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되면서 국정농단 사태에 연루돼 법정에 선 인물들이 재판 과정에서 입장을 바꿀지 여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현직 대통령’이라는 보호막이 사라지면서 주요 피고인들이 박 전 대통령을 의식하지 않고 각자도생 하거나, ‘나도 피해자’라는 식으로 책임을 전가할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박 전 대통령 보호에 앞장서온 최순실(61)씨의 입장 변화 여부는 주목되는 부분이다. 최씨는 지금까지 미르ㆍK스포츠재단 설립에 자신이 실질적으로 관여한 바가 없고 두 재단을 이용해 사익을 추구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했다. 자신의 혐의마저 부인했기 때문에 박 전 대통령과의 공모 여부는 법정에서 언급할 필요도 없었다. 자신의 재판에 박 전 대통령까지 끌어들이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혔다. 그러나 자신을 구해줄 것으로 믿어왔던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되면서 더 이상 기댈 곳이 없어졌다. 최씨가 형량을 줄여보려고 박 전 대통령에게 책임을 떠넘기면서 법정진술을 바꿀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최씨가 법정에서 혐의를 인정하거나 박 전 대통령을 공격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는 게 중론이다. 최씨는 조카 장시호(38)씨에게 검찰 수사에 협조하지 말라고 하는 등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최씨 변호인인 이경재 변호사도 “헌재가 미르ㆍK스포츠재단이 최씨의 사익추구를 위해 만들어졌다고 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며 여전히 혐의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안종범(58)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은 변론 전략을 수정할 가능성이 있다. 안 전 수석은 그 동안 국정농단에 개입한 사실은 일정 부분 인정하면서도 그 책임을 온전히 박 전 대통령에게 돌리지는 않았다. 대통령 지시에 따랐을 뿐 그것이 형사적으로 문제될 줄은 몰랐다는 논리로 에둘러 대통령을 보호했다. 하지만 헌재가 국정농단 사태를 헌법에 위배되는 행위로 규정하면서 그는 형사처벌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대통령을 보호하면 자신의 책임이 커지는 구조가 재차 확인되면서 고민이 커진 셈이다. 실제로 탄핵 선고 당일 법원에 출석한 그는 “개인적으로 한 건 없고, 주로 대통령 지시 하에서 했다”고 ‘주군’과 선을 긋기 시작했다.
이 부회장은 파면 결정을 계기로 ‘박 전 대통령 강요에 따른 피해자’라는 기존 주장을 한층 강화할 전망이다. 박 전 대통령과의 세 차례 독대자리에서 요청 받은 내용을 구체적으로 진술하면서 억울함을 호소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 부회장이 무죄를 받기 위해선 결국 대통령을 공격할 수밖에 없다. 박 전 대통령이 현직에 있을 때보다는 파면된 상황이 전략적으로 훨씬 유리하다”고 내다봤다.
반면 김기춘(78)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입장 선회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 지시는 정당한 정책수행’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박 전 대통령 파면 여부는 크게 문제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통령이 문화부 공무원들을 강제 사직하게 했다는 의혹에 대해 헌재가 증거부족을 이유로 판단하지 않으면서, 이 부분도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할 것으로 보인다.
김현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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