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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과 막장이 공존했던 넥센의 201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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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표 프런트 야구의 명과 암... 내년 시즌은?

[오마이뉴스이준목 기자]

프로야구 넥센 히어로즈의 2016년은 KBO 역사상 가장 기이하면서도 다사다난했던 여정으로 기억될 것이다. 

팀은 주축 선수들이 대거 이탈한 상황에서도 정규시즌 3위에 오르는 기적을 연출해 내며 헝그리 신화를 썼지만, 정작 마무리는 감독과 구단이 서로의 뒤통수를 치며 마치 오래된 부부간의 파국을 연상시키는 막장드라마로 끝났다. 성공과 실패, 희망과 불안이 극과 극으로 엇갈리는 한편의 모순극을 연상시켰다.

사실 시즌 개막 전까지만 해도 대부분의 전문가과 야구팬들은 '당연히' 넥센을 꼴찌 후보로 예상했다. 2014시즌을 마친 뒤 강정호가 메이저리그 피츠버그 파이어리츠로 이적한 것을 시작으로, 지난해를 마치고서는 박병호(미네소타 트윈스)-손승락(롯데)-유한준(kt)-밴 헤켄(일본 진출, 시즌 중반 복귀) 등 줄줄이 투타의 전력이 한꺼번에 팀을 빠져나갔다. 

여기에 불펜의 핵이던 한현희와 조상우는 수술대에 올라 전열에서 이탈했다. 이들의 팀내 비중을 돌아보면 2년간 중심타자 3명에 1선발 에이스, 마무리를 포함한 필승조 3인방까지 동시에 빠진 팀을 두고 성적을 낸다고 기대하는 것은 누가 봐도 말이 안되는 상황이었다.

순탄했던 넥센의 정규시즌

하지만 넥센은 그 불가능을 현실로 바꿨다. 올 시즌 뚜껑을 열자 넥센은 여전히 강팀의 모습으로 강력한 우승 후보들을 잇달아 제압하며 승승장구했다. 

단순히 5강 경쟁에 합류하는 수준을 떠나 넥센은 사실상 종반까지 가을야구 진출에 별다른 위기를 겪지 않고 순위싸움에 대한 압박도 없었던 유일한 팀이었다. 넥센은 올 시즌 순위 싸움이 어느 정도 마무리된 9월(9승 12패)를 제외하면 월별 승패 마진이 모두 -1 이상 떨어진 적이 없을 정도로 큰 슬럼프가 없었다. 5월 29일 첫 3위로 오른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순위 변동없이 시즌을 마무리하며 순조롭게 준PO행을 확정지었다. 두산과 NC의 1-2위 경쟁, 중위권팀들과의 5강 경쟁과도 무관하게 넥센은 끝까지 자신들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시즌을 완주했다.

놀라운 것은 넥센이 올 시즌 외국인 선수를 제외하면 실질적인 영입은 채태인 정도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김하성과 윤석민이 중심타자로 성장하며 타선의 무게감을 채웠고, 서건창과 고종욱이 테이블 세터진을 이끌며 종전의 장타 위주 빅볼에서 팀 배팅과 기동력 위주의 스몰볼로 성공적인 변신을 이뤄냈다. 

마운드에는 선발에서 중고신인 신재영이 15승을 기록하며 에이스로 성장했고 박주현도 가능성을 보여줬다. 불펜은 미완의 강속구 투수였던 김세현이 마무리 전업에 성공하며 김상수-이보근 등과 함께 새로운 필승조를 구축했다. 시즌 후반기 가세한 에이스 밴 헤켄의 복귀와 스캇 맥그레거의 가세로 마운드 운용은 한결 탄탄해졌다. 

최대 변수로 지목되었던 홈구장 이전도 일단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다. 넥센은 올 시즌부터 기존의 목동구장에서 고척 스카이돔으로 홈구장을 옮겼는데 기동력과 작전야구로 변모한 넥센의 스타일에 타자친화적인 목동보다 고척돔이 더 잘맞았다는 평가다. 넥센은 보통 무더위로 선수들의 체력이 떨어지는 6~8월에 오히려 41승 28패의 고공비행을 기록했는데 여기에도 기후변화의 영향을 거의 받지않는 돔구장 효과가 선수들의 컨디션 관리에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넥센의 선전은 엄청난 투자와 전력보강을 단행한 다른 대기업 구단들의 몰락과 대조를 이뤘다. 엄청난 투자와 지원에도 항상 '선수가 없다'고 탓하는 일부 감독이나 관계자들에게 '그럼 넥센은?'이라는 반문은 모든 핑계를 무용지물로 만드는 전가의 보도와도 같았다.

