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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B 취업대란, 청년은 살고 싶다] 예과 2년, 취업용 본과 4년…, 대학 인문계열 6년제?

난라다리 0

[주간동아]

기업, 졸업 예정자 가장 선호…고용시장 한파에 학교 못 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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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들 하는 만큼 스펙도 열심히 쌓았고 대외 활동도 많이 했는데 아직까지 취업을 못 한 것을 보면, 딱 남들 하는 만큼 노력해선 취업이 안 되나 봐요.” 

설 연휴 마지막 날인 1월 30일 서울 종로구 정독도서관에서 만난 정모(27) 씨의 말이다. 서울 소재 4년제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정씨는 정규 학기 4년과 군 휴학 2년에 취업준비 2년을 합해 총 8년간 학생 신분을 유지해왔다. 그는 “신입생 시절 졸업을 유예한 채 학교를 떠나지 못한 선배들을 보면서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다짐했는데 어느새 내가 그 선배들보다 더 오래 학교에 남아 있다”며 한탄했다. 

정씨처럼 대학을 떠나지 못하는 청년이 늘고 있다.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서다. 지난해 청년실업률은 관련 통계조사 이래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정부는 거액의 예산을 청년 일자리 창출과 고용지원 사업에 투입했으나 정반대 결과가 나온 것. 이제 청년은 대기업, 중소기업 가리지 않고 어디든 취업이 되기를 바라지만 이제는 중소기업도 채용 규모를 줄이는 형편이다.
 

청년 3명 중 1명은 직업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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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온라인 취업 사이트 인크루트의 하반기 취업설명회에 참가한 취업준비생들(왼쪽). 인문계열 대학생의 경우 평균 6년간 학교를 다닌 뒤 졸업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뉴스1]

 

 

청년실업 문제는 점점 악화되고 있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청년실업률은 9.8%를 기록했다. 이는 외환위기 직후인 2000년(8.1%)보다 더 높은 수준이다. 청년실업률은 2012년까지 7.5%로 서서히 줄었지만 4년 만에 2.3%p 상승해 10%대에 근접했다. 청년층 중에서도 4년제 대학 졸업 연령인 25~29세의 실업률이 크게 올랐다. 25~29세 실업률은 관련 통계를 처음 집계한 2000년 6.0%에 불과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7.1%를 기록한 것이 가장 높은 수치였다. 

이처럼 청년실업률이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지만 취업난으로 고통받는 청년은 이마저도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경기 과천시의 김모(25·여) 씨는 “통계대로라면 청년 10명 가운데 1명 정도만 실업 상태라는 얘기인데, 막상 학교에서 4학년 학생들을 만나보면 단번에 취업한 사람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다. 다른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도 1년 넘게 취업준비를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실제로 체감 실업률은 통계청의 공식 실업률을 크게 상회했다. 1월 30일 미래창조과학부 창조일자리팀은 박철우 한국산업기술대 교수에게 용역 의뢰한 ‘청년고용체감지표 설계·연구에 대한 연구’ 보고서를 받았다. 이 보고서에서 연구진은 “통계청이 매달 발표하는 공식 실업률 지표가 실제 고용 상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일할 의지를 상실한 청년 니트(Not in EducationEmployment orTraining·NEET)족과 비자발적 비정규직, 급여가 낮아 이직을 희망하는 청년 등 통계에 잡히지 않는 숨은 실업자를 실업률 통계에 포함하면 2015년 체감 청년실업률은 34%대로 추산된다. 민간 경제연구기관의 체감 청년실업률 예측치도 이와 유사했다. 지난해 6월 현대경제연구원도 체감 청년실업률이 34.6%에 달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전체 청년의 3분의 1이 사실상 실업 상태이다 보니 대학생들은 학교 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인터넷 취업포털 잡코리아는 1월 22일 아르바이트 전문 사이트 알바몬과 함께 2월 졸업을 앞둔 대학생 431명을 대상으로 ‘졸업까지 걸리는 평균 시간’을 설문조사했다. 조사 결과 대학 입학 후 졸업까지 평균 5.3년이 걸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공 계열별로는 인문계 학생의 평균 재학 기간이 6년으로 가장 길었고 법학계열(5.7년), 이공계열(5.4년), 사회과학계열(5.4년), 상경계열(4.6년)이 뒤를 이었다. 성별로는 남학생의 평균 재학 기간이 6.2년으로 여학생(4.7년)보다 1.5년 길었다. 서울 4년제 대학 국문학과에 재학 중인 이모(25) 씨는 “다른 학과 학생에 비해 국문학, 사학, 철학 등 인문학 전공자가 특히 취업이 어렵다. 인문계열 학생 사이에서는 ‘인문계열 전공은 예과(1, 2학년)를 거쳐 취업준비 본과(3, 4학년 수료 후 취업준비 2년)까지 마쳐야 비로소 졸업이 가능하다’는 씁쓸한 농담이 오간다”고 밝혔다. 
 

