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짜로 안전 진단도 해줘요?
– 그럼 한동네 살면서 돈 받냐.
– 건축사인거 소문나면 여기저기서 다 봐달라고 할 텐데.
– 건축사 아니고 구조기술사. 여태 무슨 회산지도 모르고…
– 비슷한 거 아닌가…?
– 달라. 건축사는 디자인하는 사람이고 구조기술사는 그 디자인대로 건물이 나오려면 어떤 재료로 어떻게 만들어야 안전한가, 계산하고 또 계산하는 사람이고. 말 그대로 구조를 짜는 사람.
– 모든 건물은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야. 바람, 하중, 진동… 있을 수 있는 모든 외력을 계산하고 따져서 그거보다 세게 내력을 설계하는 거야. 항상 내력이 외력보다 세게…
– 인생도 어떻게 보면 외력과 내력의 싸움이고. 무슨 일이 있어도 내력이 세면 버티는 거야.
– 인생의 내력이 뭔데요….?
– ………몰라.
– 나보고 내력이 세 보인다면서요.
– ……….
– 내 친구 중에 정말 똑똑한 놈이 있었는데, 이 동네에서 정말 큰 인물 하나 나오겠다 싶었는데… 근데 그놈이 대학 졸업하고 얼마 안 있다가 뜬금없이 절로 들어가 버렸어. 그때 걔네 부모님도 앓아 누우시고, 동네 전체가 정말 충격이었는데…
걔가 떠나면서 한 말이 있어.
– 아무것도 갖지 않은 인간이 되어보겠다구…
– ….
– 다들 평생을 뭘 가져보겠다구 고생고생하면서 ‘나는 어떤 인간이다’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서 아등바등 사는데…
– 뭘 갖는 건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원하는 걸 갖는다고 해도 나를 안전하게 만들어준다고 생각했던 것들에,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에 균열이 가기 시작하면 못 견디고… 무너지고… 나라고 생각했던 것들, 나를 지탱하는 기둥인 줄 알았던 것들이 사실은 내 진정한 내력이 아닌 것 같고…그냥…
다 아닌 것 같다고.
– 무의식중에 그놈 말에 동의하고 있었나보지. 그래서 이런저런 스펙 줄줄이 나열돼 있는 이력서보다… “달리기” 하나 써 있는 니 이력서가 훨씬 세 보였나 보지.
– 가라.
– 내일 봬요.
– ㅍ.. 파이팅!
(떨떠름하지만 기분은 좋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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