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부의 피 튀기는 경쟁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KB손해보험은 다른 무언가에 뛰어들어야 한다.
도드람 2023-2024 V-리그가 20일부터 10일 간의 올스타 브레이크에 돌입했다. 배구가 없는 하루를 선수들도, 팬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하루하루 보낸 끝에 올스타 브레이크도 어느덧 후반부를 향해 가고 있다.
남자부의 1~6위 6개 팀은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 동안 순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각자의 생존 방법을 연구해야 한다. 한 경기가 끝날 때마다 순위가 요동치는 역대급 순위 경쟁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7위 KB손해보험은 상황이 조금 다르다. 이미 순위 경쟁에서는 동떨어진 상황에서, 남은 시즌을 통해 나름의 무언가를 얻어야 한다. 과연 그들은 왜 지금의 위치에 놓이게 됐을까. 또 남은 시즌 동안은 어떤 것들을 준비하고 보여줘야 할까.
내년을 노렸어야 했나…포기하지 않은 탓에 찾아온 아이러니한 고난
지난 비시즌, 남자부에서 이적을 선택한 자유계약선수(FA)는 단 한 명이었다. 바로 토종 거포 나경복이었다. 우리카드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나경복은 KB손해보험의 노란색 유니폼을 입으며 대형 이적의 주인공이 됐다. 그러나 2023-2024시즌에는 그 유니폼을 입고 뛸 수 없었다. 그가 군 입대를 해야 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주전 세터 황택의까지 상무에 입대하면서, 나경복과 황택의가 함께 코트에서 뛰는 모습은 2024-2025시즌이나 돼야 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이로 인해 KB손해보험이 이번 시즌을 사실상 쉬어가는 편이 합리적이지 않냐는 의견도 나왔다. 황택의와 나경복이라는 전력의 핵이 모두 돌아오는 2024-2025시즌에 승부를 걸기 위해, 젊은 선수들 위주로 현재보다는 미래에 집중하며 다음 시즌의 외국인 선수‧아시아쿼터‧신인선수 드래프트 구슬을 모으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건 어떻겠냐는 것.
그러나 KB손해보험과 후인정 감독은 포기하지 않고 이번 시즌에도 경쟁에 뛰어드는 쪽을 선택했다. 황택의의 빈자리를 신예 신승훈과 박현빈에게 맡기는 대신 검증된 자원 황승빈을 한성정과의 1:1 트레이드로 영입해서 메운 것은 그 선언과도 같았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성적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KB손해보험의 의지는 고난의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황승빈이 기대치에 비해서는 다소 미묘한 초반 활약을 보인 가운데, 박진우가 나경복의 보상선수로 이탈한 미들블로커 포지션에서의 약점이 두드러졌다. 정민수의 체력과 경기력도 지난 시즌에 비해 기복이 심했다.
여기에 각종 불운까지 겹쳤다. 아시아쿼터 드래프트에서는 6순위, 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는 5순위 지명권을 부여받으며 연달아 낮은 순번을 배정받았고, 황승빈‧황경민이 부상으로 코트를 비우는 시간도 있었다. 만약 현재가 아닌 미래를 바라보는 시즌을 준비했다면 그저 불운으로 넘길 수도 있었겠지만, 현재를 포기하지 않은 KB손해보험으로서는 이러한 악재 하나하나가 치명적이었다. 결국 이 모든 악재들이 겹쳐 KB손해보험은 최하위라는 가혹한 성적을 받아들었다.
그래도 있었던 긍정적인 요소들, 남은 두 라운드 동안 더 찾아내야 해
비록 괴로운 시즌을 보내고 있지만, 긍정적인 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미들블로커 전향 후 첫 풀타임 시즌을 치르고 있는 한국민의 활약은 단연 고무적이다. 총 24경기‧88세트에 출전한 한국민은 블로킹 7위‧속공 9위‧서브 16위에 오르며 좋은 활약을 펼치고 있다. 라운드를 거듭하면서 한국민의 속공에 대한 견제가 늘어난 탓에 효율이 조금 저하되긴 했지만, 포지션 변경 후 첫 시즌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지금의 활약도 충분히 대단하다.
주포 안드레스 비예나(등록명 비예나)의 활약 역시 힘든 시즌을 버텨낼 수 있는 상수였다. 비예나는 득점 2위‧오픈공격 2위‧공격종합 5위‧퀵오픈 3위 등 거의 모든 공격 지표에서 최상위권을 달리고 있다. 193cm로 외인치고는 단신임에도 블로킹에서도 5위를 달릴 정도로 다재다능한 모습을 보이는 비예나다.
물론 KB손해보험은 봄배구에 진출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한국민과 비예나 말고도 긍정적인 요소를 추가로 찾아야 할 필요는 있다. 승부를 걸어야 하는 다음 시즌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또 성적과는 관계없이 의정부 실내체육관을 찾아주는 팬들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각자의 개인 기량을 더 자신 있게 펼쳐야 한다. KB손해보험의 선수들 개개인의 기량이 타 팀에 비해 심각하게 떨어진다고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기량을 코트 위에서 펼치는 빈도는 분명 이번 시즌을 기준으로 상당히 낮다. 후 감독 역시 내용이 좋지 않은 경기를 할 때마다 “상대가 잘해서 지는 건 괜찮다. 그러나 우리 선수들이 가진 기량을 펼쳐보지 못하고 지는 것은 안 된다”는 이야기를 자주 꺼낸 바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잃을 것도, 내려갈 곳도 없다. 하지만 나아질 것과, 나아갈 곳은 있어야 한다. 남자부의 치열한 레이스에서는 도태됐지만, 혼자만의 레이스에서는 나름의 결승선을 향해 나아가야 하는 KB손해보험의 남은 시즌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사진_KOVO
기사제공 더 스파이크
김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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