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스플뉴스]
“오늘 본 모습이 원래의 오지환이다.”
공식 기자 회견장에서 양상문 LG 트윈스 감독이 한 말이다. 양 감독의 말대로 와일드카드 결정 2차전 숨은 MVP(최우수 선수)는 오지환이었다. 이날 오지환은 어려운 타구를 2개나 잡아냈고, 6회엔 좌전 안타까지 때렸다.
전날 치른 1차전에서 결정적인 수비 실책으로 패배의 빌미를 제공했던 오지환. 하지만, 2차전에선 그 여파를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오히려 더 밝은 표정으로 경기에만 집중한 그였다.
LG는 1차전에서 오지환의 뼈아픈 실책으로 2점을 먼저 내줬다. 이후 6, 8회 1점씩 추가 실점하며, 첫 경기를 패했다. 당연히 비난의 화살이 모두 오지환에 쏠렸다. 현장 분위기 역시 좋을 리 만무했다.
2차전에 앞서 KIA 관중석에선 오지환의 이름을 연호하는 소리가 퍼져 나왔다. 분명 생소한 분위기였다. 경기 중에도 오지환에게 타구가 가거나, 그가 타석에 들어서면 KIA 팬들은 "오-" 하며 환호했다. 오지환의 실수를 바라는 일종의 주문이었다.
물론 반대편 LG 응원석 분위기는 달랐다. 하나같이 "오지배!"를 외쳤다. '오지배'는 가끔 수비 실책으로 경기를 망치기도 하나, 뛰어난 타격 실력으로 경기를 지배한다는 뜻의 오지환 별명이었다. '1차전 실수는 개의치 말고, 2차전에서 좋은 활약을 펼치라'는 LG 팬들의 격려가 숨겨진 연호였다.
'강철 멘탈' 오지환은 자신을 응원하는 팬들의 마음을 잘 아는 듯했다. 전날 실수를 머릿속에 특별히 담아두지 않았는지 오지환은 2차전을 앞두고 “이번엔 2차전 MVP가 돼 좋은 기삿거리를 많이 드리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오지환의 자신감은 경기에서 그대로 이어졌다. 두 팀이 0대 0으로 팽팽하게 맞선 6회 말 1사 2루 상황. 나지완의 잘 맞은 타구가 유격수 오지환 쪽으로 빠르게 날아갔다. 선행 주자가 유격수를 가린 까닭에 처리하기 까다로운 타구였다. 모두가 안타를 예상했던 찰나, 오지환은 몸을 날려 타구를 잡아냈다. 하마터면 득점권에서 선취점을 내줄 뻔한 상황이었다. 선발 투수 류제국은 오지환의 허슬 플레이에 환호성을 질렀다.
8회 말 2사 2루 때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타석엔 또 다시 나지완이 들어섰다. 류제국의 다소 높은 공을 잡아당긴 나지완의 타구가 3루수 글러브를 스쳐 지나갔다. 유격수가 처리하기엔 다소 먼 거리였다. 하지만, 이때도 오지환은 타구를 끝까지 쫓아갔고, 결국 안타성 타구를 아웃으로 처리했다. 실점 위기를 넘긴 류제국은 오지환에게 찾아가 고맙다는 표정을 지었다. '진짜' 오지환이 돌아온 것이었다.
준플레이오프 다크호스, ‘오지환’
2차전을 지켜본 양준혁 MBC SPORTS+ 해설위원은 오지환의 활약을 칭찬했다. 1차전이 끝나고 받았을 오지환의 극심한 스트레스와 압박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오)지환이가 밤잠을 설쳤을 거다. 저 심정은 선수가 아니면 모른다. 1차전에서 지고, 본인 나름대로 많이 괴로웠을 거다. 차라리 땅이라도 파고 싶은 심정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지환 스스로 그 고통을 잘 이겨냈다. 2차전에선 정말 좋은 호수비를 여러 차례 선보였다. 1차전 실수를 극복하고, 심리적으로 이렇게 빨리 회복한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2차전은 오지환이 얼마나 배짱 있는 선수인지를 우리 모두가 확인할 수 있던 좋은 기회였다.”
더그아웃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양 감독의 뚝심은 오지환을 일으켜 세운 직접적인 동기부여로 작용했다. 팀 전체가 흔들릴 수 있었지만, '현상 유지'를 선언하며 모두의 흥분을 가라앉혔다. 오지환에겐 전폭적인 신뢰로 변함없는 믿음을 확인시켰다.
LG 후반기 대역습의 주인공인 오지환. 전반기 6개에 홈런에 그쳤던 그는 후반기에만 홈런 14개를 몰아치며 타격에 눈을 떴다. 저조했던 타율(.228) 역시 후반기 들어 .325로 뛰어 올랐다. 시즌 최종 타율은 .280. 커리어 하이였다. 오지환의 분전에 힘입어 LG도 덩달아 상승세를 탔다. 전반기를 8위로 마친 LG는 후반기엔 전체 승률(.607) 2위를 기록하며 2016시즌 최종 순위 4위에 올랐다.
오지환은 후반기 맹타 비결을 이렇게 설명한 바 있다.“첫 번째는 개인적인 목표와 욕심을 버린 것이다. 두 번째는 팀 승리에만 집중하자고 마음먹었던 게 나와 팀에 모두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한동안 뭘 해야 하고, 내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했었다. 결국, 나보다 팀을 먼저 생각하자고 마음먹었던 게 내 야구 인생을 뒤바꿔 놓은 원동력이 됐다.”
벌써부터 많은 야구인이 오지환을 준플레이오프 키맨으로 꼽고 있다. 오지환은 언제든 장타 한방을 기대해 볼 수 있는 배짱과 힘을 가진 선수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얻은 자신감이야말로 향후 포스트시즌 향방을 좌우할 수는 크나큰 힘이다.LG의 맞상대인 넥센 히어로즈는 세밀한 작전을 바탕으로 뛰는 야구를 펼치는 팀이다. 그런 넥센에 오지환의 존재는 핵폭탄이나 다름없다. 예측할 수 없는 플레이를 공-수에서 펼치기 때문이다.
넥센 김하성과 오지환의 자존심 싸움 역시 준플레이오프를 보는 또 다른 재미다. 시즌 내내 최고의 유격수 자리를 놓고 자웅을 겨룬 두 선수. 이번에야말로 '진짜' 1인자가 누구인지 가려봄 직하다. 기량면에선 두 선수 모두 백중세에 있다. 타격에선 김하성의 페이스가 좀 더 좋다. 수비에선 오지환이 앞선다. 누구 한 명의 우위를 점치기 어려운 게 사실. 두 선수의 진검 승부는 준플레이오프에서 가려진다.
전수은 기자
기사제공 엠스플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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