FA 영입에 수백 억의 거액을 들인 김성근 감독의 한화와 조원우 감독의 롯데는 나란히 가을야구 진출에 실패했다. 지난해 정규시즌 우승팀에서 올해 9위로 추락한 삼성이 류중일 감독을 경질한 배경에도, 전력누수에 별다른 전력보강 없이도 3위로 선전한 넥센과의 비교가 구단 수뇌부의 평가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을 정도다. 

순탄했던 정규시즌에 비하여 넥센의 가을야구는 올해도 아쉬움으로 남았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을 2경기나 치르고 올라온 LG에 체력적 우위에 불구하고 1승 3패로 무기력하게 고배를 마셨다. 선발진의 열세와 젊은 선수들의 포스트시즌 경험 부족이 발목을 잡았다. 

염경엽 감독은 장기전과 플레이오프 마운드 운용까지 염두에 두고 에이스 밴 헤켄을 2선발로 투입하는 변칙적인 마운드 운용을 선택했지만, 또다른 선발투수인 맥그레거와 신재영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여기에 고비에서 타선 불발과 수비 실책까지 발목을 잡았다. 넥센은 마지막 4차전에서 LG에 4점 차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역전패를 당하며 고개를 숙였다.

넥센표 프런트 야구의 명과 암

사실 여기까지만 했어도 넥센의 2016년은 긍정적인 평가로만 끝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준PO 탈락 이후 염경엽 감독의 돌연한 사퇴 발표와 그 전후로 드러난구단 운영의 여러 가지 논란들은 올 시즌의 성과마저도 빛을 바래게 만들기 충분했다.

넥센의 트레이드 마크는 '프런트 야구'다. 특히 모기업의 하부 조직에 가까운 다른 대기업 구단들의 프런트 야구와는 또 다르게, 넥센 히어로즈는 야구단 자체가 하나의 기업인 야구 주식회사에 가깝다. 구단주를 비롯한 프런트가 야구단 운영에 대한 책임감과 전문성을 가지고 팀 운영에 적극 개입하는 것이 넥센만의 색깔이다. 

넥센이 초창기의 시행착오를 겪고 최근 몇 년간 프로야구 신흥강호로 성장할 수 있었던 데는 이러한 넥센표 프런트야구의 힘이 컸다. 하지만 한편으로 주어진 선수들을 데리고 성적을 내는 것은 역시 현장(특히 감독)의 능력도 중요하다. 이처럼 현장과의 정확한 역할 분담과 상호 존중이 이뤄지지 않거나, 혹은 구단주 1인의 독단적인 판단 때문에 언제든 구단 전체가 함께 혼란에 빠질 수 있다는 부작용은 넥센의 아킬레스건이다.

염경엽 감독의 사퇴 해프닝을 둘러싼 모습은, 넥센표 프런트 야구의 빛과 그림자를 동시에 보여준 장면이다. 그간 염경엽 감독과 이장석 대표간의 관계가 그리 원만하지 못했다는 것은 야구계에서 이미 공공연한 사실이다. 이장석 대표가 팀 운영을 적극적으로 주도하며 종종 현장의 권한을 침범하는 수위까지 이른 경우도 많았고 이를 두고 염 감독과 오래 전부터 갈등을 빚어온 것으로 알려졌다. 염 감독은 이미 올 시즌 중반에서 구단 측에 사퇴 의사를 먼저 밝힌 일도 있었다.

넥센은 창단 이후 이광환, 김시진 전 감독에 이어 염 감독까지 역대 사령탑 중 계약기간을 무사히 마치고 나간 감독이 아직 전무하다. 물론 다른 구단도 감독 경질은 흔한 일이고 넥센의 역사가 아직 짧다는 것도 어느 정도 감안해야 하지만, 현장과 프런트의 상호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넥센 같은 구단에서 현장 전문가인 감독과 최고 책임자인 구단주의 관계가 항상 원만하지 못하게 끝났다는 것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부분이다. 

설상가상 이장석 대표 본인의 거취도 아직 장담하기 힘들다. 이 대표를 비롯한 넥센 경영진은 횡령·배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구단 이미지 실추는 물론이고 자칫 존립 근거와 기반까지 위협받을 수 있는 심각한 위기 상황이다. 

순수하게 야구단 자체로만 보면 넥센은 내년 시즌에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 올 시즌 경험을 쌓은 핵심 전력들이 그대로 건재하고 여기에 한현희-조상우 등 마운드 전력이 가세하면 넥센은 더 이상 특별한 리빌딩이나 세대교체의 과도기 없이도 우승후보로 발돋움할 만한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염경엽 감독의 사퇴와 이장석 대표의 불투명한 거취로 인한 '리더십의 공백'은 넥센이 수년간 공들여 구축해놓은 탑을 한순간에 흔들 정도로 불안감을 자아내고 있다. 내년 이후 넥센의 행보가 과연 어디로 흘러갈지 야구팬들이 주목하는 이유다.

 

기사제공 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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