소가 곳곳에 포진해 있어서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KBO 시장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는 결국 올해도 FA 계약의 거품을 빼는 데는 실패했다는 평가다. 최형우는 꾸준한 타자지만 나이와 수비력, 역대 성적, 스타 선수로서의 흥행력을 종합적으로 감안할 때 과연 100억의 가치가 있는 선수인지는 회의적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최형우가 올해 FA 시장 최대어들의 기준이 되면서 김광현, 양현종, 황재균 같은 선수들의 선택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최대어들이 국내 잔류시 최형우를 기준으로 기본 100억 이상을 요구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자국 내에서도 최소한 MVP급 활약을 3~4년 이상 꾸준히 보여주지도 못한 선수들이 걸핏하면 100억~120억원 이상을 요구하는 '그들만의 리그'가 될 경우, 국민 정서에도 위화감을 안겨 줄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적자 운영을 거듭하는 KBO 구단들이 일부 FA 선수들을 영입하는 데 시장 규모에 비하여 과도한 지출을 부담하게 되면서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기형화된 FA 시장을 정상화할 수 있는 기회를 또 한 번 놓쳤다는 것은 아쉬운 대목이다.
기사제공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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