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풋볼리스트] '축구 종가'의 잉글랜드의 축구는 특별하다. 프리미어리그(EPL)는 경기가 펼쳐지지 않는 순간에도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된다. 그라운드 안팎에서 풍성한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2016/2017 시즌의 EPL은 더욱 그렇다. 절대강자를 찾기 힘들다. 그래서 더 재미있다. 'Football1st'가 종가의 이슈를 챙긴다. 가장 빠르고 가장 특별하게. <편집자주>
로멜로 루카쿠는 농구의 센터처럼 생겼지만, 사실 작년까지만 해도 공에 머리를 대길 꺼리는 선수였다. 이제 루카쿠는 자신 있게 점프해 머리를 휘두른다. 그의 우상인 디디에 드로그바에 한발 가까워지며 득점왕을 바라볼 자격을 갖췄다.
루카쿠는 아직 세계적인 공격수 반열에 들지 못했다.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 간판 스타인 특히 디에구 코스타(첼시),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맨체스터유나이티드), 알렉시스 산체스(아스널) 등에 비하면 명성과 업적 모두 명백한 차이가 난다.
그러나 현재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 최고 공격수를 꼽는다면 루카쿠는 꼭 최종 후보에 들어야 한다. 루카쿠는 지난 5일(한국시간) 본머스를 상대로 한 경기 4골을 몰아쳐 득점 1위가 됐다. 24라운드 현재 루카쿠는 페널티킥 하나 없이 16골을 기록 중이다. 15골을 넣어 2위 그룹을 형성하고 있는 코스타, 이브라히모비치, 산체스를 앞질렀다.
루카쿠의 득점력은 매년 성장하고 있다. 벨기에 명문 안덜레흐트에서 2009/2010시즌 17세 나이로 득점왕을 차지할 때만 해도 '어린 괴물'로 기대를 모았다. 득점왕의 학교 생활을 다룬 <루카쿠 학교가다>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있을 정도로 어린 나이였다. 첼시 이적 첫 해인 2011/2012시즌에만 주춤했을 뿐, 그 뒤로는 웨스트브로미치와 에버턴을 거치며 매 시즌 10골 이상 기록했다.
지난 2015/2016시즌이 성장에 도움을 줬다. 로베르토 로드리게스 감독은 수비를 등한시한다는 비판 속에 11위에 그쳤지만, 공격자원들의 재능은 한껏 끌어냈다. 루카쿠는 190cm의 거대한 덩치에도 불구하고 포스트 플레이보다 자유분방한 돌파와 침투를 즐겼다. 경기 중 여러 차례 윙어처럼 변신한 루카쿠는 리그에서 18골, 컵대회에서 7골을 넣으며 개인 최다인 25골로 시즌을 마쳤다. EPL 득점 순위는 4위였다.
'골밑 싸움' 시작한 루카쿠, 완벽한 공격수의 자질
그러나 루카쿠처럼 강인한 신체를 지닌 선수가 문전에 머무르지 않고 자꾸 페널티 지역 밖에서 돌아다니는 건 일종의 재능 낭비였다. 루카쿠는 과거 인터뷰에서 정상급 수비수들과의 몸싸움에 대해 "내 키가 더 크고 덩치도 더 크다. 내 스피드를 활용한다면 몸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는 걸 안다"고 자신감을 밝혔지만, 잘 읽어보면 문전에서 공중볼 다툼을 하겠다는 의지는 전혀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루카쿠 스스로도 자신이 헤딩을 꺼린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에버턴 동갑내기 루카 가버트(위건 임대 중)는 한 팟캐스트에 출연해 루카쿠의 사연을 대신 공개했다. 훈련 중 크로스를 올려줬는데 루카쿠가 헤딩을 꺼리자, 가버트가 이유를 물어본 적이 있다. 당시 루카쿠에게서 "어렸을 때 사고를 당해 헤딩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답을 들었다고 한다.
