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사무실에 출석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왼쪽)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사진=홍봉진 기자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문화계 블랙리스트'(지원 배제 명단) 사건 정점으로 지목된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피의자 신분으로 동시에 소환했다. 특검팀 안팎에선 두 사람에 대한 구속 수사가 불가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안의 중대성, 증거인멸 정황, 국회에서 위증한 혐의 등을 고려하면 구속영장 청구 사유에 충분히 해당 되기 때문이다. 특검팀은 이들의 신병을 확보한 뒤 '최종 지시자'로 의심받는 박근혜 대통령을 정조준할 것으로 보인다.
대변인을 맡고 있는 이규철 특검보는 17일 브리핑에서 "두 사람을 조사한 이후 구속영장 청구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며 구속 수사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이날 조사 중 긴급체포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 특검보는 박 대통령의 관여 여부와 관련해선 "지시 정황이 있는지, 물증이 있는지 계속 확인하고 있다"고 거듭 설명했다. 특검팀은 '블랙리스트' 최정점으로 박 대통령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이전에도 언급한 바 있다. 비선실세 최순실씨의 개입 여부도 수사 대상이다.
특검팀이 '늦어도 2월초'라고 시한을 정한 박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제외하고 이번 사건 수사는 김 전 실장과 조 장관 소환이 '종착지'로 꼽힌다. 특검팀은 이병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전 국가정보원장)을 최근 비공개로 소환해 조사하기도 했다.
수사 마무리를 앞둔 특검팀은 블랙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1만명 가까운 문화계 인사들의 실제 피혜 사례를 수집하고 문건 작성 시기를 대략적으로 파악했지만 언론에 공개하지는 않았다. 김 전 실장과 조 장관, 더 나아가 박 대통령에 수사 진행 상황을 노출하지 않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을 동시에 소환한 것도 이 때문으로 해석된다. 두 사람이 시차를 두고 특검에 다녀갈 경우 나중에 소환되는 쪽에 '패'를 내보일 수 있고 이들 사이 '말 맞추기'가 이뤄질 염려도 있기 때문이다. 특검팀은 이날 두 사람을 대질조사할 방침이다. 대질조사엔 구속된 정관주 전 문체부 차관 등도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특검팀은 김 전 실장을 상대로 블랙리스트뿐만 아니라 국정 농단 파문에서 제기된 의혹 전반을 확인할 방침이다. 이는 청와대 2인자였던 김 전 실장이 최씨의 국정 농단 행태를 몰랐을 리 없다는 의심에서 출발한다. 그럼에도 김 전 실장은 최씨의 존재를 모른다고 줄곧 부인하다가 국회 청문회 말미에 "최순실이란 이름을 못 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고 교묘하게 진술을 바꾼 바 있다.
김 전 실장은 블랙리스트 작성·관리에 부정적이었던 문체부 고위 공무원들에게 사표를 종용했다는 의혹도 받는다. 실제 문체부 1급 공무원 6명이 사표를 제출해 그 중 3명이 공직을 떠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전 실장은 증거인멸 의혹에도 휩싸여 있다. 지난달 특검의 압수수색이 예상되자 집 밖으로 박스를 빼돌리는 장면이 포착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 특검보는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 중 자료가 확보된 부분에 대해 조사를 진행할 것"이라며 "일부 증거인멸 정황도 포착된 상태"라고 말했다. 증거인멸 의혹은 조 장관을 상대로도 제기됐다. 조 장관은 지난해 11월 블랙리스트 논란이 불붙자 집무실 하드디스크를 교체했고 직원들에게도 이를 지시했다고 한다. 조 장관은 블랙리스트 존재 자체를 모른다고 잡아떼다가 이를 뒤집어 국회에서 위증한 혐의도 받는다.
앞서 특검팀은 블랙리스트에 연루된 이들을 줄소환해 조사했다. 이 사건에 연루된 김종덕 전 문체부 장관, 정관주 전 문체부 차관, 신동철 전 청와대 정무비서관 등 3명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구속됐다. 특검팀은 관련자 진술뿐만 아니라 블랙리스트 실제 문건, 고(故)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 원본 등 물증 확보에 주력했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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