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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S와 흥국은 왜 '꼴찌'가 되려고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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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래식 오브 V리그 ①] '김연경 쟁탈전' 위한 하위권 팀들의 최하위 경쟁

지난 5월 17일(한국시각) 세계 농구팬들의 관심은 2023 NBA 신인 드래프트 로터리픽 추첨행사가 열린 미국 시카고에 집중됐다. 신인지명도 아닌 지명순서를 결정하는 행사가 이처럼 많은 주목을 받은 이유는 바로 2023년 신인 드래프트에 르브론 제임스(LA레이커스) 이후 최고의 재능으로 불리던 빅터 웸반야마가 참가하기 때문이었다. 추첨 결과 샌안토니오 스퍼스가 1순위 지명권을 얻어 226cm의 '괴물신인' 웸반야마를 지명했다.

국내 프로농구와 프로배구에서도 추첨을 통해 신인 지명 순서를 결정한다. 지난 2016-2017 시즌과 2018-2019 시즌 여자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에서는 KB스타즈와 우리은행 우리WON이 1순위 지명권을 얻어 '고교 최대어'로 불리던 박지수와 박지현을 지명한 바 있다. 특히 2018-2019 시즌 신인 드래프트 당시 우리은행은 무려 4.8%(1/21)의 낮은 확률을 뚫고 박지현을 지명하는 행운을 누렸다.

이처럼 지금은 추첨을 통해 신인 지명순서를 결정하지만 V리그 출범 초기만 해도 전 시즌 성적의 역순으로 신인 드래프트 지명 순서가 결정됐다. 이 때문에 그해 고교무대에서 대형유망주가 등장하면 하위권에 있는 팀들끼리 서로 꼴찌를 하기 위해 경쟁하는 웃지 못할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실제로 V리그 원년에는 우승경쟁보다 더욱 치열했던 GS칼텍스와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의 불꽃 튀는(?) 최하위 경쟁이 있었다.

혜성처럼 등장한 '여고생 국가대표' 김연경


 

▲  '여제' 김연경이 등장한 이듬해부터 V리그의 드래프트 제도는 성적 역순에서 확률 추첨제로 변경됐다.
ⓒ 한국배구연맹

 


 
GS칼텍스는 1990년대 호남정유와 LG정유 시절, 이도희 세터와 장윤희(중앙여고 감독), 홍지연(추계초등학교 감독), 박수정, 정선혜로 이어지는 호화 멤버를 앞세워 겨울리그 9연패라는 전인미답의 금자탑을 세웠다. 하지만 1990년대 말, IMF 금융위기로 인해 SK 케미칼과 한일합섬 같은 기존의 실업팀들이 해체됐고 현대건설은 강혜미와 장소연(SBS스포츠 해설위원), 구민정 같은 현역 국가대표 선수들을 대거 영입해 '드림팀'을 구축했다.

2000년부터 2004년까지 현대건설이 겨울리그 5연패를 차지하는 사이 '90년대의 절대강자'였던 GS칼텍스는 주전선수들이 은퇴하면서 전력이 약해졌다. GS칼텍스는 2002-2003 시즌 최하위를 한 덕분에 2003년 11월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여자 이경수'로 불리던 중앙여고의 대형 유망주 김민지를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9연패의 주역들이 차례로 은퇴하면서 좀처럼 웃을 일이 없었던 GS칼텍스로서는 오랜만에 찾아온 호재였다. 

GS칼텍스는 기세를 몰아(?) V리그 출범 전 마지막 겨울리그에서도 최하위를 기록했고 프로 출범 후 첫 신인 드래프트에서 184cm의 신장을 가진 일신여상의 아포짓 스파이커 나혜원을 전체 1순위로 지명했다. 힘든 암흑기를 견딘 끝에 GS칼텍스의 화려했던 전성기를 다시 재현할 수 있는 젊고 재능 있는 좌우 쌍포를 구성하는 데 성공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여자배구를 뒤흔든 초특급 유망주는 김민지도, 나혜원도 아니었다.