이번 시즌 루카쿠가 극적으로 성장한 부분이 헤딩이다. 루카쿠는 시즌 첫 경기에서 선덜랜드를 상대로 해트트릭을 터뜨렸는데, 골키퍼 바로 앞에서 머리로 2골을 넣으며 확실히 달라진 마음가짐과 플레이스타일을 선보였다. 현재까지 왼발로 9골, 머리로 4골, 오른발로 3골을 넣으며 다양한 득점 분포를 보여주고 있다.
가버트는 "루카쿠는 선덜랜드를 상대로 헤딩골을 터뜨렸고, 머리만 대면 되는 위치에서 좋은 기회를 몇 번 잡더라. (로날드) 쾨만 감독이 무슨 말을 해줬길래 저러는지 모르겠다"며 이번 시즌 초반 루카쿠의 달라진 모습을 설명했고, 그 모습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루카쿠는 시즌 초 인터뷰에서 쾨만 감독이 자신을 발전시키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루카쿠는 "감독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솔직하게 나와 대화한다. 나는 전보다 더욱 열심히 노력했다"며 쾨만 감독 덕분에 의욕이 넘친다고 말했다. 또한 "내가 뭘 발전시켜야 하는지 정말 분명한 생각을 갖고 있다. 내게 소리를 지른 건 한 번 뿐인데, 훈련 중 내가 해야 하는 움직임에 대한 거였다. 그의 명쾌한 아이디어가 내게 도움을 준다"며 쾨만 감독의 전술 지시 역시 자신의 성장에 도움을 준다고 말했다.
루카쿠는 시즌을 거치며 계속 성장해 왔다. 기존에 보여주던 측면 침투와 돌파 능력을 유지한 가운데, 문전에서 상대 수비수들을 헤치고 골을 마무리하는 장면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크리스털팰리스를 상대로는 왼발 프리킥도 넣었다. 여기에 연계 플레이, 측면 돌파를 통한 어시스트까지 시도하며 공격수가 할 수 있는 모든 플레이를 동시에 선보이는 중이다. 신체적, 기술적으로 이미 뛰어난 선수였던 루카쿠는 전술적으로도 크게 성장하는 모습을 보인다.
본머스전은 루카쿠가 할 수 있는 다양한 플레이를 한 번에 보여준 쇼 케이스였다. 첫 번째 골은 페널티 지역 가장자리에서 슈팅 타이밍을 만들고 강하게 차 넣었다. 섀도 스트라이커들의 전형적인 골이었다. 두 번째 골은 본머스의 패스미스를 읽는 압박 타이밍을 통해 손쉽게 만들어냈다. 세 번째 골과 네 번째 골은 루카쿠가 직접 동료에게 패스해 공격을 전개한 뒤 문전으로 파고들며 마무리까지 담당했다. 루카쿠의 거대한 영향력이 드러났다. 특히 네 번째 골은 수비를 몸으로 밀며 돌진하는 거한 특유의 침투에서 비롯됐다. 여기에 측면 돌파를 통해 동료 선수의 골을 사실상 어시스트하는 활약도 있었다. 루카쿠는 공격수가 할 수 있는 모든 플레이를 통해 골을 만들었다.
에버턴은 역대 최고 수준으로 치열한 잉글리시프리미어리그(EPL)에서 6강 바로 아래 7위를 기록 중이다. 최근 7경기에서 5승 2무를 거두는 상승세를 통해 5위 리버풀과의 승점차를 8점 좁혔다. 루카쿠는 득점왕을 향해, 에버턴은 유럽대항전을 향해 전진하고 있다.
나아가 루카쿠가 지금처럼 계속 활약한다면, 수년 뒤엔 역사적 선수 반열에 오를 수 있다. 임대를 많이 다녀 큰 인상을 남기지 못했지만 루카쿠는 EPL에서 벌써 5시즌째 준수한 활약을 하는 공격수다. EPL 통산 득점이 76골이나 된다. 통산 100골에 도전하는 선수 중 가장 앞서 있다. 루카쿠의 어린 시절 우상이었던 드로그바도 EPL 통산 득점은 104골에 불과했다. 루카쿠가 리그를 바꾸지만 않는다면 드로그바를 따라잡는 건 오래 걸리지 않을 과업이다.
글= 김정용 기자
사진= 게티이미지코리아
기사제공 풋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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