졸업 시점이 가장 중요한 평가 기준

청년들이 학생 신분을 오래 유지하면서 취업준비를 하는 이유는 신규 채용시장에서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서다. 국내 대기업 신규 채용 서류전형에서 대학 졸업 시점이 가장 중요한 평가 척도가 되기 때문. 지난해 12월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발표한 매출액 상위 500대 기업 중 100개사 인사담당자 1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보고서(‘한국의 청년 채용시장 분석’)에 따르면, 대기업 인사담당자가 서류전형 합격자를 선발할 때 가장 중요하게 평가하는 기준은 ‘최종 학교 졸업 시점’이었다. 전체 평가점수 100점 만점에 19.6점을 차지해 비중이 가장 컸다. 그 뒤는 졸업 평점(16.2점)이었다. 반면 어학능력이나 자격증 같은 스펙 관련 점수는 각각 10.3점, 9.5점으로 졸업 시점 기준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또한 대학 졸업 후 3년 이내 취업하지 못하면 서류전형에도 합격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졸업 시점 선호도 조사 결과 졸업 예정자가 800점 만점에 68.6점으로 가장 높았다. 졸업 후 1년이 지나자 선호도는 62점을 기록했다. 그러나 졸업 후 3년이 지나면 선호도는 1.4점으로 급감했다. 졸업 후 3년 이내라는 골든타임을 놓치면 아무리 학점 등 정량적 스펙이 뛰어나도 서류전형을 통과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졸업 평점이 4.0점 이상으로 높아도 졸업 후 3년이 지나면 서류전형 통과 가능성이 7.8%에 불과했다. 이는 졸업 평점이 3.0점 미만인 졸업 예정자와 동일한 수준이다. 서울 마포구의 윤모(25·여) 씨는 “졸업유예 비용을 마련하고자 최근 아르바이트를 구하고 있다. 기업에서 졸업 예정자를 선호하니 어쩔 수 없이 졸업을 유예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잡코리아 조사 결과 학생 신분을 유지하기 위해 대학에 내야 하는 돈은 학기당 평균 43만6000원에 달했다. 

지원자의 능력 외에도 졸업 시점이 중요한 평가 대상으로 떠오르자 취업준비 장수생들은 중소기업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이 지난해 10월 23일 발표한 ‘청년층의 중소기업 취업 의향 결정요인’ 보고서에 따르면 1989년생 청년 1863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4.7%가 ‘중소기업에도 취업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서울 동작구의 박모(27·여) 씨는 “지방 국립대를 졸업하고 3년간 아르바이트와 취업준비를 병행하며 대기업 공채에 도전했으나 번번이 낙방했다. 연애도, 친구도 포기하고 취업준비에 매진해왔지만 남은 것이라고는 잔고 10만 원도 안 되는 통장과 30대를 바라보는 나이뿐이다. 대기업 입사만 고집하면 정규직 월급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20대가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올해는 중소기업에도 입사지원서를 적극적으로 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눈을 낮춘다고 취업이 된다는 보장은 없다. 중소기업의 취업문마저 좁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1월 31일 온라인 구직 사이트 인크루트가 918개 상장사(대기업 156개, 중견기업 239개, 중소기업 523개)의 2017년 채용 계획을 조사한 결과 확정했다고 밝힌 기업은 전체의 44.68%에 그쳤다. 기업별로는 대기업은 67.31%가 확정했고 중견기업은 52.3%, 중소기업은 34.42%만 채용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그 많은 청년 고용지원 사업은?