GS칼텍스가 김민지와 나혜원으로 구성된 좌우 쌍포를 데려오는 사이 한일전산여고(현 한봄고)에서는 이들을 능가하는 '초대형 유망주'가 고교무대를 평정하고 있었다. 바로 여자배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배구여제' 김연경(흥국생명)이었다. 중학 시절까지 좀처럼 키가 자라지 않아 주로 세터와 리베로로 활약했던 김연경은 고교 입학 후 신장이 무려 20cm나 자라며 기본기를 갖춘 장신 아웃사이드히터 유망주로 성장했다.

김연경은 2005년 고교 3학년 때 성인 국가대표에 발탁돼 월드 그랜드 챔피언스컵 대회에 출전했다. 지금은 고교생 국가대표가 종종 등장하지만 당시 고교생이 대표팀에 선발된 경우는 1973년의 김화복과 1985년의 지경희에 이어 김연경이 역대 3번째였다. 188cm의 좋은 신장과 뛰어난 공격력, 탄탄한 기본기를 겸비한 역대 최고의 유망주. 2000년대 초반 단골로 최하위 다툼을 했던 GS칼텍스와 흥국생명의 '3차전'이 V리그 원년에 벌어졌다.

드래프트 제도까지 바꾼 김연경 쟁탈전
 
GS칼텍스와 흥국생명은 치열한 순위경쟁을 벌여야 할 프로 원년부터 최하위가 되기 위한 '그들만의 싸움'을 벌였다. 물론 양 팀 모두 명분은 확실했다. GS칼텍스는 김민지의 무릎부상과 나혜원의 더딘 성장으로 기대만큼 공격력이 올라오지 않았고 흥국생명 역시 윤수현과 황연주(현대건설)만으로는 한계가 분명했다. 무엇보다 김연경이라는 특급 유망주를 데려온다면 그리 멀지 않은 시간에 V리그를 평정할 강호로 도약할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하지만 프로 원년부터 벌어진 '꼴찌경쟁'은 그리 아름답지 못했다. 특히 흥국생명은 시즌 막판 GS칼텍스와의 두 경기에서 부상을 이유로 황연주를 비롯한 주전 선수들을 대거 제외시켰다. 하지만 당시 경기를 지켜보던 배구팬들 사이에서는 흥국생명이 꼴찌를 굳히기 위해 주전들을 내보내지 않은 것 아니냐는 말들이 나왔다. 결국 흥국생명은 3승 13패 승점 19점으로 4승 12패 승점 20점의 GS칼텍스를 1점 차로 제치고 '꼴찌의 영광'을 누렸다.

'꼴찌의 영광'이라는 표현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흥국생명은 전 시즌 순위의 역순으로 진행된 2005-2006 시즌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1순위 지명권을 얻었고 그토록 기다렸던 '고교생 국가대표' 김연경을 지명할 수 있었다. 그리고 김연경 지명은 흥국생명에게 축복으로 다가왔다. 김연경은 흥국생명 입단 첫 시즌부터 신인왕과 정규리그 MVP, 챔프전 MVP를 휩쓸었고 입단 후 4시즌 동안 3번이나 흥국생명의 챔프전 우승을 이끌었다.

반면에 승점 1점이 부족해 여자배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를 데려오지 못한 GS칼텍스는 2005-2006 시즌 최하위에 그치며 아깝게 놓친 김연경이 챔프전 우승을 차지하는 장면을 쓸쓸하게 지켜봤다. GS칼텍스는 FA 정대영과 이숙자(KGC인삼공사 코치)를 영입한 2007-2008 시즌 프로 출범 후 첫 챔프전 우승의 기쁨을 누렸지만 2008-2009 시즌엔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하고도 챔프전에서 흥국생명에게 '업셋'을 당했다.

짧게는 V리그 원년, 길게는 3년에 걸쳐 이어진 GS칼텍스와 흥국생명의 꼴찌경쟁은 V리그에 많은 변화를 가져 왔다. 한국배구연맹은 전 시즌의 역순위로 지명순서를 주던 기존의 드래프트 제도에서 확률을 통한 추첨제로 드래프트 제도를 변경했다. 결국 2006-2007 시즌부터는 최하위가 50%, 나머지 하위팀이 각각 35%와 15%의 확률을 가지고 순서를 정하는 추첨제가 도입됐다. 김연경이라는 거물신인이 신인 드래프트 제도도 바꾼 것이다.

 

기사제공 오마이뉴스

양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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