채용 의사가 있는 기업들이 밝힌 총 채용 계획 규모는 4만5405명으로 지난해 같은 달(4만7916명)에 비해 5.24% 감소했다. 이는 대기업, 중소기업 등과 관계없이 기업 대부분이 채용 규모를 줄였기 때문이다. 올해 채용 규모 예상치를 지난해 채용 규모와 비교해보면 대기업은 약 4.12%, 중견기업과 중소기업은 각각 9.35%, 13.34% 줄었다. 인크루트 관계자는 “경기 불황, 불안정한 정치 환경,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 등 대내외적으로 불안정한 요소 때문에 기업이 올해 채용 계획을 확정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청년 고용환경이 이렇게 나빠질 동안 정부가 가만히 손을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지난해에만 총 7조5000억 원을 투입해 수많은 청년 고용지원 및 일자리 창출 사업을 쏟아냈다. 고용노동부(고용부)가 발간한 ‘2016년 청년고용정책 프로그램’ 자료에 따르면 지난 한 해 중앙행정부처의 청년 고용 프로그램은 128개,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113개로 총 241개의 청년 고용지원 사업이 집행됐다. 그러나 그 수가 무색하게 청년실업 현황은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정부의 청년 고용지원 사업이 실업률 감소로 연결되지 못한 이유는 청년 대부분이 사업 자체를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고용부와 한국고용정보원이 대학생, 미취업 청년 등 1600여 명을 대상으로 정부의 청년 고용지원 정책에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설문조사한 결과 절반 이상이 ‘정부의 취업지원 사업을 전혀 모른다’고 답했다. 경기 고양시의 민모(28) 씨도 “정부가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고자 많은 예산을 들였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정작 취업 과정에서 정부의 도움을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 내 주위에도 정부의 청년 고용지원 사업을 통해 취업에 성공했다는 사례는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청년들이 정부의 청년 고용지원 사업에 무관심한 이유에 대해 청년단체 대표들은 “정부가 임시방편 식의 청년 고용지원 사업을 남발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비영리청년단체 ‘청년이여는미래’의 백경훈 대표는 “청년 고용이 문제라고 하니 각 부처가 경쟁하듯 청년 일자리 대책을 쏟아내기만 했다. 정책 입안자들이 청년에게 어떤 형식의 지원이 필요한지에 대해 고민한 흔적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문유진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대표도 “정부가 일자리 관련 정책을 내놓기만 할 뿐 추후 관리를 하지 않아 정작 청년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도 뒤늦게 문제점을 알고 시정하려고 나섰다. 기획재정부는 1월 18일 ‘2017년 고용여건 및 일자리 중심 국정운영 추진 방안’을 통해 “3월 안으로 청년 일자리 정책을 종합평가해 보완 대책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올 연말까지 고용부의 일자리 사이트 ‘워크넷’을 보완해 청년이 쉽게 정부 지원 정보를 찾고 지원받을 수 있도록 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청년 일자리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청년 눈높이에서 정책을 평가·개편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공계열 복수전공해도 깨기 힘든 ‘인구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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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소프트웨어(SW), 코딩 등 정보기술(IT) 관련 교육을 받는 인문계열 학생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뉴스1]

 

 

‘취업 절벽’에 고통받는 인문계열 전공 대학생을 중심으로 이공계 과목도 함께 공부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이공계 학과목을 복수전공하거나 코딩 등 정보기술(IT) 관련 교육과정을 수강하는 학생이 크게 늘고 있는 것. 하지만 설령 인문계열 학생이 이공계열 학생에 버금가는 역량을 쌓는다 해도 이것이 취업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 구실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인문대생 90%는 논다’는 ‘인구론’을 깨기 힘들다는 것이다.

한국고용개발원의 ‘2016년 상반기 고등교육통계조사’에 따르면 인문사회계열에서 자연과학과 공학계열로 전과한 학생 수는 각각 389명, 927명으로 전국적으로 총 1316명에 이른다. 이는 전체 전과생 수의 5%에 육박하는 수치다. 

주요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이나 소프트웨어 관련 부전공을 선택하는 학생도 늘고 있다. 서울대에서 컴퓨터공학을 복수전공한 인문사회계열 전공 학생은 2012년 처음 등장한 이후 2014년 5명, 2015년 22명, 지난해 27명으로 꾸준히 늘었다. 한양대 역시 문과계열에서 컴퓨터나 소프트웨어 관련 복수전공을 선택하는 학생 수가 2014년 35명에서 2015년 47명, 지난해 79명으로 증가했다. 성균관대와 이화여대, 중앙대 등 서울 주요 대학에서도 이런 현상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다. 

학교의 전공 수업이 아니더라도 취업시장에서 인문계 전공이라는 약점을 극복하고자 소프트웨어 관련 외부 강의를 듣거나 각 대학의 코딩 동아리에 가입하는 학생도 있다. 소프트웨어 교육서비스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코딩을 배우려는 직장인 수강생이 주를 이뤘는데, 최근에는 취업을 목표로 코딩을 공부하는 인문계열 대학생도 종종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인문계 전공의 취업준비생이 소프트웨어 또는 코딩을 공부하거나 이공계 과목을 복수전공해 이를 지렛대 삼아 취업하려 해도 전문성을 인정받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애플리케이션 개발업체 관계자는 “대학 생활 내내 프로그램만 짜던 컴퓨터공학 전공 개발자도 포화상태인데 기업이 굳이 인문학 전공의 개발자를 채용하진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박세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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